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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109년(2024) 11월 24일 일요정례법회에서
'올해 마음농사는 어떠신가요?'를 주제로 설법하신 것을 정리합니다.
벼 한 포기를 심으면 대략 몇 알이 열리는지 아십니까?
일반적으로 100알 정도가 나온다고 하는데 120알 정도면 풍년이라고 해요.
그리고 100알 이하면 평년작이에요.
품종이나 환경에 따라서 조금씩은 차이가 있고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그보다 훨씬 못미치거나 태풍 홍수 등으로 수확이 적으면 흉작이라고 한답니다.
정관평에서 농사를 짓는데 탈곡을 하면 그것을 갖다가 팔아야 돼요.
영산학생들이 도로 옆에다 쫙 널어놔요. 말려서 그것을 공판에 파는데
밥 먹기 30분 전에 학생들이 공동 작업을 해요.
학년마다 아침에 널고 저녁 밥 먹기 전에 가서 걷어요.
잘 마르면 산업부에서 싣고 가서 팔아 오는데 갔다오면
"이번에는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합니다.
우리 교도님들은 올해 풍년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흉작입니까?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10년이나 비슷했으면 그것을 뭐라고 하냐면 평년작이라고 한대요.
안 한 것보다 나은 정도면 반타작이라 해요.
교도님들께 묻습니다. 올해 마음 농사는 어떠신지요?
풍년이시죠? 풍년은 못해도 평양작은 되셔야죠.
반타작이나 흉년이 되시면 제가 올해 교도님들과 공부했던 것이 너무 허망해요.
교도님들께서 풍년이 되시고 그래도 평년작이 되셨다면 제가 보람이 있었죠.
그러나 반타작이나 흉년이 됐다면 제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요.
농사는 논밭에서 만 짓는 것이 아니죠. 우리 마음 밭에도 농사를 짓죠?
오늘 심전계발에 대한 법문도 읽었죠.
대종경 제3 수행품 59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본래에 분별과 주착이 없는 우리의 성품에서 선악간 마음 발하는 것이 마치 저 밭에서 여러 가지 농작물과 잡초가 나오는 것 같다 하여 우리의 마음 바탕을 심전이라 하고 묵은 밭을 잘 개척하여 좋은 밭을 만들듯이 우리의 마음 바탕을 잘 단련하여 혜복을 갖추어 얻자는 뜻에서 심전 계발이라는 말이 있게 되었나니라....(중략)....그러므로, 우리의 천만 죄복이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이 심전계발을 잘하고 못하는 데에 있나니, 이 일을 어찌 등한히 하리요.]
오늘 교도님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주제는
이제 모든 곡식의 결실을 다하고 추운 겨울을 준비하면서 11월 하순에 들어와서
이제 12월을 바라보고 내년 원기 110년을 우리가 계획하면서
나의 마음 밭 농사는 어떻게 잘 지낼까 한번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농사도 있을 것이고, 일주일 농사도 있을 것이고, 한 달 농사도 있을 것이고
1년 농사도 있고 또한 영생의 농사도 있지요?
농사는 사람 농사도 있어요. 사람 농사는 뭐예요?
내가 자식 농사를 잘 지어야죠. 인농이라는 말씀 들어보셨죠?
자녀 농사를 잘 지었으면 노후에 편안하시죠.
자식 농사를 잘 못 지었으면 노후에 힘들겠죠.
내 마음밭 농사도 하루하루 이루고, 씨앗을 뿌리고 거두고 있는데
그 하루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20년이 되고 60년이 되었을 때
우리의 마음 농사는 영생을 가지고 가는 농사라고 그랬는데
그 농사가 잘못되었을 때, 다음 생에 가져올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한번 생각을 해봐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똑같은 논에 벼들이 있어도 쭉정이가 있죠?
쭉정이는 알맹이가 들어있어요? 안 들어 있어요?
하나도 걷을 것이 없어요.
내 인생의, 내가 쭉정이만 많이 있지는 않은지.
차고차고 알찬 알맹이로 가득찬 농사를 짓는게 아니라
그냥 보기에는 똑같은 벼지만 알맹이는 하나도 없고, 속은 텅 비어 있는
나는 농사를 열심히 지었지만 과연 나는 쭉쟁이 같은 농사만 짓고 있는지는 않는지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인생 쭉쟁이라고 아주 든 것이 없으니까 고개를 뻣뻣하게 들어요.
벼는 찰수록 고개를 많이 숙이죠.
