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세력이 물러간 1945년은 희망의 해였다.
하지만 미군정은 친일 부역세력을 그대로 중용함으로써 국민들을 실망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정당성에도 적지 않은 오점을 남겼다.
일본을 뫼시던(?) 이들은 그 대상을 미국으로 갈아탔을 뿐이었기에 그들이 진정
우리나라의 주권 수호를 위한 행위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들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주요 정책들이 미국의 비호 하에 수행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미국은 영원한 우방 국가로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아무렇잖게 외면할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미FTA 에서부터 시작하여 최근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이르기까지,
조금만 더 우리의 목소리를 냈으면 좋았을 것을 싶은 사례가
참으로 많은 게 현실이다.
이는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 자신의 노력에도 제약을 가할 때가 많다.
이러한 현실은 안타깝게도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전쟁이라는 비정상적(?)인 질서 하에 수립된 한-미 관계,
즉 약소국-강대국 동맹은 지난 날 독재 세력의 정권 유지를 위해 적지 않게
활용되곤 했다.
그들에게 미국은 자신들의 부족한 정당성을 보완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지닌
존재처럼 여겨졌다.
그랬기에 스스로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애초부터 그들은 가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국이 제 아무리 대한민국의 사회주의화를 막아준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지난 날 수행했다고 가정할지라도
그들의 이해관계가 우리의 이해관계일 수는
없었다.
이는 지리적인 부분만 살펴 보아도 명확해진다.
북한과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도발이 자국 영토에서의
전쟁으로 이어질 확률이
지극히 낫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전쟁은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하여도
상황이 나빠졌을 경우라면 얼마든지 빼어들 수 있는
칼과도 같이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북한과의 무력 다툼은 북한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자멸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그렇기에 아무리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지닌 정권이라
하여도 일단 전쟁은피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지난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 시에 취했던 입장은 이와 같은 양국의
이해관계 차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즉, 그들이 군부 세력의 쿠데타를 묵살하다 못해 자신들의 무기를 내어주기까지
할 수 있었던 데는 그들이 한국의 민주화보다 사회 안정 유지를 더욱 중시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역사는 한미 양국 간에 존재했던 힘의
불균형이 어느 정도 완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김영삼 정권시 적극적인 의사
표명이 미국의 군사 행위를
방지했던 점은 종속적이었던
한국의 입장이 변화하는
첫 발걸음과도 같았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과 미국 클린턴 정권 하에
가능했던 남북 관계의 진전은
한미 양국의 신뢰가 빚어낸 작품
(!)이었다.
새로이 탄생한 정권은 지난 두 정권이 미국과의 관계를
약화시켰다는 평을 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미국이 막대한 힘을 지녔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고려할 때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 증진을 위해 지난 정권 하에서 이룬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며,
어쩌면 차츰 회복해가던 자주성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현재의 시점에서 현재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현재는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하게 되고
그에 따라 우리는 현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길이 그리고 온전한
주권국가로서의 현명한 선택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 때까지
기다린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놓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치열한 고민은 지금
이 순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