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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9년 10월 6일~10일
참여한 분: 이상기, 기우현, 윤필상, 구본황(총4명)
기타: 3박 4일 산행 여행(지리산 둘레길 1~5구간 완주, 6구간 반주), 참가비 20만 3천원
뱀띠방 모임 친구들이 관악산, 북한산 둘레길 산행을 완주하고 서울 둘레길 완등도 손에 잡힐 듯
다가오면서 새로운 시도로 지리산 둘레길 탐방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들은 작년 봄 기선생님의 산티아고 순례길 체험담이 벗들 가슴 속에 새로운
희망의 꽃으로 피어났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 품 같이 포근한 지리산 자락을 오르내리면서 10월의 고운 산골의 정취를 만끽하고 둘레길 여정을 마무리하려는 산사나이들의 저 뿌듯한 표정이 앞으로도 제삶에 큰 위로가 되어줄 것만 같습니다.
산티아고 길을 완주하였던 기선생님이 스페인 여행 보다 더 보람찼다는 이 이야기 보따리를 8개월이지나서야 풀게 되니 부끄럽기도 하고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딛었던 벗들이 1년도 버티지 못하고
병상 귀신에 붙잡혀 병원을 오가니 감개무량하기도 합니다.
(1일, 10/6, 일요일, 최저기온 12도, 최고기온 20도)
전날 이상기 대장의 아침 6시 55분까지 용산역에 도착하라는 엄명(?)을 전달받으니 분당에서 용산까지는 먼 거리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침에 시간을 잡아먹는 머리감기는 저녁에 해치우고 밤에 배낭을 꾸리는데 여행 기간이 환절기라
옷 선택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결국 고심 끝에 두꺼운 상의 겉옷2, 하의 겉옷2과 우비, 우산까지 넣으니 큰 배낭도 터질 듯 꽉 차는 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어둠이 가시지 않는 새벽시간 5시 10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출발하여 전철을 갈아타고
용산역에 도착하니 6시36분이어서 한숨을 돌렸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일행 중 제일 먼저 도착하지 않았겠습니까?
새롭게 단장한 역사를 천천히 둘러보니 13년 전 지리산 종주여행 추억이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것이었습니다.
6시 55분 정각에 마지막으로 얼굴을 내민 이대장과 함께 KTX열차 개찰구로 나가 7시15분 열차를 탑승하였는데, 가족석에 앉게 되어 오손도손 정담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SRT 열차는 전라선 구간은 운행하지 않음)
9시 20분 경 남원역에 도착한 뒤 지리산 둘레길 1구간 시작점인 주천안내센터까지 택시로 이동한 뒤 설명을 듣고 둘레길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리산 둘레길은 관악산 둘레길이나 북한산 둘레길과 다르다는 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국립공원 산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 기슭을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서울외곽순환도로처럼,
지리산을 가운데 두고 국립공원 주변 산골 마을, 논두렁길, 시냇가 길, 야산을 빙 둘러 잇는 탐방로로 걷게 되어있었습니다.
남쪽 하늘 아래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바래봉 쪽 산줄기는 비구름 우비를 쓰고 뾰로퉁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지만 둘레길 위 푸른 하늘은 시골 아이 같은 해맑은 자태로 우리 일행의 산행여행을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황금 나락이 반기는 평지길이어서 콧노래가 나왔지만 괴물 개미가 인사하는 개미정지를 지나 구룡치(해발 600m) 구간에 접어들면서 2시간 가까이 가파른 오르막 산행이 이어지니 숨이 차오르고 체력의 한계가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힘겹게 산굽이를 넘자 이 지역 출신인듯한 노장팀이 벤치에서 쉬고 있다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땅콩 등 비상식량을 건네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불감청이나 고소원>!
우리 일행은 옆 벤치에 각자 편하게 자리를 잡고 선물 받은 노장팀의 먹거리와 배낭에서 꺼낸 빵 등으로 지친 몸을 달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기나길고 험준한 구간, 거인 같은 구룡치 손아귀에서 풀려나자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가서 시장기가 몰려왔습니다.
