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혹은 ‘주의 날’(Lord's Day)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계1:10에 단 한 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이라는 말보다 ‘주일’ 혹은 ‘주의 날’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고 있는데, 주일의 기원은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과 관련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일날 부활하심으로(마28:1이하) 이 날을 거룩하게 하셨으며, 부활하신 다음 주일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요20:26), 오순절 성령 강림도 주일날 이루어졌습니다.(행2:1-13)
이런 점에서 신약의 주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고, 구원과 해방과 안식을 누리게 된 사실을 감사하면서 영원한 천국에서 완성될 안식을 소망하는 뜻 깊은 날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주일에 모여 그 구원과 안식을 새롭게 맛보면서 함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현재의 모습인 교회를 제도적으로 세워주시고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셨기 때문에 교회에 모여서 말씀을 배워야 하고, 교제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당연히 모이는 날이 있어야 하고, 제도와 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의 모임을 언제, 얼마나 자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볼 때 초대교회는 처음에는 안식일과 주일의 구분이 없이 날마다 모였으며(행2:46), 주일 저녁에도 모였습니다.(행20:7) 처음에는 안식일과 주일을 겸하여 지키다가 점차 주일 모임이 교회법에 의하여 정착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안식일에서 주일 성수로 정착되는 과정에 다소의 혼돈도 있었습니다. 특히 주후 2세기경의 지중해 연안의 교회들은 주일 새벽예배에 열심히 모였습니다. 그런데 4세기경부터 지중해 연안의 교회들은 안식일과 주일을 혼동하기 시작했으나, 이스라엘 본 토의 교회들은 7세기까지 안식일과 주일을 모두 성수를 했습니다. 이처럼 안식일 성수에서 주일 성수로 정착되는 과정에 다소의 혼동은 있었지만, 주일 예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된 것은 속사도 시대부터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안디옥의 감독이었던 익나티우스는 마그네시안에게 편지하기를 “그들은 더 이상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고, 주일을 준수하며 살아가는 희망의 소유자들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노예 신분의 신자들이 많은데다가 주일이 공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낮에는 일하러 다니고, 저녁 시간에 예배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한마디로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주일은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으로 일하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행20:7-11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설교가 끝나고 나면 저녁식사를 겸한 성만찬이 있었는데, 허가받지 않은 모임의 만찬에 대한 트라야누스(Trajanus) 황제의 금지 칙령으로 자연적으로 예배 형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신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노예들이 고된 하루 일과를 끝내고 저녁 예배 시간에 참석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해로 인하여 비밀리에 행동할 필요가 커지자 예배 시간은 아주 이른 새벽 시간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3세기에 이르러 주의 날을 더욱 기념하기 위해 자신들의 사업이나 일을 연기하는 엄격한 기독교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주후 321년 3월 17일과 7월 3일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모든 재판관들과 시민들과 장인들에게 ‘존경스러운 태양의 날’에 쉴 것을 선포하노라”고 하여, 일요일을 로마 제국의 공휴일로 선포함으로써 주일날 하루 종일 하나님께 예배하며 주일 성수를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을 계기로 4-5세기에는 주일 엄수주의 경향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6세기에 이르러 오를레앙 종교회에서 주일날 육체 노동을 금지시켰습니다. 특히 주일날 노동을 하는 것을 가장 엄격하게 제한한 것은 중세 카톨릭 교회와 영국 청교도들에 의해서 되어졌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일요일’이란 말이 다분히 이교도적이요 불신앙적일 뿐 아니라, 신앙에 역행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일요일’(Sun-day:태양의 날)은 동방종교 특히 페르샤 마드라 종교의 영향을 받아 태양신을 섬기던 날을 받아들여 정한 날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요일을 번역할 때에 Sunday, Monday, Tuesday, Wedesday, Thurday, Friday, Saturaday를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이라고 한 것은 음양오행설로 풀이한 명칭을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일요일은 해의 날로, 월요일은 달의 날로, 수요일은 물의 날로, 목요일은 나무의 날로 삼았으며, 금요일은 쇠의 날, 토요일은 흙의 날로 삼은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이 날을 ‘태양의 날’(일요일, Sun-day)이라고 부르기 싫어서 ‘주의 날’(Lord’s-day)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7.안식일의 영적 의미
안식일에 대한 영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영적인 안위와 평화입니다. 마2:27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위해 안식일을 제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후 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여 인간에게 주시고, 하나님과 인간이 영적 교제를 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시고 인간은 하나님께 나가서 영적으로 교제하고, 저주와 진노의 자식인 인간이 사죄함을 받아 거룩함을 누리고, 복을 받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2:28에 보면,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하여, 예수님 자신이 안식일의 실체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분으로 신성으로는 하나님 편에, 인성으로는 인간 편에 서서 양편을 중재하신 중보자이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 된 인간을 위하여 사죄와 구원과 평안과 영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죄인 된 인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죄 받아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해지고, 거룩해지고,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초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한 날인 것입니다. 초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인을 거룩하고, 복되게 하는 것을 예표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하나님인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오시고, 인간이 그를 맞이하는 귀한 날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예언하고 있는 날이기도 한 것입니다.
안식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예표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식일을 지키는 규례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레24:8에 보면, 매 안식일에 새 떡(진설병)을 성소 안에 있는 떡상에 진설하게 하였는데, 이것은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신령한 양식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감사제사입니다. 그리고 민28:9-10을 보면,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속의 죽음을 예표합니다. 또 신5:12-15에서는 안식일 성수의 이유를 애굽에서의 구원과 연관시켜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악에서 구원받아 안식을 누리게 됨을 예표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죄인들에게 구원만 주신 것이 아니라, 내세의 영생 복락과 영원한 천국에서의 영원한 안식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여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교제하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오시여 영적으로 교제하며, 예배를 받으시는 것을 예표하는 거룩한 날이요 복된 날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며 안식하게 될 것을 예표하는 날입니다. 이런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완성되어졌고, 이제 신약의 성도들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그 날을 사모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주일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