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헌납공 대종회를 마치고/안성환
헌납공 대종회 참석은 처음이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대종회장소에 참석했습니다. 3파(입산, 구산, 삼가) 대표자들은 시간 맞춰 속속 도착하였고 회의는 11시 30분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상철회장님과 상찬사무국장께서 회의자료 꼼꼼히 준비해 오신 덕택에 대종회의 진행은 매우 매끄러웠습니다. 먼저 새해 인사가 시작 되었고 이어 회장님 인사말씀과 동시에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작부터 종원들의 의견은 열띤 토론으로 분분하면서 진지하였습니다. 이러다가 오늘 해질까지 회의가 끝날 수 있으려나 했지만, 해피엔딩(和)으로 마쳤습니다. 역시 자랑스러운 명문가의 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회의내용은 3파 문중의 이사 선임과 회계연도 조정, 그리고 정기총회 일정, 단톡방의 이용예절, 회장임기와 윤번제 등 많은 사안을 슬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귀가하면서 천년을 지켜왔던 신라가 생각났습니다. 대부분의 민족들은 2~3백년을 버티지 못하고 퍽퍽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신라는 어떻게 천년을 지켜왔을까? 지구촌에 천년을 지켜온 나라는 흔치 않습니다. 꼭 찍으라면 신라와 로마입니다. 그런데 로마 천년은 신라 천년과 그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혈통이 다릅니다. 로마는 다민족 국가라면 신라는 한민족국가입니다. 신라가 천년을 지켜온 이유는 큰 틀에서 보면 ‘화(和)’입니다. 이 글자를 풀어보면 쌀(禾)이 입(口)으로 들어가니 늘 화목하고, 온화하다는 뜻이 담겨 있는 글자이지요. ‘和(화)’라는 뜻에는 이 외에도 화목, 화합, 온화, 합치다 등 잘 어울려 더불어 산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럼 신라가 천년을 지켜온 이유가 왜 ‘和(화)’때문인지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신라초기에는 사로육촌의 연합회에서 ‘和(화)’자를 끼워 넣어 ‘和白(화백)’이란 것을 만들어 ‘화백회의’를 하며 나라의 중대사를 의논하며 和合(화합)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다 통일신라로 내려 오면서 원효라는 대사가 나타나 여기서 또 ‘和(화)’자를 넣어 和諍(화쟁)이란 중심사상을 만들어 신라의 전성기를 만들었습니다. ‘화쟁’이란 말은 각 종파의 서로 다른 이론을 인정하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 통합하는 이론입니다. 원효의 화쟁(和)사상이 신라를 부흥시켰다는 데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시의 종파는 오늘날 다른 성씨와 같을 정도의 무게감이 있습니다. 신라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망한 이유는 ‘화(和)’를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귀족들의 권력 욕심과 부의 욕심 때문에 소외된 계층의 반란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화백’과 ‘화쟁’은 ‘양보’와 ‘이해’와 ‘인정’일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명문가라도 ‘和(화)’를 외면하면 그 문중은 더 이상 명문가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끊임없이 ‘和(화)’만 이야기 했는 것은 이번 헌납공대종회의 마무리는 매우 화기애애(和氣靄靄)했기 때문입니다.
참 행복했습니다.
월강종중(구산문중) 성환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