고개 넘어 회덕마을까지 왔지만 앗차차 비닐하우스 막사로 변신하여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쉼터를 그대로 지나쳐버려서 논두렁길, 마을 길, 큰길을 아무리 걸어도 시골 동네이고
지리산 둘레길 걷기 붐이 사그라들어서인지 어느 곳에도 식당(쉼터)은 보이지않는 것이었습니다.
오씨 집성촌인 가장마을을 발치에 둔 마지막 야산 기슭에 와서야 무인쉼터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고 비치되어 있는 라면을 구입하고 생수를 사용하여, 여기까지 이선생님이 배낭에 끙끙 지고 온 버너, 코펠을 꺼내 꿀맛 같은 라면 식사로 중식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힘든 둘레길 여정이 예상됨에도 책임감으로 무거운 장비를 메고 온 이 선생님께 감사.
그런데 이후로는 라면 등 식품을 비치한 무인쉼터가 나타나지 않아 버너, 코펠을 사용하지 못함)
오늘이 일요일이어서인지 둘레길 걷는 길손팀들이 간간이 고개를 내밀어 취사하는 우리 팀을 신기한듯 살펴보는 것이었습니다.
운봉읍 소재지까지 걸어온 뒤 무인쉼터에 걸려있던 삼산마을 부녀회장댁 전화번호로 연락하니
민박집을 운영하는 부녀회장님이 직접 차를 몰고 와서 첫째 날 둘레길 여행을 마무리하고
지친 몸을 쉴 수 있었는데 석식이 정성들여진 가정식 백반이라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육덧밥, 죽순이 특히 맛남)
(숙박비 2실 6만원, 식사비 1인 7천원 도합 5만 6천원, 막걸리 1병 3천원)
밤에는 거실에 돌아와 TV로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관람하였는데 9회 말 박병호가 결승 홈런을 날려서 LG 팬인 이 선생님이 실망하였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 14.7km 완주 등 총 17 km(2만 5천보) )
(2일, 10/7, 월요일, 오후에 비 내림, 최저기온 14도, 최고기온 17도)
산골 마을에서 오랜만에 닭우는 소리 들으면서 새벽에 잠을 깻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에는 제사를 마치기 전에 닭 소리가 들릴까 마음 졸였었는데
이제는 그리운 소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지난 밤 여유있게 출발한다는 이 대장의 반가운 선언으로 눈만 붙이고 있다가
어제 아침과는 대조적으로 넉넉히 7시 30분에 기상하여 어제와 같은 가정식 백반으로(오늘은 굴비구이) 포식한 다음 8시 30분 쯤 다시 부녀회장님 차에 올라 2코스 출발지점으로 편히 갈 수 있었습니다.
출발지점 부근에 있는 서림공원에는 장승 등 이 고장에서 모시던 유물, 유적이 있어서 한동안
포토 타임을 갖고 씩씩하게 출발하였습니다.
동류하는 람천과 나란히 둘레길이 이어져 있는데, 어린 시절 기선생님은 방학이 되면 남원에서 교직생활하시던 부친을 찾아가 이 시내 북쪽 산줄기 너머에 있는 요천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같은 남원 지역의 큰 물줄기인데도 동류하는 람천(광천)은 낙동강의 지류이고, 서류하는 요천은 섬진강의 지류)
나도 방학이 되면 고무신 신고 20 km를 걸어 외가에 가서 산골 아이들과 민물 새우를 잡으며 시간 가는 줄 잊곤 하였습니다.
시냇가 길을 걷다가 다음에 들른 곳은 황산대첩 유적지이었습니다.
고려 말 원간섭기(1380년,우왕 6년)에 몽골의 감시로 국방력이 허약해진 틈을 타서 규슈지역 정예 사무라이 집단이 대부대를 형성하여 무려 500척의 대선단을 이끌고 금강 입구(진포)로 쳐들어왔다가 최무선이 만든 화포에 대다수 함선이 격침되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진포대첩)
그러나 워낙 대병력이 밀려왔기 때문에 살아남은 사무라이들이 내륙에 상륙하여 옥천, 상주를 약탈하고 남원에 집결하여 다시 세력을 회복한 다음 고려 서울인 개성으로 북진하려 하였습니다.
