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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장 타 악 이 론 서
편 저자 남 팔도
한국 국악 교육원
경기 동부 총국
남 팔도 의 약 력
1979년부터 원맨밴드 로 음악 활동개시
1987년~1989년 까지 성동구 주민 풍물강사 로 활동
1989년 성동구 풍물패 살곷이 창단
1990년 가요계 가수 데뷔
1990년 부터 현재 까지 품바 활동
1992년 팔도예술단 창단
2000년 2대 품바협회회장 역임
2003년 날이면 날마다 ,후회는 하지말자 ,신곡 발표
1996년 부터 ~2009년 까지 전국 품바 대회다수수상경력
미국,일본,중국,멕시코 등등 해외순회공연
KBS,MBC,SBS,iTV,실버TV,복지TV,일본요미우리TV, 출연
현, 한국연예 예술인협회 충청북도지부 연기분과위원장
현, 한국 충청 가수협회 부회장
현, CJB청주방송 시장에가자 리포터, 전속밴드 활동중
현, 한국경찰일보 문화부 기자 청주시 본부장
현, 전국 각설이타령 채록및 수집 활동중 저서준비중
- 차 례 -
머 릿 글...........................................................................4
난장타악이란?................................................................6
난장타악의 이해....................................................6
역사적 배경과유래......................................................8
1,난장타악 의 유래...............................................................8
2난장타악의 역사적 배경.....................................................9
난장타악의 구성과 특징.........................................12
난장타악패 의 구성.............................................................12
악기별 구조 와 특성...........................................................13
풍물이란 무엇인가?...................................................17
풍물의 연관설......................................................................17
풍물 의 지역적 분류 와 가락...............................20
풍물의 지역적 분류..............................................................20
풍물 기본 가락보.................................................................22
난장타악 가락...............................................................24
한국 타악기 의 종류.................................................26
머 릿 글
우리 민족은 참으로 흥이 많습니다 그 어느 민족보다 예부터 수많은 외구로 부터 침략과 수탈을 겪으면서 한 이 많고 설음이 많아서 인지 그러한 한과 설음 배 고품 을 달래기 위해 마음 내키는 데 로 흥얼흥얼 부르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노래에 장단을 맞추기 위해 소리 나는 아무거나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곤 하였습니다 북,장고,꽹가리,징,를 비롯해서 나무토막,지게다리,밥숫가락,젓가락,항아리,등등 두드려서 소리 나는 것을 두드리면 박자를 맞추며 한껏 소리 높여 노래를 하였다 저자는 그것을 아무렇게 두드리는 행위를 “난장타악“ 이라고 명하고 싶다 난장타악 은 우리민족의 대중문화이고 민중들의 힘의 원천이요 모든 문화역사 의 근원이라고 말하고 싶다 50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민족은 태초부터 잘 다듬어진 음악이 생겨나지는 안았고 원시시대부터 그들만의 언어와 생활풍습 과 문화가 생겨나고 노래가 만들어지고 종교가 생겨나곤 하였을 것이다 그 속에서 ”놂“ 이 있고 흥 에 겨우면 즉흥적으로 노랫말 을 만들어 노래를 하고 슬프면 감정이 움직이는 대로 노래를 하였을 것이다 거기에 소리 나는 나무토막 등 을 이용하여 장단을 맞추었을 것이고 이러한 문화가 종교의식 을 통하면서 점점 체계화되어 문화의 한 장르가 되지 않았을까 한 다 그것이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고 지금도 우리민족 은 흥 에 겨우면 아무데서나 손뼉을 치거나 젓가락 등을 두드리며 노래와 춤을 추 곤한 다 우리민족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것은 세계적으로 동일 한 것이다 그 힘은 바로 즉흥적으로 나오는 노래와 장단 난장타악 그것이 바로 지구의 모든 민족의 문화의 근원이고 그들을 뭉치게 하는 힘이 아닐까합니다 그러면서 더욱더 소리 가 잘나는 악기를 개발하게 되고 태초로 세계 적으로 잘 만들어진 악기가 “북” 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짐승을 사냥하고 그 가죽을 말려서 옷을 만들고 남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게 바로 “북” 이었고 그것은 세계적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중앙아프리카 지역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북문화가 가장 활성화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한 이유는 종교적인 문화가 주축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중앙아프리카 지역은 깊은 밀림지역 으로 저개발 로 인한 신문화 보급이 저조하고 그들만의 부족생활 의식이 다른 민족 보다 강하고 중앙아시아 특히 중국, 한국, 일본 은 북 에 대한 애착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그것은 이 3개국이 불교라는 종교적 의미가 크다 할 것입니다 지금의 난장타악도 북이 만들어지면서 발전하고 체계화 되어 바로 풍물놀이 라는 것이 생겨 지금까지 우리민족의 문화의 발전을 이루어 왔습니다 즉 난장타악 과 풍물놀이 는 동전의 양면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풍물놀이는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있고 난장타악 은 체계적으로 정리가 안되었다는건 난장타악 이 두드리는 사람의 취향과 성격 에 따라 다르게 연주 될 수 있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난장타악에 대한 자료가 없는게 안타까워 저자는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고자 하는 것 입니다 그리하여 난장타악 이 체계화되고 모든 국민이 함께 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더욱더 난장타악 을 하시는 분들의 문화적 발전이 되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한국국악교육원 과 경기동부총국 에게 감사드립니다
2009년 11월 편저자: 남 팔도
난 장 타 악 이란?
