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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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짧아지고 아침 저녁 기온이 떨어지면 산골짝에 밤은 따뜻하게 데워진 군불방이 촤고의 명당이다.솔내나는 군불 연기를 맡으며 살금살금 데워져 오는 아랫목이 탐이나면 하루동안 고단한 산골 몸뭉침이 이자리에서 풀어진다.
아궁이에 솔갈비를 불쏘시게로 쓴다.그위에 작은 솔가지를 올려놓으면 저절로 어릴때 시골내음을 만들어준다.곧장 연기를 내며 붙혀진 아궁이속 불은 불고래로 넘어간다.쏘아아하고 빨려가는 불이 굴뚝으로 허연 연기를 올리면 산골에 어두어지는 저녁이 시작된다.
밑불 위에 두꺼운 소나무 장작을 두어개 걸쳐 놓으면 이밤은 걱정을 내려 놓는다.이렇게 산골 촌 흙집에 가마솥을 데우면 무쇠솥은 여러가지 노래소리를 만든다. 곧 데워지는 물로 하루 묵은 때도 씻고 빨래도 하고 산골에는 이 가마솥물이 여러가지로 요긴하게 쓰인다.
붉게 달구어진 아궁이 속은 어느새 서산에 지는 노을을 닮아간다.가마솥물은 이미 혼자 흥이났다.칠십년대 고고장의 소음을 연상시킨다.뜨거워진 가마솥뚜껑이 방정맞은 소리를 내며 열리고 보글거리는 뜨거운 물이 양동이에 한가득이 담기면 수돗가로 담겨간다.
숯이된 불을 아궁이 가까이 끌어내서 못대를 놓고 소금을 뿌린 청어를 올리면 아마도 외국에 나간 며느리도 오지 않을까.노릇노릇하게 구어지는 내음이 도저히 청어를 굽는 부엌에서만 갇혀있기가 어려운가봐. 산골 바람을 타고 옻사슴장으로 올라가고 , 옆대밭으로 나아가고 아랫마을로 내달려가서 오지도 않는 며느리를 찾는 듯하다.소금이 올라간 청어에는 소금타는 소리가 구수한 맛을 몇배로 더한다.
남쪽에는 부지런한 별들이 이미나와서 산골청어냄새를 반짝이며 반긴다.촉촉해진 별들이 유난히 해맑아보인다. 내게 빛을 띄울땐 우리는 아마도 이땅에 없었겠지.그러나 줄기차게 달려온 저 별빛은 바로 이순간 내게로 다가와서 이쁜 얼굴로 초롱초롱거린다.빈틈이 없는 저들의 별지키는 아침 해가 수평선을 밀고 올라올때까지 꼼짝없이 밤을 밝힌다.
먼곳에서 찻물로 떠온 말통은 벌써 반이상이 줄었다.아무렴 녹차부터 시작을 한다.이겨울에도 풋풋했던 봄에 내음을 맡고싶은 욕심은 데워진 황토방에서 보을 그대로 되살린다. 이십년에 시간이 지난 다기가 오늘따라 새롭게 눈에띈다.
청자연한 자연 유약에 칠십도공이 몸바쳐 물레를 돌려 서 불에 익혀 내놓은 뜨거운 차주전자,우물같이 하늘을 담는 식힘그릇,깊은 속을 담는 마음같이 찻물을 담아주는 찻잔, 그러나 내음으로 입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차를 담아주는 다기는 언제나 아무말없이 모든것을 차에게 덕을 넘긴다.
구들이 서서히 익을 무릅에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선다. 그래 구들도 익고 아랫목도 익고 차마시는 사람도 익고 어두워진 밤에게 고운 이별을 하면서 익은 얼굴을 식히려 빠른 걸음이 밤바람같아보인다.하늘 한번에 그림자는 어둠에 빨려들고 꿈속에서 어둠과 동무하며 깊은 숨소리만 들락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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