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g&y_number=815&nne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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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간의 목회사역 중 후반기 10년 전에 은성수도원을 설립, 영성에 대한 깊은 그 무엇을 기독교에 남기고 싶어했던 엄두섭 옹(86). 현재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경기도 구리시의 한 아파트에서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여든 여섯의 나이를 잊은 듯 “수도원 만드는 것이 아닌 수도사의 삶을 진짜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엄 옹의 말은 그냥 뱉어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렇게 깊은 영의 삶을 이생에서 구현해내고파 하는 한 노구의 `열정'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선도(鮮度)를 유지하고픈 한 구도자의 이런 열망은 오늘의 교회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는 많은 크리스찬들에게 해답을 주고 있다.
▶ 건강하신 모습 뵈어서 기쁩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 나이가 먹어서 여기 저기 아픈 데가 많아 병원에 자주 다녀요. 1년에 한 두 차례하는 몇몇 수도원 집회와 한 달에 한 번씩 은성수도원에 올라가 집회(예수 영성 관상회)를 인도하고 있는 것 외에 특별히 외부 일은 없어요. 두 노인이 살아가야 하니까. 그리고 집사람도 아파서 내가 도울 일이 많아요. ▶ 수도원에 대해 기독교는 별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목사님은 꼭 필요하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 그래요. 예전에 비해 수도원에 대해 목사들이나 신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만 많이 약하지요. 가톨릭이나 정교회에는 교회와 수도원의 긴밀한 유대 관계를 갖고 있어요. 이 종교들은 신부를 통해 신앙의 훈련을 받지만 감화를 받는 것은 수도원적인 삶을 사는 그들의 영성이라고 생각해요. 수도원은 한 마디로 말하면 영성의 물결이 흐르도록 하는 역할을 하지요. 그런 보이지 않는 힘이 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요. ▶ 기독교에도 이런 수도원이 필요한 이유를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 교회는 점점 더 타락하고 있어요. 이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지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 그는 수도원 생활을 한 사람이었지만 기독교는 종교개혁 이후 500여 년간 수도원 없이 내려왔습니다. 요한 아른트라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경건주의운동을 실천하는 정도였습니다. 감리교의 본산지인 영국의 경우 감리교가 전멸돼 가는 추세여서 교회의 운영을 위해 빈 교회 건물을 팔아서 생활할 정도라고 합니다. 이는 로마와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도 이같은 현상이 비켜갈 수 없는 형편입니다. 개척교회는 점점 사라지고, 목회자들의 타락상은 심해지고 있지만 별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수도원이라는 조직이 없지만 현재의 기독교 모습들을 고쳐나가면서 영성에 주력해야 합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쳐나가야 합니까? - 우선 신학교부터 고쳐야 합니다. 교역자를 배출하는 신학교에서 영성이 죽으면 미래는 더 심각합니다. 경건하고 철저하게 신앙의 길을 따를 수 있도록 교수들 먼저 훈련시켜야 합니다. 교회는 예배만 보지 말고, 부흥시키기 위해 인위적인 방법으로 신자들을 선동시키고 흥분시키는 것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합니다. 사람의 머리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조용하고 내면적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역자들이 먼저 반성해야 합니다. 숫자를 불리고, 연보를 짜내는 데 관심을 두지 말고 교인들의 내면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힘써야 합니다. 깊이 내면을 성찰하는 차원에서 깊이 파고, 또 깊이 파야 합니다. 천주교의 신부들이나 불교의 승려들은 피정의 시간이나 하안거·동안거의 시간을 통해 1년에 몇 차례씩 자신을 성찰하고 수련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기독교도 이런 부분은 본받아야 합니다. 경건·내면적 수도정신을 살려나가면 빠른 발전은 없어도 생명을 살려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보통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이니까 `수도·수련'은 많이 강조하지 않고, 어떤 이들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 목회자들이 그렇게 많이들 말을 하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길가의 조각들도 닦으면 빛이 나는데, 영성이나 인격도 수도해야 빛이 납니다. 깊은 관상기도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때가 묻습니다. 