(난장타악의 이해)
난장타악 은 난타 또는 두드리다, 타작 한다 라고하며 어떤 악기를 두드리라는 특별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그저 두드려서 소리 날수 있는 것을 두드리는 것이 난장타악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소리가 잘나는 것이어야 하겠죠 가장 기본적인 것은 북,장고,꽹가리,와 대나무통,물통,목탁,등 소리나는 모든 것을 노래 와 음악에 맞추어 두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민족 은 예부터 흥이 많은 민족으로 삶 속에서 이웃과 품앗이를 하며 함께 노동을 해오고 기뿐일 슬픈 일 을 함께 해왔습니다 즉 두레 문화가 일반적 이었다 는 것입니다 마을별로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각종 행사 즉 풍어제,풍년제,기우제,정월대보름제,한가위,혼인식,장례식,등과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종교적인 여러 종교의식 또는 각종 노동의 현장에는 마을 주민이 함께 품앗이 형태를 유지 해왔습니다 자연적으로 마을 사람들은 모두모여 행사를 치른 후 에는 마을의 어른이 이런저런 문제점을 제기하고 마을 주민들 은 문제 점 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며 지혜롭게 마을의
단합과 나름대로 질서를 지키며 살아 왔습니다 또한 행사에는 자연스레 놂 문화가 형성되어 막걸리가 거하게 취한 사람이 먼저 딱딱한 분위기를 해소 하기위해 노래를 한곡 뽑으면 자연스레 주위의 사람들이 장단을 치는 것이 난장타악 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민족은 5000년 동안 이러한 문화를 유지하며 힘 든 일들을 함께 해소하며 고된 노동 속에 힘 을 불어주어 피로를 잊게 하고 활력소를 주어 삶의 의욕을 북돋아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힘 이오 신바람이고 신바람이 내는 민족의 삶의 문화 입니다 우리민족은 두레 문화 속에서 서로의 잘못을 용서했고 내일의 희망을 나누었으며 남녀노소 모두가 어울리는 만남의장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난장문화는 우리민족의 샘물과 같은 역할을 해오며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 을 주었고 반복되는 노동과 시련 속에 피로제 역할 을 해 왔던 것입니다 이렇듯 난장타악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염원을 결집하는 힘이고 밝은 내일을 바라보는 희망의 문화라고 할수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과 유래
( 1, 난장타악의 유래)
난장타악 은 기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사냥 을 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원시사회 에서 전쟁 중 에 신호 또는 통신용으로 또는 사냥을 할 때 위협용으로 쓰이고 종교의식 인 하늘에 감사드리던 제천의식 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추측 됩니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신에게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며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축제를 하며 그해의 질병으로 부터 안녕 과 풍년을 기원 했다고 합니다 축제를 하며 차려놓은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자연스레 노래도 하고 춤을 추며 즐겼을 것이다 과연 무엇으로 장단을 치며 무엇을 두드리며 즐겼을 것인가?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원시시대는 소리가 잘나는 속이 빈 나무통 이 아니었을까한다 이후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북“ 이었을 것이다 안타깝게 우리나라 최초의 북 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고 장고는 소형 장구의 그림이 고구려 고분 벽화나 신라 때 지은 오대산 상원사의 동종에 나타나고 있다 장고라는 악기가 쓰이기 시작한 역사는 더 오래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타악기 들이 발전을 하면서 풍물 이라는 타악기가 민중들 에게는 가장 친근한 대중의 타악기가 된다 이후 판굿 을 짜며 즐길 수 있는 풍물놀이가 생겨나고 그 풍물놀이 는 현대의 까지 민중들의 놀이문화가 되고 있다 바로 풍물놀이의 문화가 난장타악 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2,난장타악 의 역사적 배경)
