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레이지 러브
미국 복음주의 지도자 프랜시스 챈은 그의 책 ‘크레이지 러브(crazy love)’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이 태어날 때 생모가 돌아가셔서 어린 시절부터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고 성장했다는 겁니다. 그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에 늘 주눅 든 채 살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부친은 대단히 권위주의적이었습니다. 그는 아빠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9살에 새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아빠가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신 경험이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 유일한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영원하신 창조주께서 미물 같은 자신을 찾아오신 사랑에 부딪혔을 때 그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왜 책 제목을 ‘크레이지 러브’로 정하셨나요?” 그는 오히려 되물었습니다. “하나님 사랑 앞에서 과연 미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치도록 사랑하셨기에, 또 그 사랑 앞에서 우린 미치지 않을 수 없기에 챈은 이런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박지웅 목사(내수동교회)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1917년 세계 미술계는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레디메이드 작품으로 발칵 뒤집힙니다. 작품이 평범한 남성용 소변기였기 때문입니다. 주최 측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며 전시를 거부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미술계는 소변기가 미술품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쟁으로 뜨거워졌습니다. 치열한 논쟁 끝에 작품으로 인정받은 뒤샹의 작품은 예술의 정의 자체를 바꿔버리며 오늘까지도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 전시작품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소변기가 화장실에 있으면 소변기가 되지만 미술관에 전시되면 작품이 됩니다.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광풍이 몰아치고 물이 차오르는 갈릴리 호수 가운데 배 안에서 두려워 떠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믿음의 자리가 어디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믿음의 자리입니다. 근심의 자리가 아닙니다. 걱정의 자리가 아닙니다. 염려의 자리가 아닙니다. 오직 믿음의 자리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느 자리에 서 계십니까.
이장균 목사(순복음강남교회)
이면의 사연
신라의 왕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장자리에 작은 점 같은 것이 가득 찍혀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점들이 찍혀 있을까요. 왕관 모형을 만드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 점을 찍어 보고 지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주 특별한 걸 알게 됐습니다. 점을 계속 눌러 찍으면 왕관 위에 달린 가지들이 제대로 서 있지만 그 점을 빼면 가지가 넘어진다는 걸 깨달은 것이죠.
왕관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찍힌 점들은 왕관 위의 가지들이 제대로 서 있게 하는 역할로 매우 특별한 기법이었던 것이죠. 이렇듯 모든 것에는 그렇게 된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런 삶을 살아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과 어떤 현상의 겉만 바라보며 이해가 되지 않아 이상하다고 여기지만 모든 일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현상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이상하다 여기지 말고 오히려 그 이면을 살피면서 사람이나 현상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럼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우리 삶을 큰 그릇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청소년 주일
매년 5월 첫째 주일은 어린이 주일, 둘째 주일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5월 셋째 주일을 청년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달 초 청소년교회 임원진이 담당 목사님을 통해 ‘청소년 주일’을 만들어 달라고 제안해 왔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2년 전부터 주일 오전 9시 예배를 온세대통합예배로 드립니다. 갓난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가 함께 예배드립니다. 담임목사가 설교를 시작하기 전 어린이들을 위한 축복기도 시간을 가졌습니다.
