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한 해인 88년에 한우리교회를 개척한 후 12년이 지났다. 현재는 용인시 모현면 오산리에 교회당을 건축했고, 120명의 교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 능동의 어떤 교수의 가정집에서 현재의 사역까지 10년이라는 험난한 "생 개척"(?)의 여정은, 한우리교회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질문하게 하는 기간이다. 그 동안 21세기 목회 전망과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에 관한 책이 홍수처럼 번역되어 나왔고, 목회 상황도 전통적인 패턴(수직적 권위)의 교회에서 관계 지향적인 교제권(수평적 코이노니아)의 교회로의 전환이 실험되고 있었기에 "교회는 무엇인가?"라는 전통적 개념은 도전받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 때 『재침례파 교회 공동체의 역사』라는 책을 접했다. 물론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의 사실감 있는 행전을 적었지만, 현대와 그리 멀지 않은 역사 속에서 복음 때문에 피 흘리는 성도들의 값진 교회를 보게 됨으로, 교회는 역사를 초월해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현현(顯現)"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책은 교회를 세우는 데 필요한 것은 겉이 아니라 토양을 형성하는 본질에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그 후 한우리교회의 토양 형성 작업은 사람 세움이 되었다.
토양작업의 첫 시도는 중생의 교리를 재조명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변화되지 않고는 어떤 방법의 목회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생의 교리를 세우기 위해 교회 사역의 대부분의 시간을 로마서를 강해하는 데 할애했다. 로마서를 강해할 때마다 성도들은 말씀 앞에서 자신을 조명하기 시작했고, 회개와 새로운 헌신이 있었다. 그들은 율법적인 신앙생활이 무엇인가를 구별할 줄 알게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 질 수 있는 조건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삶에 ꡐ주님ꡑ으로 적용하는 것임을 고백하였다. 그들의 삶이 바뀌자 무엇인가를 더 배우고 싶어했다. 이를 위해 제자양육 과정은 필요했지만 깨달은 말씀이 실제가 되지 못했다. 이때 도입된 다양한 프로그램은 교회의 불완전한 내면을 위장하는 일에 불과했다.
그런 막막함의 터널을 가던 중 어떤 형제가 갑자기 변했다. 그 어떤 교육도 인위적 동기유발도 영적 충격도 없었다. 참으로 없었다. 그 다음에 다른 형제가 변했다. 그들은 거친 내면의 기질적 싸움의 과정을 겪으면서 질그릇을 깨뜨린 것이다. 우리는 일련의 변화에 대해 ꡐ옥 다듬기ꡑ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옥돌을 가장 곱게 다듬기 위해서는 거친 작은 옥돌들을 함께 상자에 넣고 돌리면 옥돌은 어떤 연장으로 다듬는 것보다 더 곱게 서로 부딪히며 갈려진다는 것이다. 사역 6년 동안 배운 것은 사람의 변화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행해지는 관계(교회)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토양작업의 두 번째 단계가 "관계"이다. 우리 교회가 겪은 관계에 있어서 토양작업은 5년이 걸렸다(복음을 가르치는 단계를 합하면 7년). 관계에 있어서 그 기간을 줄일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모델링" (modeling)이다. 몇 사람이 변화되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들은 그 보다 훨씬 그 기간이 짧아졌지만 사실 10여 년이 되도록 아직도 변화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교회는 이들에 대해 짜증내지 않는다. 다만 모델을 보일 뿐이다.
