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2000
홍콩 로맨스/멜로 외 99분 (재) 15세이상 관람가 (재)
감독 왕가위
출연 장만옥, 양조위, 소병림, 반적화
<화양연화>는 감독 왕가위가 당대의 톱스타 양조위와 장만옥을 캐스팅해 중년의 두 남녀의 완숙한 사랑을 담아낸 작품으로 진중한 스토리에 녹아든 왕가위 특유의 미장센이 빛을 발하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시간과 기억, 상실과 후회라는 주제를 깊이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제목인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인생에서 꽃과 같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의미하며 영화는 그 자체로 영화적 실험이자, 시각적, 감정적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왕가위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사랑의 불완전함과 그로 인한 아픔을 마치 교향곡처럼 풀어내며, 이를 감각적인 화면 구성과 절제된 서사를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1962년 홍콩, 같은 아파트에 이사 온 소려진과 주모운은 각자의 배우자 외도로 인해 가까워진다.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 중임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상처를 공유하며 감정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매일 호텔 2046호에서 만나 소설을 쓰며 관계를 이어가지만, 주변의 시선과 소려진의 망설임으로 멀어진다.
주모운은 결국 혼란을 견디지 못하고 싱가포르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이별 직전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이후 소려진은 주모운을 찾아 싱가포르로 가지만 만나지 못한 채 돌아선다.
1966년, 두 사람은 각자 옛 기억이 깃든 집을 다시 찾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버렸다. 주모운은 소려진을 잊지 못한 채 앙코르와트에서 비밀을 털어놓고 떠난다. 이들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서로의 마음속에만 남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불완전한 사랑을 그린다는 점입니다.
소려진과 주모운은 서로에게 끌리지만, 그들의 사랑은 결코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잠재적인 사랑에 가까우며, 영화는 그 사랑이 완성되지 못한 채, 오히려 그리움으로 남게 됩니다. 왕가위 감독은 이를 통해 사랑이란 단순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상실과 미련을 동반하는 감정임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이 사랑을 기억의 형태로 남기며, 이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아름답고, 아련한 것으로 변해갑니다. 결국 이 사랑은 현실에서 완성되지 않지만, 그것이 남긴 감정의 흔적은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영화는 조용히 암시합니다.
<화양연화>는 두 주인공 사이의 미묘한 사랑에 대한 묘사가 압권입니다.
왕가위의 다른 작품에선 주인공들이 "무덤덤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나르시시스트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개인주의적 인물들의 감각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면, 본 작품의 주인공들은 배우자들의 불륜에서 오는 심적 고통을 내면화하고 그 과정을 상대방에 대한 연민어린 사랑으로 승화시키지만,
동시에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합니다. 그래서 <화양연화>는 왕가위 영화 중 가장 심각하고 진지한 작품이면서, 주인공들의 진실된 마음이 잘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화양연화'에서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외부로 표출되지 않고, 주로 내면적으로 억제됩니다.
소려진과 주모운은 서로에게 강한 감정을 느끼지만, 그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이 억제된 감정은 영화의 핵심적인 갈등으로, 관객은 두 인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대사 속에서 그들의 내면을 읽어내야 합니다.
장만옥은 소려진이라는 인물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그녀의 내면적인 갈등과 상처를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녀의 얼굴 표정은 대부분 고요하고 차분하지만, 그 안에 담긴 고통과 애절함은 말로 표현되지 않지만 분명히 전달됩니다.
양조위 역시 그의 캐릭터가 겪는 심리적 갈등을 과장 없이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관객은 그가 겪는 내적 혼란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화양연화>의 중심에는 시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왕가위 감독은 시간을 단순한 배경 요소로 사용하지 않고, 감정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핵심적인 도구로 활용합니다. 영화는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두 인물, 소려진과 주모운의 복잡한 관계를 따라가는데, 그들 사이의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미세한 감정선을 정교하게 그려냅니다.
소려진과 주모운 은 서로에게 끌리면서도, 그 감정을 현실로 이루지 못합니다.
