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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1.6.9.PM2시)
십주품(十住品)
보살 십주
화엄경 한 단락 공부하겠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십주품(十住品) 제6 정심주(定心住) 바른 마음으로 머물다, 바른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릇도 바르게 딱 놔 놓으면 기울지도 않고 쏟아지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는다.
어떤 경계를 만났을 때, 마음이 바르다, 라고 하는 것은 안정이 되다 하는 뜻도 되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도 되고 기울지 않는다는 뜻도 되고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그런 의미를 가진 것이 정심(定心) 바른 마음인데 쉽지 않다.
8) 제6 정심주(正心住)
(1) 믿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않는다
믿음이 딱 되어서 흔들리지 않는다.
불자(佛子)야 운하위보살정심주(云何爲菩薩正心住)오 차보살(此菩薩)이 문십종법(聞十種法)하고 심정부동(心定不動)하나니 하자(何者)가 위십(爲十)고 소위문찬불훼불(所謂聞讚佛毁佛)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정부동(心定不動)하며 문찬법훼법(聞讚法毁法)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정부동(心定不動)하며 문찬보살훼보살(聞讚菩薩毁菩薩)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정부동(心定不動)하며 문찬보살훼보살소행법(聞讚菩薩毁菩薩所行法)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정부동(心定不動)하니라
“불자들이여, 어떤 것을 보살의 정심주라 하는가. 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듣고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부처님을 찬탄하거나 부처님을 훼방함을 듣고도 불법(佛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며, 법을 찬탄하거나 법을 훼방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며, 보살을 찬탄하거나 보살을 훼방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보살을 찬탄하거나 보살이 행하는 법을 훼방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함이니라.”
불자들이여, 어떤 것을 보살의 정심주라 하는가. 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듣고 마음을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부처님을 찬탄하거나 부처님을 훼방함을 듣고도 불법(佛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며
심정부동(心定不動) 마음이 딱 안정 되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부처님을 누가 찬탄해도 거기에 따라가지 않고, 비방을 해도 거기에 따라가지 않는다. 내 불법은 나에게 있는 것이고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내가 책임질 일이다, 남이 뭐라 뭐라 한다고 해서 거기에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고 ‘아 그런가?’ 또 ‘저런가?’ 하게 되면 문제가 많이 생긴다.
법을 찬탄하거나 법을 훼방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며
불법은 참 다양한데 그 다양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람인지라 마음이 거기에 흔들릴 경우가 많다. 그래서 두루 널리 공부해야 된다.
화엄경 같은 이런 수준 높은 경전을 공부해서 자기 마음속에서 불법에 대한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리가 되어 있지 아니하면 이 사람 말 들으면 이건가 싶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저건가 싶기도 하고, 불법에 대해서 자꾸 흔들리게 된다.
보살을 찬탄하거나 보살을 훼방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보살님을 찬탄할 수도 있고, 훼할 수도 있다, 역시 거기에 흔들리면 안 될 것이다.
보살을 찬탄하거나 보살이 행하는 법을 훼방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함이니라
문설중생(聞說衆生)의 유량무량(有量無量)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정부동(心定不動)하며 문설중생(聞說衆生)의 유구무구(有垢無垢)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정부동(心定不動)하며 문설중생(聞說衆生)의 이도난도(易度難度)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정부동(心定不動)하니라
“또 중생이 한량 있다거나 한량없다고 말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며, 중생이 때가 있다거나 때가 없다고 말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며, 중생이 제도하기 쉽다거나 제도하기 어렵다고 말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함이니라.”
