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은 부모를 위하여 무슨 기도를 할까요? 한 엄마가 아들을 믿음으로 키우기를 원하여 젖먹이 때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말귀를 알아들을 때까지는 건강하고 지혜롭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유치원에 들어가서는 엄마 말을 잘 듣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자기가 기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엄마는 너무나 기뻐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기도했습니다."하나님, 엄마가 내 말을 좀 잘 듣게 해주세요."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들의 문제가 심각해져서야 허둥지둥 댑니다. 항상 늦습니다. 나도 잘 길러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기도도 했다구요 그러면 물어야 합니다. 당신에게 눈물이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할 때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여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이것이 지금 주님께서 부모 된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울어야 할 만큼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1.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입니다.
눅 19:41-42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다가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지배하는 로마 제국에 지속적으로 대항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주후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아이들을 땅에 던져서 죽이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남자들을 무참하게 살육했습니다. 이후 유대인들은 전 세계로 흩어져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자신이 겪는 고통보다 앞으로 예루살렘 여인들과 자녀들이 당할 고통을 생각하시면서 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하여 울면서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하여서,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 자녀들에게 닥칠 일은 아닐까 두렵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세상은 어떨까요? 분명한 것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도덕과 윤리가 황폐화되고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영적 상태는 어떻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영생을 누리고 있습니까?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과 친밀히 교제합니까? 수로보니게 여인은 귀신들린 딸을 위하여 개 취급을 받고도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런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보는 눈은 떴지만 영의 눈은 보이지 않는 자녀들을 생각하면 눈물의 기도가 됩니다. 우리 자녀들의 영적인 눈이 뜨이게 해 주소서 그러나 우리 자녀만을 위하여 울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악해져 가는데 우리 자녀만 믿음이 좋아서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 자식만 생각하는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나쁜 친구랑 놀지 마 라고만 말하면 안 됩니다. 자녀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음세대 전체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 동성애 문제, 음란한 풍조, 낙태 문제, 각종 중독, 이기주의, 개인주의로 물든 사회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로 기도하다 보면 울지 않을수 없습니다. 세상을 바로보며 기도하는 부모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자녀들을 말로 양육할 수 없기에 우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일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자녀를 말로만 가르치려 했기에 자녀 양육에 실패한 것입니다. 부부가 살다보면 싸우기도 하고 말을 막할 때도 있습니다. 그 때, 자녀들의 마음이 어떠할지에 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속으로는 깊은 병이 듭니다. 그래서 폭력성을 가지게 되고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무절제하게 됩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비난 받을 만한 행동을 할 때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마음에 화가 쌓입니다. 부모가 정직하지 못한 것을 볼 때, 어려서 말은 못하지만 다 기억합니다. 엄마 아빠도 싸웠잖아? 왜 우리만 싸우지 말라는 거지? 엄마 아빠도 TV 보면서 왜 우리만 공부하라는 거지? 엄마 아빠도 거짓말했으면서 왜 나만 거짓말하지 말라는 거야? 엄마 아빠도 화를 내고 소리 질렀잖아! 그런데 왜 우리 보고는 좋은 말만 쓰라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잘못해서 야단을 맞아도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되면 어느 날 갑자기 터집니다. 자신도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저 소리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갑자기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화가 쌓인 것입니다. 자녀를 말로 양육하는 것이 쉬워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가장 어려운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자녀들은 더 빗나갑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고 기도로 양육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워 보이지만, 반드시 예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블린 크리스텐슨 사모님이 쓰신 [나를 변화시키소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모님에게는 제인이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18살 되던 해, 어느 날 외출 준비를 하면서 딸의 옷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제인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엄마 제발 잔소리 좀 하지 마세요. 엄마가 잔소리를 시작하면 목소리가 얼마나 커지는지 아세요? 첫 마디만 하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아요 사모님이 딸의 말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침실에 들어가 펑펑 울었습니다. 처음에는 딸이 타락한 것 같아 울었으나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벧전 3:1-2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 사모님이 깨닫고 기도가 바뀌었습니다. 주여, 제인을 변화시키기 전에 나를 변화시키소서 다시는 어떤 말로도 딸을 가르치지 않고 이 기도만 했습니다. 4년 후, 제인이 어머니날에 보낸 카드 겉장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말없이 행동으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 어머니께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줄때입니다 행동으로 자녀교육에 성공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자녀만 아니라 부모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울어야합니다.
주님은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셨습니다. 울어야 할 대상은 먼저 부모 자신입니다. 우리는 부모인 자신의 마음이 진정 자녀에게 복된 사람이 되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창 49장에 야곱이 열두 아들을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유다 같이 복을 선포한 아들도 있지만 르우벤이나 시므온 레위처럼 저주를 선포한 아들도 있었습니다.그런데 신 33장 나오는 모세의 축복기도는 다릅니다. 모세는 12 지파 중 한 지파도 빼지 않고 복을 선포합니다. 야곱과 모세의 축복기도가 왜 이렇게 달랐을까요? 야곱과 모세의 마음이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야곱은 바로 왕 앞에 나갔을 때, 자신의 삶에 대하여 창 47:9 ...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말은 다릅니다.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야곱의 마음과 모세의 마음이 달랐습니다. 그것이 축복기도의 차이를 가져왔습니다. 부모는 자신의 마음 상태, 영적 상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는 줄 알지만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부모에게 물려받는 것은 돈만이 아닙니다. 마음의 상처를 물려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의 삶과 가정과 자녀들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의 상처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복되게 양육하려면 부모가 자신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라면 자녀를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지금은 정말 그런 때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자신을 위하여 울 줄 알아야 합니다. 부모이면서 자녀를 향하여 눈물이 없다면 지금 한참 잘못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울면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신의 영적상태를 보고있는 자녀들 생각하면서 울고 자녀를 위해 울며 기도하는 좋은 부모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