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말까지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 대부분을 지배한 티무르제국.
건국자는 몽골제국의 귀족 계층인 보르지긴 씨족 바를라스 부 출신의 티무르로, 몽골제국을 계승한 국가이다.
칭기즈칸의 후예(이른바 황금씨족)이 아니었던 티무르는 '칸'을 칭하지 못하고 '부마'의 지위에 만족해야 했다.(티무르는 칭기즈 칸의 직계인 사라이 물크 카눔을 아내로 맞아들여 부족한 정통성을 메꾸려들었다.) 그러나 그는 무슬림들의 지도자를 뜻하는 아미르(amir)라고 불리며 사실상 군주로 군림했고, 칭기즈 칸의 후손을 허수아비 칸으로 추대했다.
티무르는 압도적인 군재로 당시 분열된 몽골 제국의 계승국들 간 끝임없이 벌어지는 내전 상황에서 중앙아시아 일대를 재통합하며 거대한 제국을 일구어냈다. 티무르의 뒤를 이은 샤 루흐, 울루그 베그 같은 군주들 시기에는 페르시아와 중동 문화의 최선두를 달리며 화려한 문화를 꽃피워 '티무르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그러나 15세기 후반부터 점점 분열되어 국력이 약해지더니, 제국은 조그마한 세력들로 뿔뿔히 나뉘어 하나하나 멸망해갔다. 개중 페르가나 출신의 바부르가 인도로 넘어가 새 왕조를 개창하면서 티무르 제국은 북인도의 무굴 제국으로 계승된다.
티무르는 수많은 정복지에 파괴와 약탈 그리고 살육을 일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복된 도시들에 있는 장인이나 예술가, 과학자, 문학자들만큼은 죽이지 않고 수도 사마르칸트로 이주시켰다.
사마르칸트를 위대한 건축의 도시로 만들고 싶었던 티무르는 여러 건축가들에게 화려한 건축물을 지을 것을 명했는데, 그 결과물이 오늘날에도 당당하게 남아 위용을 뽐내고 있는 비비하눔 모스크, 샤히진다 영묘, 구르 에 아미르 등이다.
덕분에 티무르 제국 시기 사마르칸트는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 중 하나로 탈바꿈했고, 그 명성은 저멀리 유럽에까지 퍼졌다.
본래 우즈베크인들은 칭기즈칸의 장남 주치의 후손으로, 티무르 제국을 몰아낸 후 그들의 국가를 세웠지만 현재 우즈베키스탄인들은 티무르를 국부로 취급하고 있다.
또한 티무르 제국은 그 문화적인 역량이 극에 달했을 때 멸망해서, 나라는 사라져도 예술인이나 학자들은 그대로였고, 이 문화적인 자원들은 그대로 후대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는 우즈베키스탄이 티무르 제국의 계승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주민들의 경우 우즈베크인 정복자들의 순수한 혈통만 있는 것은 아니며, 티무르 제국의 유민들 중 우즈베키스탄 땅에 그대로 잔류한 사람들은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주민들의 생물학적인 조상이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우즈베키스탄이 티무르 제국의 계승국이라고 할 수 있다.
1. 티무르의 영묘가 있는 '구르아미르’
티무르는 칭기즈칸에 비교가 될 정도로 정복 전쟁을 많이 하였으며 정복한 땅에서 사람들을 많이 죽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더 유명한 것은 죽을 때 ‘누구든지 감히 내 무덤을 건드리면 전쟁의 악마가 그 나라에 닥칠 것이다’라는 유언을 했다고 하며,그럼에도 불구하고 1941.6.22.일 구소련에서 아미르 티무르의 무덤에서 유골을 꺼내었는데, 그날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여 혼비백산하였다고 한다.
이후로 독소전쟁에서 한동안 소련이 불리한 형국에 있었는데 발굴조사가 끝나서 무슬림 전통 장례식을 거쳐 티무르를 재매장하였는데, 이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군이 독일군을 밀어붙이게 되었다고 하며 이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물론 인과관계는 밝혀진 바 없고,밝혀지기도 어려울 것이나,우연의 일치인지 경고의 문구와 당시 상황이 맞아떨어진 것은 사실)
티무르의 영묘가 구소련 학자들에의해 발굴 조사되었고,그 과정에서 두개골을 토대로 복원한 모습
내부는 황금색으로 되어 있고 티무르의 관은 가운데 흑색의 돌널무덤이고 오른쪽에는 손자 무함마드 술탄,그리고 아들 샤 로흐, 샤 로흐의 아들 울루그 벡과 티무르의 스승의 관, 모두 9기의 묘가 함께 있다.
그러나 실제 관은 4m 아래 지하에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티무르의 영묘는 외부도 아름답지만 내부의 종유석 동굴과 벌집 모양의 장식인 무카르나스와 천정 모두 청록색과 황금색으로 이뤄져 있어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2. 비비하눔 모스크
비비하눔 모스크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위치한 티무르 왕조의 대표적인 이슬람 사원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티무르가 사랑하는 그의 첫 번째 아내 하눔을 위해 건설한 모스크다.
모스크 건설은 1399년에 시작되어 약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졌다. 비비하눔 모스크의 중심 돔은 5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로, 당시 건축 기술로는 굉장히 어렵고 혁신적인 시도였다. 모스크 건설에 대한 티무르의 열정과 사랑은 그가 비비하눔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보여준다. 비비하눔 모스크는 종교적 건축물일뿐만 아니라, 티무르 제국의 권력과 문화적 위상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념물이기도 했다. 티무르는 이 모스크를 통해 사마르칸트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문화적. 종교적 영향력을 과시하고자 했다.
유난히 푸른색을 좋아했던 티무르는 페르시아 건축가들을 동원해 에메랄드빛 청색 타일로 사원을 장식토록 했다.
19세기 중반 러시아가 남하해 식민통치를 시작하면서 사마르칸트의 이슬람 유적은 철저히 파괴됐다. 하지만 1991년 구소련의 붕괴로 사마라칸트에 ‘이슬람의 봄’이 찾아왔고 옛모습을 복원해 나가고 있다.
3. 비비하눔 왕비의 무덤
비비하눔 모스크 맞은 편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4.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티무르 제국의 창시자 티무르의 유산과 그의 역사적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1996년에 개관되었다. 티무르의 탄생 660주년을 기념하여 설립된 이 박물관은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적 인물로서 아미르 티무르의 위대한 정복과 통치를 기리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건물의 상징적인 파란색 돔은 티무르 제국의 건축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소로, 티무르 시대를 상징하는 건축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티무르의 유산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중요한 자부심의 원천이며, 그의 업적은 현대 우즈베키스탄 사회와 문화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박물관은 티무르 시대의 역사적 자료뿐만 아니라 그가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과 중앙아시아에 미친 영향을 교육하고 기념하는 중요한 장소이다.
2층에 전시된 인도의 타지마할
인도역사에서 찬란했던 무굴제국은 티무르의 후손 바부르에 의해 건국 됨
첫댓글 티무르 제국 역사에 대해 공부 잘 했습니다.
지붕의 푸른 색 연유를 알게되니 더욱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이 나라 저 나라 멋진 유적들은 영웅들의 사랑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많네요.
멋진 칠순 여행 축하합니다.
주의깊게 봐 주고 댓글까지 달아주어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