또 중생이 한량 있다거나 한량없다고 말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며
‘아 저 중생 몹쓸 중생’이라고 ‘번뇌가 많다’고 ‘아주 악독한 중생’이라고 얼마든지 그런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또 그런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불법을 믿는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중생이 때가 있다거나 때가 없다고 말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며, 중생이 제도하기 쉽다거나 제도하기 어렵다고 말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함이니라
중생제도가 어려운 경우를 많이 본다. ‘중생제도 참 어렵다. 타고 나야지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다’ 아무리 감동을 주고 감화를 주고 수년간을 사람대접해도 끝내 자기가 전생부터 쌓아온 업은 버리지 못하고 본래로 그만 자기 업대로 돌아가서 제 맘대로 사는 경우를 참 많이 봤다. 그래도 ‘그것은 그 사람의 일이다’ 하고 불법에 대한 근본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문설법계(聞說法界)의 유량무량(有量無量)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정부동(心定不動)하며 문설법계(聞說法界)의 유성유괴(有成有壞)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정부동(心定不動)하며 문설법계(聞說法界)의 약유약무(若有若無)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정부동(心定不動)하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또 법계가 한량이 있다거나 한량없다고 말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며, 법계가 이룩하는 것도 있고 무너지는 것도 있다고 말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며, 법계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말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또 법계가 한량이 있다거나 한량없다고 말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며, 법계가 이룩하는 것도 있고 무너지는 것도 있다고 말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며
법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고 하는 이야기는 제가 우주의 공간에 떠 있는 지구를 위시해서 많고 많은 별들 이야기를 자주 한다. 늘 성주괴공하고 성주괴공하는 것이다.
머물러 있다가 공으로 돌아가고 또 공으로 돌아가서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낱낱이 부서져서 흩어졌다가 그것이 서로 중력에 의해서 뭉쳐지고 뭉쳐지고 뭉쳐져서 지구처럼 태양처럼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처럼 그렇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또 새롭게 성주괴공 성주괴공한다.
그러한 것에 대해서도 결코 마음이 결정되어서 흔들리지 아니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계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말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2) 열 가지 법을 배우기를 권함
불자(佛子)야 차보살(此菩薩)이 응권학십법(應勸學十法)이니 하자(何者)가 위십(爲十)고 소위일체법무상(所謂一切法無相)과 일체법무체(一切法無體)와 일체법불가수(一切法不可修)와 일체법무소유(一切法無所有)와 일체법무진실(一切法無眞實)과 일체법공(一切法空)과 일체법무성(一切法無性)과 일체법여환(一切法如幻)과 일체법여몽(一切法如夢)과 일체법무분별(一切法無分別)이니라
“불자들이여, 보살은 마땅히 열 가지 법을 배우기를 권할 것이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법이 모양이 없고, 일체 법이 자체가 없고, 일체 법이 닦을 수가 없고, 일체 법이 있는 것이 없고, 일체 법이 진실하지 않고, 일체 법이 공하고, 일체 법이 성품이 없고, 일체 법이 환영과 같고, 일체 법이 꿈과 같고, 일체 법이 분별이 없는 것이니라.”
이것은 우리가 좀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이른바 일체 법이 모양이 없고, 일체 법이 자체가 없고, 일체 법이 닦을 수가 없고, 일체 법이 있는 것이 없고, 일체 법이 진실하지 않고
우리가 일체법, 일체법 하지만 일체법의 실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일체 법이 공하고, 일체 법이 성품이 없고, 일체 법이 환영과 같고, 일체 법이 꿈과 같고, 일체 법이 분별이 없는 것이니라
이러한 면이 있다. 우리 몸을 위시해서 우리 마음을 위시해서 일체 존재가 다 그런 면이 있다. 그런 면도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할 입장이다.
(3) 까닭을 말하다
하이고(何以故)오 욕령기심(欲令其心)으로 전부증진(轉復增進)하야 득불퇴전무생법인(得不退轉無生法忍)하고 유소문법(有所聞法)에 즉자개해(卽自開解)하야 불유타교고(不由他敎故)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 마음으로 하여금 더욱 더 증진하여 퇴전하지 않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하려 함이며, 법을 듣고는 스스로 이해하고 남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게 하려는 연고니라.”
이것은 매 주가 끝날 때마다 늘 이야기되는 부분이다.
9) 제7 불퇴주(不退住)
물러서지 않는 머무름이라. 아주 중요하다.
