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5일- 누가복음 19:28-44
잠언 19:18-23/ 찬송 142장
예루살렘이여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마침내 예수님 일행은 예루살렘에 다다랐습니다. 누가복음은 갈릴리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까지 여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9:51-19:28).
예루살렘 입성은 용의주도(用意周到)하게 준비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벳바게와 베다니 가까이 가셨을 때 두 제자를 미리 보내십니다.
두 제자의 임무는 맞은편 마을에서 나귀 새끼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그들이 새끼 나귀를 풀어 오려고 하자 임자가 그 이유를 묻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주가 쓰시겠다”(31)고 하자, 주인은 미리 약속한 듯 승락하였습니다.
나귀는 아직 누구도 등에 태워보지 않은 새끼였습니다. 제자들은 나귀 등에 겉옷을 걸치고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그들은 길 위에도 겉옷을 깔았습니다.
감람 산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르는 길은 내리막길입니다. 메시야의 행진에 들뜬 제자의 온 무리는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38).
이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이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환호성을 못 마땅해하면서 예수님에게 그들을 책망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말을 일축하시면서, 제자들의 메시야 대망은 시대정신임을 일깨우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40).
예수님의 말씀은 예언자의 전통에 선 것입니다. 일찍이 선지자 하박국이 한 말입니다.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합 2:11).
예수님의 대답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숨김없는 위기와 위협을 예견하신 것입니다.
장차 예루살렘이 폐허가 될 때 비로소 예수님의 예언이 옳았음을 증언할 것입니다(43-44).
이를 이미 헤아리신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오자 울며, 탄식하셨습니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42).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바로 ‘승리의 행진’이었습니다(마 21:10; 막 11:9; 눅 19:36; 요 12:13).
샬롬샬롬
☀ 다시 봄
1)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일은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선지자 스가랴가 예언하였습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 9:9). 성경은 말보다 나귀를 선호합니다. 말은 전쟁용이고, 나귀는 평화용입니다. 평화로운 시기에 왕은 나귀를 탔습니다. 메시야의 입성은 정복자의 모습이 아니라, 평화의 행진이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눅 19:38).
☀ 새겨 봄
1)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내려오시며 그 도시를 바라보고 우셨습니다. 일찍이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탄식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눅 13:34). 예루살렘은 어머니이고, 도시의 주민은 자녀라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이 우신 까닭은 예루살렘의 종말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루살렘과 성전은 주후 70년, 유대의 독립 전쟁의 끝에 파괴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식은 깊은 사랑의 호소였습니다.
첫댓글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희생 사역과 예언의 성취임을 깨닫습니다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 말은 전쟁용이고, 나귀는 평화용입니다. "
주님 일상을 보살피는 나귀를 타고 오신 주님 당신을 찬양합니다. 모든 기술이 전쟁과 연결되고, 전쟁뒤에는 공격적인 돈벌이가가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시대의 나귀는 무엇인가요? 우리시대의 말은 무엇인가요? 주님 평화의 지혜를 허락하옵소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오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신 주님을 되돌아봅니다. 우리를 이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도록 우리도 우리 사명의 길을 올바르게 가게 하옵소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전쟁 중 고통 받는 이들에게 오늘도 평화의 왕으로 찾아 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