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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A5 | 페이지수 332
한국어판을 내며
이 책은남북한과 미국의 한반도 외교정책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분단의 원인과, 대부분 한국인의 이익에 반하는
분단의 작용방식을 고찰한다.
또 이 이 책은 분단의 주요 책임이 미국에 있으며
미국 정부는 자국의 외교목적을 위해 분단을
적극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남북한과 미국 정부의 통일 접근법을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독일 통일 경험과 대조적인 긍정적 통일 과정을
촉진할 규범을 제시한다.
나는 이 책을 두 부류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썼다.
하나는 미국인이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한반도 개입 범위와 개입의 효과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인이 한 . 미 관계의 주요 참고점으로 삼는 것은
한국전쟁이다.
그들은 한국전쟁이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의 헌신을 보여주는 모범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한국전쟁 개입을 포함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전반적으로 한반도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작용을 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분단이 한국인들의 평화적이고 민주적이며 자주적인
국가 건설 노력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도 아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그 결과, 한국인들이 통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할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또 이보다 훨씬 더 적은 사람들만이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합한 정책의 전망을 갖고 있다.
내 나라의 외교정책에 대한 책임감과
한국인에 대한 연대감에서
나는 이 책을 썼다.
또 미국인들이 한국의 경험을 더 잘 이해하고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도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따라서 미국이 새로운 한반도 정책을 개발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이 책의 한가지 목표이다.
한국인들도 내가 염두에 둔 독자층이다.
그래서 이 책이 한국에서 나오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나라를 건설하려는 한국인들의 결의에
찬 투쟁의 역사 때문에 그들을 오래 전부터 존경해 왔다.
슬프게도, 한국은 여전히 분단상태이며,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맞고 있다.
최근 한국(남한 몇 차례와 북한 한 차례) 방문을 통해 나는 한국 상황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남한 활동가들과 만나고 경험을 공유한 것은 특히 유익했다.
한국이 나아갈 방안에 대한 많은 논의와 논쟁에
참여해온 나로서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연대정신에
입각해 썼다.
또 미국과 한국 '주류'가 제시하는 남북한 문제 설명과 해결책에
대한 나의 도전이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썼다.
나는 남북한 문제 대부분이 미국의 외교정책과,
남북한 지도자들의 분열과 독재적이며 제한된 정치적 전망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또 나는 남북한의 기존 정치 . 경제 제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긍정적인 사회변혁 과정을 촉진할 통일에 입각한 전략을
제시하기 위해 한국 역사를 끌어냈다.
나는 이 책 - Korea:Division, Reunification, & U .S. Foreign Policy-을
1998년 1월에 탈고했다.
그 이후 주목할 만한 사건전개사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이,
한국 전쟁 기간 학살행위에 대한 대중적
논의 확산,
남한의 경제문제 심화, 북한 위기의 지속,
남한 . 북한 . 미국이 각각의 양자관계
변화를 위해 내놓은 새로운 외교정책 등이다.
나는 이 문제들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을 어떻게 강화시켜 주는 지를
간략하게 지적하려고 한다.
한국전쟁의 잔학행위 이 책의 상당 부분은 한국 역사, 특히 한국전쟁 기간의
역사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에 도전하는 데 바쳐졌다.
미국과 남한 관리들은, 전쟁기간에 자국 군대가 민간인을 학살한 것을 오랫동안
부인해 왔다.
그들은 모든 학살을 북한에 돌렸다.
그러나 그들 주장의 신뢰성은 많은 용기 있는 남한 사람들의
노력과 AP통신사 기자들의 심층취재 덕분에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1999년 9월에 AP는 미군이 1950년 7월에 노근리 인근에서 수백 명의 한국인
민간인을 살해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미국방장관 윌리엄 코언은 즉각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재검토를 약속했다.
비록 "이 사건은 과거에도 여러 번 조사했지만 학살주장을 확실히 증명하거나
뒷받침하는 정보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덧붙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남한 정부도 지금까지 이 주장의 신빙성을 부인해 왔다.
오랫동안 억제되어 왔던 그 밖의 민간인 상대 만행에 대한 보고가 이제 점점
더 많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예컨대 AP의 조사는 1950년 8월에 후퇴하던 미군이 민간인들이 건너고 있는
다리를 폭파해 수백 명을 숨지게 한 사건 두 건도 밝혀냈다.