목회자의 집이 오픈되었다. 석촌동 교회건물에서 목회자 가정과 장애인자매, 또 한 명의 자매를 데리고 함께 살았고 송파동 교회에서는 형제 2명, 자매 4명과 함께 살았다. 관계를 통해 보여 주는 삶은 거짓말할 수 없다. 적나라한 삶의 치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조금 성장된 형제는 다른 형제들을 위해 매번 죽기까지 헌신을 경험했다. 관계에 있어 모델링은 엄청난 값 지불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관계는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주일 모임이 끝나면 교회당은 비어 있다. 그러나 교회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었다. 교회에서 결혼한 20커플 남짓한 부부들이 집을 오픈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임 후 이 집 저 집을 가보면 각 집마다 공동식사와 또 다른 교제가 이뤄지고 있었다. 형제를 위해 자신의 소유를 기꺼이 나누려는 마음으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일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그들은 삶을 나누면서 성경에서 이뤄진 일들이 자신을 통해서도 이뤄진다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아! 이게 교회로구나"라고 실감하였다. 이런 관계에 대한 회복이 성도들로 하여금 서로 "가족"이라고 인정하게 하였다. 그래서 ꡐ예수 가족ꡑ이란 말이 교회를 소개하는 첫 단어가 되었다.
개척 이후, 사역의 발전과정
현재 교회가 위치한 용인시 오산리는 분당에서 10분 거리이고, 강남지역에서 3, 40분 거리이다. 한국에 세워진 몇 안되는 전원 교회의 약점은 지역적 폐쇄성이다. 이런 구조는 자칫 세상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집단 사고(group thinking)의 한계 속에 있을 수 있다. 한우리교회 형제들이 전원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세 가지 기준이 있었다. 첫째는 도시 생활권과 연계할 수 있도록 분당과 수지를 사역의 전략적 거점으로 선정했다. 둘째는 공동체 안에 있는 자녀양육의 문제가 자급되기 전까지는 분당 문화권과 학군을 이용할 수 있길 원했고, 셋째는 전원적 생활을 통해 땅과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지역을 원했다. 현재의 지역은 자연보전 지역과 한강수계 지역이기에 건물 세움에 있어 많은 제약이 있어 의외로 자연상태가 잘 보전 되어 있다.
773평의 땅 중 작년에 300평의 땅을 종교부지로 허락받아 교회당을 건축했다. 나머지의 땅은 주차장, 조경을 위한 공간, 사육장, 여러 종류의 밭을 일구었고, 개울 주변의 밤나무숲을 이용해 교제의 공간을 만들었다. 교회 내부는 현대식으로 인테리어를 했고, 외부는 자연 친화적인 단순한 구조로 마감을 했다. 교회 내에 4가정이 들어와 살 수 있는 공동체 공간(각 집당 11평)을 마련함으로 이 교회가 어떤 모습을 지향하는가에 대한 상징성을 그 가정들을 통해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전원 교회에서 극복해야 할 사역적 약점이 있다면 주간 모임에 대한 관심이다. 교회가 전원화된 지역을 선정하면 모임이 약화된다. 우리 교회도 수서, 둔촌, 성남에 각 한 그룹씩 형제들이 분산되어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주간 모임은 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각 지역의 소그룹 모임(셀 사역)이 이 문제를 잘 감당하고 있다.
각 지역에서 이뤄지는 소그룹 모임은 요한 웨슬레의 속회정신을 회복시킨 셀 사역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셀은 구역모임이 아니다. 각 지역에서 작은 교회로 모임을 갖는 것이다. 전임 사역자는 각 지역에서 셀 사역이 이뤄지도록 영적 지원을 하고, 실제 사역은 성도들이 담당하도록 했다.
각 지역에서 모이는 셀 모임은 저녁 12시가 넘도록 서로의 사정을 알리고, 기도하고, 권면하는 작은 교회이다. 교인들은 한 번의 주일 예배 모임 이외는 특별히 교회 전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지만 어떤 날은 아무런 프로그램이 없어도 수십 명의 형제들이 모여 밤늦도록 운동하고, 식사하고, 교제한다. 이런 일이 교회에서는 너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지역적으로는 전원화되어서 멀리 있지만 교제권에 있어서는 거의 일주일에 네 번 이상 만날 수 있는 관계 형성이 교회 생명력을 유지케 한다.