이에 놀란 조정에서는 이성계를 삼도도순찰사에 임명하고 뛰어난 명장들을 원수로 삼아 토벌하게 하였습니다.(이때 이성계의 의동생인 이지란이 같이 출전하여 결정적인 전공을 세우게 됨)
양측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투가 벌어진 곳이 바로 운봉 황산 정산봉 전투이었고 여기서 일본 최고의 무사 아지발도가 이성계 의형제의 화살에 전사하면서 고려는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이성계 군벌세력이 고려 국방력의 주류가 되어서 고려 왕조 멸망의 계기가마련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성계 집안의 보금자리이었던 전주에 있는 오목대가 바로 이 승전을 자축하였던 장소이고,
여기에서 새로운 왕조 건립을 암시하는 대풍가를 이성계가 부르자 당시 종사관으로 참전하였던 정몽주가 분개하여 지은 글이 남아있음)
조선왕조에 들어와서 선조 시기(1577년)에 승리를 기념하는 대첩비각을 세웠는데, 일제강점기가 되자 일본 정부는 비를 부숴 땅속에 파묻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광복 후 정부와 지자체, 유지들의 노력으로 재건, 확장되고 승전을 기념하는 행사가 개최된다고 하는데, 이번에 다시 돌아보니 조경까지 잘 갖추어져 있어서 흐뭇하였습니다.
시냇가 길에서 다시 마을 길로 접어들었는데 길가 숲속 쑥부쟁이가 개구장이 얼굴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학구열이 가장 뜨거운, 뱀띠방 친구들 가운데 가장 막내인 윤선생님(이번 여행멤버 중 윤선생님만 개띠)이 궁금해하여서 멀찍히 떨어져 빙그레 웃고 있는 구절초와 비교해드리면서 설명하니
기뻐하여 즐거웠습니다.
산행하거나 이렇듯 자연 속으로 여행할 때, 주변의 꽃, 나무, 산새들을 알고 바라보는 것과 모르고 지나치는 것은 추억의 깊이가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요.
남원은 역시 예향이어서인지 얼마 걷다보니 바로 동편제 마을이 나타나 놀랐습니다.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판소리는 크게 세 줄기가 합쳐져 있는 것인데 남원, 구례지역은 동편제 고향입니다.
(동편제는 전라도 동부 지방에서 발전하였는데 호탕한 우조가 중심 가락이고, 널리 알려진 서편제는 고창, 광주 등 전라도 서부지방이 중심이면서 슬프고 기교가 많은 계면조가 특징이며, 가장 모르는 사람이 많은 중고제는 경기도, 충청도 지방에서 발달하였고 담백한 경드림 선율이 두드러짐)
동편제를 확립한 송흥록 선생과 박초월 명창을 낳은 비전 마을이 지리산 둘레길에 인접하여 있어서 우리 일행은 <판소리 고향>을 탐방하는 축복을 뜻밖에 누릴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고, 5월 달에는 거리 국악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윤선생님은 이곳을 찾은 감동을 오래오래 남기고자 이곳 인증 사진으로 휴대폰 카톡 프로필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오전에 보람찬 탐방을 마치고 산 고개를 넘어 인월면 지경으로 들어가니 어느덧 점심 시간이 되어
뱃속에서 구원병 요청하는 신호가 연이어 올라왔습니다.
