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 씨가 ‘살인범’으로 여론 재판 당하자, 기자들 앞에서 “이 사건은 여성혐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어준이 ‘미투 공작 음모론’을 제기하며 미투 운동에 찬물을 끼얹자, 이에 맞선 ‘전쟁’을 선포했다. 이윤택 피해자들을 ‘꽃뱀’으로 몰고 갔던 임사라 변호사, 곽도원과 설전을 벌였고, 정봉주 전 의원의 거짓말에 비판을 쏟아냈다.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에 앞장섰던 노동변호사이자, 영화 ‘부러진 화살’의 주인공. 그리고 최근 미투 운동을 ‘혁명’이라고 외쳤던 인권변호사. 세월이 흘러도 불타는 투쟁력만큼은 여전한 박훈 변호사를 그의 창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서해순 사건 얘기부터 해보자. 서해순 법률대리인으로서 이 사건을 ‘여성혐오’라 명명했다. 이유가 뭔가
만약 서해순이 남자였고, 김광석이 여자였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변호사 생활 18년간 많은 사건을 처리해 왔다. 예를 들어 10년 이내의 짧은 혼인생활을 한 부부 중, 남성이 산재사고로 사망한 경우 부인은 늘 시댁과 크게 부딪혔다. 시댁 쪽에서는 ‘남편 잡아먹은 년이 왜 우리 아들 목숨 값을 가져 가냐’고 한다. ‘당신들은 상속권자가 아니다’라고 설득한 적도 많다. 하지만 거꾸로 여성이 죽었을 때 남성이 상속권 문제에 휘말린 적은 보지 못했다. 부인 잡아먹은 놈 소리도 한 번도 들은 적 없다. 도대체 왜 여성들만 남편, 자식 잡아먹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나. 여성혐오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었다.
서해순 씨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이후, 여론으로부터 ‘확정범’ 판결을 받았다. 당시 손석희 앵커의 인터뷰 방식에도 문제의식을 느꼈을 것 같다.
JTBC 인터뷰 후 서해순 씨는 국민 XX가 됐다. 그 때 손석희는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 손석희가 서해순을 취조하듯 몰아붙이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인터뷰 전, 작가와 서해순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인터뷰 내용과는 다른 내용의 질문들이었다. 손석희가 마구잡이로 물어본 질문의 출처는 모두 이상호로부터 나온 것들이었다. 서해순은 준비가 안 돼 있었고, 그런 질문들에 분노한 대답들이 나온 것이었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자신을 남편 살인범으로 몰고 있는데 누가 그것을 참겠나. 누가 방송에 나와 개인사를 낱낱이 이야기하고 싶겠나. 서해순 씨가 거기서 쌍욕을 퍼붓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방송 이후 사람들은 서해순을 살인범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JTBC에 다시 4자 토론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이후, JTBC는 이 사건과 관련해 단 한 번도 인터뷰나 취재 요청을 해온 적이 없다. 자신들도 잘못했다는 것을 아는 거다. 서해순은 생존자다. 독하게 생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해순 사건 이후 미투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사건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나꼼수 쪽 부류의 사람들은 근거 없는 선동을 한다. 그들이 주장한 것 중 사실로 드러나는 것은 거의 없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언론통제와 사찰이 한창이던 시절, 그들은 음습한 곳을 파고들어 B급 언어로 나름 속 시원한 이야기를 했다. 진보진영이 몰락한 자리에 파고든 그들은 대중을 장악했다. 하지만 골방에서 하는 B급 언어와, 대낮의 B급 언어는 달라야 했다. 지금 권력의 중심부로 올라온 그들은, 여전히 근거 없는 선동을 하고 대중은 그것에 열광한다. 절망감을 느꼈다. 거기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팩트로 맞서 싸워야 하고, 그 팩트를 조사하고 법률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 변호사의 일이기도 하니 직업적으로 맞기도 했다.
곽도원 측과도 설전을 벌였다. 곽도원 측 임사라 변호사가 이윤택 피해자들을 상대로 사용한 ‘꽃뱀’이라는 단어가 분노의 결정적 원인으로 보인다. 미투 운동에 적극적인 이유가 뭔가.
나는 미투를 혁명으로 본다. 이 싸움은 성별 관계에 있어 어떻게 평등한 관계를 세울 것인가의 문제다.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가장 먼저 당하는 착취가 성적 착취이고, 미투는 성적 착취를 거부하기 위한 운동이다. 이러한 목소리를 감정하고 ‘꽃뱀’으로 낙인찍는 것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왕따가 되는 구조가 돼야 한다. 결과적으로 미투 운동을 통해 여성들이 독립적 주체로 가감 없이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좋겠다. 참지 않으면 깨끗해진다.
김어준의 ‘미투 공작설’부터 정봉주, 안희정 사건까지. 일명 자유주의 세력에서 최근 성폭력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이유를 뭐라고 보나.