우리민중들의 두레를 기반으로 발전해온 풍물은 일본제국 침략으로 발전은 단절되고 왜곡의 길을 걷기 시작 한다 두레공동체의 철저한 탄압과 함께 민족적인 유대감 과 일체감을 형성하는 한민족의 뿌리 깊은 문화인 풍물 또는 난장 문화를 낭비적 인 것 , 미신적 인 것, 이라며 철저히 탄압해왔다 이유는 우리민족의 단결력을 끊는 것 이었다 두레 공동체 적 으로 모이던 난장타악 을 두드리며 연희형태로 술 마시고 즐기던 모여서 풍물을 치며 모이면 자연적으로 제국주의에 대한 반항심이 길러지고 행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 이었다 그러면서도 우리 민중 들은 소규모적으로 두레문화를 조심스레 지켜왔다 일제 제국주의자 들은 우리 민족이 단합 하는 것 을 철저히 방해하며 민중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발전되어온 풍물 두레문화 는 부역에서 강제화 되었고 품팔이에 의해 개별화 되었으며 풍물은 일과 놀이의 결합이 아니라 강제노동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전문 연희 패 는 일제의 수탈정책에 이용 되면서 마을 굿 과 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담보해온 민중지향 상실하게 된다 해방 후 우리의 역사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서구의 문화가 물밀듯 들어오면서 비생산적인 소비문화 로 자리 잡게 되었다 70년대 초에는 새마을 운동 으로 민족적인 전통을 무시한 서구의 합리주의 영향으로 민족적인 것을 미신 또는 낭비적 인 것이라고 하여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당산“또는 악기들을 없애버렸던 것 이었다 이런 흐름 속 에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전통문화 계승 이라는 명목으로 전통 민중문화를 형식적으로만 복원시킴으로서 삶속에서 변화 와 발전 하는 두레 문화가 아니라 박제화 되고 특정인만을 하는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이러한 풍물은 민중의 건강한 문화가 아니라 마스게임화 되었고 경연대회 출연용으로 둔갑하는 풍물로 자리 잡아 왔던 것이다 80년대 중반부터는 의식 있는 문화패들을 중심으로 민주화의 과정을 겪으며 대학교 동아리와 노동조합 을 중심으로 탈춤,풍물,민요, 등이 광범위하게 확산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으며 이러한 장르 중 에 풍물이 가장 많이 보급되었고 이제는 과거의 문화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90년대 초 를 중심으로 새로운 풍물의 형태가 생겨나고 발전 되면서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김용배 의 사물놀이 라는 새로운 풍물을 선보이게 된다 풍물놀이는 서서 판굿 을 짜며 민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춤 을 추고 노래하며 전통적인 민중들이 즐기는 두레연희라면 사물놀이는 앉아서 그야말로 소리 와 두드리는 기술을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이다 이후로 퓨전 국악단 슬기둥 이 생겨나고 탤런트 송승환의 풍물가락을 중심으로 한 난타 가 생겨난다 이후로 북 만을 이용한 모듬북 패가 생겨나고 난장 에서는 김시라작 연극 “품바”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각설이들 의 난장타악 이 생겨난다 남팔도(호남 좌도풍물),박종수,이인철,정종수(영남가락)외에 김범율,박주용,김광범 등 의식 있는 난장각설이 꾼들은 난장에서 난장타악 을 선보이며 전국을 누리며 엿을 판매하며 자신들의 난장가락 을 널리 보급하여 지금의 각설이들이 난장에서 북,장고,꽹가리, 등을 이용하여 난장타악 의 공연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윤츙일,이옥천,조상용,명창들의 각설이타령 음반에서 난장타악 리듬반주로 음반이 출시되었고 대전각설이 박옥순씨 도 젓가락장단 으로 음반을 출시하였다 이전에도 각설이 들이 바가지와 깡통 등을 두드리며 밥을 얻어먹기 위하여 춤을 추며 각설이타령 이나 장타령 등을 난장타악에 맞추어 부르고는 하였다 해방을 맞으며 우리 민중들은 술자리나 각종 연희에서 막걸리를 사발로 마셔가며 노래를 부르고 젓가락으로 장단은 두드리며 그날의 힘든 노동의 일과를 마무리하곤 하였다 이때 민중들은 악기라는 게 없고 그저 젓가락 숟가락 뿐 이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탁자 또는 주전자 막걸리사발 등을 두드리며 나름의 만족스런? 연희를 줄기 곤 하였다 그러다 80년대 일본에서 노래방 기계가 들어오면서 우리민중의 두레문화격인 난장타악 의 문화는 점차 시들어가고 말았다 그나마 난장에서 각설이 들이 난장타악 을 지켜가고 있는 유일한 현실입니다 이 난장타악이 우리 민중들의 오랜 전통문화의 모태라고 생각 합니다
난장타악의 구성과 특징
( 1,난장타악 패 의 구성)