내면에 힘이 없고 익지 않을수록 남을 이기려고만 하고 자존심을 세우고
늘 상대심으로 가득한 나는 쭉쟁이만 가득 세우고 있지 않는가 돌아봐야하겠습니다.
매일 마음 농사, 심신작용 농사를 짓고 있는데 쭉쟁이가 많은가, 알곡이 많은가 결실을 하면서
나는 반타작인가 나는 풍년인가 나는 흉작인가 나는 평년작인가를 한번 되돌아보면서
올 한 해를 마무리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풍작의 논을 보는 농부는 항상 마음이 어떨까요?
논에 나와서 벼알이 알알이 익어서 내가 오늘 농사를 잘 지었구나 하는 사람은 마음이 어떨까요?
흐뭇하고, 지금까지 고생했던 것을 다 잊어버리잖아요.
거둘 것이 없는 농부는 마음이 어떨까요? 심란하겠죠.
다른 논들을 보면 잘 됐는데 우리 논을 보면 별로 안 됐다고 하면 어떨까요? 마음이 불편하죠.
우리 삶에서 쭉쟁이가 없이 알곡을 많이 거두는 방법은 많이 주는 것입니다.
내 마음밭을 계발할 때 내가 많은 알곡을 것두는 것은 많이 주는 것이에요.
창고에 도둑을 맞지 않는 방법은 이자가 가장 높은 지혜로운 저축 방법이 있습니다.
요즘 보이스피싱이 엄청 많죠. 보이스피싱도 걸리지도 않아요.
내 도장 훔쳐가서 비밀번호 알아가지고 돈 빼가지도 않아요.
그런 저축 방법이 있어요. 많이 줘서 내가 보관하는 거예요.
누가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해주는 것이 최고입니다.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해주는 것이 저는 최고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흔하게 차를 양보할 경우가 참 많지요.
저는 현산 김성권회장님한테 참 많이 배웠어요.
한국에 나와서 이렇게 도로가 번잡한데서 운전을 처음 해봤어요.
미국이나 전주는 여유가 있는데 인천에 살아 보니 차도 많고 트럭도 많아요.
못끼어 들어서 서창을 지나간 적도 있었어요. 복잡합니다.
회장님과 같이 움직일 때가 많은데 회장님은 양보를 굉장히 잘해주세요.
그리고 차가 좀 밀릴 때나 끼여들때는 비상깜박이 신호를 넣어주십니다.
제가 그런 것을 몰랐는데 옆에 타고 다니면서 그것을 제가 배웠어요.
이렇게 배려하는 거, 차 하나 끼어들때도 안 해주려고 그러잖아요. 작은 것에서도 배려하는
이런 것들이 내 생활 습관이 되어야만이 나오겠다는 생각을 제가 많이 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기운을 나누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잖아요.
부부도 마찬가지에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가족을 만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배려하지 않으면 참 쉽지가 않겠다 싶습니다.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주는 것, 상대방을 살펴서 내가 먼저 헤아려주는 것이 저축이에요.
도둑 맞지 않는 은행에 저축을 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뭐든 줄 때, 어쩔 수 없이 찜찜하게 하지 마시고 척척 기꺼이 기쁘게 그렇게 해 주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면 내 인생의 쭉쟁이는 없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그 사람을 위해서 말 한마디라도 좋게 하고
그 사람을 위해서 기운이라도 좋게 한다면 알맹이는 다 들어가지 않겠어요.
두 번째는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자주자주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표현하면 감사할 일이 줄줄이 생기고 원망을 표현하면 원망할 일이 줄줄이 생긴다고 들으셨죠?
영국에서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위스턴 처칠이 한 말입니다.
"비관주의자는 매번 기회가 찾아와도 고난을 보고 낙관주의자는 매번 고난이 찾아와도 기회를 본다"
우리는 표현이 약한 것 같아요. 뭔가 표현을 하면 좀 쑥스럽죠. 멋적어서 표현을 잘 못하시죠.
마음은 다 있는데 못하죠. 표현을 하세요.
자주 감사 고마움을 표현하면 내 마음이 굉장히 골라지고 행복해진답니다.
언어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감사하다 고맙다 이런 표현을 많이 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사람들의 행복도를 비교하니까 확연히 차이가 났대요.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감사하다고 표현 잘하셔요?
저녁 때 상을 참 맛있게 차려놨어요. 마음속에서는 고맙고 감사해도 그걸 표현하기가 쑥스럽죠.