(1) 열 가지 법을 듣고 퇴전하지 않는다
불자(佛子)야 운하위보살불퇴주(云何爲菩薩不退住)오 차보살(此菩薩)이 문십종법(聞十種法)하고 견고불퇴(堅固不退)하나니 하자(何者)가 위십(爲十)고 소위문유불무불(所謂聞有佛無佛)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불퇴전(心不退轉)하며 문유법무법(聞有法無法)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불퇴전(心不退轉)하며 문유보살무보살(聞有菩薩無菩薩)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불퇴전(心不退轉)하며 문유보살행무보살행(聞有菩薩行無菩薩行)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불퇴전(心不退轉)하며 문유보살(聞有菩薩)이 수행출리수행불출리(修行出離修行不出離)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불퇴전(心不退轉)하며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의 불퇴주인가. 이 보살은 열 가지 법을 듣고 견고하여 물러서지 않나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부처님이 있다 부처님이 없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않는 것이며, 법이 있다 없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보살이 있다 보살이 없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보살행이 있다 보살행이 없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보살이 수행해서 벗어난다 수행해서 벗어나지 못한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함이니라.”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의 불퇴주인가. 이 보살은 열 가지 법을 듣고 견고하여 물러서지 않나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부처님이 있다 부처님이 없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않는 것이며
‘뭐 부처님이 어딨어?’‘아 부처님, 과거 2600여년 전에 사람으로 왔다가 우리 같이 살다가 다녀가신 그분?’ 그렇게 해서 믿는 마음도 그렇다.
일단 우리가 부처님에 대해서 알게 되면 저절로 믿게 되고, 공경심이 살아나고, 부처님 이야기를 하면 환희심이 난다. 또 그래야 된다. 우리 불자들은 일단 그러한 마음가짐이 참 중요하다.
법이 있다 없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아 이거 불법이 있나 없나, 도대체 불법이 있다면 세상이 이럴 수가 있나, 스님들이 그럴 수가 있나, 사찰이 뭐 그럴 수가 있나’ 스님들이나 불교단체에서 불상사 같은 것이 보도되고 하면 믿음이 흔들릴 수가 있다.
그래서 ‘불법이 살아있나 없나’ 말도 할 수가 있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우리 불자들은 절대 그런 데 흔들려서는 안 된다.
보살이 있다 보살이 없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보살행이 있다 보살행이 없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보살이 수행해서 벗어난다 수행해서 벗어나지 못한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함이니라
우리가 절에 다닌다든지 출가를 해서 공동생활을 같이 한다든지 완전히 불교 안에 몸을 담고 살아가고 할 경우 이러한 상황들을 그저 수시로 만난다.
그러한 상황을 만나도 내 신심은 더욱더 견고하고 불법에 대해서 퇴보한다든지 실망을 갖는다든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이 없어야 된다, 하는 내용이다.
열 가지 법을 듣고 퇴전하지 않는 자세다.
문과거유불과거무불(聞過去有佛過去無佛)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불퇴전(心不退轉)하며 문미래유불미래무불(聞未來有佛未來無佛)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불퇴전(心不退轉)하며 문현재유불현재무불(聞現在有佛現在無佛)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불퇴전(心不退轉)하며 문불지유진불지무진(聞佛智有盡佛智無盡)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불퇴전(心不退轉)하며 문삼세일상삼세비일상(聞三世一相三世非一相)하고 어불법중(於佛法中)에 심불퇴전(心不退轉)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또한 과거에 부처님이 있었다 과거에 부처님이 없었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미래에 부처님이 있을 것이다 미래에 부처님이 없을 것이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현재에 부처님이 있다 현재에 부처님이 없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부처님의 지혜는 다함이 있다 부처님의 지혜는 다함이 없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삼세가 한 모양이다 삼세가 한 모양이 아니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나니 이것이 열 가지니라.”
또한 과거에 부처님이 있었다 과거에 부처님이 없었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이 대승경전에는 과거 부처님에 대해서 무수히 이야기한다. 삼세제불을 말하기 때문이다. 특히 화엄경에서는 미래부처님 과거부처님 현재부처님 과거 현재 미래를 식은 죽 먹듯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런 데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는다. 대심(大心)중생, 마음 큰 중생, 화엄학인, 화엄행자, 화엄경을 그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소견이 어느 정도 다르다.
그래서 과거에 부처님이 있다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추호의 의심의 여지도 없다. 그래야 된다.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않아야 된다.
미래에 부처님이 있을 것이다 미래에 부처님이 없을 것이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현재에 부처님이 있다 현재에 부처님이 없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부처님의 지혜는 다함이 있다 부처님의 지혜는 다함이 없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삼세가 한 모양이다 삼세가 한 모양이 아니다 함을 듣고도 불법 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나니 이것이 열 가지니라
어떤 경우라도, 불법의 뿌리를 뒤흔드는 말을 듣는다 하더라도, 말은 그렇다 하더라도 내 마음은 요지부동이 되어야 한다.