또 AP의 조사자들은, 비밀분류가 해제된 미군 문서에서 미군 지휘관들이 북한군
침투 가능성에 대비해 민간인에게 발포하도록 하는 복무규정을 정했다는 것도
밝혀냈다.
한 한국인 연구자도 남한의 잔혹행위를 지목하는 또 다른 미국 비밀문서들을
찾아냈다.
이 문서들은 남한 경찰이 전쟁이 시작된 첫 주에 대전에서 1800여 명의 정치범을
(가끔씩은 미국 관리가 있는 자리에서) 처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범들은 공산주의자에게 '협력한다'는 혐의로 처형당했다.
남한 정부는 이에 대해 조사할 것을 약속했다.
또 이 문서들은 1951년 4월 대구에서도 남한 군대가 수감자들을 학살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북한 역시 미국이 이끄는 군대가 미군과 남한군이 북한을 점령했던 시기를 포함한
전쟁기간에 100만 명의 북한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며,
새롭게 학살혐의를 제기했다.
이런 변화는 아주 중요하지만, 이 사건들의 정치적 의미는 아직 불투명하다.
미국과 남한 정부가 결국에 가서는 자국 군대가 1 ~2건의 학살을 저질렀다고
인정하고 끝나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동시에 그들은 전쟁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대한 도전을 피하려고,
학살은 전쟁 초기의 혼란이 빚어낸 것이라고 둘러댈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되면 우리는 이 시기 역사에 대한 재인식을 촉진할 기회를 잃을
것이다.
이 역사의 복원은, 2차 세계대전 직후
민주적이고 사회주의 지향적이던 정부가
노동조합 . 농민. 영성. 청년학생 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조선을 지배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
이 정부 및 연합조직들은 남한에서 우익 한국인들과 연합한 미군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었다.
그래서 한국전쟁 발발 전에 이미 폭력적인 다툼이 몇 년 동안 벌어졌고,
이 다툼은 한국분단과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한국전쟁을, 미국이 대다수 한국인들의 의지에 반대하기 위해 개입한,
통일을 위한 내전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
이 전쟁의 내전적. 대중적 성격 때문에 미군은 민간인과 적을
구별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민간인 학살을 명령하게 됐다.
또 남한 정부는 좌파가 이끄는 대중운동에 권력을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많은 사람을 단지 정치적 신념 때문에 체포하고 나중에 처형했다.
요약하면, 잔학행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잔학행위에 대한 인정이 진정으로
사회정의와 사회변화의 동력이 되게 만들려면 더 폭넓은 역사적 맥락에
이 사건들을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역사의 복원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중요하다.
첫째, 이것은 남북한 정부가 독점할 수 없는 진보적인 한국의 중요한 기준을
설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둘째, 이것은 미국인들이 자국의 한반도 외교 정책이 가지는 진정한 성격과
결과를 바로 보게 해준다.
셋째, 이 역사 복원은 북한과 미국의 평화와 화해의 대화가
시작되는 지점을 제시할 것이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이번 만행폭로가 더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확한 역사적 해명을 요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경제문제 나는 이 책에서 남북한 국민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심각하며
그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남북한 경제의 어려움이 깊이도 다르고
그 바탕에 갈린 역학관계 또한 서로
크게 다르기는 하지만, 38선 양쪽이 효과적으로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통일과정 차원의 실질적이며 상호 연관된
사회변혁을 공통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경제문제는 내가 이 책에서 밝힌 것보다 더 심각해졌다.
1998년 남한 GNP는 약 6% 떨어졌고, 당연히 많은 고통을 발생시켰다.
역대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김대중 대통령은 주로 노동자들의 희생에 의존한
경제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1999년 들어서 남한의 주식과 채권 . 외환 시장이 다시 회복하고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고 GNP가 10% 상승하자, 국제투자자들은 남한의 '경제회복'을
축하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에게는 별 도움이 안된다.
게다가 2000년 초반에 무역수지는 다시 적자로 돌아서는 추세이고 가장 중요한
미국 경제가 불안정한 기미를 보이는데다 일본 경제도 침체로 돌아서고 있다.
여기에 더해 재벌의 부채문제는 아직 해결되지도 않고 있다.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은 미국과 IMF가 부추기는 자유시장 모델을 남한 경제문제의
해결책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과거의 성장전략을 되살리지 않은 것은 옳지만,
신자유쥬의 정책을 받아들인 것은
분명 잘못됐다.
