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端의 追憶 #98, 追憶抒情--西面有感
서면 롯데호텔-백화점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놓고 길을 나섰다. 롯데호텔과 백화점이 들어선 자리, 그 옛날 내가 공부하던 장소다. 유도부에 들어가 낙법을 익히던 1층 유도관이 있던 장소쯤에는 이제 여인의 짙은 향기 풍기는 화장품 부스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다.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이곳 서면에서 보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꿈만 가득했던 소년시절,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도합 6년을 나는 이곳 서면 바닥의 공기를 마시며 지냈다. 세칭 동방교에 입교해서 곧 닥아올 말세의 공포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지난날의 회상을 잠시 접으면서 길을 건넨다. 덤성덤성 디딤돌을 건너던 개울은 복개되어 이제 아스팔트 포장된 4차선 도로가 되었다. 좌우의 차들을 살피면서 횡단하여 서면시장으로 들어선다. 오래된 재래식 시장이다. 고등어구이, 갈치구이정식, 칼국수, 잡채, 찌짐등을 파는 식당이며 잡화, 철물, 식재료, 옷등을 파는 가게들이 혼재된 재래시장의 내부에 들어서면 시큼한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그리고 시장안이라고 해도 난전같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시장을 벗어나 간선도로를 접하고, 위협하듯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피해 지하도로 내려서서 반대편으로 계단을 걸어 올라서면 ‘쥬디스 태화’ 건물 앞이다. 부산의 향토백화점 태화, 지금은 망해버리고 없는 삼국시대 이름중의 하나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그 한참 전에는 태화극장이었다. ‘징기스칸’, ‘대장 부리바’ 같은 명화들을 이곳 태화극장에서 ‘학생단체관람’으로 보았었지 아마.... ‘쥬디스 태화’라, 족보조차 알 수 없는 어느 이름 뒤쪽에 겨우 아슬아슬 붙어서 그래도 명맥 하나만은 유지하고 있던가.
‘쥬디스 태화’를 지나 계속 걸어가면 태화극장과 쌍벽을 이루던 동보극장이 있던 장소의 뒷골목이 된다. 역시 이름조차 희미한 삼국시대 어느 시장통 돌다리를 지나가는 느낌이다. 더 걸어가면 옛날 융성하던 부속상가 골목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모두 다른 곳으로 이전해가고 크고 작은 식당, 술집들만 즐비하다. 다시 큰길 쪽으로 꺾어 나오면 서면 로터리가 되고 이곳은 차와 사람들이 빙빙 돌아가는 그야말로 옛날의 서면 로터리가 있던 장소다.
잔디와 각종 꽃나무들이 심겨진 중앙 부위에 부산의 상징 오륙도 모형이 윗부분에 조각된 V자 형태의 조형탑이 있었고 그 아래쪽으로는 전차가 쉬임없이 지나 다니던 곳, 그 주위 곳곳에 버스 정류소가 있었고 내가 급행버스에 올라타서 연단을 받아(볼펜을 팔아) 세칭 동방교에 지성(헌금)을 마련해 바치던 ‘나와바리?’(區域)이기도 하다.
-이단의 추억 # 10, 어떤 연단 (1)-
지하도를 다시 건너 큰길로 올라서면 옛날의 북성극장 자리가 된다. 지금은 새롭게 지어 올린 금융기관건물이 들어서 있다. 주로 외화만 상영하던 극장이다. ‘피노키오’며 ‘십계’ ‘벤허’ 같은 명작들을 상영하던 곳이다. 주머니에 돈이 없던 시절이라 선전 간판만 하염없이 쳐다보곤 했었다. 네 마리의 늠름한 말이 목덜미의 갈기를 휘날리면서 전차를 끌고, 볼륨감있는 팔뚝의 양손에 힘을 다해 불끈 움켜 잡은 말고삐를 높이 추어대며 군마를 질타하던 ‘벤허’의 주인공 찰톤 헤스톤의 그 대형 선전 그림판은 언제나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심장을 뛰게 했었다.