그리고 또 당연한 일 같죠. 당연한 일에 무슨 감사하고 맨날 있는 일인데
오늘도 밥 먹고 내일도 밥 먹고 이게 뭐가 그렇게 맨날 감사하냐.
그러나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또 내일 또 다른 하루에요. 똑같은 날이 아니에요.
우리 세포가 오늘도 죽어가고 있고 또 오늘도 살아나고 있어요.
날마다 똑같다면 오늘은 24일이 아니고 23일이어야죠.
오늘은 토요일이고 일요일이 아니어야죠.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입니다. 날마다 똑같은 날이 아니에요.
날마다 같은 것이 돌아와도 당연한 것이라도 감사와 고맙다는 표현을 해야합니다.
사람은 말을 안 하면 몰라요. 모르죠?
이 속을 보일 수가 없잖아. 그럼 뭘로 표현해요?
그래서 아무리 가까운 사이도 감사하고 고맙다는 표현을 꼭 해야 한다고 합니다.
쑥스러워하지 마세요.
그것은 내가 할 방법,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권리고
감사하고 고맙습니다를 꼭 표현을 하면 그 기운이, 바람이 영글어 가는 데 기운이 들어가겠죠.
그러면 그 기운이 도둑맞지 않는 내 저축 통장에 들어갈거에요.
우리나라 행복도는 상당히 낮다고 해요. 왜 낮을까요?
우리나라 살기 좋은데 왜 낮을까요?
비교와 욕심과 바람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을 못 느끼는 거예요.
99개의 섬 가진 사람이 한개를 채울려고 해요.
99개 가졌으면 이미 행복한 것인데 100개를 가진 사람을 이상으로 가지는 거예요.
그래서 100개를, 한 개를 더 가져야만 자기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행복도가 낮아요.
우리나라같이 풍요로운 나라가 없어요.
우리나라 화장실, 휴게소를 보세요. 우리나라같이 깨끗하고 돈을 받는 데가 어딨어요.
식당에서 반찬 좀 더 주세요 하면 얼굴을 붉히는 사람보셨어요?
내 반찬이 맛있는가 보다 그러면서 더주죠. 우리나가 같은 곳이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그런 마음이 우리나라에 보편적으로 많기 때문에
내 자식은 다른 자식보다 잘 되어야 해, 옆집 자식보다 더 해야 돼.
항상 비교하고 상대를 받기 때문에 그 행복이 올라가면 그걸로 만족할까요?
아니죠. 또 다른 것이 또 만족이 와야 해요.
그래서 행복의 기준이 자꾸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는 행복하지 않다.
항상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행복지수가 낮다는 거예요.
우리 교도님들은 행복하세요? 생각하셔야 돼요.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하다. 고맙다. 고마워.
그냥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이 존재 자체가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 호흡하고, 함께 얘기하고 웃고
때로는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서 서로 다툴 수도 있지만
이 존재의 가치,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 자체가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작은 돌들은 모두가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가족에게 하는 것이 가장 자기다운 것이라고 합니다.
가족에게 하는 거, 왜 그럴까요? 가까운 사람이 제일 자기이죠.
가족에게 한 것이 가장 자기다운 것이며, 가장 진실한 것이며, 가장 자기의 정확한 성적표라고 그래요.
내 가족부터 내 소중한 인연부터 내 자녀부터 먼저 고마워~ 감사해~ 함께 살아줘서 고마워~.
이렇게까지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오늘 다 표현해 보세요.
안 되면 공부 삼아서 하세요.
세 번째는 뭐든 공부 삼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변화가 없어요.
공부 삼아, 안 되는 것을 공부 삼아해 보세요. 대종사님도 공부 삼아 하신다고 그랬어요.
공부 삼아서 하는 거예요.
어떤 교도님이 공부 삼아를 쓴 일기 한편 소개합니다.
[어제 대중 목욕탕을 갔습니다. 목욕을 마치고 드라이기를 사용하려면 100원짜리 동전이 필요합니다.
어떤 날은 동전이 없어서 드라이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선풍기로 머리를 말립니다.
이럴 때 난 기분이 상하여 이 목욕탕은 드라이기 하나 마음대로 못 쓰게 한다고 시비를 하곤 했습니다.
이날은 동전이 있었지만 공부 삼아서 선풍기로 머리를 말렸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지만 별일 없었어요.
어제 요리를 하려고 주방에 갔습니다. 습관적으로 불을 켜려고 했습니다.
공부 삼아 불을 켜지 않고 일을 해볼까 싶었습니다.
