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토는 명당인가?
탈신공개천명을 아시나요?
주산에서 이어진 용맥이 어느 지점에 멈추면서 기운이 뭉친 곳을 혈처라 한다. 혈처는 산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건강한 지점으로 다른 말로는 파워스폿이라 부른다. 그런 관계로 혈은 산의 꽃이니 나무의 열매와 같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산줄기에 혈을 맺는 것은 아니고 풍수에서 요구하는 여러 조건을 갖춘 곳이어야 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천리를 가야 혈은 하나 뿐이라고 할 정도로 귀한 것이다.
이런 곳에 묘를 쓰면 탈신공개천명(奪神功改天命)한다는 것인데, 음택의 명당은 신의 힘을 빼앗아 타고난 운명을 바꾼다는 것이다. 그래서 혈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무가치보(無價値寶)라 했다.
그런 까닭에 예로부터 가문을 살리고 보존하기 위해서 혈을 찾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실례로 영화 명당에서 보았듯이 흥선군 이하응은 가야산 밑의 혈처를 차지하기 위해 안동김씨들과 치열한 암투를 벌였으며, 천년 고찰 가야사를 불태우기까지 한 것이다.
한편 혈처는 토질이 곱고 밝은 것이 특징이다. 기맥이 따뜻한 곳이기 때문에 비석비토(非石非土)로 변하는 것이다.
비석비토란 암석도 아니고 흙도 아닌 것으로 단단하면서도 곱게 부서지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토색과 토질이 좋다고 해서 명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드러운 야산은 대부분 토질이 좋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당으로 불리는 혈처는 주산으로부터 이어진 산줄기(용맥)가 좋아야 하며, 주변 국세 또한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토질 이전에 지리적 조건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30년 전 친척이 돌아가시어 경기도의 모 공원묘지에 모셨는데, 그곳에서 소위 말하는 오색토를 처음 보았다. 당시만 해도 장비가 없던 시절이기에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는데, 흙빛은 눈부신 자황색을 띠고 있으며, 흙을 깎으면 사각사각 경쾌한 소리가 나는 것이 마치 대패질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흙의 입자는 미세하고 단단하였으며, 광중의 단면은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놓은 듯 울긋불긋하였다. 땅을 파는 인부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신이 나서 오색토를 연발하자 지켜보던 친척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어 팁을 주었다. 상주들 또한 슬픔 속에서도 만족하였음은 두말할 것 없다. 나 역시 풍수를 공부하고 나서 여러 곳을 경험해 보았지만, 그처럼 눈부신 토질은 구경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그 친척은 발복은 고사하고 오히려 화재와 파산, 그리고 교통사고 등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에는 명당에 썼다는 자부심에 기대가 컸으나 차츰 세파에 지친 듯 회의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심각하게 이장을 고민하는 눈치였다. 몇 년 전 그곳을 다시금 살펴보니 맥도 옳게 탔으며, 청룡·백호 등도 무난했으나 급한 경사지에 묘를 썼던 것이니 최소한의 당판을 형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오직 오색토에만 마음을 빼앗겨 명당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2001년 김종필 총재가 자신의 부모님을 부여에서 예산으로 이장을 하자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크게 이슈화된 적이 있었다. 그 묘를 가자면 임도에 차를 세워야 하는데, 바로 그 지점의 흙이 대단히 곱고 밝은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마치 콩가루 같은 흙이었는데, 눈이 부실 정도였다. 사람들은 묘지로 내려가기 전에 그 흙을 보고 감탄하면서 흙을 채취하고 했다.
당시 모 주간지는 이곳 묘를 작업한 분의 말을 인용하면서 묘지에서도 좋은 혈토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 때문인지 많은 사람이 이곳 묘를 “제왕지지”라 극찬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 김총재의 정치 행보는 급전직하 추락하고 만다. 그들은 묘소 앞으로 물이 길게 빠지는 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이것을 보면 오색토라고 해서 명당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풍수에서 요구하는 지리적 조건을 갖추었으나 토질이 거친 곳도 있는데, 순화가 덜 된 곳이기 때문에 후손들의 성격 또한 강하게 된다. 대표적인 곳이 안동김씨 김생해 손자 김상용, 김상헌 형제를 들 수 있다. 김상용은 병자호란 당시 77세의 고령에도 강화도에서 항전 중 성이 함락되자 화약고 불을 지르고 장렬하게 자결한다. 동생 김상헌은 대표적인 척화파로 청나라에 6년간 볼모로 잡혀가서도 절의를 굽히지 않았던 강골이었다. 이들의 조부 김생해 묘 용맥은 강한 석맥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이번 기회에 필자가 겪은 토질 좋은 곳을 소개해 본다. 지리적 조건을 갖춘 곳에 토질까지 좋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https://youtu.be/s7kwoCDbMbg
첫댓글 옳은 말씀입니다. 흙이 좋다고 혈토가 되는 건 아닐 것입니다. 명당을 팠을 때 나오는 흙이 혈토입니다. 다니다 보면 혈토처럼 좋은 흙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거기가 명당이라고 묘를 쓸 수는 없습니다.
또 진짜 혈토와 좋아 보이는 흙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혈토를 많이 접해본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