몇 주 지나니 청소년들이 청소년 축복 기도도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청소년 축복기도 시간으로 바꿨습니다. 또 어린이를 위한 5분 설교시간을 마련하고 모든 어린이가 강단 앞으로 나와 앉아 설교를 듣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청소년들이 자기들도 함께 나와서 설교를 듣겠다고 해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청소년 주일’ 제정을 건의해온 것입니다. 그래서 긴급하게 5월 마지막 주일을 청소년 주일로 선포하고 지켰습니다. 청소년 주일이 그들에게 또 다른 기쁨이 되었습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너로 말미암아
두 친구가 있습니다. 우정이 남다른 데다가 믿음도 신실했지요. 어느 날 한 친구가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복을 주겠다. 그런데 네 친구에게는 갑절로 복을 주겠다.” 이게 무슨 말씀이지요. 나보다 친구가 더 큰 복을 받는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친구는 생각 좀 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친구는 그 복을 받았을까요. 지금까지 계속 생각만 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창 12:3,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셔서 복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후손을 주시겠답니다. 세상에 아들 하나 없는 그에게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나만 복을 독점하는 게 아닙니다. 내 민족만 배타적으로 누리는 복이 아닙니다. 나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에게 복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거 심각하게 고민 좀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브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습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페이지 터너
페이지 터너(page turner)는 피아니스트의 왼편 뒤쪽에 앉아서 악보를 대신 넘겨주는 사람입니다. 정확한 타이밍에 악보를 넘겨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목받는 행동이나 눈에 띄는 옷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마치 투명인간 같은 모습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말합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요 3:29) 세례요한이 바로 페이지 터너였습니다. 그의 역할을 유대 결혼에서는 ‘쇼쉬밴’이라 하는데 우리 말로는 ‘들러리’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혼인 잔치를 주관하면서 무엇보다도 신랑이 올 때까지 신부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고나면 사라지게 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예수님만이 흥하셔야 합니다. 얼마나 결연한 의지입니까. ‘나도 덕분에 흥해야겠습니다’가 아닙니다. 자신은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우리도 들러리의 기쁨을 누리고 페이지 터너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모든 영광의 주인공이시기 때문입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복음과 메러비안 법칙
메러비안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 UCLA 명예교수인 심리학자 앨버트 메러비안이 의사소통을 할 때 ‘언어적 내용’과 ‘비언어적 내용’의 비율을 연구했습니다.
그결과 사람간의 의사소통에서 언어적 요소의 중요성은 7%에 불과하고, 청각적 요소는 38%, 시각적 요소는 5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렇게 나온 7:38:55 비율을 메러비안 법칙이라고 부른다.
∙ 언어적 요소는 문자(글씨)입니다.
∙ 청각적 요소는 음색, 억양(감정)입니다.
∙ 시각적 요소는 표정, 손짓, 몸짓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문장을 전달할 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진실한 표정과 정성을 다한 몸짓은 정말 사랑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똑같은 문장인데도 그것을 아무런 감정없이, 눈살을 찌푸리고, 귀를 파면서, 짝다리를 짚고, 다른곳을 바라보면서 말하면 오히려 비꼬는 것처럼 받아들여 집니다.
의사소통 속에서 언어적인 요소는 매우 적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나머지는 그 사람을 향한 진심이 나의 말과 표정, 행동에 드러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복음(예수님)을 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복음이라도 문자적인 복음은 7%이며 나머지 93%는 사람됨됨이가 뒷받침 해주어야 합니다.
93%의 사람됨됨이는 내 욕심이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진심이 성령님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2:5
(골목길묵상 )
분수와 푼수
오늘은 짧은 묵상으로 나눕니다.
'분수'와 '푼수'는 한끝차이 입니다.
신앙과 삶에서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순간 '푼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골목길묵상 )
존댓말과 신앙인
사회성 형성은 3세~5세에 대부분 형성된다고 합니다. 전문적으로는 '사회성숙도'라고도 하는데 발달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성숙한 사람의 가장 일반적인 척도는 언어입니다.
성인인데도 상대방에게 존대말을 사용하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인이지만 언어는 유아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지요.
가족이 아닌 직장과 공동체에서는 가능하면 서로가 존칭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존대말은 나와 상대방에게 책임성을 부여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성도의 모임에서 3명이상 모였을 경우 반드시 서로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꼭, 그 말투 때문에 어려움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그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에서 알려 드려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로인해 반복되는 어려움에 봉착하다 상대방을 향한 원망과 불평으로 열매없이 실족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적 관계로 모인 모임에서는 반드시 존대말을 사용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존대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상대방에게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인정하는 신앙의 고백이기도 한 성숙한 신앙인의 기본적인 덕목 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18:20
(골목길묵상 )
건강의 진짜 비결
‘성인병’은 주로 40대 이상의 성인과 노인들이 많이 걸리는 병이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최근에는 ‘성인병’ 대신 ‘생활습관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패스트푸드의 유행으로 ‘성인병’에 걸리는 아이들이 많아서 조사를 해보니 노화보다도 생활습관이 더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명의로 불리는 신야 히로미 박사는 여기에 한 술 더해 성인병을 생활습관병이 아닌 ‘자기관리결함병’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건강을 위한 비결은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이 걷기, 가끔 달리기, 충분한 수분 섭취, 복식 호흡, 천천히 씹고 조금씩 먹기 등 기본만 지켜도 건강해질 수 있는데 이 기본을 무시하고 좋은 영양제나 보양식, 특별한 건강관리방법 등을 백날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기본조차 지키지 않아 생기는 병이기에 히로미 박사는 ‘성인병’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건강만큼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없지만 건강의 비결인 기본을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장하는 믿음 생활을 위해서는 항상 기본이 중요합니다. 말씀과 기도, 사랑의 교제와 구제와 선행 등 모든 신앙의 기본을 지키십시오. 아멘!
