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땅 끝 해남까지 [2011년5월27일 흐린 날]-16-
하나님이 우리의 가는 길 을 도우신다. 하늘엔 구름이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고 적당히 바람도 불어 오늘은 걷기가 좋다. 구약 성서에서는 모새가 애굽을 떠나 광야길 을 걸을 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 또한 금번 여행을 하나님이 도와주신 줄로 생각한다. 오늘은 나주시에서 영암까지 가야한다. 영산강 강변 마을에는 홍어 거리가 조성되어있었다. 아침시간이라 홍어는 먹지 못하고 홍어거리를 지나왔다. 옛날에 흑산도에서 홍어를 많이 잡아 영산강을 거슬러 영산포구까지 오다보니 홍어가 자연 숙성 되었다고 하며. 질 좋은 홍어 하면 영산포 홍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홍어는 서해안 흑산도의 대표적 특산물이다. 전라도 지역 잔칫집에 홍어가 나오지 않으면 무효라고 할 정도로 꼭 나오는 필수식품이다. 이젠 전국 어디서나 홍어 음식점을 볼 수 있고 홍어의 독특한 맛을 즐기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안다. 옛날에는 선주가 직접 배를 이용해 영산포 까지 와서 홍어를 팔고 쌀과 생활필수품 을 사가기도 했다고 하며. 50여 년 전에는 쌀 1말과 큰 홍어 1마리가 교환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잡힌 홍어는 찰지고 맛이 좋아 선호 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지금은 국내산 홍어가 귀해지면서 칠레산, 중국산 등 수입산 홍어를 대신 쓰고 있다고 한다. 일제 때는 목포와 영산포 사이의 뱃길에는 이틀에 한 차례씩 다니는 발동선 이 다녔고. 또 쉰 척이 넘는 돛단배가 오르내렸으며. 목포에서 오는 배는 생선과 소금, 건어물, 식료품, 잡화, 건축 재료를 영산포로 실어 날랐고. 영산포를 떠나는 배는 나주에서 생산된 쌀과 잡곡, 무명, 가마니를 목포로 실어 날랐다고 한다. 오가 가는 배 모두 활력이 넘쳤으며. 뱃길 위에서 영산포 는 나주의 살아있는 중심이 됐고, 선창 곁에 있던 장은 늘 전성기였으나 1981년 목포 동쪽에 길이 4.3㎞의 영산강 하구둑이 들어서면서 바다가 막혔다. 바다가 막히면서 영산포의 숨통도 함께 막혔다고 한다. 더 이상 배가 들어오지 않자 물건을 사려는 중개인들의 발길도 뚝 끊겼고, 뱃사람을 상대로 한 수많은 가게들도 모두 문을 닫았으며 지금은 명맥만 유지 되고 있다. 뱃길이 없는 영산포 는 많이 초라해졌다. 지금은 나주와 영산포 중간에 시청이 자리 잡아 시청 유치경합의 민원을 해결했다 고 한다. 영산포 는 옛 명성이고 지금은 나주읍 이 번창한 것 같다. 영산강 4대강 사업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장비들도 볼 수 있었다.나주의 특산품 중 나주 배 익히 알고 있었지만 걷고 있는 주위는 다 배 밭이었고 배 밭 관리도 잘 된 것같이 보였다. 땅이 비옥하여 모든 곡식들이 잘 자라고 있어 풍요로운 땅임을 알 수 있었다. 영암이 가까워지면서 고구마 밭도 많이 보였는데 우리지역에서 고구마 심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밭고랑은 작고 아주 배게 심었다.
호남지방의 평야지 를 걸으면서 느낀 것은 이렇게 풍요로운 땅에서 풍부한 농산물이 생산되는데 정든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이사와 사는 사람이 왜 많을까도 생각해보았다.
아마 일차 산업인 농업으로는 생활에 충족을 할 수 없고 교육 문제 등 여러 가지 여건이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가 살기가 좋았던 것 같다.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월출산이 보인다. 영암군에 도착해 숙박할 모텔 방에 들어가 밖을 보니 바로 손에 잡힐 듯 월출산이 보인다. 하춘하 의 월출산 가요가 생각난다.11.2 신문사에 보낸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