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조 인 숙
볕이 잘 드는 카페 창가를 찾아 노트북을 연다. 오전 공연을 끝낸 후 찾는 곳이다. 지역 무료급식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시 낭송 공연을 한 지도 반년이 되어 간다. 공연이 오전이라 일이 끝나면 오후 일정까지는 시간이 남는다. 집에 다시 들어가기도 어중간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카페 안은 점심시간까지는 한적해서 강의 준비와 노트북에 깔려 있는 폴더 정리를 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카페는 고택을 개조해 외관은 한옥 모양을 하고 있다. 정원을 따라 들어가면 잘 정돈된 소나무며 철마다 다른 꽃들이 둘러싸여 있어 마치 작은 숲속 같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은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간단한 요깃거리와 함께 마실 차를 주문하고 늘 앉던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통유리창 안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은 나만의 정원에 와 있는 듯한 호사로움을 누리기에 충분했다.
자리에 앉아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순간, 작은 물체가 나를 향해 오는 듯하다가 이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보인다. 너무 작아서 나비였거니 생각했는데…. 나비여도 생명체는 다 귀한것이지만, 자세히 보니 어린 새였다. 작은 몸이 더 작게 바닥에 붙어 움직이질 않는다.
바로 직원을 불러 새가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직원은 잠깐 보더니 익숙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새들이 유리창을 모르고 부딪쳐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 한다. 어떡하냐며 호들갑을 떠는 나를 지나쳐 카운터 손님 쪽으로 무심히 가버린다. 나에게 이런 엄청난 난제를 안겨 놓고 말이다.
어찌하나, 밖으로 나가 보지도 못하고 있을 즈음 조금씩 새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한다. 금세 고통이 오는지 작은 입을 한껏 열어젖히고 울어 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느껴진다. 너무 작아서 만지기도 두려울 지경이다. 우는 것도 지쳤는지 한동안 작은 숨을 몰아쉰다.
순간 왈칵 눈물이 나면서 가슴이 내려앉는다. 저 어린 새와 내 처지가 왜 이리 닮아 보이는지 설움이 밀려온다.
별반 다를 게 없었던 일상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남편의 사고는 나를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밀려오는 고통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우는 일밖에 없었다. 이제는 우는 것조차 힘에 부쳐 그저 숨만 고르고 있는 내가 그 작은 새를 보고 있자니 송연한 아픔이 밀려온다.
다리를 세우며 일어나고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그 작은 새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힘을 내!’라고, 날 수 있을 거라고 외치는 그 마음을 알았는지 새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그 외침은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작은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다. 기적이란 게 이런 걸까, 어린 새는 몇 번을 두리번대다가 나뭇가지에 날아 앉는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참 있다 날아간다. 마치 나에게 보여 주려는 듯, 이렇게 다시 날 수 있다고, 조금 숨을 고르고 나면 괜찮아진다고 위로하는 것 같았다.
정원이 있는 카페는 분명 그 어린 새에게는 나무와 꽃이 있는 그저 작은 숲이었을 것이다. 닥쳐올 시련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하면서 어린 새는 날아다녔으리라.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한 치 앞도 못 보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나도 남편 일을 겪기 전에는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지냈다. 크고 작은 다툼과 갈등은 있었지만, 갑자기 다가오는 상실의 아픔은 그 누구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차가운 유리 벽에 부딪혀 길을 잃었지만, 마지막 몸부림으로 다시 날아오르듯 나도 그렇게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어진 길을 찾아 헤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배운 것 한 가지, 그건 아주 사소한 것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행복이다. 아침에 일어나 주어진 일상에 맞춰 저녁 잠자리에 들기까지 행복은 평범한 일상 그곳에 있다.
주문한 커피를 자리로 당겨 옮기며 습관적으로 통유리창 밖 바닥을 본다. 새가 움직임을 더해간다. 아픈 기억을 잊고 잘 날 수 있을 거라 믿고 싶다. 그 믿음은 잘 살아내겠다는 나에게 하는 약속이기도 했다.
남은 흔적은 언제 지워질지 모르겠지만, 그 흔적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릴 용기를 내어본다. 저 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