주님! 건강도, 신앙도 기본부터 지켜나가게 하소서.
신앙이 위험할 땐 항상 기본으로 돌아갑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뒤를 돌아보지 마라
미국 미네소타주 의학협회에서 공표한 ‘노인의 정의’입니다.
- 자신이 늙었다고 느낀다
- “이 나이에…”라는 말을 자주 한다
-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고 느낀다
- 청년들의 관심사와 활동에 관심이 없다
- 과거를 그리워한다
- 듣지는 않고 말을 많이 하려고 한다.
‘노인의 정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나이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생각과 생활습관에 따라서 같은 나이에도 신체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 최근 UN에서는 청년의 기준을 ‘18세-65세’로 정했습니다.
급변하는 인류의 체질과 평균 수명을 고려할 때 65세도 청년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믿음의 위인들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진 누구나 청년처럼 비전을 따라 살았습니다.
갈렙은 85세 때에, 40세 때 하나님께 받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전쟁터에 나가 승리했습니다.
세상이 정한 나이와 규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소명을 따라가는 만년 청년으로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의 일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음을 알게 하소서.
어떤 나이 때든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갑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고개를 들어보십시오
루마니아가 공산주의였을 때 기독교는 크게 탄압을 당했습니다.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성도들은 기약 없이 감옥에 갇혀 노역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악명높았던 게를라 감옥에는 ‘플로라’라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감옥에서도 성도의 의무를 다했던 플로라는 “주일에는 노역을 할 수 없다”며 성도들을 모아 예배를 드리려고 했다가 구타를 당해 전신마비가 됐습니다.
손가락도 꼼짝할 수 없는 플로라는 감옥 구석에서 그저 방치됐습니다. 숟가락도 없어 동료들이 손으로 떠주는 음식을 먹었지만 그럼에도 미소를 지으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절망적인 현실에 지쳐 희망을 잃은 다른 성도들이 플로라를 찾아와 “이런 상황에서까지 신앙을 지키며 미소를 지을 수 있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방이 막혀 있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하늘을 한 번 쳐다보면 어떨까요? 스데반 집사님은 돌에 맞아 죽기 직전에도 하늘에 계신 예수님을 보며 평안하지 않았습니까? 스데반을 위로하셨던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도 동일한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어떤 상황에도, 어떤 순간에도 우리 마음에 임할 수 있습니다.
사방이 막막하고 아무런 소망이 없어 보일 때도 고개를 들어 주님을 보십시오. 아멘!
주님! 기도와 묵상 중에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사방이 막히고 어려울 땐 기도를 통해 하늘을 바라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소명을 다한 사람
최고의 재즈 연주가인 존 콜트레인이 은퇴 공연에서 마지막 곡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멋진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콜트레인은 한 마디를 외친 뒤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눈크 디미티스(Nunc Dimittis)!’
“이제 종을 편안히 놓아주시는군요”라는 뜻입니다. 메시아를 보기 전까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받은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 축복기도를 드린 뒤에 했던 말입니다.