입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말만으로는 절대로 깊은 경지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 영성기도와 관상기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 큰 차이점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와는 다소 다른 점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입으로 하나님께 말하는 기도의 방법(구도, 구송기도)을 하는데, 관상기도는 내가 기도하는 게 아니고 기도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감화받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는 말씀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관상기도는 그런 만큼 `청원'이 없습니다. `너희 쓸 것을 구하기 전에 안다'는 말씀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주님의 사랑에 마음의 초점을 맞춥니다. 묵상이나 침묵기도는 자신의 생각이 어느 정도는 있지만 관상기도는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 라는 현존, 임재를 느낍니다. 내 앞에 사람이 있는 것보다 강하게 느끼면서 주님을 사랑하고 갈망하는, 불타는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관상기도를 일컬어 `직관기도' 혹은 `애정기도'라고 합니다. 시간이 많이 들고, 깊이 해야 하고, 조용히 해야 합니다. 관상기도는 `불같은 성령'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이슬같은 성령'이라고 말합니다. ▶ 그런 영성의 기도를 하자면 몇 백, 몇 천 명 이상의 신자들이 모이는 교회들에서는 쉽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 교회 내 조직이 있는만큼 영성에 초점을 맞추고 나아간다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주일 예배는 좀 어려울지라도 새벽기도회에서는 할 수 있지요. ▶ 수도원이 거의 없는 한국교회 실정에서 수도원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으셨을텐데,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 나는 실제 목회를 42년간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목사가 되고 싶었고, 목사가 되었지만 사역을 해보니까 내가 생각하던 기독교나 교회·교인이 아니었습니다. 주일에만 신자지 모두 세속인과 똑같이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교회가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장로들은 세력 가지고 교회를 좌지우지 하려 들었습니다. 그때 내 마음 속에 `이거 아니다. 이거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방과 서울에서 목회를 하면서도, 비교적 큰 교회를 담임하며 이런 마음을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을 고치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에 고민을 하게 되었지요. 그것의 하나가 성자들의 생활과 수도원 생활을 본받아 세상에 빠져 사는 모습이 아닌 영성을 살려 나가는 삶의 방법을 찾게 된 것입니다. 내 나이 60이 돼서 수도원을 시작했는데, 10년간은 목회와 병행했어요. 너무 늦었지요. ▶ 그렇게 시작한 수도원을 몇 년 전에 장로회신학대학에 넘기셔서, 적적하시겠어요. -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경기도 포천의 운악산을 사가지고 수도원의 터를 닦기 시작한 10여 년간은 어떻게 지냈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어요. 예수원의 토레이 신부를 만났을 때 `10년이 지나야 수도원이 겨우 자리가 잡힌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10여 년 동안 기도실을 손수 지으며 노동을 하고, 수도를 하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70에 현역 목회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본격적으로 수도원에 전념했는데, 한 5년이 지나니까 늙었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어요. 몸도 제대로 말을 듣지 않게 되어 하루 일하면 3일간 드러누워 앓아야 할 정도였어요. 후계자를 키우지도 못했고, 수도자도 거의 없게 되면서 80을 맞이했을 때는 무척 힘들었지요. 산중의 생활은 가을이 되면 낙엽 떨어지는 것 계속 쓸어야 하고, 겨울에 눈이 내리면 마을 입구까지 눈도 계속 쓸어야 하는데, 이런 일들도 버거워졌어요. 함께 하는 이들이 적어서 그랬을 겁니다. 수도원을 시작하면서는 죽을 때 그곳에서 묻힐 각오를 했는데…. 공동체나 수도원운동은 젊어서 시작해야 하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적어도 20∼30년 젊었을 때 열심히 다져놔야 합니다. ▶ 은성수도원을 장신대에서 인수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현재 진행하고 있는 영성운동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매주일 신대원생들 20여 명씩 3박4일간 영성훈련을 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고, 개인 기도실에 한 사람씩 훈련하도록 하고 있구요. 지도하는 교수 또한 영성에 대한 학위를 갖고 있으면서 충실하게 하고 있어요. 기독교에 `수도원'이 거의 없어서 정착이 쉽지는 않겠지만 아직까지는 잘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이나 정교회 등은 오래 전부터 수도원의 전통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그들의 것을 선별해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모든 부분에서 `우리(기독교)만 옳다'는 배타적·독선적인 모습을 버리고 겸손하게 다른 곳의 좋은 부분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고견을 주십시오. 진보와 보수로 양분돼 있는 사회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분열돼 있는 모습입니다. -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을 압니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정치를 `중도 좌파'라고 말하는 것도 알고 있구요. 