난장타악 패 의 구성은 소리 나는 모든 것 북,장고,꽹가리,각종빈통,엿가위,등으로 구성하며 각 악기별로 음악에 맞춰 두드리며 장단을 맞춘다
꽹가리 - 모든 난장타악의 중심 을 잡으며 지휘해 나간다
북 - 용고,사물북,대북 등으로 구성된 모듬북 을 양쪽에 배열해 놓는다
장고 - 일반 풍물장고 를 사용 하며 오른쪽 앞에 심벌을 놓는다
각종통 - 큰통 작은통 등 생활 속에서 접할수 있는 소리 나는 여러 통을 모듬북 형태로 놓는다
엿가위 - 상가위 , 부가위 2명으로 구성하고 춤과 율동 을 함께 보이며 잡색 역할을 한 다 꽹가리가 없으면 엿가위가
난장타악을 지휘를 해나간다
( 2,악기별 구조 와 특성)
북 - 대고, 용고, 풍물 북
북은 속이 빈 통에 가죽을 메어서 두드려 소리를 내는 악기로 가장 오래된 악기이며 전 세계적 으로 그 발생을 볼 수 있다.북이 많이 사용 되는 것에는 취타대에 사용되는 용고, 북춤 에 사용되는 법고, 판소리에 사용되는 소리 북, 풍물 에 사용되는 매구 북, 등 이있다 북은 소리가 간단하고 소리도 단순 하지만 난장타악과 풍물에서 힘 있는 소리를 이끌어 주는 역할 을 한 다
북을 치는 방법
끈 을 메어 어깨 또는 팔꿈치에 메고 치는가하면 북 전용 받침대를 북을 올려놓고 30센치 가량의 박달나무 북채를 1개또는 2개를 이용하여 앉어서 치거나 서서 친다 주로 난장타악 에서는 서서치기를 하는데 양쪽다리를 어께 넓이로 벌리고 상체를 음직이며 왼쪽 손 을 칠 때는 오른쪽 어께위로 오른쪽 손을 칠 때는 왼쪽 어께위로 친 다 북은 강한 울림이 특징이다
장고 - 손 장고, 풍물장고
장고는 장고 또는 장구라고 칭하며 길이100센치, 지름40센치쯤 되는 오동나무를 파서 만들며 양쪽에 궁 편 에는 쇠가죽을 채편 에는 개 가죽을 대고 고리에 줄을 엮어 맨 뒤 가죽으로 만든 부전이라는 것으로 줄을 팽팽하게 하거나 늦추어 가죽의 소리를 조절하여 사용 한다 장고 는 북 과는 달리 섬세한 가락을 연주하는 역할을 하며 북은 남자라고 한다면 장고는 여자라고 할 수 있다
장고 를 치는 방법
장고는 몸에 메고 치기도 하며 않아서 치기도 한 다 메고 칠때는 4미터 정도의 긴 명주 천 을사용 하여 왼쪽 옆구리 에 안정되게 묵는데 칼을 차듯이 궁 편 이 비스듬하게 45도 각도로 밑으로 향하고 채편은 위를 향하게 한 다 않아서 칠 때는 왼쪽 무릎으로 장고 줄을 누르고 오른쪽 발바닥으로 채편을 수직을 밭치며 허리를 세운다 난장타악을 칠 때는 전용 받침대를 이용하여 안정되게 세워놓으며 왼손잡이는 궁편이 오른쪽으로 오른 손 잡이는 궁 편 이 왼쪽을 향하게 한다 장고를 치는 채는 궁채 와 열채가 있는데 궁채 는 왼쪽 손으로 가볍게 잡고 아래를 향하게 잡고 수직으로 내리 치며 열채는 손잡이를 잡고 열채 끝 이 채편의 가운데 를 향하여 채편 테두리를 치는 듣 한다
꽹가리 - 놋쇠 꽹가리, 은 꽹가리
꽹가리 의 별칭은 쇠,광쇠,꽝쇠,괭메기 라고 블리며 꽹가리 는 놋쇠로 만들며 소리를 더욱 잘 내기 위해 은과 금을 섞어 만들기도 한 다 직경7치(21센치)에 둘레는 1치에서 1치반(3.5)센치 정도이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부드러운 소리와 강한소리를 선택하여 사용 한다
꽹가리를 치는 법
괭가리를 왼손잡이는 왼손에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에 잡고 검지로 받쳐 들며 팔을 몸에 붙여 둔 다 소리를 낼 때는 장지와 약지로 가볍게 소리를 막았다 열었다 한 다 괭가리를 칠때 는 팔로 치는 것 보다는 팔목으로 치는 것 이 좋다 꽹가리채 는 대나무 뿌리로 된 탄력 있는 것 을 사용 한다
엿가위 - 쇠 가위, 스탠레스 가위
엿가위는 길이 20센치 에서 25센치 에 1개 무게가 1킬로그램 정도로 보통 쇠를 달구어 열처리를 하며 강하게 만든 쇠로 만든 것이 소리가 좋다 더 좋은 소리를 내기위해 스탠 으로 만든 가위를 사용하기도 하나 무거운 게 단점이다
엿가위 치는 법
엿가위1개를 북채나 엿 자르는 끌 등 다른 채를 사용하여 치기도 하나 쌍 가위 라고 하여 2개를 사용하여 치는 것이 보편적이다 왼손에는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잡고 박자를 맞추는 역할을 한 다 오른손에는 엄지로 엿가위 한쪽 귀를 잡고 나머지 4손가락은 다른 귀를 가볍게 거머쥐듯 잡고 타작을 하 듣 리듬을 친 다 이때 몸의 안정을 유지하기위해 다리를 양 어께 넓이로 벌린다
각종 통 - 물통, 잔밥통, 프라스틱통 등
각종 통 은 물 통, 잔밥통, 프라스틱통, 목탁, 등 사용하나 대나무 통 이나 다듬이돌 등을 이용하기도 한 다 물동이에 물을 받아 바가지를 없어놓고 사용해도 소리는 잘 난다 그 외에 놋쇠로 만든 밥주발과 사발 간장종지 등을 모아놓아도 아름다운소리를 연출 한다 징을 없어놓고 사용하기도 한 다
각종 통 을 치는 방법
크고 튼튼한 통을 칠 때는 북채를 사용하는데 보통 북채보다는 가늘고 조금 긴 채를 사용하여 북을 치듯이 치면 된다 각종 통 을 치는 법은 각 통 마다 성격이 다르니 그 통에 맞는 채를 사용 하여 치는 것이 좋다 바가지를 치는데 북채나 장고채 를 사용 할 수 없고 큰통 을 치는데 가는 가지로 칠수 없듯이 개인의 터득에 의해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듣 하다
풍물이란 무엇인가?
