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복지 본질 접근해보기.
신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는 말은 정치적 수사(레토릭)이거나 선동가들의 감언이설에 지나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예제도, 남아프리카의 대놓고 인종차별, 인도와 네팔의 카스트제도, 무슬림 국가들의 남녀차별, 대한민국의 반상 제도, 일본의 부락민 차별, 미국의 흑백차별 등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는 행위는 꾸준히 현재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무어, 오늘의 칼럼 주제가 인종차별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장애인복지와 연관된 근원을 찾고자 함이니 이쯤에서 본론으로 진입하기로 한다.
어찌 되었거나 인간이 사는 곳에는 어느 수준의 인종차별이나 이에 준하는 차별행위들이 엄존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허기사 세계적 철학자인 플라톤이나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조차도 그리스國의 선민의식을 버젓하게 드러낸 바 있다.
다 줄이고,
우리나라에서의 인종차별도 타국의 그것에 못지 않다.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놈으로 구분되어 노예제도와 다를 바 없는 노비 문서로 인간을 사고 팔았던 역사가 분명하다.
현재에도, 백인들과 취업 중인 제 삼국인들에 대한 시선은 극명하리만치 차이가 난다.
이 경도된 시선에 대해서 누가 아니라고 해봤으면 싶을 정도로 노골적이다.
이 기저에는 약자들에 대한 비하나 무시가 철저하게 고착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별행위들은 왜곡된 문화를 배태하기에 이르럿고 결국은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이유 없는 경멸이나 무시하는 경향으로 진화되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입으로는 사회적 약자들을 차별없이 보듬고 가야 한다면서도 자신의 사익과 배치되는 순간, 악마의 혀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들은, 장애인당사자들에 의해 익히 목격되었고 더 나아가 일반화되어 있을 정도로 사회 구석구석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굴절된 정서에서 진정한 장애인복지란 숲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무모한 행위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장애인복지란, 예산 타령에 앞서 이 깊고, 높고 넓게 퍼져 있는 구태舊態의 악습에 손을 대야 한다는 것이다.
거북이 등처럼 화석화 되어있는 못된 버리장머리인 인간차별부터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단군의 단일민족 후손이고, 백의민족이라는 국가적 주체성이 돋보인다는 점을 우리 모두 각성하자는 주장을 결어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