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따스한 변화 품앗이: 서로 도와 이롭게 하라
이언오 지음 , 도서출판 품 335p 2025.3.5.
(이경수 서평)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돈은 오래 참습니다. 돈은 친절합니다. 돈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돈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돈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돈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돈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돈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돈은 모든 것으로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돈,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돈입니다.
조지 오웰(George Owell)의 소설 <엽란을 날려라(Keep The Aspidistra flying)>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일명 ‘사랑 장(章)’이라 불리는 성경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돈’으로 바꾸어 물질만능주의를 교묘하게 비틀고 있습니다. 90년 전(1936년) 세상에 선보인 소설임에도 마치 어제 나온 따끈따끈한 책처럼 느껴집니다. 1936년의 오웰이 2025년 현재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 모든 가치의 최우선으로 여겨지면서 인간은 급격히 소외되고 말았습니다. 끝없는 고통과 불행에 시달리며 불안하고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언오의 신작 <따스한 변화 품앗이: 서로 도와 이롭게 하라>는 이러한 현대인의 불행과 고통에 주목하고, 그 해법을 품앗이에서 찾고 있습니다.
저자는 1년 이상 병마와 싸웠습니다. 그 기간은 고통과 불안의 나날이었고 갈수록 기력은 바닥으로 떨어져 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본인이 의지를 갖고 먹고 움직여야 산다(스스로),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과 응원이 큰 힘이 됐다(서로), 공동체‧사회‧자연의 은혜로 태어났고 살아올 수 있었다(함께)라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먹고 살기, 서로 돕기, 함께 살아가기’. 이것이 바로 품앗이 정신었던 것입니다.
이 책은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한국 사회가 큰 고통에 빠지게 된 과정을 들여다봅니다. 짧게 요약하면 한국은 짧은 기간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각종 모순이 누적되면서 현재의 고통과 미래의 불안이 초래됐다고 진단합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물질 풍요가 아닌 신체적‧정신적‧사회적 행복으로 발전 방향을 전환하고, 물질의 생산과 소비를 줄여 발전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경쟁 과잉을 고통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협력에 기반한 경쟁(경쟁과 협력의 조화)으로의 전환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품앗이를 농경사회의 생산‧생활 방식이며 시차를 둔 노동의 호혜적 교환으로 정의합니다. 그러면서 개체와 개체, 개체와 부분,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가 모두 품앗이로 연결돼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품앗이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발적 노동 ▲모두에게 주어지는 일자리 ▲몸 움직이는 활동과 몸에 밴 지혜 ▲먼저 주고, 받으면 갚기 ▲공정한 보상 ▲참여자 모두가 이익 ▲공동체 규율 ▲열린 관계와 포용 ▲상향식 민주주의 ▲부분보다 전체, 단기보다 장기 라는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고 전합니다. 아울러 품앗이를 현대에 맞게 재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재창조 ① 돈보다 실물 가치를 중시하는 거래‧소유
▶재창조 ② 돈을 거래‧소유에 사용하되 유연하게 접근
▶재창조 ③ 돈 안 되는 일, 돈 없이 하는 일에 도전
▶재창조 ④ 노동 숙련과 기술‧지식 습득
▶재창조 ⑤ 사람을 위한, 사람이 주체인 기술
▶재창조 ⑥ 능동적으로 일하고 성과를 창출
▶재창조 ⑦ 공동체에 조직 원리 도입
▶재창조 ⑧ 공동체들의 연대
저자는 나의 작은 품앗이 행동이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고통을 치유하려면 생각에 머물지 말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금이 바로 한 명 한 명 깨어나 작은 행동들을 시작할 때라는 점을 그는 강조합니다. 아울러 개인 행복과 사회 변화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품앗이꾼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면서 품앗이꾼의 10단계 여정을 제시합니다. 그 여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1단계: 몸‧정신이 깨어있기 → 2단계: 스스로 일하기 → 3단계: 품해주기 → 4단계: 품 갚기 → 5단계: 자기 역할 하기 → 6단계: 공동 작업 참여 → 7단계: 공동체 운영 → 8단계: 돌봄‧훈육 → 9단계: 가진 것 내놓기 → 10단계: 은혜 갚기
저자는 품앗이의 확산을 위해 떨림-울림-어울림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물체의 떨림은 파동을 일으키고 그 파동은 같은 진동수를 가진 다른 물체의 울림을 유발하며 그렇게 되면 함께 울리는 공명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특히 물체가 셋 이상이 되면 떨림과 울림을 넘어 어울림이 일어난다는 게 저자의 시각입니다. 나의 떨림이 상대의 울림, 전체의 어울림으로 확산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사회가 떨림-울림-어울림이 일어나는 공명의 장으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해야 공명의 지속‧확산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두 영역에서 품앗이를 제안합니다.