풍물은 농사일을 하던 우리 조상들이 쇠,징.북.장고 4가지 악기를 중심으로 가락을 치며 춤과, 노래,사설,재담,,재주, 등과 연극적 요소를 담당하는 잡색 등을 포함하는 총체적 연희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풍물을 “농악” 라고도 말하는데 “농악“은 일제시대 일본 학자들이 농사꾼들이 하는 천 한 음악 이라고 농악이라 하였습니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사용 하고 있는 부끄러운 용어입니다 풍물이 민중들에게 보급 되게 된 설들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풍물의 연관설)
1, 군연관설
난장타악의 역사는 언제쯤 될까? 예부터 우리 기층민중 들은 악기를 접하기 힘들었다 오로지 악기는 궁에서 귀족들과 지배계급들만의 소유물로 연희를 즐길 때 사용하였으며 일반 민중들이 접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통시대에 변방을 수비하거나 기타 군역에 종사하는 사람은 모두 기층민중 이었다고 합니다 일종의 예비군과도 같은 성격을 지녔습니다 풍물패의 복장이나 지휘체계 등은 군대의 습성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데 이를 농민들은 놀이 속에서 군악의 체계를 도입했으리라는 것입니다 한 예로 쾌자를 입는다든지 상모 라 일컫는 전립 이란 것은 군물자로서 발전하여 연희 물 로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풍물이 일사불란하게 음직임과 힘이 가지는 것도 이러한 영향에 있으며 진법 이다,진 굿 이다, 진짜기 ,용어도 군에서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군에 의한 민중들이 접한 군악 설 이라하겠습니다 .
2, 불교 관계 설
우리민족은 예부터 불교를 믿어왔다 고려시대에는 잦은 전쟁으로 지배계급 들은 재물을 챙겨 도망가기 바뿌고 우리 민중들은 외구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이러한 모습을 본 스님들이 앞장서서 민중들과 함께 싸우게 된다 이후로 호국 불교가 번성하고 자연스레 민중과 함께했고 조선 시대 부터는 불교의 탄압으로 각 사찰의 물적 기반이 약해지자 사원을 건립하거나 중요한 불사가 있을 때 불교음악이나 의식 무 에서나오는 형태를 가지고 민중과 함께 연희를 하면서 자금을 염출한 것입니다 불교음악, 의식 무 에서 악기, 장단, 연희형태들 중에서 민중의 미의식에 적합한 형태들을 풍물에 도입했을 것입니다 연희를 한다 던지 악기로서 바라를 사용 하는 것 등은 우리민중들이 불교에서 자연스레 접하게 된 타악이 아닐까 합니다
3,풍년,풍어 마을 기원굿설
농경사회에 살고 있던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지방별로 사당을 지어놓고 해마다 연초에 각종 기원 제를 올렸다 농촌지역에서는 풍년제를 어촌지역에서는 풍어제를 해마다 연중행사로 치루 어 왔다 행사를 치른 후 풍물패를 중심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안녕을 기원하는 지신밟기도 하였으며 집집마다 모아온 음식을 서로 나누어먹으며 북을 치고 장고를 치며 음주가무를 즐기며 뒤풀이를 하였다 이렇듯 우리민중은 수많은 “굿” 과 함께 살아왔고 굿을 통해서 마을의 안녕과 공동체를 지켜왔다 풍물의 역사는 이조시대 이후로 추측하고 있고 고려시대 에는 연등회 또는 팔관회라는 행사 속에서 풍물겨루기를 하였으며 조선후기 두레공동체에서 힘든 노동을 즐겁게 활기찬 노동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놀이와 노동이 두레굿 으로 형성 되었으며 마을 전체의 크고 작은 일들과 결합되며 마을굿 으로 발전되었다 이런 형태를 두레패적 풍물놀이 라고 한다 이러한 마을 단위의 풍물을 바탕으로 하여 공동기금 조성을 위한 건립 굿 이 생겨나고 상공업의 발전에 의해 지방장시를 기반으로 전문예인 집단인 사당패가 출현 하면서 연희굿 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형태를 사당패적 풍물놀이 라고 한다 이 연희 굿 은 노동과정에서 나온 풍물이 전문적 문화예술 까지 발전한 것으로 풍물의 가능성을 더욱 넓혔고 마을굿 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풍물의 전성기를 이룬다
풍물 의 지역적 분류 와 가락
(1,풍물의 지역 적 분류)
저자는 난장타악 가락과 풍물가락은 오랜 전통문화 의 모태라고 할 수 있고 동전의 양면 이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 민중들의 풍물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체계화 되고 지방별로 각종가락이 생겨 났습니다 그중요한 기본적인 몇 가지 풍물가락을 설명 하겠습니다
1,호남좌도가락,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산간지역에서 발전 되었고 남성적으로 힘이 강한 게 특징이고 개인놀이 보다는 단체놀이가 강하다 전주,완주,진안,무주,장수,임실,남원,순창,구례,곡성,화순,순천 등이 좌도가락에 속 한다
2,호남 우도가락,
들녘이 넓은 평야 지역을 중심으로 놀이형태가 다양하고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것이 특징으로 이리,부안,김제,고창,정읍,장성,영광,나주,광주 등이 이에 속합니다.