<지리산도 식후경>, 우리 용사들도 발걸음을 돌려 <인월면 회군>을 하였는데, 면소재지는 이곳이 지리산 둘레길 숙박 중심지인듯, 아름다운 벽화로 치장된 민박집들이 줄지어 눈길을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일이어서인지 한적하기만 하였는데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둘레길과 가까운 큰 길가에 자리잡은 추어탕집에 들어가 <남원추어탕>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닭과 잉어,자라를 조리한 용봉탕 외에 오리백숙과 전복, 낙지 등 해물이 결합된 용왕탕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람)
인월면 소재지에서 2코스를 마치고 3코스로 접어들었는데, 시냇가 길로 걷다가 산길로 올라가다 보니 중군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이름이 특이한 중군 마을은 정유재란의 격전지인 남원 지역에서 중군 부대가 주둔한데서 명칭이 유래되는데, 현재는 이곳이 지리산 뱀사골 탐방의 길목이라 관광마을로 조성되어 성문, 관광식당, 휴게소, 토산품판매장 등 시설이 조성되어 있었으나 역시 이곳도 한산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군 마을 자체가 해발 428m의 고산 지역(?)이고, 여기서 물맛 좋기로 소문난 수성대 계곡을 거쳐 배넘이재(해발584m)를 넘어 노루 목에서 명칭이 유래되는 장항리까지 이어지는 4.7km 구간은높은 산간지대인데, 비구름까지 몰려와서 이번 여행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옷을 뒤집어쓰고 우중행군 하게 되었습니다.
군 시절, 판초우의 하나에 의지하여 빗속에서 강원도 산골짜기 넘나들고, 야전삽 꺼내 물길 내며 막사 만들어서 서로 몸 밀착시켜 추위를 견뎌내며 야영하였던, 지난 시절이 눈앞에 삼삼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구불구불 임도로 둘레길이 이어지는데 미끌미끌한 돌 자갈 구간이 나오면 몹시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야구 마니아인 우리 팀은 부슬비가 쏟아지는 속에서도 때마침 중계되고 있는 메이저리그 경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전진하였습니다.
미국 야구도 우리나라처럼 포스트시즌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날은 디버전시리즈의 분수령이 되는 3차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 주인공이 바로 LA다저스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아들> 류현진이었기 때문입니다.
상대 팀이 후일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안게 되는 워싱턴 내셔널스이었고 상대 선발투수 역시 미국 야구 <최고의 슬라이더 마술사> 패트릭 코빈이었으니, 빗방울이 안경 위로 흘러내렸지만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경기는 메이저리그 최강 타선을 자랑하는 내셔널스에 홈런을 맞기도 했지만 씩씩하게 버텨서
역전승을 거두었으니, 힘든 행군하면서 성원한 보람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 주민들이 숭배하는, 산봉우리 같은 엄청난 위엄이 느껴지는 윗당산소나무(높이 18m, 수령400년) 앞에 무사히 도착하자 일행 모두 지친 발걸음에다 저녁 시간이 가까와졌습니다.
가장 먼저 체력이 고갈된 기선생님은 이대장에게 이곳 민박집에서 쉬고 갈 것을 간청(?)했으나
내일 목표 지점을 함양군 가로질러 산청군에 가까운 동강마을까지 길게 잡은 이대장의 강력한 의지에 끝내 막히고 말았습니다.
기선생님은, 정취는 밋밋한 산티아고 순례길 보다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자연의 얼굴을 보여주는 이번 여행이 훨씬 낫지만, 순례길 보다 고난도 여행이라, 이 페이스로 걸었다면 스페인에서 낙오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혀를 내두르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이어지는 우중행군 속에 구절초 곱기로 유명한 매동마을을 지나는데, 날씬한 차를 몰고 빗속에서도 구절초 탐방에 나선 젊은 연인들이 명소를 질문하여 불현듯 부러운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밭 가장자리 마을 길을 터벅터벅 걷노라니, 문득 시골 처녀가 신비한 미소를 띠고 우리 일행을 대접하려고 다가오는듯, 비에 젖은 홍시와 추석 대추가 시야를 사로잡으면서 고향 추억을 되살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팔을 뻗으니 검붉은 탐스러운 대추들이 손에 잡혀서 일행에게 나누어주니, 빗줄기 속에서도
맛나다고 호응해주어 기뻤습니다.