전원 공동체 형성 과정
공동체 형성과정은 교회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각자의 삶의 선택에서 지불된 희생만큼 성장된 것임을 간증할 수 있다. 우리 교회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뤄지는 나눔과 친밀성은 좋아 보였지만 우리의 속사람을 결코 깨뜨리지 못했다.
몇 명의 형제들로부터 이 답답한 관계를 깨뜨리고자 하는 믿음의 소망이 생겨졌다. 교회가 지역을 선정하고 땅에 정착하고자 하는 ꡒ땅의 신학ꡓ에 부담을 느낀 8가정이 기꺼이 자신의 가정을 헌신하기로 작정했다. 생활을 정리하여 최소의 경비만 남기고 땅을 구입하는데 드렸다. 그리고 두 가정이 한 집에서 사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제 교회라는 일정한 장소가 아니라 삶의 거처인 가정에서 ꡐ함께 함ꡑ이 시작된 것이다. 적나라한 일상들,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기질과 성격들, 말로 다할 수 없는 삶의 불편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란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모임은 그야말로 ꡐ싸움터ꡑ가 되었다. 이 모습이 우리의 영적 실체임을 알고 많이 울었다. 우리는 다시 모든 삶에 "주님되심"을 확인해야 했다. 우리는 요한일서 3:16을 자주 읽는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사역의 과정을 통해 얻은 긍정적인 향기가 있다면 ꡐ그룹 치유ꡑ이다. 공동체 속에 들어와 있으면 자연히 자신의 문제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남으로 형제들이 위로받았다.
지금 전원교회에서 하고 있는 사역은 미취학 아동들을 위한 "선교원" 운영, 진화론적 교육체계 속에서 학교 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창조적 관점으로 교육시키기 위해 "방과후 학교"를 하고 있으며, 고아를 돌보기 위해 자매결연을 맺고 있고,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커뮤니티를 위해 한 자매가 모현면 사무소 사회복지 전문요원으로 근무지와 삶의 거처를 옮겼다. 무엇보다도 본 훼퍼의 말대로 공동체의 자생력을 위해 4명의 형제가 자본을 공유하고 청계천에서 "직장 공동체"로 그 길을 닦고 있다. 우리에게 직장 공동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역의 기반이 될 것으로 믿고 있고, 이로 인해 "소유의 공유"를 실험할 계획이다. 선교적 사명에 있어서는 필리핀 민다나오 모슬렘 사역을 위해 한 가정이(김종현, 전경애 선교사) 파송되어 있다. 그들도 공동체를 통한 선교를 위해 끼따빠완에 생활관을 두 채 운영하고 있다.
사역에 대한 전망
우리는 전원 공동체를 유지시키길 원하지 않는다. 한우리교회가 없어지길 위해 기도하고 있다. 모일 때와 흩어질 때를 아는 교회가 진정한 공동체임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과 건물 그리고 목회의 정착된 구조에 우리의 심령이 붙잡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께만 집중하여 사역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음을 경험했기에, 합당한 숫자의 교인이 되면 50명을 떼어서 영적 정체성이 있는 다른 모임으로 구분할 계획이다. 주님이 원하시면 우리는 무리를 지어 또 어떤 지역으로 가길 소망한다. 지금은 북한에 세워질 교회를 위해 몇 가정이 나눠질 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한우리교회의 비전은 결국 한우리교회는 없어지고 주님의 사역이 각처에서 영광스럽게 나타나길 원하는 것이다. 또한 21세기에는 교회의 정신이 순전하게 지켜지는 소규모의 교회 공동체 그룹이 나타날 것을 기대한다.
첫댓글 참 좋은 모델입니다. 역시 동일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곳곳에 숨어있군요. ^^
예수님의 현현이 우리교회에도 성취되어지기를 소망해봅니다.^^
한우리교회를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오성삼목사님 너무 좋은 목회자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