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생 우리집 ′가을이′가 우리집에 온 지 10년만에 아비에게 오밤중에 짖어대는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가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지 4년이 흐른 작년만 하여도 오밤중에 잠이 깨여서 거실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면 모르는 밤손님이 침입한 것처럼 짖어대며 어미까지 깨웠는데 금년 들어서는 철이 들었는지 아비가 거실에 나와서 컴퓨터을 켜면 어느새 조용히 따라나와서 개 집에서 잠을 자다가 따라들어오기도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다시 잠자려고 이불에 누웠으면 자신도 깨여 있었다는 듯이 어미 곁에서 아비 종아리로 다가와 온몸으로 곁에 누워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머리를 쓰다듬은 지 5년간 함께 꿈의숲으로, 오동공원으로 주말이면 산책을 다녔고 화장실에라도 들르면 끈을 잡은 어미가 더 이상 가지 말라며 기다려 주었어도 오밤중에는 열심히 아비에게 짖어대더니 금년 봄부터 어느날 그게 사라졌음을 깨닫자 신기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가을이’의 영롱한 눈동자는 외면하기가 어렵습니다. 과일을 먹거나 고기를 구우면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냄새와 소리에는 아주 민감합니다. 대부분 반려견들은 영특함과 바라다 보는 눈망울로 자꾸 먹는 것을 주다 보면 비만이 온 모습으로 변해 갑니다. 단단히 마음먹고 외면하기로 했지만 세째딸처럼 느껴지며 함께 사는데 어떨 때는 먹는 것을 가지고 이렇게 외면하여도 되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25년 전만 하여도 어느 목사님께서 ′개는 잡아 먹으라고 있는 동물인데 유한부인들이 침대까지 끌여들여서 함께 산다′고 일갈하시던 모습이 생각나는데 그도 어떤 연유로든 반겨견과 함께 사는 여건이 주어졌다면 소생처럼 변해 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려동물들이 실내에 함께 살면서 적은 수의 가족들에게는 자식처럼 대단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부부 사이에는 대화가 안 되어도 펄쩍 뛰면서 반기는 가을이의 모습은 어느 자녀들보다 더 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가을이에게 어떤 변화가 있어서 머리를 쓰다듬은지 5년이 지나서야 오밤중에도 짖지 않게 되었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대여섯살때는 어미가 집을 나가기만 하면 따라나서더니 2년 전부터 아침에는 개 집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태도입니다. 오후에는 일이 있어서 산책을 안 나가면 어미를 못 견디게 할 정도로 나가자고 보챕니다. 자신도 환갑쯤 나이가 들었으니 아침부터 건드리지 말라는 태도입니다.
가을이가 어미만 받아들이다가 아비까지 온전히 의지하며 다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소생의 부모에 대한 생각까지 떠올리게 합니다. 모친은 96세로 요양원에 누워서 지내시지만 부친은 소생이 본과 3학때 간경화증으로 돌아가셨는데 나이 사십이 되어서 자전적 수필집을 쓰면서 모친의 한계를 생각하며 부친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였던 생각들이 대비되며 떠올랐습니다. 4년 아래 남동생 집에서 소생보다는 훨씬 오래 전부터 시츄 반려견을 키웠는데 20년 나이가 들어서 치매까지 경험시키며 죽자 제수씨가 며칠씩이나 슬픔으로 눈물속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는데.. 저런 가을이가 앞으로 10년 내에는 먼저 죽을 터인데.. 사람에게 자식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느끼게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2024.5.4. 오전 2:15
첫댓글 ~^^
소소한 일상의 나눔으로 옆집아저씨같은 인간애을 느껴게 하였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