첫째 영역은 청년 품앗이 사업단 운영입니다. 이 시대의 최우선 화두가 청년 세대의 경제적 자립인 만큼 품앗이 사업단을 출범시켜 청년 일자리 창출과 매칭을 위한 사업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용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대상은 40세 전후 미취업자이고 추후 10대 후반으로 연령대를 낮춰 나간다, 최저임금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해 1일 5만원‧월 150만원을 보수로 지급한다, 작업시간은 일 4시간 이상 자율로 정한다, 10년 활동 후 1억원 정도 자립금을 마련하도록 한다, 현장체험‧자격증 취득‧리더십 훈련‧스포츠‧문화 활동 등에 중점을 둔다 등입니다.
시범 사업을 통해 성공사례를 만들면서 유사한 활동을 하는 기업‧단체들과 연계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잊지 않습니다.
두 번째 영역은 품앗이 시범 마을 조성입니다. 그 주역은 전원생활의 낭만을 가진 은퇴한 도시민으로, 풍부한 사회 경력과 재주‧취미가 다양할수록 경쟁력 있는 마을 조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그의 시각입니다. 마을 조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초기 투자비를 내놓고 공공기금을 조성하거나 협력조합을 설립할 것도 제안합니다. 아울러 주택단지 조성, 민박, 농산물 유통, 농촌 관광 등으로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작게 시작해 규모를 키우고, 한곳을 크게 하기보다 작은 공동체들의 연결망을 만드는 게 낫다는 점도 거론합니다. 입주 주민이 제공하는 노동에는 합당한 보상을 해야 육체노동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자력으로 생활비를 번다는 보람을 주게 된다는 사실도 지적합니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한 단어는 ‘자리이타(自利利他)’입니다. 남을 이롭게 하면서 자기 자신도 이롭게 하는 것,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 이란 의미입니다. 그런 만큼 저자는 비현실적 조건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이기적 욕망과 현재의 과잉 경쟁적 환경을 인정하고 적절한 보상, 경쟁과 협력의 균형 등을 강조합니다. 아울러 일자리 창출, 교육‧돌봄의 정상화, 마을‧지역의 자립자족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품앗이 사회도 그려냅니다.
앞서 언급한 조지 오웰의 소설 <엽란을 날려라>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인 고든 콤스톡은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생활비만 벌면서 위대한 예술 작품을 쓰려고 분투합니다. 원래 그는 전망 있는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였지만 자신의 직업에 환멸을 느끼고 회사를 나온 후 조그마한 중고 책방에서 점원으로 일합니다. 하지만 책방 점원이 받는 보수로는 친구들과 저녁 식사나 맥주 한잔도 하지 못하고, 연인 앞에서 떳떳할 수도 없습니다….
고든 콤스톡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작은 중고 책방과 고든 콤스톡이 함께 잘 사는 상생(相生) 방법은 없는 걸까요? <따스한 변화 품앗이: 서로 도와 이롭게 하라>에서 그 방법을 한번 찾아보세요.
미래촌(美來村)-품마을 | <이경수 서평>따스한 변화 품앗이 : 서로 도와 이롭게 하라 / 이언오 지음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