(2) 열 가지 법을 배우기를 권함
불자(佛子)야 차보살(此菩薩)이 응권학십종광대법(應勸學十種廣大法)이니 하자(何者)가 위십(爲十)고 소위설일즉다(所謂說一卽多)와 설다즉일(說多卽一)과 문수어의(文隨於義)와 의수어문(義隨於文)과 비유즉유(非有卽有)와 유즉비유(有卽非有)와 무상즉상(無相卽相)과 상즉무상(相卽無相)과 무성즉성(無性卽性)과 성즉무성(性卽無性)이니라
“불자들이여, 이 보살이 응당 열 가지 넓고 큰 법 배우기를 권할지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하나가 곧 많은 것이다 말하며, 많은 것이 곧 하나다 말하며, 글이 뜻을 따르고 뜻이 글을 따르며, 있지 아니한 것이 곧 있는 것이고, 있는 것이 곧 있지 아니한 것이며, 상(相) 없는 것이 곧 상이며, 상이 곧 상이 없는 것이며, 성품 없는 것이 곧 성품이며, 성품이 곧 성품 없는 것이니라.”
불교를 공부하다 보면 이런 논리가 많이 등장한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반야심경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또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體多卽一) 그것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중생들의 소견으로도 이해가 될 수 있는 내용이다. 이해라 하더라도 심도가 모두 다르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다 이해가 되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그것을 말만 따라가서 거기에 대해서 의심을 낸다거나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다 상반되는 이론들이다.
상반되는 이론들이라야 다 불법이 설명되니까 어쩌겠는가? 그러한 것을 전부 배워야 된다.
다 우리의 사량으로써 우리는 위대한 진여자성이 있기 때문에 진여자성의 능력으로써 그것을 다 이해해야 된다는 것이다.
(3) 까닭을 말하다
하이고(何以故)오 욕령증진(欲令增進)하야 어일체법(於一切法)에 선능출리(善能出離)하고 유소문법(有所聞法)에 즉자개해(卽自開解)하야 불유타교고(不由他敎故)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로 하여금 더 나아가서 모든 법에서 잘 능히 벗어나고 법을 듣고는 곧 스스로 잘 알아서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게 하려는 까닭이니라.”
10) 제8 동진주(童眞住)
어릴 동(童)자 참 진(眞)자 동진(童眞) 참 좋은 말이다. 어린 사람들이 진실하잖은가. 아무 때가 안 묻었잖은가.
생각의 때가 안 묻었고 말의 때가 안 묻었고 행동의 때가 안 묻었다. 여덟 번째 동진주이다.
어려서 아주 착한 심성을 가지고 출가한 사람들을 동진이라고, 이런 데에 있는 말을 빌려서 불명을 삼기도 한다. 내가 아는 스님도 동진스님이라는 분이 있다.
(1) 보살은 열 가지 업(業)에 머문다
불자(佛子)야 운하위보살동진주(云何爲菩薩童眞住)오 차보살(此菩薩)이 주십종업(住十種業)하나니 하자(何者)가 위십(爲十)고 소위신행무실(所謂身行無失)과 어행무실(語行無失)과 의행무실(意行無失)과 수의수생(隨意受生)과 지중생종종욕(知衆生種種欲)과 지중생종종해(知衆生種種解)와 지중생종종계(知衆生種種界)와 지중생종종업(知衆生種種業)과 지세계성괴(知世界成壞)와 신족자재(神足自在)하야 소행무애(所行無礙)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불자여, 어떤 것이 보살의 동진주인가. 이 보살이 열 가지 업에 머무나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몸으로 행함이 잘못됨이 없고, 말로 행함이 잘못됨이 없고, 뜻으로 행함이 잘못됨이 없고, 뜻대로 생(生)을 받고, 중생들의 갖가지 욕망을 알고, 중생들의 갖가지 이해를 알고, 중생들의 갖가지 경계를 알고, 중생들의 갖가지 업을 알고,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짐을 알고, 신통이 자재해서 다니는 데 걸림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열 가지니라.”
