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땅 끝 해남까지 [2011년5월29일 맑고 걷기 좋은 날]-18-
06시 40분 숙박지 를 출발하여 남창으로 걷는다. 안개가 자욱하여 시야가 짧다. 걷기가 위험하지만 걸어야만 한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니 마음이 조급해져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보면 아찔하다. 우리부부는 40년을 넘도록 살면서 금번여행 기간 동안처럼 서로 에게 칭찬을 많이 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하루에 몇 번씩 서로가 칭찬해 주면서 격려를 하니 절로 힘이 났다. 부인이 남편을 남편이 부인을 칭찬하면 더욱 힘이 나는 것 같다, 아마 사람은 칭찬을 받으면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 것 같다.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고려청자를 제작하였던 지역으로, 우리나라 청자의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청자의 보고(寶庫)"이다. 1963년 국가사적 제68호로 지정되었다. 청자가마터(窯址)는 총 188기로, 이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청자가마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수량이라고 한다.
강진만이 한눈으로 굽어보는 만 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 18년 중 10여 년 동안을 생활하시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 신서 등 600여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 하였던 곳이 기도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던 유서 깊은 고장이다. 오늘은 아침밥도 못 먹었다. 금번 여행 중 아침밥을 제대로 먹은 적은 오산시에서 밖에 없다. 지금 내 허리는 10일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은데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얼마나 걸었을까 길옆 작은 구멍가게가 있어 들어갔더니 세상에 3-4십년 전에 구멍가게다. 식수도 냉장고에 넣지도 않고 팔았다. 목마른 놈이 우물판다는 말이 있는데 나또한 목이 마르니 물을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오늘은 주일날이다(일요일)걷다가 교회가 있으면 예배드리고 걸으려고 한다. 신북면 만세교 사는 동생(윤승)한데서 전화가 왔다. 형 지금 위치가 어디냐고 묻는다. 지금 내가 형 걷고 있는 곳으로 오고 있다고 한다. 남창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신 바람나게 걸어 남창에 도착하여 동생 부부와 만나니 말문이 막힌다. 몇 십 여년 만에 만난 형제와 같다고 할까. 우리는 예배 시간은 늦었지만은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기도 했다. 이곳까지 걸어 올수 있도록 건강주시고 부부가 협력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을 기도 했다. 우리 형제 부부는 다리건너 완도에서 이곳저곳 다니며 구경도 하고 전복죽으로 보신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헤어져 나는 남창숙소로 동생은 경기도로 올라간다. 남창은 해남군 북평면 소재지로 완도 가는 길목이었다. 오늘은 남창에서 숙박을 하고 내일은 약 23-4킬로 정도 걸으면 목적지에 도착 하니 가슴이 콩닥거린다. 죽으나 사나 내일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오 --- 하나님 오늘밤도 편안한 밤 주시고. 쌓인 피로를 풀어 주옵소서. 11.16일 보낸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