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와 함께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누구일까? 하는 의문을 품고 살고 있다. 불교의 선방에서는 '이뭐꼬' 하는 화두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물음이 있다. 끊임없이 고민해 봐도 내가 진정 무엇일까 하는 의문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며 더욱 그 생각을 하게 되었다. 700쪽이 넘는 장편의 글을 오랜만에 대하며 언제 다 읽을까 고민했는데 의외로 잘 읽혔다. 자아와 비非자아의 내밀한 소통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와 내 그림자를 나누는 일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소설에서처럼 현재의 나는 그림자이며 내 본체는 어딘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정해진 순서대로 살게 되는 일상이 무료할 수도 있지만, 안정적인 상황이 주는 안도감도 없지 않다. 그날이 그날인 것이 행복이라는 말처럼 어떤 새로운 변화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 삶이 다일까 하는 궁금증이 불쑥불쑥 일어나곤 한다.
주인공은 17세에 만난 첫사랑 소녀를 잊지 못하고 살다가 그녀가 말했던 다른 세계를 찾아 벽을 넘어 그 도시로 간다. 그 도시에 가려면 자신의 그림자를 떼어내야 하고 눈에 상처를 내야 했다.
그림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물마다 따라다니는 빛의 그림자. 본체의 움직임에 따라 같은 동작을 하는 그림자. 그것이 별도의 생각과 행동을 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소설에서는 별도의 생명을 가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림자도 없고 시계탑 시계에 바늘이 없는 도시에서 오매불망 잊지 못 하던 소녀를 만났지만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가 자신과 애틋한 사랑을 나눌 때 자신이 사는 세계에 오면 자기는 지나온 과거는 기억 할수 없고 자신과 연결된 어떤 사람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서운해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녀 곁에 같이 있을 수 있음에 행복해한다.
주인공은 사랑이란 상대에게 자신을 송두리째 내주고 싶은 충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녀 이외의 다른 상대에게서 그런 온전한 충동을 찾지 못하고 17세에 머물러 있는 주인공의 사랑이 아팠다. 이야기는 현실과 비현실을 왕래하며 이어진다. 주인공은 이미 죽은 사람과 만나고 소통하며 자신의 내면을 찾아간다. 도서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가상의 경험이라는 소재를 충족시키기에 좋았다.
이쪽에서는 도서관 관장을 하고 저쪽 세계에 있는 도서관에서는 사람들의 오래된 꿈을 읽어주는 주인공의 역할은 양쪽 다 사람들의 생각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어느 쪽이 현실이며 어느 쪽이 비현실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한쪽 도서관에는 책을 아주 많이 갖추어두고 흡입할 정도로 읽는 소년도 있지만, 다른 세계의 도서관에는 책 한 권도 없이 사람들의 오래된 꿈을 읽으면 되었다.
주인공이 16세의 어린 소녀를 기억하며 평생을 살았듯이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어떤 순간은 평생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줄 수도 있다. 나는 몸이 아플 때 어려서 아픈 나를 업고 병원으로 내달리던 아버지의 따스한 등의 감축을 기억해 낸다. 그것은 나를 치유하는 힘이 되이 줄 때가 있다. 꿈이라는 매개를 통해 우리는 비현실적이지만 보고 싶던 사람을 만나고 이루고 싶던 일들을 경험하기도 하니 현실과 비현실의 혼재 상태에 살고 있다고 할수 있다.
혼재된 시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본체가 무엇이든 지금 자신의 모습이 나를 이끌어가는 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자신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으며 그림자와 함께 둘이 이끌어가야 하는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지원군이 생긴 느낌이다. 살면서 벽은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하나의 벽을 통과하더라도 그 너머에 세워져 있을 또 하나의 벽 앞에서 우리는 자신을 믿고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작가의 말을 새기며 책장을 덮었다.
박경임
시집 <붉은입술을 내밀고> 수필집 <독기를 빼며> pkl1027@hanmail.net
책이 여러 사람에게 회자되기를 바라며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