불자여, 어떤 것이 보살의 동진주인가. 이 보살이 열 가지 업에 머무나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몸으로 행함이 잘못됨이 없고
동진이니까, 천진난만하니까 몸으로 행함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말로 행함이 잘못됨이 없고, 뜻으로 행함이 잘못됨이 없고, 뜻대로 생(生)을 받고, 중생들의 갖가지 욕망을 알고, 중생들의 갖가지 이해를 알고, 중생들의 갖가지 경계를 알고, 중생들의 갖가지 업을 알고,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짐을 알고, 신통이 자재해서 다니는 데 걸림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열 가지니라
동진주의 이름에 걸맞는 좋은 가르침이다.
(2) 열 가지 법을 배우기를 권함
불자(佛子)야 차보살(此菩薩)이 응권학십종법(應勸學十種法)이니 하자(何者)가 위십(爲十)고 소위지일체불찰(所謂知一切佛刹)과 동일체불찰(動一切佛刹)과 지일체불찰(持一切佛刹)과 관일체불찰(觀一切佛刹)과 예일체불찰(詣一切佛刹)과 유행무수세계(遊行無數世界)와 영수무수불법(領受無數佛法)과 현변화자재신(現變化自在身)과 출광대변양음(出廣大徧滿音)과 일찰나중(一刹那中)에 승사공양무수제불(承事供養無數諸佛)이니라
“불자여, 이 보살이 응당히 열 가지 법을 배우기를 권할지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모든 부처님 세계를 알며, 모든 부처님 세계를 움직이며, 모든 부처님 세계를 가지며, 모든 부처님 세계를 관찰하며, 모든 부처님 세계에 나아가며, 수없는 부처님 세계에 노닐며, 수없는 부처님 법을 받아들이며, 변화가 자재한 몸을 나타내며, 크고 넓고 두루 가득한 음성을 내며, 일찰나 동안에 수없는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함이니라.”
이것이 열 가지, 법을 배워야 하는 내용이다.
(3) 까닭을 말하다
하이고(何以故)오 욕령증진(欲令增進)하야 어일체법(於一切法)에 능득선교(能得善巧)하고 유소문법(有所聞法)에 즉자개해(卽自開解)하야 불유타교고(不由他敎故)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로 하여금 더 나아가서 일체 법에 능히 좋은 방편을 얻고, 법을 듣고는 곧 스스로 잘 이해해서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게 하려는 연고니라.”
11) 제9 법왕자주(法王子住)
아주 이름이 크다. 법에 대한 왕자다. 부처님을 법왕이라고 한다. 법의 왕이다, 왕중왕 이런 표현을 한다.
(1) 열 가지 법을 잘 안다
불자(佛子)야 운하위보살법왕자주(云何爲菩薩法王子住)오 차보살(此菩薩)이 선지십종법(善知十種法)하나니 하자(何者)가 위십(爲十)고 소위선지제중생수생(所謂善知諸衆生受生)과 선지제번뇌현기(善知諸煩惱現起)와 선지습기상속(善知習氣相續)과 선지소행방편(善知所行方便)과 선지무량법(善知無量法)과 선해제위의(善解諸威儀)와 선지세계차별(善知世界差別)과 선지전제후제사(善知前際後際事)와 선지연설세제(善知演說世諦)와 선지연설제일의제(善知演說第一義諦)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불자여, 어떤 것이 보살의 법왕자주인가. 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잘 아나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모든 중생들이 태어나는 것을 잘 알며, 모든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잘 알며, 습기가 계속되는 것을 잘 알며, 행할 방편을 잘 알며, 한량없는 법을 잘 알며, 모든 위의(威儀)를 잘 알며, 세계의 차별을 잘 알며, 과거의 일과 미래의 일을 잘 알며, 세상 법을 연설할 줄 잘 알며,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연설할 줄 잘 아는 것이니 이것이 열 가지니라.”
제일의제(第一義諦)라고 하는 것은 가장 고준한 진리의 가르침, 그런 뜻이다.
(2) 열 가지 법을 배우기를 권함
불자(佛子)야 차보살(此菩薩)이 응권학십종법(應勸學十種法)이니 하자(何者)가 위십(爲十)고 소위법왕처선교(所謂法王處善巧)와 법왕처궤도(法王處軌度)와 법왕처궁전(法王處宮殿)과 법왕처취입(法王處趣入)과 법왕처관찰(法王處觀察)과 법왕관정(法王灌頂)과 법왕력지(法王力持)와 법왕무외(法王無畏)와 법왕연침(法王宴寢)과 법왕찬탄(法王讚歎)이니라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응당히 열 가지 법 배우기를 권할지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법왕처(法王處)의 선교방편과, 법왕처의 법도와, 법왕처의 궁전과, 법왕처에 들어감과, 법왕처를 관찰함과, 법왕의 관정과, 법왕의 힘으로 유지함과, 법왕의 두려움 없음과, 법왕의 편히 잠잠과, 법왕의 찬탄하는 것이니라.”