그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386세대다.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우리가 정권을 잡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91년 소련이 망했고, 우리가 추구했던 정치적 이념 등도 전부다 없어져버렸다. 무엇을 가지고, 어떤 새로운 내용으로 권력을 잡을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내용도 갖지 못한 채, 저들은 정치권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레떼르(프랑스어 rhéteur 1. (고대의) 수사학자,웅변술 교사 2. (내용없이)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연설가), 카리스마뿐이었다. 그들에게 무슨 사유와 성찰이 있겠나. 우리 세대는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온 책임이 있다. 사교육 시장에 진출해 시장을 키우고, 회사에 취직해 관리자가 되고, 정치에 뛰어들어 지금의 교육, 사회, 정치, 경제의 영역을 만들었다. 철학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돈과 명예, 권력을 갖게 된 거다. 자신이 권력을 쟁취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하 권력관계가 명확해지는 순간 그들은 보수든, 진보든, 혁명이든 상관이 없어진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상하관계가 명확한 비밀 조직에서 쇠파이프 화염병을 던지다 주류 정치권으로 간 그들이 무슨 민주주의의 경험이 있겠나.
영화 ‘1987’에 분노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인가
1987년 6월 항쟁은 민주주의의 작은 씨앗이었다. 그런데 씨앗이 커 나가지 못하고 밟혀 없어져 버렸다. 경제 성장은 이뤘지만, 성장의 열매는 모두 소수 독점자본이 다 가져가는 구조다. 뭐 하나 이뤄진 게 없다. 이 사회를 반노동의 사회, 반인권의 사회, 반정의의 사회를 만들어 놓고 무슨 추억 팔이를 하나. 쪽팔리지도 않나. 우리 세대 때는 사다리가 있었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겐 사다리가 아예 없다. 이런 폐쇄적인 사회 구조를 만들어놓고, 자본주의에 봉사하면서 ‘나는 민주화 운동을 했네’하며 살아갈 수 있는 허위의식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 영화 1987이다. 지들이야 한 자리씩 하면서 영화를 보며 눈물 콧물을 짜겠지. 문재인 정권까지 만들어 놨으니 얼마나 행복한 삶이겠나. 하지만 여전히 반노동, 반인권, 반정의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비참한 영화다. 우리가 1987년에 왜 싸웠을까, 하는 성찰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 왜 최루탄과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우리는 그때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부의 분배, 돈이 없어 굶지 않고 착취당하지 않고 차별 당하지 않는 사회를 바랐던 거다. 그런데 그런 사회가 왔나. 이 세계가 완성된 세계라고 주장할 만한 386세대나 눈물 콧물을 쏟지, 이 세계를 지옥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영화다.
거친 언어를 자주 사용한다. 김어준 부류의 사람들을 ‘파시즘’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스스로 분노와 회한을 삼킬 수가 없다. 성정의 탓이기도 하지만, 그런 세력에 대한 분노가 너무 크다. 위선적인 것에 대해 격정적으로 쏟아 붓지 않으면 내가 화병이 나 죽을 거다. 그들과 끊임없이 싸우지 않으면 급속하게 파시즘 사회가 올 거다. 독재자는 스스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중이 독재자를 만드는 거다. 대중에게 먹힐 만한 선동거리를 찾는 사이비 진보들과, 혁명의 전망을 잃어버린 대중들이 약자를 타겟 삼아 공격하는 비열한 광기가 바로 파시즘이다.
최근 GM사태를 보면서 2001년 4월 10일 일어난 대우자동차 경찰폭력 사건이 많이 떠오를 것 같다.
악몽 같았다. 죄책감이 심했다. 내가 드러눕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텐데, 하는 후회도 상당하다. 그 당시 경찰력이 우리 인원의 10배였다. 그냥 드러누우면 경찰이 우리를 들고 갈 줄 알았다. 하지만 최악의 폭력 사태가 발생했고, 9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GM사태의 책임이 김대중 정부에 있다며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대중 정권은 단돈 1달러라도 벌어 와야 한다며 팔 수 있는 건 다 팔자고 했다. 해외 매각 이외에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노조는 일시적 국유화 같은 대안을 제시하며 투쟁했다. 일시적 국유화 또한 타협적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터진 후 미국은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곧바로 국유화 정책을 썼다. 일시적으로 국유화 해 정상 가동케 하고 매수자가 나타나면 매각을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요구에 대해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어떻게 대응했나. 나는 한나라당 프락치 소리를 들었고, 추미애는 경찰청장에게 나를 왜 구속하지 않느냐며 추궁했다. 송영길은 중재를 하겠다며 노조 천막에 와서 이야기하다 수첩을 던지고 나갔다. 결과적으로 지엠은 생 양아치 짓을 하며 지금의 사태를 일으켰다. 김대중 정권 이후 비정규직은 엄청 늘어났다. 지엠 사내하청 노동자도 숱하게 들어갔다 잘려나갔다. 당시 투쟁을 했던 정규직들조차 집행부를 잡아 취업 장사를 했다. 여러 가지로 회한이 든다.
2003년, 천문학적 손배가압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법률대리인도 맡았다. 손배가압류는 김대중 정권을 시작으로 노무현 정권 때 정착한 노조 탄압 무기다. 민주당 정권에 대한 반감이 클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이가 갈리는 사람이다. 남북 문제에 있어서는 이명박, 박근혜보다 나을 수는 있지만 노동, 농민 문제에 있어서는 극단적인 탄압 정책으로 일관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대, 근로기준법 개악 등 지금 노조법의 원흉이 바로 그 정권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내놓은 노사관계선진화 로드맵은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조합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내용 이었다. 해고는 쉽게, 노동조합 활동은 제약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본다. 나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사실 이명박, 박근혜는 이전 두 정권이 만들어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격이다. 자기들끼리 잘 해 먹었다. <워커스 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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