또 다른 고개를 넘어 중황마을까지 오니 어느덧 어둠이 밀려와서 이대장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언덕 넘어 첫째 집으로 앞장서서 달려갔습니다.
함양에서 각자 독신으로 살다가 남원으로 이사와서 민박집 생활하며 지낸다는 특이한 이력의 오누이가 운영하는 해오름펜션이었는데, 건축에 재능이 있는 오빠가 손수 신축 건물을 완성해가고 있었습니다.
뱀띠방 일행은 옛 민박집 건물인 창고에다가 비에 젖은 등산화, 배낭, 옷, 모자, 비옷, 스틱을 벗어 말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석식은 어제와 같은 가정식 백반이었는데 가자미구이, 부치개가 맛있었고 호두, 밤 등 간식거리까지푸짐하게 내어주어서 포식할 수 있었습니다.
(숙박비(1실) 5만원, 식사비 1인당 7천원 도합 5만 6천원)
식사하면서 어제처럼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하였는데 2차전도 LG가 연장전 끝에 키움에게 패배하여
고된 하루를 이끈 이대장의 힘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2코스 10km 완주, 3코스 10.5km 반주 등 총 22km, 3만보)
(3일, 10/8 화요일, 최저기온 12도, 최고기온 20도)
이틀 연속 고된 일정이었지만 평상시처럼 6시에 기상하여 세면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였습니다.
역시 습관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어제와 같이 7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였는데, 저녁에 먹은 가자미구이도 맛있었지만
집에서 담근 홍무음료가 별미이었습니다.
8시 50분쯤 출발하였는데 다행히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나왔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높은 키를 자랑하는 등구재(해발고도 665m)를 오르는데,
지리산 쪽 바라보니 산줄기를 휘감고 용솟음치는 비구름 헤치고, 삿갓모양의 노고단과 넉넉한 어머니 품 같은 반야봉이 아득히 손짓하고 있어서 윤선생님께 알려드리니, 감탄하며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황금나락이 반기는 다랑이논 곁을 지나가려니 허수아비 반기는 들로 산으로 뛰어다녔던
지난 날 향수가 눈앞을 가려서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9시 50분 경 마라톤 선수가 되어 일행을 따라잡으며 아홉 구비를 감돌아올라 정상을 넘으니 드디어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넘어온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전라남도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로 넘어 옴)
그런데 경상도 지역은 전라도 지역과 대조적으로 지리산 둘레길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첫번 째 마을부터 길손이 마을 길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할 수 없이 우리 일행은 빗물이 고여 질척거리는 산길로 다시 올라가서 빙빙돌아 이동하여야 하였습니다.
무려 1시간을 산속에서 헤맨 후에 능선을 내려오니, 그간의 노고를 보상해주는 듯, 맞은편 아득히 웅장한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주능선이 이번 여행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고 비구름 사이로 우리 일행을 환영해주어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둘레길 여정에서 지리산 주능선 전체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운곡농장 전망대에 도착한 것인데
지리산 여신이 뱀띠방 친구들을 어여삐여기셔서 보듬어주신 것만 같습니다.
아낙네가 따뜻한 인사를 건네면서 약수물을 건넬 것만 같은, 옛 시골 정취를 풍기는, 창원마을로 들어가려니 지난 밤 비바람에 수많은 홍시가 마을 길에 떨어져있었습니다.
시골 꼬마시절 대밭 고목나무 위에 올라가서, 잘 부러지는 가지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홍시 감을
따먹던 추억이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비교적 깨끗한 홍시감들을 주워, 역시 시골 출신인 윤선생님과 즐겁게 포토타임을 나누면서
어린 시절 미각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빼어난 학구열로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려던 윤선생님은 자연스레 다른 일행에 뒤쳐졌는데, 성질 고약한 시골 개들 성화에 경로를 이탈하게 되어 잠시 행방불명이 되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창원마을에서 다시 큰 고개를 넘어 3.1km를 구불구불 내려오니, 우리일행과 운봉길에서부터 계속 정답게 만나다 헤어지다를 반복하며 길동무하면서 산골짜리 흘러왔던, 람천(광천)이 지리산 백무동 계곡, 칠선 계곡 물과 합류하여 덩치를 불리면서 어느새 이름표를 임천으로 바꾸어 달고 반겼습니다.
