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자연이 깊어지는 시간
서 옥 선
귀한 손님이 찻방을 들어선다. 분홍 딸기가 주렁주렁 담긴 잔 받침을 테이블 위에 놓는다. “할머니, 차 마시고 싶어요.” “그래! 예쁜 찻잔 골라 오렴.” 화려한 문양의 찻잔을 손에 든 아이에게, 조심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 눈길은, 찻잔이 잘록한 손가락 사이에서 떨어질세라 애가 탄다. “할머니 차가 뜨거워요.” “뜨거우면 마시지 말고, 식을 때까지 기다려요.” 네 살 손녀는 잔 받침과 찻잔에 그윽한 눈길을 주며 아랫입술을 깨문다. 잠시 후, 두 손으로 도자기 잔을 다부지게 감싸 안고, 입으로 가져간다.
두어 평 남짓한 찻방은 소박한 우주다. 찻방에는 테이블과 찻그릇을 보관하는 장, 간이 책꽂이, 소담스러운 협탁에 찻물 주전자가 전부. 창문 밖에는 산과 들, 푸나무가 사계절의 풍광을 그린다. 엄마 무릎에 앉은 작은손녀는 차를 마시는 언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다. 두 살배기에게는 미니어처 같은 다기들이 모두 장난감이다. 잔이 서로 부딪치는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신기하다. 아이는 고사리손이 장난감을 만지려는 순간, 쏟아지는 어른들의 설레발이 재미있다. 찻방은 응접실, 책방, 놀이터, 안식처 등 어떤 용도가 되거나 문턱만은 한없이 낮다.
찻물 주전자가 열을 받아 몸을 파르르 떤다. 물은 점처럼 작은 방울에서 시작하여 큰 구슬로 구슬구슬 피어오른다. 다관에 들어간 찻잎은 물을 따라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산야에서 품어 온 기운을 천천히 뿜어낸다. 찻물은 다관에서 숙우로 다시 찻잔으로 옮겨진다. 차는 우리고 또 우러나는, 그야말로 화수분이다. 차 맛은 고산의 날씨처럼 변화무쌍하지만, 내 삶에 설렘과 즐거움을 보탠다. 적막한 시골살이에서 사색의 길도 열어주었다.
차에 대한 애착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필연적으로 다가온 차의 효능 때문이다. 차의 항산화 성분이 사람 몸 안의 활성 산소를 줄여주고 암세포 등 악성 종양 세포가 생기는 것을 예방해 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부모님께서 암 투병 끝에 먼 길 떠나가신 것이 보이차를 가까이 둔 계기가 되었다. 처음 마주한 차의 세계가 신기하고 궁금했다. 차 맛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맛에 맞는 차를 만나면 지갑에서 잔물결이 일어났다. 차에 목말라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한 지 어언 십 년. 이제는 이른 봄날, 자연이 찻잎 속에 담아낸 자연 발효의 느린 발걸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자연과 기다림이 어우러질 무렵, 나의 삶에 온기가 차오른다. 혼자 차를 마시는 일이 숨 쉬듯이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었다. 따끈따끈 찻물, 코끝에 드는 향기와 맛을 느끼는 시간이 살갑다. 이우는 인생에서의 만남이어서 더욱 애틋한 것일까. 한촌의 신산辛酸한 삶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 주는 자연의 향기는 기다림 속에서 자란다. 자연은 나에게 각다분한 세상살이 끝에, 따뜻한 온기가 뒤따라온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온기는 나누면 더 강한 열기로 사람을 이어준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색향으로 물들어가는 행복을 느낀 적이 있는가.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기려고 차회를 마련해서 차와 정을 나눈다. 먼저, 찻상은 정갈하게 준비한다. 숨소리조차 조심하면서 예를 갖춘다. 각각의 관심사가 모여 여럿을 만든다. 차회에서는 무상무념으로 차 탕의 향기, 떪은 맛과 쓴맛의 조화, 차의 기감 등을 느껴본다. 붉은 찻물이 다우들의 몸을 촉촉하게 데울 때쯤, 수런수런 이야기꽃이 다연茶宴을 에워싼다. 차 몇 잔으로 사람 간에 마음의 빗장이 풀리고, 도타운 정이 뜨끈뜨끈하게 오간다.
모든 것은 변한다. 차 맛도 그랬다. 큰마음 먹고 구입한 차를 우렸더니 혓바닥이 강한 향과 떨떠름한 맛이 입안에 가득 남았다. 다시 우려도 가게 사장님이 우려 줄 때의 맛이 아니었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봉지를 뜯었으니 무를 수도 없었다. 후회를 머금고 차 항아리 깊숙이 박아 두었다. 그러고 이삼 년이 지난 어느 날, 묵혀둔 차가 떠올랐다. 그런데, 우와! 차성이 달라졌다. 향이 온화하고 약간의 씁쓸한 맛이 침샘을 자극하여 단맛이 샘솟는다. 세월을 먹은 노차에 대한 믿음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
오래 묵은 노차에는 세월의 차분한 맛과 향이 담겼다.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찻잎에 광택이 나고, 차 맛은 광활하고 매끄럽다. 노차는 수 십 년을 캄캄한 어둠에 갇혀 무명 시절을 보냈지만 노여움 대신 온화하고 부드러운 숨결을 키웠다. 차는 내게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하고 순수한 색향 세례를 퍼부었다. 사람도 연륜이 쌓이면 깊고 부드러워질 수 있을지…. 나는 얼마를 더 살아야 농익은 맛을 담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일상의 찌꺼기를 지우고 내일을 준비한다. 차를 우리는 데 사용했던 찻그릇을 마른행주로 깨끗이 닦는다. 한 손으로 다기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행주를 수십 번 밀고 당기고 휘돌린다. 다구를 문지르는 것은 일상의 먼지를 닦는 일과 같다. 무디어진 눈빛일지언정 작은 얼룩 하나도 놓칠 수가 없다. 다기는 사람의 손끝에서 뽀드득거리며 매끄럽게 윤기를 흘린다. 하얀 면 수건에 묻어나온 찌꺼기는 내 일상의 상처. 다관에 앉은 뽀얀 빛이 찻그릇을 감으며 내 안으로 살포시 스며든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차가 익어간다는 것, 그것은 삶이 깊어지는 것과도 닮았다. 묵은 차의 조화로운 화음이 내게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천천히 기다리면서 차가 익는 속도에 내 삶을 맞춘다. 나는 이제야 치유와 풍요를 온전히 마시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조금 더 비워지며, 조금 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 깊어진 차향을 누구에게나 건네고 싶다. 차는 오랜 시간 스스로를 우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