학생들의 위험한 놀이(?)
1. 초등학생들이 하는 놀이 중에 ‘가족놀이’라는 것이 있다. 너는 할머니, 너는 엄마, 너는 딸, 너는 큰 엄마, 너는 이모....이런 식으로 가족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평상시에 친구이름을 부르지 않고 역할놀이의 가족관계호칭(할머니, 엄마, 큰엄마, 딸......)을 부른다. 예를 들어 딸역할을 맡은 학생이 엄마역할을 맡은 학생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다. 당연히 엄마역할을 맡은 학생은 딸역할 맡은 학생에게 “딸”이라고 부른다. 겉으로 보기에 재미있는 놀이 같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그 역할을 바꿀 수 있냐고 물어보면? 과연 바꿀 수 있을까?
바꾸지 못한다. 어떤 학생의 말대로
“자존심 상하게”
바꾸지 못한다. 그런데 놀이라면서 왜 자존심이 상할까? 놀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할머니, 엄마, 이모는 말 그대로 인기와 힘이 많은 학생들이 맡고, 딸이나 여동생은 인기와 힘이 없는 학생들이 맡는다. 그러니 엄마와 이모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딸이나 여동생에게 시킬 수 있지만 반대로는 불가능하다. 어른들에게는 가족놀이라, 놀이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놀이를 가장한 은밀한 학교폭력인 것이다. 속을 모르는 순진한 학생들은 몰라서 당하고, 힘없는 학생들은 알면서도 ‘놀이’라는 이름 때문에 당하고 있다고 말도 하지 못한다.
2. ‘양언니’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여학생들 중에 자기보다 한 학년이나 두 학년 위인 학생들과 ‘양언니’를 맺는다. 양언니는 또다른 양언니가 있을 것이고 그러면 초등학생과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연결되지 않을까?
양언니도 언듯 좋아보인다. 양언니이니 피를 나눈 친언니는 아니지만 다른 학생들의 괴롭힘으로부터 지켜주거나 심심하기라도 하면 함께 놀아주지 않겠는가?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공짜는 없나보다. 양언니 생일이면 양언니를 맺은 동생이 그냥 있을 수 있을까? 양언니는 공짜로 동생을 지켜주고, 놀아줄까? 여기에 돈과 선물이 오간다. 처음에는 어쨌을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굳건한 연결관계가 되어 조직이 된다. 가장 강한 양언니를 둔 학생들은 활개를 치고, 약한 양언니를 둔 학생들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양언니가 없는 학생들 앞에서는 과시해도 되지 않을까? 든든한 양언니가 있으니.
이렇게 보니 양언니를 맺는 것이 무서워지지 않는가? 어느 명절에 조카를 만났다. 평소 착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조카인줄로만 알았는데 우연히 학교이야기를 하다보니 자기가 양언니에서 어렵게 빠져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언니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끝으로 빠져나올 때 변명을 설명해주었다.
“애들은 엄마가 알았다고 하면 건드리지 않아요. 왜냐하면 조사가 들어갈까봐 그냥 놔주는 거예요.”
학생들의 놀이가 놀이처럼 보이는가? 왠만한 교사들도 부모들도 자세히 보지 못하면 꿈뻑 넘어간다. 난 2007년에 이 두 가지 사건을 다 겪었다. 그리고 2010년에도 겪었다. 이제 없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2015년인 지금도 이런 놀이를 하는 학생들을 보게 된다. 마음이 아프다. 학교와 부모들이 학생들의 생활에 여유를 갖고 더 깊이 세심하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바쁜 교사들과 부모들 눈에는 보이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