칠선계곡 지리산 산행의 기점이 되고, 함양 지리산둘레길 안내센터가 있는 의탄리 금계마을에 도착한 것인데, 이젠 모두 6학년 졸업반 학생들인 우리 팀도 3코스 졸업~ 4코스 진급하는 설레임 안고 안내센터를 둘러보면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임천 따라서 뱀띠방 친구들이 가야 할 산청 방향으로, 시원하게 평지로 쭉 뻗은 큰길이 어서 오라 유혹했으나, 야속하게도 새로운 4코스 둘레길 표지목은 거인 같은 지리산 주능선 쪽을 가리키고 있어서, 고생길이 훤히 내다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뱀띠방 용사들은 다리를 건느지 않고, 금계마을 SK주유소 옆 흑돼지 집에서 꿀맛 같은 흑돼지 백반으로 중식을 즐기며 새로운 결의를 다졌습니다.
오후 1시 30분 칠선계곡으로 향하는 의탄교를 건너서 4코스 둘레길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의탄>이란 명칭은 고려시대 중앙에 땔감(탄-숯)을 공물로 보냈던 의탄소에서 유래)
오른쪽 칠선계곡길이 아니라 왼쪽 길로 방향을 바꾸었으나 이내 표지목은 산길로 안내하는 것이었습니다.
산 동네인 의평마을, 의중마을로 허덕허덕 올라가서 5백년 묵은 마을 수호신 느티나무 그늘 아래
휴식하면서 건너편을 바라본 정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채석장에 부처님을 새겨놓은 것인데, 첨탑같이 솟은 삼봉산(해발 1187m)과 함께 또 하나의 이고장 수호신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제 우리 일행이 비에 젖은 배낭을 말렸던 민박집 뒷산이 바로 삼봉산이었는데, 민박 주인은 정도전이 이곳으로 귀양와서 이 산 이름을 자기 호로 삼았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삼봉이란 호를 붙인 연유로는 출생지인 외가 단양의 도담삼봉에서 가져왔다는 설과 정권 실세로서 한양 도성을 설계할 때 서울의 진산인 삼각산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는 설이 가장 유력)
의중마을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용감한 우리 용사들도 이번에는 윗쪽 벽송사(해발 712m)로 향하는 산길은 버리고 아래쪽 임천(강)이 부르는 계곡길로 방향을 잡아 다리님을 편히 해드리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웬걸 이길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딱딱한 너덜길이 끝없이 이어지는 고생길이었습니다.
산속을 헤맨 끝에 내려와 용유담 모전마을에서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6.25 전쟁 시기 유엔군 보급을 위협하였던 좌익 무장집단의 야전병원으로 악용되어 불탔다는 벽송사에서 내려오는 산길도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데,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설치한 길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깜찍하지 않은가요?^^*
임천과 지리산이 만나 멋진 명소로 빚어냈다는 용유담은 여정이 바빠서 내려가 보지 못하여 아쉬웠는데, 널찍하고 딱딱한 차도로 하염없이 걷게되니, 이것 역시 고역이었습니다. (전라도 둘레길은 부드러운 흙길이나 호젓한 인도가 대부분이라 대조적임)
심지어 표지목이 여기저기 훼손되고 일부러 인적이 끊긴 정글길로 방향을 왜곡시켜 놓아서 고생하기도 하였습니다.