최고의 재즈 연주가였음에도 마음이 공허했던 존은 마약에 빠졌다가 예수님을 만난 후 재활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공공연히 믿음을 고백하며 연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콜트레인을 사람들은 ‘재즈의 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폐인이 됐던 자신을 구원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연주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처럼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 연주를 통해 자신의 사명을 다했음을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쏟아낸 사람만이 충성 된 종이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주신 달란트의 크고 작음을 따지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와 은혜의 소중함을 알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명자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마지막까지 기쁘게 사명을 다하는 제자로 살아가게 인도하소서.
주님이 주신 나의 모든 것을 주님의 일을 위해 사용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섬김의 자세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리더인 론 새니가 제자훈련을 시키던 때의 일입니다.
한 청년이 훈련이 끝나고 섬김에 대해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겸손한 사람이 됐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지금은 모른다네. 정말로 남을 섬기는 위치에서 마치 종처럼 취급을 당할 때, 바로 그때 그 사람의 반응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지. 조금 무례한 일을 당한다고 바로 화를 내는 사람은 그저 입만 산 사람이지만 그 순간에도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라네.”
신학자 칼 바르트는 ‘그리스도인의 섬김에는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Will)
2. 하나님의 뜻을 위한 수고(Working)
3.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행동(Doing)
예수님은 공생애의 삶을 통해 참된 섬김을 보여주시고 또 “서로 섬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섬김의 본을 따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하십시오. 아멘!
주님! 내 안에 내가 아닌 오직 예수님만 계시게 하소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참된 섬김의 본을 따라 섬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조심해야 할 때
한 마을에 나무를 잘 타기로 유명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여러 마을을 다니며 높은 나무를 다듬는 일을 하던 남자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나무를 타지 못했지만 풍부한 경험으로 다른 정원사들을 감독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하루는 나라에서 가장 높기로 소문난 나무를 다듬는 일을 감독했습니다. 젊은 시절의 노인만큼 나무를 잘 타던 정원사가 위험해 보이는 꼭대기로 올라갔지만 노인은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원사가 일을 마치고 거의 평지로 내려왔을 때 “여기서부터는 조심해야 하네!”라고 외쳤습니다.
무사히 내려온 정원사가 물었습니다.
“높은 곳에서는 아무 말씀 없으시다가 왜 다 내려와서 주의를 주십니까?”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알아서 조심하기 때문에 말을 할 필요가 없네. ‘이제 끝났다’라고 생각할 때는 방심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다칠 수가 있다네.”
‘도연초’라는 책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다하고 천국으로 가는 그날까지 성도의 여정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마귀의 간교에 빠져 넘어지지 않게 끝까지 조심하며 믿음을 지키십시오. 아멘!
주님! 하루하루 주님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게 마음과 영혼을 지켜주소서.
오늘도 말씀으로 무장하며 죄를 경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하늘에 둔 재산
미국의 부흥사 조지 트루엣이 텍사스의 한 부호에게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습니다. 식사를 마친 부호는 목사님을 모시고 저택의 옥상으로 올라가 사방을 보여주며 자랑했습니다.
“25년 전만 해도 저는 빈털터리였지만 이제 이름만 대면 알만한 부자가 됐습니다. 저기 북쪽에 보이는 시추탑도 제 소유입니다. 동쪽의 목장이 보이십니까? 저기 수많은 가축도 제 것입니다. 서쪽의 숲은 휴양을 위해 구입한 곳으로 별장이 있습니다.”
부호의 자랑을 듣고 난 뒤 목사님은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렇다면 저 하늘을 향해서는 무엇을 가지고 계십니까?”
막대한 부를 쌓으면서도 자선에는 조금도 돈을 쓰지 않았던 부호는 정작 가장 중요한 하늘의 부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부끄러워했습니다.
트루엣 목사님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며 가장 위대한 재산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의 뜻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가게 하소서.
주님의 뜻을 알 뿐 아니라 실천하는 성도가 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포기하지 않은 비전의 열매
『저는 미국으로 유학 간 지 불과 2년 만에 재학 중이던 밥 존스 고등학교 웅변대회에서 1등을 했습니다.
당시 저를 알던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벙어리 빌리가 어떻게?”
