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게 하나도 없더라도 망설이느라 무력해지는 일 없이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야말로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이 시대의 철학이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 버트란트 러셀 ~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드디어 완독했다. 매달 약속된 수독모임이 없었더라면 가능치않을 일이다.
흔히 철학은 호기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철학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지식을 획득하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무언가를 이해하고 싶은 단순한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철학에서 어떤 특별한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학 그 자체를 위해 철학을 한다.
러셀의 해석에 따르면 철학은 그리스 문명 속에서 처음 과학과 분리되지 않은 형태로 탄생했는데, 두 가지 경향이 그리스 문화를 지배했다.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며 다양한 사실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전자의 경향은 오르페우스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피타고라스와 플라톤과 플로티노스를 거쳐 헤브라이즘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한 축으로 편입된다. 후자에는 헤로도토스와 초기 이오니아 자연 철학자들을 비롯해 어느 정도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도 포함된다.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는 경향은 중세 시대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 철학 속에서 되살아난다.
말하자면 그리스 문명은 철학을 처음 탄생시켰고 중세 시대 그리스도교 문명의 출현에도 일조했으며, 중세 말 르네상스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 철학의 사상적 원류이다.
근대 철학은 종교의 권위를 거부하고 과학의 권위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되면서 개인주의가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무정부주의까지 출현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은 스콜라 철학을 지적으로든 도덕적 또는 정치적으로든 구속으로 느꼈다.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사회.정치적 상황은 무정부상태와 다름이 없었으며, 이를 배경으로 마키아벨리의 정치학설이 출현했다. 사회는 불안정했으나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천재들의 활동이 왕성한 시대였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근대 철학의 특징인 인간과 과학, 그리고 정치와 관련해 우리의 사고가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근대를 지배한 합리론과 경험론이라는 두 지식으로 철학자들을 만나게 된다. 뒤를 이어 칸트의 관념론이 형이상학의 고찰로 합리론과 경험론을 아우른다. 칸트가 이뤄낸 철학의 재조정은 20세기까지도 여러 분야에서 유행했다.
신이나 전통이 아닌 이성의 관점에서 정치적 책무의 근거를 세우고자 하는 토마스 홉스, 로크, 그리고 장 자크 루소의 사상이 등장하고 뒤를 이어 카르 마르크스로 공산주의 혁명의 철학적 토대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20세기 즈음의 주요 철학 기조인 실존주의와 허무주의, 그리고 대륙철학과 러셀의 논리 분석철학으로 현대 철학에 와 닿는다.
현재 수학적 논리학의 창시자로 대접받는 프레게는 2000년전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후, 프레게의 저작이야말로 논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언어철학 분야에서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분석 철학의 시조로 일컫는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철학자들은 언어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철학은 이른바 `언어적 전환`을 겪었다. 언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감춰진 의미와 참과 거짓의 진짜 위치가 드러날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밝혀진다. 왜냐하면 논리학이 사실들의 구조, 즉 세상의 본질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낱말들이 세상에 있는 무언가를 대표하거나 명명함으로써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을 부정하게 되었다. 철학의 문제들도 심오한 해답이 필요한 심각한 문제들이 아니라 풀어야 할 언어적 혼동이라고 한다.
유럽 철학이 플라톤에 대한 각주라면, 근대 유럽 철학은 데카르트에 대한 각주라는 말이 있듯이, 데카르트 이후의 철학은 데카르트의 틀에 대한 그리고 그 틀에 저항한 철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근대적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우리 모두 데카르트의 틀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면, 헤겔은 최후의 위대한 체계 구축가로서 지난 세기의 모든 위대한 철학적 이상들, 마르크스와 니체의 철학, 그리고 실존주의와 정신분석은 전부 헤겔에서 시작 됐다고 말한다.
20세기 중반에 분석 철학이 맹렬하게 위세를 떨치면서 평판이 떨어진 헤겔 철학은 아직까지도 그 명성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는 그와 같은 인물을 다시 볼 수 없으리라 평한다.
세상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흄 그리고 칸트 같은 철학의 거성들의 저작을 만날 것이다. 플라톤이 죽은 지 2000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그의 저작들을 읽고 있다.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의 위대함과 겸손함을 동시에 표현할 때 흔히 인용되는 말이다.
러셀이 풀어내는 서양철학사 관점을 따라가면서 큰 흐름을 내 안목에서 이해되는 시선으로 요약을 하고나니 거인들의 무등을 타고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어 시선을 멀게 두었다는데 의미를 두련다.
다달이 둘째주 수요일에 러셀을 초대해서 함께 밤 열기를 뜨겁게 나눈 수독모임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탐구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나는 탐구의 전제들을 더 많이 의심했다.”
~ 버트란트 러셀 ~
첫댓글 수독회가 아니면 완독이 어려운 책을 총무님과 함께 마치고 나니 큰 언덕을 하나 넘은것 같습니다. 총무님 말씀대로 거인의 무등인지 모르지만 시야와 생각이 넓어진것 같습니다. 어려운 길을 안내 해주시고 함께 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걸음씩 옮겨 놓을때마다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또다른 사유를 서로 공유하게 되니 조금씩 정신의 키가 자라고 있음을 매번 느끼고 있습니다. 만만치않은 직장업무에도 불구하고 수독모임에 늘 자극을 주시니 고맙습니다.^^
고두레님의 열정 덕분에 수독회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천민 자본주의의 물결이 넘쳐나고 육체를 돌보는 일이 최고의 미덕인것처럼, TV앞에 앉아 있으면 먹거리와 건강에 관해서 왼종일 방영되고 있음을 봅니다.
조용히 내면을 살피고 자기성찰을 하는 일이 희귀한 세상이지만, 우리 수독모임 덕분에 새로운 사유를 나누고 서로 성장해가는기쁨이 무척 큼니다.
늘 격려 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