가성비가 아까와보이는 차 구경할 수 없는 한적한 대로여서 정담을 마음껏 나눌 수 있었던 것과 중간에 무료 찻집이 있어서 시원한 차를 마시면서 주인과 즐거운 대화를 나눈 것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세동마을을 지나 숲속으로 빼어난 경치를 보여주었던 임천(강)과 헤어지고 운서마을에서 산길로 방향을 바꾸었다가 다시 구시락재 언덕을 오르니 저 아래로 도시 같은 건물도 보이고 차들이 오가고 있어서 오늘의 목표지점인 동강마을에 다 온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구절초 등 고운 꽃으로 조경한 전원주택 곁으로 동강마을에 내려오니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었고, 4코스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휴천면 동강리 동강마을인데 이곳은 임천이 곡류하면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여 관광자원이 많고,
지리산 북사면 진입로이어서 식당과 관광시설이 있음)
동강마을 엄천교 앞 식당겸 민박집에서 이번 여행 마지막 숙박을 하게 되었는데, 석식은 닭도리탕이었습니다.
(숙박비(1실) 4만원, 석식 4만원, 다음 날 조식 2만 1천원)
(3코스 반주 10km, 4코스 완주 11km(우회하는 벽송사길을 걷지 않아 단축됨), 총 21km, 3만보)
(4일, 10월 9일, 수요일, 최저기온 7도, 최고기온 19도)
이번 여행 마지막 날인 오늘은 날씨가 쌀쌀해져서 배낭을 거북하게 하였던 두꺼운 겉옷이 모처럼 빛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6시 10분쯤 일어나서 세면하고 역시 7시 30분 식당에 내려가서 담백한 된장찌개로 배를 채운 다음
8시 10분 씩씩하게 5코스를 출발하였습니다.
8시 50분 경 국립현충원 같은 엄청난 규모의 산청,함양 추모공원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은 6.25 전쟁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705위의 지방민을 모신 곳입니다.
전쟁에서는 외부의 적에 의한 피해 보다 내전이 훨씬 피해가 크고 잔인한 것이 세계사의 공통점인데,
나폴레옹의 침입에 러시아 군이 광대한 벌판에서 사용한 <견벽청야> 작전을 산간지대에서 잘못 전개하여 억울하게 많은 양민을 학살한 최덕신은, 제 한몸의 부귀영달을 추구하여 북한으로 귀순하여
조국까지 배신하였으니, 민족사의 아픔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9시 30분 계곡길로 상사폭포를 찾아갔는데, 수량도 풍부하고 20m의 2단 폭포 위용이 대단하여
탐방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폭포를 작별하니 쌍재 오르막 길이 뱀띠방 용사들 시험하듯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난이도가 상당한 비탈길이라 숨이 차올라왔는데, 정상을 바라보는 지점까지 오르니 길 왼쪽으로 농장이 조성되어 있고 뜻밖에 그림 같은 쉼터가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까?
발걸음을 옮기니 고운 카페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아주머니가 나와 반겨주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농장과 주위 숲에서 채취한 먹거리로 맛나게 조리한 안주를 곁들여 핑크빛 오미자 막걸리를 마시면서 소확행을 나누니 더 바랄 나위가 없었습니다.
하늘에 연처럼 걸린 새털구름도 이 순간 만큼은 멋진 봉황새로 변신하여 나흘 동안 서로 아끼고 배려한 4명의 착한 6학년 학생들을 동화나라로 안내해주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11시 30분 쌍재 정상 지나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바꿔 산불감시초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 오니 산청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까와서인지 우리 팀과 역방향으로 둘레길을 걷는 친구들이 속속 도착하여 다소 북적거렸습니다.
전망이 좋았는데, 왼편으로는 이 고장의 진산인 왕산(해발 923m)이 북쪽 기슭에 공비산악회 추억을 일깨우는 구형왕릉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속삭이고, 나란히 어깨 동무하고 있는 필봉산(해발 848m)은 이번 마라톤 여행의 골인 지점인 산청읍내가 바로 저곳이라고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오른편으로는 은갈색 비늘옷 자랑하는 억새꽃들 너머 지리산 천왕봉(해발 1915m)과 중봉(해발 1875m)이 국립공원 동쪽 사면까지 찾아온 우리 일행을 대견스러운 눈길로 위로해주었습니다.