지하도로 걸어 들어가니 구세군의 자선남비 종소리가 지하공간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다. 벌써 또 한해가 바뀌는 년말년시가 닥아오고 있는가,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 위에다 시간을 그어놓고 날과 달을 정하여 그 세월을 측정하는 인간의 모사도 참으로 어지간하다. 무한 허공을 떠도는 이 행성, 나의 지구가 벌써 태양을 한바퀴 돌아왔는가, 그런데 특이하게 여자 사관이 정복에 계급장을 단 제복을 입고 종을 흔들고 있다.
매년 년말의 거리에서 자선남비 옆에 종을 흔들고 있던 남자 사관들만 보아 온 고정관념으로서는 흔치 않은 광경이다. 가녀린 여성에게도 세상은 영적 전쟁터이던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사탄의 세력과 한판 붙어 보자고 군대같은 계급을 정해 제복에 계급장을 붙이고 각진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는 구세군들, 그리고 구세군의 그 여성 사관은 그녀의 인생에서 어떤 계기를 접했기에 이길에 접어들어 저렇게 전쟁터에 나서듯 제복을 차려입고 자선남비의 종소리를 거리에서 울리고 있는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니 휘황찬란 복잡분주하다. 후각을 자극하는 식당가를 건너 지하의 찻집을 지나가니 언젠가 내가 앉아 누군가와 담소를 나누던 그 자리에 낯선 타인들이 둘러 앉아 웃음을 날리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기위해 주차된 장소를 더듬어 내 차를 찾아 손잡이에 붙은 버튼을 누르니 ‘찰칵’하고 경쾌한 소리가 들린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스마트키 덕분에 편리한 현대 문명을 만끽하고 있다. 차문을 당겨 열고 운전석에 앉는다.
나는 이 차가 마음에 쏙 든다. 손잡이에 붙은 버튼을 누르면 ‘찰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스마트키 덕분에 편리한 현대 문명을 만끽하고 있다. 안전벨트를 걸치고 스마트키를 눌러 엔진을 걸면 경쾌한 시동소리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특히 다음의 두 가지 기능이 아주 마음에 든다. 펑크가 나면 어느쪽 타이어가 지금 공기압이 빠지고 있으니 점검하라는 사인이 나타난다. 펑크 난 줄도 모르고 타이어를 씹으면서 달리다가 옆차량의 기사가 손짓으로 알려 주어야 운행을 멈추고 갓길에 차를 주차해 놓고 타이어를 살펴 보던 실수를 이제는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Back을 하게 될 때는 고개를 빼고 뒤를 돌아다 볼 필요 없이 후사경 한쪽에 카메라에 잡힌 차량의 후면 상황이 그대로 투사되니 사고가 날 이유가 없다.
또 보너스가 있다.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싶을 때는 정속 기능을 작동시키고 악세레다에서 발을 떼고 편안하게 앉아 핸들에 손만 얹어 놓고 방향만 잡아주면 되기 때문에 편리하기 이를 데 없다. 더구나 와이드 파노라마 선루프는 하늘을 마음껏 차안으로 들여놓을 수 있어 좋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토닥거리는 빗소리와 함께 흐르는 빗물의 물결 무늬로 인해 운치는 더욱 더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전석이 높아 시야가 확 트이기 때문에 갑갑하지 않아서 좋다. 나는 이 차가 마음에 쏙 든다.
내가 공부하던 곳,
그리고 ‘세칭 동방교’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그 시절의 서면을 둘러본 오늘 같은 하루를
먼 훗날 다시 기약할 수 있을까.
가슴 벅찬 오늘은 미래의 과거...
- 甲午初冬之節 -
첫댓글 구세군에 여사관이 있는 것은 부부가 모두 사관(목사)일 경우일 겁니다. 구세군 사관끼리 결혼해서 사역하는 경우를 보았거든요. 크리스마스 때 종 흔들고 모금하는 게 무척 힘이 드는 일이라서 부부가 교대해서 하는 것으로 짐작되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