현 정부가 개혁을 말하지만 잘못 나가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때 지도자들부터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욕을 먹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이나 사립학교법 등은 다소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젊은이들은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일부 교수들과 지식인들이 동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 오랜 시간을 달려오시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테,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말씀해 주십시오. - 나는 목회도 해보고, 큰 교회 담임도 해 보았지만 성공은 하지 못했습니다. 수도원을 20년간 끌어왔지만 내가 생각한대로 안되고 이렇게 늙어버렸습니다. 내가 아직도 젊다면 나는 수도원을 운영하는 사람이 아닌 `수도사'가 되고 싶어요. 수도원의 원장은 너무 일감이 많아요. 손님도 맞아야 하고, 운영에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해요. 지금 이렇게 늙었지만 젊다면 수도생활을 철저히 하는 수도사가 되고 싶어요(엄 옹은 가장 어려운 부분에 대한 질문을 `수도사'의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한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말하는 듯 싶었다). ▶ 한국교회에 수도원이 제대로 정착될 수 있을까요? - 자신할 수는 없지만, 나와 함께 수도하던 이들도 몇 군데서 나름대로 철저하게 수도생활을 하고 있어요. 나름대로 잘 하고 있어요. 그리고 기독교에서 수도원의 모범이 되는 동광원도 이현필 선생님의 뜻을 이어서 잘해나가고 있어요. 이현필 선생은 목사도 아니었고, 평신도로서 일생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보려 부단히 정진한 분입니다. 한국기독교 100년 인물사에 이런 인물은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는 수도단체를 만든 것도 아니고, 수도원에 대해 알지도 못했습니다. 거기에는 조직이나 규칙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아원으로 시작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좇아 청빈하게 독신으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수도원이 된 것입니다. 총회처럼 조직화된 곳에서 수도원이 지탱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깨달아 수도생활에 열광하는 사람(좋다는 정도 가지고는 안된다고 강조함)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수도원을 `밭에 감추인 보화' 같다고들 합니다.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여름날 태양의 열기가 뜨거울 때 큰 나무 아래에 모이듯이 큰 성자가 한 사람 일어나면 거기에 수도원이 생깁니다. 어거스틴이나 분도 수도원 등이 그렇게 해서 생긴 것입니다. ▶ 끝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남겨주실 한 말씀 해주십시오. - 그냥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 하지 말고,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겉으로 보이는 교회나 사람의 모습을 배우려 하지 말고 성자들의 삶을 살려 부단히 노력하십시오. 내면을 깊이 파고, 또 파고들어가는 훈련을 멈추지 마십시오. 내면을 성찰하면서 살다간 이들의 삶을 (책을 통해서라도) 계속 접하십시오. 말 재주를 부리며 목사 코스를 밟아 목사 됐다고 으스대지 말고 겸손하십시오. 꼭 필요한 말 한마디를 죽을 때 남기기 위해 일생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속은 텅텅 비어있으면서 뭐가 있는 척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 오늘 시간 내주셔서 고견을 들을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양승록 기자
취재후기
거의 그랬지만, 대화의 시간을 방해할까봐 그런지 방문했을 때마다 사모님은 출타 중이셨고,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맨발로 엄 목사님은 정겹게 맞아주신다. 못알아 보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독대는 처음)이었지만, 대화를 하다보니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손수 끓여내 주신 쌍화차를 대하면서 두어시간 동안 기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아직도 `수도사'의 모습을 걷고 있었다. 비록 몸은 부실하지만 죽는 그날까지 애써 진리를 향해 `깊이 파고, 파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잠시 들여다 본 그의 방은 서 너 평 남짓. 빙 둘러 빽빽이 들어찬 그의 서재 및 기도실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독서량이 예년에 비해 많지 못하다며, 생전에 읽어야 할 책들을 선별해서 놓고 읽고 있는 중이라는 그의 책상에는 타종교의 어른들이 남긴 책들이 펼쳐져 있었다. 젊었을 때는 그림도 그렸다는 그의 솜씨는 `작품'(기자의 안목이 어떨지 모르지만)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집안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2004년 11월. 그런 분이 우리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때문인지 아파트 7층에서 1층 현관까지 맨발로 나와 배웅하는 엄 목사님을 뒤로 하고 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