영어를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던 저는 유학 첫해 마치 벙어리처럼 지냈습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려고 입에서 피가 날 정도로 ‘R’과 ‘L’ 발음을 연습했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메타운 선생님과 유니스 선생님에게 영어와 웅변을 따로 배웠습니다.
10명이 참가한 학교 예선을 넘어 그린빌시의 예선까지 통과한 저는 3백 명이 경합을 벌인 콜롬비아 주 대회에서도 1등을 했습니다. 50개 주 대표가 벌인 전국대회에서 당당히 1등을 하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상을 받아 학교로 돌아온 저를 에드워드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이 작은 소년이 처음 내 사무실에 왔을 때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그런 빌리가 영어 웅변으로 밥 존스 고등학교의 명예를 떨쳤습니다.”
이때 제가 피와 땀을 흘려가며 했던 노력은 이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아주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비전이 있다면 포기하지 맙시다.』
- 김장환 목사의 인생 메모에서
세상적인 노력도 의미가 있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눈물을 뿌려가며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은 정말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면 앞에 커다란 장애물이 있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께서 주신 비전을 위해 땀을 흘리도록 인도해 주소서.
주님이 주신 비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최고를 만든 반주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쏟던 남자가 있었습니다. 재능은 있는 편이었지만 유명 피아니스트와 견주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나 많다는 걸 깨달은 남자는 최고의 성악가들을 위한 반주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원하던 길도 아니었고 자존심도 내려놓아야 했으나 반주자의 자리에서 최고가 되고자 모든 열정을 쏟았습니다.
성악가의 개성이 묻히지 않도록 연주에는 감정을 싣지 않았고 독특한 반주법도 연구했습니다.
성악가의 노래가 돋보이는 순간에는 피아노 소리조차도 티나지 않게 줄이며 연주해 세계적인 성악가들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실패한 피아니스트’였던 제럴드 무어는 ‘최고의 반주자’로 재탄생했습니다. 제럴드가 은퇴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평소 “제럴드의 반주가 나를 만들었다”고 극찬했던 디스카우, 앙헬레스, 슈바르츠코프 등 당대 최고의 성악가들은 바쁜 스케줄 중에도 시간을 내어 그의 마지막 무대를 위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최고의 반주자가 최고의 성악가를 더 빛나게 하는 것처럼 각자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높이 드러납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충성된 일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아멘!
주님! 베푸신 은혜에 만족하게 하소서.
주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영적 광인이 그립습니다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은 혹독한 훈련을 시키기로 유명합니다. 최동수 선수는 2000년 서른의 나이에 김 감독을 만납니다. 호된 훈련 끝에 최 선수는 야구 인생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1할 9푼의 성적은 2할 9푼으로 성장했습니다.
하루는 일본에 있던 김성근 감독에게 자정이 넘은 시간에 전화가 왔습니다. 최 선수였습니다. “감독님, 동수입니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 그리고 너 어디냐?” “잠실 야구장이요.” “왜 집에 안 가고?” “혼자 방망이를 쳤습니다. 오늘 안타를 못 쳤어요. 내일은 꼭 치려고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감독은 한 마디로 침묵을 깼습니다. “미친놈!”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최 선수는 뛸 듯이 기뻤다고 했습니다. ‘야구에 미친 사람’이란 표현보다 더 영광스러운 칭찬이 없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성도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평가가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에 미친 사람’입니다. 옥한흠(1938~2010) 목사님은 제자훈련에 미친 사람이라고 자신을 평가했습니다. 영적 광인(狂人)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박지웅 목사(내수동교회)
돌아가기 전에
왕을 웃기는 임무를 맡은 어릿광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바보 흉내로 왕을 웃겼습니다. 한바탕 웃은 왕은 지팡이를 내주며 가장 어리석은 바보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광대는 지팡이를 들고 떠났지요. 오랜 후 다시 돌아온 광대는 임종에 이른 왕에게 죽음을 준비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왕이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고 말하자 광대는 지팡이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자기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임금님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육체가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숨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전 12:7, 새번역) 전도서의 결론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전도서는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그릇도 부서진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귀한 것도 결국에는 부서지듯이 모든 인생과 역사에는 그 끝이 있다는 말이지요.