법왕처(法王處) 처(處)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처소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편히 잠잠까지 나왔다. 주무신다는 말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다 잘 배우라, 하는 뜻이다.
우리가 불교를 공부한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을 공부한다는 뜻도 되니까 부처님에 대해서 세세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좋다. 불법의 이치만 가지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 불법의 이치를 깨달아서 우리들에게 깨우쳐 주신 그 당사자, 주인공 그분부터 잘 아는 것이 도리다.
그래서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라든지 저서라든지 부처님의 일생이라든지 이러한 것에 대해 책을 많이 쓰고 펼친다. 그러한 것을 우리가 잘 알아야 된다.
(3) 까닭을 말하다
하이고(何以故)오 욕령증진(欲令增進)하야 심무장애(心無障礙)하고 유소문법(有所聞法)에 즉자개해(卽自開解)하야 불유타교고(不由他敎故)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로 하여금 더 나아가서 마음에 걸림이 없고, 법을 듣고는 스스로 잘 알아서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게 하려는 연고니라.”
12) 제10 관정주(灌頂住)
머리에 물을 붓다, 앞으로 성불해서 중생제도를 할 능력을 갖췄다, 하는 것을 인가하는 것이 관정이다.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식이 관정식이다. 사해의 물을 떠다가 그 물을 가지고 세자에게 물을 부어주면 전(全)사해 사방 사천하를 잘 다스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관정이라는 것이 그런 의미다. 그것을 불법에다가 적용을 시킨 것이다. 수행을 해서 수행이 깊어지면 성불의 경지에 이르고 성불에 이르면 부처로서의 행세를 본격적으로 잘하라는 뜻이다.
(1) 열 가지 지혜를 성취하다
불자(佛子)야 운하위보살관정주(云何爲菩薩灌頂住)오 차보살(此菩薩)이 득성취십종지(得成就十種智)하나니 하자(何者)가 위십(爲十)고 소위진동무수세계(所謂震動無數世界)와 조요무수세계(照耀無數世界)와 주지무수세계(住持無數世界)와 왕예무수세계(往詣無數世界)와 엄정무수세계(嚴淨無數世界)와 개시무수중생(開示無數衆生)과 관찰무수중생(觀察無數衆生)과 지무수중생근(知無數衆生根)과 영무수중생취입(令無數衆生趣入)과 영무수중생조복(令無數衆生調伏)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불자여, 어떤 것이 보살의 관정주인가. 이 보살이 열 가지 지혜를 성취하나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수없는 세계를 진동하며, 수없는 세계를 밝게 비추며, 수없는 세계에 머물며, 수없는 세계에 나아가며, 수없는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며, 수없는 중생에게 열어 보이며, 수없는 중생을 관찰하며, 수없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수없는 중생들이 들어가게 하며, 수없는 중생들을 조복하게 함이니 이것이 열 가지이니라.”
중생들의 세계를 주로 많이 이야기했고, 보통 일반 세계를 이야기했는데, 부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중생들을 제도하고 교화하고 성숙시키는 일이니까 당연히 세계와 중생들에 대해서 이렇게 소상하게 알고 있어야 될 것이다.
불자(佛子)야 차보살(此菩薩)이 신급신업(身及身業)과 신통변현(神通變現)과 과거지(過去智)와 미래지(未來智)와 현재지(現在智)와 성취불토(成就佛土)와 심경계(心境界)와 지경계(智境界)를 개불가지(皆不可知)니 내지법왕자보살(乃至法王子菩薩)도 역불능지(亦不能知)니라
“또한 불자여, 이 보살의 몸과 몸의 업과 신통변화와, 과거의 지혜와 미래의 지혜와 현재의 지혜와 부처님 국토를 성취함과, 마음의 경계와 지혜의 경계를 다 알지 못하며, 내지 법왕자 보살들도 또한 능히 알지 못하느니라.”