과거 남한의 성장은, 정부가 재벌의 활동을 통제 . 지시하고
노동을 탄압하고 또 일본 기술 . 부품과 미국 자금 . 시장을
확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재벌들은 너무 강해져 통제가 쉽지 않아졌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성공적으로 지켜냈다.
또 일본과 미국은 남한의 수출 공세를
약화시키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타이나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직접투자를
하여 한국의 대일 수출품을
이들 나라에서 더 싸게
생산할 수 있게 함으로써,
남한 경제의 문제는 더욱더
심각해졌다.
이 결과는 90년대 후반에
이 지역의 과잉생산과 수출가격
하락으로 나타났다.
재벌의 수익은 결국 사라졌고,
1997년 남한 경제는 마침내 무너졌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내외 상황 때문에 바탕이 허약해져 버린
과거의 성장전략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
IMF가 부과한 자유시장 정책도 답이 아니다.
이 정책은 재벌의 수출과
해외자본 의존도를 더욱 높인다.
또 이 정책은 빈곤과 불평등을
확대시킨다.
이 지역 다른 나라에 부과된 비슷한 정책도
과잉생산을 다시 유발하고 동아시아 전역에
걸친 반(反)노동자적 경쟁력 압박을
강화할 것이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는 광범하고 안정적인 국가발전을 촉진할 수없다.
그래서 나는 남한의 급진적으로 새로운 발전전략을 만들어야 하며,
이 전략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정치적 운동을 건설해야만 달성될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
나의 자본주의 비판이 북한 경제모델을 찬양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많은 이들이 예상한 것과 달리 북한이 붕괴하지는 않았고 1999년에
북한 경제가 회복되기시작했다는 징후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랍들의 상황은 여전히 아주 심각하다.
게다가 북한 사회주의는 민주주의 결여 등의 다른 많은
(더 중요한) 실패를 겪고 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도 정치.
경제 제도의 변혁을 시도해야
한다.
휴전선으로 갈라져 있는 어느 쪽의 변화도 분단이 유지되고
있는 한 어려울 것이다.
분단은 노동계층을 자신들의 역사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분단은 또 새로운 사회전망을 촉진하고 신장하려면 필수적인
운동의 형성을 제한하는 데 국가안보를 이용할 수 있고 실제로
이용하는 정치적 분위기를 만든다.
북한의 제약이 훨씬 크지만,
남한의 상황도 만족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대한변호사협회가 집계한 것을 보면 김대중 정부
취임 초기 8개월 동안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람 수가
김영삼 정부의 같은 기간과 비교해 4배나 많다.
요컨대 나는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통일과정을
촉진할 전반적인 정치전략 개발의
중요성을 여전히 확신하고 있다.
외교정책 현재 남한과 북한, 미국 모두 새로운 외교정책을 제창하고 있지만
동북아 지역의 정치 역학관계는 이 책에 씌어 있는 것과 거의 달라진 게 없다.
예를 들어 김대중 대통령은 전임자들과 거의 같은 소리의
북방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노태우 . 김영삼 전 (前)대통령처럼 그는 남한이 북한의 흡수에
관심이 없고 북한과의 정치 . 군사 관계보다 경제관계에
우선순위를 두고자 한다고 선언했고,
남북 평화 협정이 북한과 미국 . 일본의 관계 정상화에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김대중의 정책은 북한에 대해 지금까지와
다른 개인적 . 정치적 지향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노 . 김 두 사람과 달리 김대중은 흡수라는 말을 본래
의미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 중요한 이유 한 가지는 남한 경제의 허약함이다.
또 그는 전임자들보다 남북한 경제협력을 더 지지해 왔다.
한 가지 예가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사업을
지원한 것이다.
뿐더러 그는 1998년 북한 해군의 잇따른
침입에 대해서도 대응을 상당히 자제했다.
이런 차이는 사소한 것이 아니며,
김대중과 김정일의 회담 등
남북 관계 개선을 이끄는 듯하다.
그러나 남한의 전략이 얻어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은 남한의 정상화 시도를 꾸준히 거부하고 있다.
예컨대 북한은 남한과의 경제적 유대관계보다는
정치.군사적 변화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북한은 또 (남한보다는)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 평화촉진에 가장 중요한 길이라고
믿고 있다.