12시에 고동재에 도착한 다음, 야생화의 환송을 받으면서 내리막 급경사로 이어진 시멘트 큰 길로
1시간 가량 내려오니, 황금 나락이 반기는 들판으로 무대가 바뀌고 농촌 마을이 반겨주는데
이곳이 산청군 금서면 수철리이고, 나흘 동안 피로가 쌓였지만 한나절 만에 12.1km를 달려
5코스를 졸업한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이제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6코스로 발걸음을 내딛었는데, 지막마을을 통과하니
다시 제법 차량이 오가는 널찍한 차도로 둘레길이 합류하여, 눈앞에 보이지만 한없이 뒷걸음치는
남쪽 산청읍내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고진감래!>, 이제는 임천(강)이 지리산 동쪽 사면의 지류를 품에 안으며 경호강으로 명찰을 바꿔달고 산뜻한 교복 차림으로 반기는 대장교를 건너니, 드디어 나흘에 걸친 울트라 마라톤 대회의 골인 지점인 산청읍내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6코스의 반 주파, 수철리 - 산청고교 6.6km)
오후 2시 30분 다리 근처에 위치한 산청약초식당에서 정식(1인당 1만원)으로 피로를 달랬는데,
9월 하순부터 오늘까지 약초축제가 열려서(인접한 진주는 유등축제) 식당 안이 만원사례라,
음식재료가 바닥나는 바람에 주문한 생선반찬은 못 먹고 대신 누룽지를 받아서, 이대장이 강력히 항의하였습니다.
4시 5분 산청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울 - 진주 우등버스를 타고 남서울터미널로 향하니,
이번 가을 여행이 꿈이었던가? 멋진 대작 영화 한장면 한장면 같은 새로운 추억들이
꿈길까지 따라와서 아쉬운 손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5코스 완주, 6코스 반주, 18.7km, 2만 7천보)
3시간 35분을 달려 남서울터미널에 저녁 7시 40분 경 도착하였는데, 근처에서 간단히 식사하자는
일행의 권고를 뿌리치고, 이대장은 굳이 교대역 단골횟집으로 뱀띠방 용사들을 초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장이 교대역 정문부근에 위치한 교대수산에서 하사하는 맛난 모듬회와 매운탕으로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니, 부딪히는 술잔에 시간 가는 줄 잊고 뜨거운 감회를 쏟아내었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1~5코스 완주, 6코스 반주, 총 78.7km, 나흘 동안 11만 2천 5백보)
(지리산 둘레길 274km(22코스)의 28.8% 주파)
비갠 하늘 보며 친구 생각
구 본 황
솜털구름
지리산 둘레길 추억 손짓하는데
병든 몸은 병든 친구들
걱정하고 있네
저녁 안개비 헤치며
배넘이재 넘으니
남원 시골 처녀 미소 머금은
추석 볼 붉은 대추 반겨주었고
황금 다락논 둥실 떠오르는
아침 안개구름 가리키며 등구재 오르니
함양 마을 아낙 인정 부끄러운
홍시감이 길손 발길 붙들었네
가는 봄날 아쉬워하는 신록 사이
손주 아기 넘어질뚱 토끼뜀 한창인데
쌍재 오르막 길 치달아오르던 벗들
쉼터 오미자막걸리 기막힌 맛 언제 맛보려나
첫댓글 지리산 둘레길을 씩씩하게 강행군했던 뱀띠방 친구들이 윤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반년 세월을 버티지 못하고
병상 귀신에 붙잡혀있으니, 병든 몸으로 글을 쓰면서도 친구들이 걱정되고 감개무량해집니다.
천변만화하는 지리산 자락의 멋진 풍경을 직접 두 다리로 체험하면서 소중한 추억을 함께 만들어낸 이대장을 비롯한 친구들에게 먼저 감사 말씀을 드리고, 훌훌 병마를 털고 일어나서 건강한 몸으로 다시 만나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길 기원합니다.
정말 애쓰셨습니다. 1년 전의 트레킹이었지만 아주 옛 일인 양 아득하기만 한데 역사의 전문 지식과 놀라운 기억력, 사실의 감성적 필치로 어제 다녀온 양 느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