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이 페이지 집필을 담당한 집필자는 중학교 교사가 아닐 것입니다.
중학교 현장 교사라면, 황제와 교황도 구별 못하는 중학생들에게 한페이지도 아닌 3분의 2쪽에 무려 8개의 회의와
조약, 플랜, 생소한 지역명을 담는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2015 교육과정 지학사 교과서 184쪽에는 해방 이후 중학교
교과서에서 한번도 기재된 적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2021년에 처음 이 부분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하소연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중동중에서 공부하는 역사 1교과서 184쪽에는 삼분의 일은 중단원 확인 문제인데 한쪽의 삼분의 2에 무려 8개의 회의와 조약을 담아 놓았습니다. 정리겸 언급해 봅니다. 1920년 국제 연맹, 1921~1922 워싱턴 회의, 연대도 맞지 않게 워싱턴 회의를 언급한 후 다시 1919년으로 돌아가 베르사유 조약, 국내 백과사전에도 안나오는 프랑스의 루르 지방 침공(공인된 역사 용어는 브리태니커 사전에 의하면, 루르 지방 점유 Ruhr occupation, (1923–25)임), 도스안(1924), 영안(1929), 로카르노 조약(1925), 독일의 국제 연맹 가입(1926), 로잔 회의(1932), 켈로그·브리앙 조약(1928)을 적었습니다. 이 책은 강화도 조약을 조일 수호 조규로 적어 놓더니, 흔히 부전 조약(Treaty for the Renunciation of war)이라고 교과서 마다 쓰는 용어를 구태여 학생들이 학습하기 어려운 캘로그·브리앙 조약(Kellogg-Briand Pact)으로 적어 놓았습니다. 왜 이름이 도스안이나 영안과 캘로그·브리앙이라고 하는가 등등 현장 교사는 정말 힘든 상황입니다. 첨부한 그림은 이 교과서 184쪽의 도표입니다. 참고로 도스안이나 영안은 현장 교사들이 자주 들여다 보는 함규진 저 『조약의 세계사』(2014, 미래의 창)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제 말을 방증하는 자료로 동아 출판사 교과서 같은 주제 내용에서 제시한 도표를 가져와 봅니다. 동아 교과서 173쪽 자료입니다.
-2021.11.21 한줄 메모장에 쓴 글
제가 항상 주장하는 것인데 중학교 교과서 집필자를 교수나 고등학교 교사로만 구성하다가 중학교에서는 전혀 가르
칠 필요가 없는 깊은 고등학교 교과서 개념을 중학교 교과서에 학습 요소로 넣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단 교육과정에
들어오면 그 뒤로 다른 교과서들이 받아쓰기를 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교과서에서는 빠지지 않고 학생들은 고등학교
정도에서 배울 내용을 중학생 수준에서 학습하느라고 고생을 하게 됩니다.
만약 집필자를 교수나 고등학교 교사로만 구성했다면 검토라도 중학교 교사에게 맡겨서 이해하기 쉽고 배움의 즐거움
을 줄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데 중동 중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교과서는 매우 어려워서 아주 애를 먹습니다.
올해 또 이 부분을 가르치게 되었을 때 기말고사 준비로 절망하고 있는 제자들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이 페이지를 나갈 때
거의 역사를 포기하겠다고 말할 것임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고심하다가 아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수업 시간에
활용해 보았는데 학생들 얼굴이 밝아져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단 5분 만에 이 부분을 돌파한 내용이랍니다. 비법은
이 페이지에 실린 조약과 회의를 첫글자로 이어서 알려 준 것입니다.
베
워
도
로
영
잔
베르사유 조약 외에는 몇년인지 외울 필요 없다. 순서를 기억하면 된다. 라고 하였습니다.
제자신도 1919 베르사유 조약을 출발로 하여 다른 조약들이 술술 기억났습니다.
특히 로카르노 조약 부분에서는 "충분히 반성했으니 도로 국제연맹에 들어와도 된다."로
기억하면서 독일의 국제 연맹 가입이 허락된 조약이라고 했고, 로잔 회의는 "잔금" 얼마 남지 않았으니
팍 줄여 주겠다로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영안이 1929년 제시된 것에서는 '1929년 영~경제가 안되네! ' 로 말하면서 세계에 어떤 불황이 닥치게 되었는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언급하지 않은 켈로그.브리앙 조약은 학급 회장의 성과 학급 부회장의 성(first name)을 따서 "김최 조약" 식으로
명명한 것이라고 하였고 우리말 식으로는 전쟁 하지 말자고 하여 '부전 조약'이라고 말한다 하였습니다.
워싱턴 회의에서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이던 이승만이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출국하여 최고급
호텔을 다니며 독립자금을 펑펑 사용하다가 끝내는 임시정부로 돌아오지 않아 임시정부에서 탄핵을 당한 군축 회의로
내년 중3 때 한국사 부분에서 자세히 배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워싱턴 회의 부분은 아직 진도를 나가지 않은 5.4 운동 부분에서 다시 언급하려고 합니다.
(기말고사 진도가 바빠서 세계 대전 부터 나가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사가 매우 복잡하여 가장 나중에 가르치려는
계획입니다.) 여기까지 쓰면서 이승만이 정말 워싱턴 회의에 참석해서 활동했는가 하는 것이 궁금하여 찾아보니
휴~ 역시나 회의장에 입장 조차 하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무거운 책임 탓인지 당시 임시정부 대표단의 굳은 표정이
카메라 앵글에 그대로 잡혀 있어 가져와 봅니다.
워싱턴 군축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현지에 도착한 대표단 단장 이승만(오른쪽)과 서기 정한경이 환영 꽃다발을 목에 건 채 사진기 앞에 섰다. 무거운 책임감 탓인지 두 사람 다 무표정한 얼굴이다. 이승만은 한국인 1호 미국 박사이고 30세 정한경은 한국인 2호 미국 박사이다. 제공=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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