3,경기,충청도 가락
중부지방의 가락이라고 하며 매우 경쾌하다. 안성,평택,이천,용인,수원,김포,청주,서천,공주,논산,부여,홍성,서산,당진,충주,제천,음성,등이 이 지역 에 속 합니다
4,영동지방가락,
영동지방 은 가락이 단조로우며 전투적인 것이 특징으로 해신굿 과 관련된 가락이 발전 되었습니다 강릉, 삼척, 울진, 동해, 정선, 평창, 등 동해안 일대의 지역이다
5,영남가락,
영남가락은 내륙지방과 해안자방이 조금 틀린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자즌 가락을 내는 쇠가락이 잘 발달되었으며 빠른 가락이 많습니다 해안지방으로는 삼천포, 진주, 마산, 부산, 밀양 이 있으며 내륙 지방 으로는 대구, 김천, 영천, 청도 등이 있습니다
(2,풍 물 가 락 보)
저자는 난장타악 가락과 풍물가락은 오랜 전통문화 의 모태라고 할 수 있고 동전의 양면 이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 민중들의 풍물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체계화 되고 지방별로 각종가락이 생겨 났습니다 그중요한 기본적인 몇 가지 풍물가락을 설명 하겠습니다
1.인사굿,
덩 덩 덩 덩 더더덩덩 덩~따
2.굿거리,
덩 기덕 덩 더러러러 덩기덕 쿵~따
3.삼채,
덩 덩 덩따쿵따 덩따쿵따 덩따쿵따
4.휘모리,
덩 덩 쿵따쿵 덩따쿵따 궁따쿵
5.세마치,
덩 덩따쿵따 더덩 덩따쿵따
6.오방진,
덩 덩 덩덩 따따 더더덩 더더덩 덩덩 따따
22덩따따따 궁따쿵따 덩더러 덩더러 덩덩 따따
7.밀양행진곡,
덩따따쿵따 덩덩덩 덩따따쿵따 덩덩덩
덩더러 덩더러 덩더러 덩더러 덩따따쿵따 덩덩덩
8.자진호허굿,
덩따쿵따 더덩 딱
9.양산도
덩 덩따쿵따 더덩 덩따쿵따 더덩 덩따쿵따 더덩 덩 딱
10.일채
덩 덩 덩 덩덩더더더더더더덩덩 덩 덩 덩
5,난장 타악 가락
난장타악 가락보 는 정해진 것은 없으나 기본적으로 최소한 풍물의 기본가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하며 풍물가락의 일부를 활용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3박자의 월츠는 굿거리 가락 과 양산도 가락 등 을 이용할 수 있고 4박자 의 노래 경우 휘모리 가락이나 밀양행진곡 가락 등에서 활용 할 수 있다 중요 한 것은 3박자냐 4박자냐를 알아야 한 다 또한 장고는 채를 2개를 사용하지만 북은 1개 또는 2개를 사용 하게 되는데 채를 1개로 치느냐 아니면 2개로 치느냐에 따라서 달라 질수 있다 즉 1개의 채로 치게 되면 단박이 되고 2 개의 채로 치게 되면 자진 박자 가 된 다 예를 들어 1 개의 채로 탁~ 하고 치면 두 개의 채로는 타닥! 또는 타다닥 이 된다 이 타다닥 의 소리는 계속하게 되면 말발굽 소리가 난다 우선 기본가락보 는 다음과 같습니다
1개의 채로 북 또는 탁자 를 치는가락
탁자: 탁 탁 탁 탁 탁 탁
북: 둥 둥 둥 둥 둥 둥
장고: 덩 덩 덩 덩 덩 덩
2개의 채로 북 또는 장고 탁자 를 치는가락
탁자: 타닥 타닥 타닥 타닥
북: 두둥 두둥 두둥 두둥
장고: 더덩 더덩 더덩 더덩
2개의 채로 북 또는 장고 탁자를
치는 자즌가락
탁자: 타다닥 타다닥 타다닥 타다닥
북: 두두둥 두두둥 두두둥 두두둥
장고: 끼딱쿵 끼딱쿵 끼딱쿵 끼딱쿵
6, 한국의 타 악 기 종류
1, 편 종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율 타악기로 손 꼽힌다. 상하 2단으로 된 나무 틀에 각각 8개씩 총 16개의 작은동종 을 매달아 놓고'각퇴'라고 하는 뿔망치로 쳐서 소리를 내며 음색은 약 한 옥타브 반 정도 된다. 종의 크기는 같으나 두께가 조금씩 다른데 두꺼우면 높은 소리가 나고 얇으면 낮은 소리가나며 제례에 쓰는 편종은 그림이나 장식 없이 수수한 것을 사용하고 국가의 큰 의식이나 모임 잔치 때에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한 편종을 사용하였다.
편종의 틀을 보면 중앙에 구멍을 뚫은 직사각형의 방대와 그 위에 목사자한 쌍을 꽂아 세우며 이 틀 양쪽에는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고 여러 가지 채색된 실이 늘어뜨려져 있으며 하단의 양쪽 받침 부분에는 목공작 이 화려하게 장식 되어 있다 특히 나무 사자 모양을 장식한 이유는 마치 편종의 소리가 사자의 큰 울음소리처럼 포효한다는 의미에서 그런 것이며 문묘제례악 종묘제례악 낙양춘 보허자 취타 등의 음악에 쓰인다.
2, 편 경
편종과 그 악기 모양이 매우 흡사하다. 종 대신 경을 매단 것이며 유율 타악기인 편경은 상단에8개,하단에8개, 모두16개의 경석을 매달아 놓고'각퇴'로 경 맨 끝 하단을 쳐서 소리낸다.고려 때부터 사용해온 편경은 세종7년(1426) 가을에 경기도 남양 땅에서 무늬도 아름답고 소리도 맑은 '경석'이 발견되어 우리 나라에서 많은 수의 편경을 제작 하기에 이르며, 이때 만든 편경은 중국 것 보다도 더 아름다운 음색을 가졌고 또 음률도 정확하였다고 한다.
