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의료원 100년 - 내 마음의 뿌리 15년
2001년 5월 2일은 내가 순천의료원에 외과과장으로 출근한 첫날이었다.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조직되어있고 새로이 시작하는 분위기를 갖춘 공공의료기관을 두루 찾아 선택한 일터였다.
그러나 첫 출근의 첫 느낌은 기대와는 달리 그리 밝지 않았다.
건물은 낡아 우중충했고 병원 게시판과 복도 곳곳엔 분노와 불신과 상실감이 가득한 대자보가 어지러이 걸려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장님은 임기만료로 퇴임하시고
후임 원장님도 개인사정으로 취임 1년을 갓 넘기고 2002년 11월 중도사퇴하셨다.
2002년 11월. 대한민국은 2002월드컵 4강이라는 환상적인 성적으로 축제분위기였지만 순천의료원은 더욱 어두워졌다.
병원 앞에 자리한 일제 때 지어진 관사는 낡을 대로 낡아 쓰러질 듯 위태로웠고
회색빛 얼룩진 담장은 가뜩이나 우울한 병원 분위기에 답답함을 더했다.
폐쇄된 건물 주변은 아침에 둘러보면 검은비닐봉지에 짜다 남아 눌어붙은 본드와 요상한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음산한 우범지대로 전락해있었다.
경영상태는 악화되어 직원들 임금이 꽤나 큰 규모로 기약 없이 체불된 막다른 골목이었다.
순천시내에서는 순천의료원이 곧 폐쇄되거나 매각되거나 위탁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의료진도 정상적으로 계약된 의사는 외과과장인 나만 남은 절박한 상황까지 몰렸다.
더 큰 문제는 직원들이 절망과 무력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심리적 파국이었다.
그렇게 뒤숭숭하던 어느 날 사립의과대학으로 부터 교수자리를 제안받았다. 혹했고 갈등이 심했다.
나까지 그만두면 정상계약을 맺은 의사는 한 명도 없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순수한 열정이 살아있고 일터에 대한 애착이 깊은 의료원가족들을 차마 등질 수 없어 교수직 제안을 완곡히 거절했다.
2002년 11월 순천의료원 원장 직무대행직을 무거운 마음으로 맡았다.
규정상 정년인 만57세까지 순천의료원을 지키겠다고 의료원마을사람들과 한 약속과 함께.
2002년 11월부터 2007년 3월 까지 햇수로 6년 동안
순천의료원장직무대행과 순천의료원장으로 지내며 의료원마을사람들과 함께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다.
숱한 피눈물과 땀은 필수였다.
공중보건의로만 의료진이 구성된 상태에서
진주에서 정형외과 의사를 그야말로 눈물겹게 ‘빌려’와 진료진을 확충하며 진료기능 정상화를 시작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삼고초려 끝에 초빙에 성공하여 2003년 전남동부지역에선 최초로 치매전문병동을 개설했다.
그 후로 차근차근 주요 임상과장을 정규채용 전문의로 초빙하며 안정적인 진료가 가능해졌다.
순천의료원에 대한 지역사회의 신뢰가 회복되며 병원 환경이 눈에 띄게 밝아지고 진료기능도 활기를 되찾게 되자
입원병실이 모자라 원장실을 옥상 컨테이너로 옮기기도 했다.
경영이 안정되어 악성채무로 남을 줄만 알았던 체불임금도 지급완료했다.
의료원 가족들의 자신감이 회복되며 지역사회에 대한 의료원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구례 산골에서부터 고흥 앞바다 섬마을까지 전남동부지역을 누비며 찾아가는 건강검진사업과 의료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장애인사랑의봉사대와 방문간호사업을 통해 장애인과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돌봄 역할도 책임감을 가지고 끈기있게 시행했다.
오래된 원도심의 쇠락한 흉물이었던 의료원관사와 답답했던 담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훤히 열린 원예치유원과 의료원 공원을 조성하고 정성껏 가꾸었다.
그러다보니 의료원공원과 원예치유원은 순천시민과 순천의료원이 삶을 나누며 교감할 수 있는
빛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지역사회보건의료에 대한 의료원의 역할이 커지며 그에 걸맞는 새로운 공간의 필요성도 절실해졌다.
의료원마을사람들과 지역사회가 힘을 모으니 의료원신관증축에 필요한 국가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2007년 정신과병동, 재활병동, 노인전문병동,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 등
지역사회 공공의료기관으로서 꼭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신축건물이 완공되었다.
완벽하지도 않았고 아쉬움도 많았지만 2007년 3월 순천의료원장 임기를 마치고
본관 옥상 컨테이너 원장실에서 본관 1층 햇빛 바른 외과진료실에 외과과장으로 복귀했다.
외과과장으로 복귀한 뒤 평범한 의사로 진료에 전념하며
호스피스완화의료전담의 역할을 맡기도 하고
응급실에 공백이 생기면 몸으로 때우기도 했다.
어떨 때는 52시간 연속근무를 하기도 했다.
의료원 재직 15년 동안 정상적인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거나 주5일근무제 토요일 휴무의 꿀맛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은 묻혀진 개인사.
의료원마을사람들과 약속한 대로 만57세가 되던 2015년.
의료원에서 뜨겁게 살았던 15년을 마치고 헛헛하거나 덤덤하게 몸만 나왔다.
2019년.
순천의료원은 개원 100주년을 맞이했다.
밖에 나와서 보는 순천의료원은 내 마음의 뿌리이기도 하고 지역사회의 든든한 공공의료기관이기도 하다.
앞으로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수없이 겪겠지만
순천의료원과 순천의료원마을사람들은 늘 튼튼하고 즐겁고 보람있는 나날을 살아가시라고 힘을 보탠다.
순천의료원, 순천의료원마을사람들.
힘!!!
2019년
순천의료원 제10대 원장 박인근
첫댓글 훌륭한 마음에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