그들의 사랑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랑은 점점 더 아련하고 미화된 형태로 남습니다. 왕가위 감독은 이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왜곡되고, 결국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깊은 고찰을 던집니다.
<열혈남아>,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에서 보여준 왕가위의 미장센이 굉장히 절제된 형태로 구현된 영화입니다.
핸드헬드 기법으로 대표되는 현란한 화면 편집과 감각적인 화면 구성 대신, 느린 템포와 정적인 화면 구성을 통해 주인공들의 이야기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스타일을 사용하고 있는데,
영화의 도입부나 말미에 나오는 자막들과 매우 잘 어울리고 뻔한 멜로 드라마의 전형적인 장면들 또한 진부하지 않게 담아냈습니다.
Visuals - In the Mood for Love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서 색채는 단순히 시각적 요소가 아닌, 감정의 표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화양연화>에서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과 장면의 색깔은 그들의 내면적인 갈등과 감정 상태를 정확하게 반영합니다.
특히 붉은색과 초록색은 주요 감정선으로 사용되며, 이러한 색상은 인물들이 겪는 갈망과 억제된 욕망을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소려진이 자주 입는 붉은색 의상은 그녀의 내면의 갈망과, 이를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을 상징합니다.
음악 역시 이 영화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운드트랙은 노래와 오리지널 대사가 담겨 있으며 양조위의 독백으로 시작하여 장만옥의 독백으로 끝납니다. 왕가위 감독은 1960년대 홍콩의 스타일을 재현하기 위해 전통 희곡(戏曲), 중화민국 시대의 상하이 노래, 홍콩 필리핀 밴드가 연주하는 라틴, 재즈, 왈츠 등의 음악을 수록했습니다.
'Yumeji's theme' 와 같은 곡들은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감정의 흐름을 더욱 선명하게 합니다. 이 음악의 반복은 기억과 그리움의 상징처럼 작용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져가는 사랑과 그에 대한 집착을 부각시킵니다. 음악은 영화를 통해 그 감정을 더욱 깊이 느끼게 해 줍니다.
'Yumeji's theme'은 사실 1991년작 일본 영화 '유메지(夢二)'의 주제가로 쓰인 곡으로, 일본의 작곡가 우메바야시 시게루가 작곡했습니다. 유메지의 주제가를 왕가위 감독이 재사용한 것이며 우메바야시 시게루는 화양연화 이후로 <2046>, <일대종사>에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습니다.
'Yumeji's theme' by Shigeru Umebayashi
'Quizas quizas quiza's by Nat King Cole
이 영화는 종종 역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이자 아시아 영화의 주요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제20회 홍콩전영금상장 남우주연상(양조위), 여우주연상(장만옥), 편집상(장숙평), 미술감독상(장숙평), 의상디자인상(장숙평) 수상을 필두로 2000년 5월 20일 칸 영화제에서 초연되었으며 비평가들의 찬사와 함께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라, 양조위는 홍콩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뿐만 아니라 각종 홍콩 및 대만 영화제를 휩씁니다.
BBC 선정 100대 21세기 영화 2위, BBC 선정 100대 비영어권 영화 9위, BFI 선정 100대 영화 5위, 더 가디언 선정 21세기 100대 영화 5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2016년 BBC의 설문조사에서 전 세계 영화 평론가 177명이 "상실과 욕망이라는 보편적인 언어를 이렇게 유창하게 표현한 영화는 없었다"며 21세기 두 번째로 위대한 영화로 선정했으며 2022년 Sight & Sound의 '역대 최고의 영화' 비평가 투표에서 5위를 차지, 2012년의 24위에서 순위가 상승했으며 1975년부터 2022년까지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영화입니다.
뉴욕 타임즈의 엘비스 미첼은 "아마도 올해 가장 숨막히게 멋진 영화"라고 언급했고 롤링 스톤의 피터 트래버스 "웡가위의 손에서 이 영화는 섬세함과 느낌으로 살아 있다."고 말했으며 가디언의 피터 워커는 이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설명하며 "인생의 근본에 대한 심오하고 감동적인 성찰을 제공한다"고 썼습니다. Empire의 데이비드 파킨슨은 별 5개 만점에 5개를 주며 "연기는 훌륭하고 영화는 아름답다. 진정으로 낭만적인 로맨스이며 숭고한 영화다."라고 말했습니다.