(2) 열 가지 법을 배우기를 권함
불자(佛子)야 차보살(此菩薩)이 응권학제불십종지(應勸學諸佛十種智)니 하자(何者)가 위십(爲十)고 소위삼세지(所謂三世智)와 불법지(佛法智)와 법계무애지(法界無礙智)와 법계무변지(法界無邊智)와 충만일체세계지(充滿一切世界智)와 보조일체세계지(普照一切世界智)와 주지일체세계지(住持一切世界智)와 지일체중생지(知一切衆生智)와 지일체법지(知一切法智)와 지무변제불지(知無邊諸佛智)니라
“불자여, 보살은 응당 모든 부처님의 열 가지 지혜를 배우기를 권할지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삼세의 지혜와, 불법의 지혜와, 법계의 걸림 없는 지혜와, 법계의 끝없는 지혜와, 일체 세계에 충만한 지혜와, 일체 세계를 널리 비추는 지혜와, 일체 세계에 머무는 지혜와, 일체 중생을 아는 지혜와, 일체 법을 아는 지혜와, 끝없는 모든 부처님을 아는 지혜이니라.”
관정주에서는 이러한 것을 배우기를 권하고 있다.
(3) 까닭을 말하다
하이고(何以故)오 욕령증장일체종지(欲令增長一切種智)하고 유소문법(有所聞法)에 즉자개해(卽自開解)하야 불유타교고(不由他敎故)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로 하여금 일체 종지가 더욱 자라게 하고, 법을 듣고는 곧 스스로 잘 알아서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게 하려는 연고이니라.”
모두가 스스로 터득해야 되는 것으로 시종일관 여기 십주품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아는 거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아는 것도 결국은 내 마음으로부터 그것이 열리고 터득이 되어야 그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원칙이다.
13) 6종18상으로 진동하여 상서를 보이다
십주법문을 다 이야기했으니까 상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시(爾時)에 불신력고(佛神力故)로 시방각일만불찰미진수세계(十方各一萬佛刹微塵數世界)가 육종진동(六種震動)하니 소위동(所謂動)과 변동(徧動)과 등변동(等徧動)과 기(起)와 변기(徧起)와 등변기(等徧起)와 용(踊)과 변용(徧踊)과 등변용(等徧踊)과 진(震)과 변진(徧震)과 등변진(等徧震)과 후(吼)와 변후(徧吼)와 등변후(等徧吼)와 격(擊)과 변격(徧擊)과 등변격(等徧擊)이라
그때에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시방으로 각각 일만 부처님 세계의 미진수 같은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습니다. 이른바 움직임과 두루 움직임과 함께 두루 움직임이며, 일어남과 두루 일어남과 함께 두루 일어남이며, 솟음과 두루 솟음과 함께 두루 솟음이며, 떨림과 두루 떨림과 함께 두루 떨림이며, 부르짖음과 두루 부르짖음과 함께 두루 부르짖음이며, 부딪침과 두루 부딪침과 함께 두루 부딪침이었습니다.
이것이 6종 18상이라고 해서
십주법문을 설하고 나니 시방으로 각각 일만 불찰 미진수 세계가 6종 18상으로 진동하여 상서를 나타내고 증명하였다. 6종 18상이란 6근과 6진과 6식의 18계를 뜻한다. 이 18계는 사람의 삶의 영역 전체를 말하는데 십주설법을 듣고 삶의 영역 전체가 환희로 인한 충격과 감동과 놀라움에 휩싸인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보인 것이다. 만약 이것이 실제상황이라면 진도 1천도가 넘는 지진과 같을 것이다. 화엄경의 설법에 우리는 얼마나 환희하고 감동하는가.
14) 천상의 꽃과 음악 등으로 상서를 보이다
우천묘화(雨天妙華)와 천말향(天末香)과 천화만(天華鬘)과 천잡향(天雜香)과 천보의(天寶衣)와 천보운(天寶雲)과 천장엄구(天莊嚴具)하며 천제음악(天諸音樂)이 불고자명(不鼓自鳴)하며 방천광명(放天光明)과 급묘음성(及妙音聲)하니 여차사천하수미산정제석전상설십주법(如此四天下須彌山頂帝釋殿上說十住法)에 현제신변(現諸神變)하야 시방소유일체세계(十方所有一切世界)도 실역여시(悉亦如是)하니라
또 하늘의 묘한 꽃과 하늘의 가루향과 하늘의 꽃타래와 하늘의 여러 가지 향과 하늘의 보배옷과 하늘의 보배구름과 하늘의 장엄거리를 비 내리듯 하며, 하늘의 여러 가지 음악이 연주하지 않아도 저절로 울리며, 하늘의 광명이 비치고 아름다운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와 같이 사천하의 수미산 정상 제석전(帝釋殿)에서 십주법을 설하니 온갖 신통변화를 나타내는 것과 같이 시방에 있는 일체 세계에서도 다 또한 이와 같았습니다.