아침 햇볕도 주방으로 들어오고 그닥 어둡지 않았습니다. 별 무리 없이 요리를 잘 했습니다.
오늘 아침은 구운 가래떡과 사과, 원두 커피 한 잔으로 대신했습니다.
떡을 먹고 사과도 먹고 커피도 마셨는데 떡을 한 쪽 더 먹고 싶었습니다.
공부 삼아 떡 하나를 먹지 않아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먹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떡이 먹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고 안 먹기를 잘했다 싶었습니다.
공부 삼아 공부가 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어떤 어려운 경계가 와도 공부 삼아 행하면 그때의 경계는 예전 경계가 아니고
나를 살리기 위해서 온 부처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얘기가 소박했죠.
공부 삼아 공부가 대단한 것인 줄 알았지만 일상생활에서 내 마음을 공부를 삼았던 거예요.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자제하는 것도 공부 삼았고
내가 투덜투덜했던 것도 공부 삼아서 그것을 마음에서 내려놓았던 거에요.
공부 삼아서 감사합니다. 고마워 고맙습니다. 공부 삼아서 해보세요.
공부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일상생활에서 내가 옆사람에게 공부 삼아서 그 기운을 잘 보내는 것도 공부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의 거친 땅을 골라보세요.
제가 말씀드린 이 방법으로 내가 만약 내 마음이 거친 땅이었다면 골라보십시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했었을 때 내 땅은 골라집니다.
내 마음이 이미 평온한 기운으로 상대방에게 막 나가기 때문이죠.
하루하루 공부한 흔적이라도 나는 남기고 사는가?
그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100번 천 번 하다 보면 다른 습관이 들어져요.
이것 안 하고 공부 삼아 사는 흔적이 없으면 제자리걸음이고
알이 들지 않는 쭉정이만 나에게는 많이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아주 작은 변화를 계속하면 어느 순간까지는 변화가 없이 제자리 같지만
때가 되면 그 변화는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큰 힘이 발휘된다는 것을 자신이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살이 빠졌죠, 어디 가면 아프냐고 물어보는데 아프지는 않아요.
우리 교무님들 셋이 보기 좋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불단에 앉으면 꽉차요.
이번에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다른 건 다 좋은데 비만이라고 나왔어요.
교무는 좀 넉넉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저희 셋이 식사개선을 해자고 했어요.
탄수화물, 떡, 빵 이런 거 우리가 안 먹도록 하자해서 처음에는 표가 안 났어요.
공부 삼아서 서로 격려하면서 셋이 격려하면서, 이 공부도 서로 격려하면서 하는 거예요.
나 혼자 하면 힘이 없어요. 그러나 서로 격려하면서 해야 해요.
우리 셋이 서로 격려하면서 식생활 개선을 하자 하면서 서로 얘기하면서 하니까 훨씬 낫듯이
우리도 서로 보기 좋다며 서로 격려하는 거에요.
말로 서로 보기 좋네 예뻐졌다 이렇게 서로 아름답게 말을 하니까 좋잖아요.
이렇게 해서 우리가 긍정적인 표현으로 살아가자.
공부 삼아, 오늘 다 잊어버려도 좋아요. 공부 삼아만 기억하세요.
처음에는 더디고 그것이 보이지 않지만 날이 갈수록 자기의 변화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변화가 될 수 있겠어요?
몇 생을 살아온 우리의 습관을 어떻게 바로 고칠 수가 있겠습니까?
경계에 오면 공부 삼아, 맛있는 반찬이 저녁에 나오면 공부 삼아
맛있다, 고맙다, 표현을 하세요.
올 농사는 어떠신가요? 다 풍년이라고 그러셨죠?
우리 교도님들 다 풍년이어야지 흉작이면 내일 아침에 제가 없는 줄 아셔요.
있어야 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다 풍년을 하시고
하루하루 내 농사는 잘 됐나, 오늘 하루 내 농사는 잘 되고 오늘 하루 내가 공부 삼아서 내 마음을 잘 보았나.
일주일 농사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 나의 농사를 잘 지었나.
1일 시작하면서 31일에 내 농사는 한 달간 잘 지었나.
1년을 지내면서 내 농사는 잘 지었나 돌아보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요구하기 전에 먼저 내가 알아서, 감사와 고마움을 자주 표현하면서
공부 삼아서 내 습관을 고치는 이 세 가지를 해서 언제나 풍작을 이루는
인천교당 교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염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