세계적인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짝사랑에 대한 매력적인 이야기"라며 별점 4점 만점에 3점을 주었습니다.
정성일 평론가와 허우샤오셴 감독 모두 화양연화를 왕가위 감독의 최고작으로 꼽았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별점 5점과 함께 "스쳐가는 순간들로 사랑의 시간을 인수분해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양조위가 맡은 주모운과 장만옥이 맡은 소려진은 감독의 전작 <아비정전>과 이후 작품인 <2046>에도 등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팬들 중에는 이 세 작품이 동일한 세계관 속에서 전개되는 하나의 시리즈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아비정전은 1960년, 화양연화는 1962년, 2046은 1966년입니다.
주모운과 소려진의 밀회 장소인 호텔 방은 2046호입니다. ‘2046’은 홍콩의 일국양제가 유지되는 마지막 해를 의미하는데요, 이 영화는 1997년 홍콩 반환을 전후로 제작 및 개봉되었고, 일부 장면을 보면 반환 이전의 옛 홍콩에 대한 감정을 로맨스로 표현한 작품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스케줄이 마치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재촬영을 끊임없이 진행하는 왕가위 감독 특유의 스타일 덕분에 이 영화 역시 꽤 오랜 시간 촬영과 편집이 이어졌습니다. 칸 영화제에 출품한 후에도 상영 직전까지 촬영과 편집이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영어 제목 선정 과정도 순탄치 않았는데요, 직역한 제목들이 어울리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당시 후보로는 Summer in Beijing, A Story of Food, Secrets 등이 있었으나, 작업 도중 브라이언 페리의 신보를 듣던 중 I'm In the Mood for Love라는 구절에 영감을 받아 최종적으로 제목을 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삭제된 장면이 상당히 많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양조위와 장만옥의 베드신도 있었으나, 왕가위 감독이 영화의 전체 취지와 맞지 않다고 판단해 삭제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삭제 장면이 영화에 포함되었더라면 상영 시간이 3시간에 달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애초에 왕가위 감독은 매우 즉흥적인 제작 방식을 선호하는 인물입니다. <해피 투게더>에서는 잘린 필름들만 모아 다큐멘터리를 따로 제작한 적도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정성일 평론가에 따르면, 양조위는 칸 영화제 시사회가 끝난 뒤 가진 인터뷰에서 "이게 이런 내용의 영화였군요"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화양연화> 최고의 명장면 1
<화양연화> 최고의 명장면 2
<화양연화>는 그 자체로 사랑의 미학을 탐구한 작품이자, 왕가위 감독의 영화적 역량이 극대화된 걸작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두 인물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것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 속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고 왜곡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결국 어떻게 상실로 귀결되는지를 깊이 성찰합니다.
왕가위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사랑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더욱 강하게 기억되는 특성을 드러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사랑과 시간에 대한 철학적인 탐구이며, 아시아 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첫댓글 영화 리뷰글 업데이트 목록
현기증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패왕별희
광해
뷰티풀 마인드
크리스챤 베일 전기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저희집 거북이이름이 장만옥이였을정도였조. (한마리는 오맹달)
ㅋㅋ 화양연화에 오맹달 1분만 나왔어도 무드 다 깨질듯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작년에 넷플릭스에 떠 있어 혼자 불끄고, 헤드폰 껸 채로, 맥주랑 독주 한잔 놓고 음미하며 봤었던 기억이 나네요. 로더리고님 글 다시 보니 그때 영화보며 느꼈던 설렘이 다시 느껴지네요. 유명한 영화라고만 알고 있다 집중해서 보니 화면 속 때깔과 주인공들의 연기가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작품입니다.
이십 대 때는 지루해서 안 봤는데(색계는 봐놓고)
지금 나이가 되니 눈에 들어오는군요.
ㅠ.ㅠ 감동의 눈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