양쪽이 우선순위를 각각
다른 데 두면서 정상화를
시도하고 있어 남북한
관계개선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나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변화가 현재의
교착상태를 해결하고 생산적인 대화분위기를
만드는 데 가장 유망한 방법이라고 여전히 믿는다.
미국과 일본, 남한의 관리들은 북한의 정치적 고립을 해소하기를 원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과 (이 문제에 관해서는 미국을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
일본이 여전히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거부하고 있다.
북한이 두 나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이 정상화가 가져올
경제적 이득을 확보)할때 까지는 남도 북도 협상태도를
바꾸지 않을 여지가 크다.
한편 미국 정부는 현재의
대북한 관계를 바꾸는 데
거의 관심이 없다.
북한이 관계 정상화 압력을 넣고 있지만,
미국 정책결정자들은 군사적 위협이 감지될 때만 북한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태도가 가장 최근에 나타난 것은 1998년 8월에 북한이(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 같은) 자체 위성을 올리기 위해 다단계 로켓을 발사했을 때였다.
미국과 일본은 이것이 일본 영공을 넘어가는 탄도미사일
시험으로서 이 지역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은 미국과 일본이 자체 미사일 개발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주권국가로서 자치 로켓 개발계획을 추진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미국과 일본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 중단을 요구했다.
일본은 북한에 보내는 식량선적을 중단했고,
미국과 일본의 방위산업체들이 즐거워할 미국의 시어터
미사일(theater missile) 방위연구계획에 참여하기로
했다.
결국 미국은 북한과 미사일 문제 협상에 착수했다.
북한은 두 나라간 관계 정상화 절차가 지속되는 한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호응해 미국은 북한에 금융 및 무역 제제 일부를 해제하기로 했다.
북 .미 관계의 진전은 네 가지 문제 때문에 위협받고 있다.
첫째는, 미국이 한국전쟁의 공식 종전을 위한
평화협정 논의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 의회가 1994년의 핵협정에 따른
중유공급을 제때 하는 데 필요한 예산승인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섯째는, 미국이 (을지 포커스 렌즈 협동훈련 같은)
북한에 대항한 한 . 미 전쟁연습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넷째는, 대북 무역 및 투자 규제
완전철폐를 거부하는 것이다.
미국 정책을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 쪽으로 돌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진전이 가능한 듯할 때 종종 미국
언론에(보통 미국 정보기관이 흘리는)
북한의 위협적인 행동에 대한 근거 없는
보도가 실리곤 한다.
1998년 8월 초에 그랬다.
미국 언론은 미국 정보기관이 북한의 비밀 지하 핵시설을
감지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결국 북한은 미국의 식량지원 대가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사찰을 허용했다.
미국 사찰팀이 텅 빈 굴만 발견하는 동안,
이 사건은 두 나라의 관계를 냉각시키는 데
기여했다.
궁극적으로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상호)
이익이라고 인식하는 깨어 있는
미국 대중이 있어야 미국의 정책변화를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동아시아 안팎 나라들과의 관계 정상화 시도를
그 동안 적극 추진해 왔다.
2000년 1월에 이탈리아와 수교했으며, 일본 . 오스트리아 . 캐나다 . 영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러시아와도 새로운 우호조약을 맺었다.
북한은 일본과 협상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데,
이는 관계 정상화가 실질적인
자금확보와 투자유치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2000년 4월, 북한과 일본 관리들은 7년 만에 공식회의를 열었다.
북한과 대조적으로 일본은 관계 정상화에 열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은 북한 간첩에 납치됐다는 일본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미국의 부추김을 받아) 1970년 일본 민항기를 북한으로 납치한 일본 적군파
단원의 추방을 요구하는 식으로 북한에 대응했다.
게다가 일본은 북한이 남한과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협상을
벌이기 전에는 추가 경제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다.
두 나라간 추후 회담일정이 잡혀 있기는 하지만,
북 . 미 관계 변화가 있기 전에 성과가 나올지는 의심스럽다.
나는 이 책에서 제시한 전략적
전망이 분단선 양쪽의
정치현실을 바꾸고
민주적이고 힘있는 통일절차를
진전시키는 데 필수적인
(한국과 미국의) 운동을
강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남과 북의 한국인들이 경제적 . 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이런 절차를 장려할 적절하고 희망적인 때이다.
2000년 5월
마틴 하트-랜즈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