3, 방 향
16개의 쇳조각을 상단에 8개 하단에 8개씩 매달아 놓고 소뿔로 만든 각퇴로 쳐서 소리를 내며 재료가 쇳조각인데 이 쇠가 울려서 소리난다는 뜻에서'철향'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16개의 철편 즉 쇳조각은 그 길이와 너비가 동일하지만 두께가 각각 다르며 이 두께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소리가 나며 철편의 두께가 두꺼우면 낮은 소리 얇으면 높은 소리가 난다. 고려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이 악기는 현재 종묘제례악에 쓰이고 있다. 조선조 세종 때 직접 만들어 썼다는 기록이 있으며 임진 왜란 이전의 방향은 철편의 윗부분이 둥글고 아래가 모난 것을 썼으나 임진왜란 이후의 것은
네모꼴을 쓰고 있다고 한다. 많이 사용하는 악기는 아니지만 그 모습과 음색이 독특하며 울림이 오래가지 않아 최근에는 더 오래갈 수 있는 개량 방향이 선 보인바 있다.
4, 운 라
놋접시 모양의 작은 징 10개를 틀에 매달고 작은 망치로 때려서 소리내는 유율 타악기이다. 운라가 중국을 통하여 조선 후기에 들어온 악기라는 사실은 조선 전기의 음악 서적인'악학궤범'에는 없고 조선후기 풍속화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운라는 현재 군대 행진 음악인 취타대에 쓰이며 받침대에 고정하거나 빼들고 이동하면서 연주할 수 있도록 되어있으며 마치 실로폰 소리를 연상시키는 맑고 영롱한 소리의 운라는 창작 국악 곡에서 간혹 효과적으로 쓰이고있다.
5, 징
놋쇠로 만든 금속성의 타악기로 정 금징,금,금라,나 등으로 불린다. 원래 징은 북과 함께 군대에서 사용한 관계로 고취징 이라는 명칭도 붙여진 바 있는데 지금은 모두 징 이라는 명칭으로 굳어졌으며 행진곡 계통의 취타대 음악은 물론 종묘 제례악 불교음악 무속음악 그리고 풍물놀이 에 이르기까지 실로 징의 사용범위는 상당히 넓다고 하겠다. 또한 명칭 이 다양한 만큼 용도에 따라 이 징의 크기가 다양하다.
6, 꽹가리
쇠,매구,깽매기,깽쇠,소금(小金)이라고도 불리는데 징 보다 훨씬 작은 모양을 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타악기의 하나이다. 즉 꽹가리의 모양은 징의 작은 형태라고 보면 되며 꽹가리는 장구와 함께 가장 중요한 장단을 연주하는 악기의 하나로서 특히 풍물놀이와 사물놀이에서는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꽹가리 주자를 상쇠라고 부르며 음악 및 춤사위 진법 등 모든 면에서 우두머리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7, 박
여섯 개의 단단한 나무 조각을 엮어서 만든 타악기이다. 한쪽 끝은 가죽끈으로 묶어 놓았기 때문에 반대쪽을 잡고 부채를 펴는 것처럼 벌렸다가 닫으면 서 치면 크고 단아한 소리가 나며 대부분의 궁중음악에 편성되며 음악의 시작과 끝 그리고 음악상의 중요한 변화가 있을 때 치며,시작할 때와 변화를 알릴 때는1번,끝날 때는3번 친다. 궁중음악 에서 지휘자를'집박'이라고하며'박'은 집박이 잡으며 음악의 내용과 진행을 잘 아는 원조악사가 집박을 맡게 되며 지휘와 감독의 임무를 수행하게된다.
8, 부
진흙 즉 점토를 구워서 만든 불화로 모양의 타악기이며 9가닥 난 대나무 채로 이 불화로 모양의 부의 가장자리를 쳐서 소리내는 악기이다. 음색은 찰찰찰 치르르 하는 식의 효과음 비슷한 소리로 매우 독특하고 인상적이다.조선조 세종 때에는 그 유명한 음악가 박연이 서울의 마포강가에서 비교적 상태가 완벽한 수준의 부10개를 만들어 사용했다는기록이 있다.
9, 바 라
자바라 또는 제금 이라고도 부르며 서양 악기의 심벌즈와 비슷하다. 군대에서 행진음악이나 대타취 또는 절에서 행하는 각종의식 음악과 춤에서 각종 무속행사 음악과 춤에서 크기와 모양새가 조금씩 다른 여러 가지 다양 한
바라가 폭넓게쓰인다.
10, 축
고려 때부터 사용해 온 이 악기는 나무로 짠 네모난 상자의 윗면 중앙에 꽂아 놓은 나무 방망이를 내려쳐서 소리내는데 나무통을 쳐서 내는 소리라 딱 딱 하는 둔탁하고 단순한 소리가 난다. 종묘제례악 문묘제례악등 제례악에서 시작을 알리는데 주로 쓰는 악기이다.