환희심 나는 대목들이다.
15) 시방 보살들의 찬탄과 증명
우이불신력고(又以佛神力故)로 시방각과일만불찰미진수세계(十方各過一萬佛刹微塵數世界)하야 유십불찰미진수보살(有十佛刹微塵數菩薩)이 내예어차(來詣於此)하사 충만시방(充滿十方)하야 작여시언(作如是言)하사대
또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시방으로 각각 일만 부처님 세계의 미진수 같은 세계를 지나서 열 부처님 세계의 미진수 같은 보살들이 이곳에 와서 시방에 충만하여 이와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선재선재(善哉善哉)라 불자(佛子)여 선설차법(善說此法)이로다 아등제인(我等諸人)도 동명법혜(同名法慧)며 소종래국(所從來國)도 동명법운(同名法雲)이며 피토여래(彼土如來)도 개명묘법(皆名妙法)이라 아등불소(我等佛所)도 역설십주(亦說十住)하나니 중회권속(衆會眷屬)과 문구의리(文句義理)도 실역여시(悉亦如是)하야 무유증감(無有增減)이니라
“훌륭하여라. 훌륭하여라. 불자여, 이 법을 잘 설하였도다. 우리들 모든 보살들은 다 같이 법혜(法慧)라고 이름하며, 좇아온 국토도 다 같이 이름이 법운(法雲)이며, 그 국토의 여래도 다 이름이 묘법(妙法)이니라. 우리들의 부처님 계신 곳에서도 또한 십주법문을 설하나니, 모인 권속들과 문구와 뜻과 이치도 다 또한 이와 같아서 더하거나 덜함이 없느니라.”
하나를 들면 온 시방세계가 다 같이 들리고 왼쪽으로 기울면 온 시방세계가 다 같이 왼쪽으로 기우는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모든 존재, 우주 법계 모든 존재는 전부 연관관계를 맺고, 연기적 관점에서 연기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하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다.
불자(佛子)야 아등(我等)이 승불신력(承佛神力)하고 내입차회(來入此會)하야 위여작증(爲汝作證)하노니 여어차회(如於此會)하야 시방소유일체세계(十方所有一切世界)도 실역여시(悉亦如是)하니라
“불자여, 우리들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고 이 법회에 와서 그대를 위하여 증명하노니 이 법회와 같이 시방에 있는 일체 세계에서도 다 또한 이와 같으니라.”
시방의 보살들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거듭 증명을 하며, 이곳의 법회에서와 같이 시방의 일체 세계에서도 다 또한 이와 같다는 것을 말씀하여 밝혔다.
다음에는 이것을 게송으로 밝히는 내용인데 계속 게송으로 설해진다. 게송이 상당히 많다.
십주법을 산문으로 설하는 것은 여기까지로 다 마쳤다.
이렇게 주마간산으로 보아서는 제대로 맛도 못 느낀다.
한 구절 한 단락을 아주 신중한 마음으로 잘 읽고 마음에 새기고 또 읽고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우리 마음과 연관시켜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읽고 하면서 음미를 해야 한 백 분의 일이나 천분의 일이나 맛을 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렇게라도 우리가 화엄경을 인연 맺고 사는 것, 이보다 더 큰 홍복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라고 생각한다.
보다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은 각자의 노력에 달렸다.
오늘 화엄경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다.
*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성불하십시다.
첫댓글
_()()()_ 감사합니다.
心定不動.. 마음이 딱 안정 되어서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어떤 경우에도 불법에 흔들림이 없다.
불교를 공부한다고 하는 것은 불법의 이치를 깨달아 알고 깨닫게 해 준 그분에 대해 정확하게 알도록 하는 것이다.
卽自開解 不由他敎.. 스스로 터득해야 되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여 아는 것이 아니다.
_()()()_
🙏🙏🙏
🙏🙏🙏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