세상에 살면서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면서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심판하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삶이라는 연주
오케스트라 연주자의 악보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많은 악기가 각자 자기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악기별로 선율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각각의 악기 연주자들이 자신들의 악보를 따라 열심히 연주하면 다른 연주자들의 소리와 어우러져 감동을 만들어 냅니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면서 신비로움을 경험하곤 합니다. 분명히 한 악기는 한 소리를 내지만 그 소리는 다른 소리와 어우러져 많은 소리로 표현됩니다. 한 연주자의 한 소리는 더 이상 한 소리가 아니라 여러 소리가 되고 여러 소리는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사람의 삶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으로 살지만 서로 어우러지면 나 혼자의 삶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삶이 됩니다. 살다 보면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것보다 차라리 나 혼자 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편함보다 더 큰 힘과 지혜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우러진 삶이 주는 유익입니다. 어떻게 함께 잘 살 수 있을까 궁리하는 게 결국 행복을 얻는 길입니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닮은 삶을 삽시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천국여행
얼마 전 감리교회 장로님들과 함께 일본 나가사키 순교유적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17세기 나가사키 지역에서 일어났던 예수회 선교사들과 성도들의 박해와 순교 현장입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 기록된 고문 방법은 끔찍했습니다.
펄펄 끓는 온천물을 구멍이 숭숭 뚫린 나무국자에 퍼서 선교사들과 성도들의 얼굴에 퍼붓는 형벌이었습니다. 때로는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데 살점을 태워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 순교의 현장인 운젠 온천지역을 방문했는데 여행자료는 이곳을 ‘운젠 지옥 여행’ 코스로 지칭하고 있었습니다. 괴롭긴 했지만 순교 현장이었으니 천국의 문턱쯤이지 않을까요.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 단테는 지옥을 지하 9층으로 묘사합니다. 맨 위층이 가장 넓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집니다. 단테는 맨 마지막 층 가장 좁디좁은 지옥은 주님을 배신한 자들이 가는 지옥이라 묘사했고, 가룟 유다가 거기 있다고 기록합니다. 지옥은 그런 곳이지요. 아무리 일본이더라도 천국과 지옥의 의미는 구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곳, 아무리 괴로워도 거기가 천국입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겁 없는 소녀상
뉴욕 맨해튼의 월스트리트를 상징하는 동상은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세워진 황소 동상입니다. 월스트리트를 찾는 관광객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황소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2017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월스트리트 한복판에 또 다른 동상이 하나 세워져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동상의 이름은 ‘겁 없는 소녀’. 소녀상의 모습은 다리를 벌린 채 양손을 허리춤에 올려붙인 상태로 다 덤벼보란 듯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녀상이 세워진 위치가 그야말로 절묘했습니다. 겁 없는 소녀상이 세워진 위치는 월스트리트 거리를 상징하는 황소 동상 바로 앞이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달려 나올 것 같은 황소 앞에 맨몸으로 당당히 맞선 겁 없는 소녀. 겁 없는 소녀상을 보면서 우리 크리스천도 이 소녀처럼 당당하고 담대한 모습으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 있습니다. 문제가 앞에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아시고 해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문제 앞에서 떨지 않고 담대한 믿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장균 목사(순복음강남교회)
선택의 능력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는 프린스턴대 졸업연설에서 선택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똑똑함은 재능이고 친절함은 선택이다. 재능은 주어지기 때문에 쉽지만 선택은 어렵다. 타고난 재능은 어쩔 수 없지만 선택은 다르다.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 그는 이런 선택의 능력을 통해 30년 만에 아마존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게 됩니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 앞에서 우리는 머뭇거릴 때가 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왕상 18:21) 보이는 바알신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이에서 갈등하는 백성들에게 엘리야는 질타합니다.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합니다.
선택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언제나 차선을 버리고 최선을 선택하는 겁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선택하십시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십시오. 그것이 언제나 최선입니다. 힘든 선택일수록 충분히 기도하십시오. 마음에 평안함을 주실 때까지 그 문제가 작아질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택한 결정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분의 은혜 안에서 언제나 최상의 선택을 내리시길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