11, 어
축과 함께 고려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흰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모양을 한 나무 조각의 등 부분에 27개의 톱니를 길게 깍아 놓고 머리부분과 톱니 부분을 대나무 채로 쳐서 소리낸다. 채는 두꺼운 통 대나무를 9개의 가닥으로 길게 쪼개어 만들었기 때문에 어의 음색은 채의 갈래만큼 흩어지며 찰 찰 거리는 소리를 낸다. 음악의 끝 부분에 주로 사용하며 호랑이의 머리를 3번 후려치고 등을 1번 훑어내려 긁는 것을 모두3번
반복하면서 마치게 된다.
12, 장 구
장단을 연주하는 악기로서 아악 정악 민속악 등 우리나라 음악 전 분야에 걸쳐 가장 널리쓰이는 대표적인 타악기라고 할 수 있다. 울림통의 궁 편은 조금 넓고 채편은 조금 좁으며, 그 중간허리 부분은 가늘기 때문에 세요고 라고도 불리는데, 고려 때부터 연주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소형 장구의 그림이 고구려 고분 벽화나 신라 때 지은 오대산 상원사의 동종에 나타나고 있어 장구라는 악기가 쓰이기 시작한 역사는 더 오래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장구의 궁 편은 손이나 헝겊을 씌운 방망이 또는 나무를 둥글게 깎아 만든 궁글채로 연주하는데
궁편 소리는 넓고낮은 소리가나며 채편은 대나무를 얇게 깎아서 만든 열채로 치는데 땡땡거리는 높고 맑은 소리가 난다. 장구는 관현악합주 관악합주 소리반주 춤 반주 음악반주 산조반주 풍물놀이 등 우리음악 연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타악기이다.
13, 좌 고
소리북 보다 조금 큰 북에 태극무늬 등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늬와 색깔을 넣어 나무틀에 걸어놓고 나무 채로 쳐서 소리내는 북 종류의 타악기 이며 궁중음악 에서 가장 많이 쓰이며 통이 길지 않고 납작하며 연주시 장구가 북편을 칠 때 크게 소리를 보강하기 위해 같이 치게된다. 관현악 관악 합주등 음량이 큰 음악과 무용 반주에 주로 사용하며 매달아 놓고 앉아서 칠 수 있도록 했다는 뜻에서 좌고라고 부른다.
14, 용 고
소리북 정도의 크기에 북통에 화려한 용의 그림을 그려 놓았기 때문에 용고라고 부르며 북 몸통에3개의 고리에 무명 끈을 감아 목에 걸고 허리 높이로 늘어뜨린 다음 양손에 북채로 쳐서 연주한다.걸어가면서 연주 할 수 있어 대취타 같은 행진 음악에 사용되었다.
15, 소리북
나무(소나무)로 만든 북통에 가죽을 씌우고 통 양쪽에 가죽 갖다 대서 만드는데 양면의 가죽을 조여 양쪽 가장자리를 삥 돌아가면서 양쪽 북 면의 가죽을 각각 쇠 단추로 박아 고정시킨다. 소리 북은 북의 몸통부분을 연주하는 기법이 있기 때문에 북 양쪽 가장자리를 조금 넓게 비워두었다.북을 치는 채는 탱자나무 혹은 박달나무로 만들어 치며 북을 치는 사람을 고수라고 하는데 음악 반주 외에도 필요에 따라 상황 묘사 취임새(효과음)얼씨구,좋다,으이,잘한다 등 흥을 돋구는 역할을 한다.
16, 풍물북
풍물놀이 에 사용하는 북을 말한다.영남 지방 농악에 사용하는 북은 좀 큰 것을 사용하고 호남 지방에서 사용하는 북은 좀 작은 것을 사용하며 충청도 서산의 풍물에서는 대북 중북 소북을 동시에 다 사용하여 북의 다양 한 음색을 들을 수 있다. 오동나무나 미루나무를 통나무로 된 중앙 부분을 파내어 소가죽이나 말가죽을 대고 줄로 엮고 조여서 만드는데 북의 소리가 보다 알차게 나게 하기 위해서 하는 조치이며 풍물 북은 잔 가락을 요하지 않으므로 연주자는 장단의 중요한 박만을 힘있게 짚어 나가면서 그 힘찬 기상을 멋진 춤동작으로 표현한다.
17, 소 고
작고 얇은 북통의 양면에 가죽을 씌우고 그 북통에 손잡이를 달아서 만든 북 종류의 타악기이다.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 보다 조금 크면 법고 또는 벅구라 한다
18, 교방고
고려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궁중음악에서 관악합주와 궁중무용에 쓰였다.현재는 무고 춤이나 승전무라고 하는 춤에 쓰이고 있으며 연주보다는 무용에 춤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사용하며 예전에는 행진 음악에 북을 긴 장대 2개를 이용하여 4명의 사람이 메고 가며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무고라는 춤에서 교방고 보다 조금 큰 북통을 사용하고 또 이틀의 주위에 아름다운 장식을 한 천으로 사방을 감싸고 무대 중앙에 놓은 다음 여러명의 춤추는 사람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춘다. 교방고 와 무고는비슷하여 쉽게 구별할 수 없다.
19, 절 고
방대 라고 하는 북 받침대에 약간 비스듬히 얹어놓고 나무로 된 채로 북면 중앙을 쳐서 소리내는 타악기이다.시작할 때와 끝 낼 때 꼭 사용하며 조선조부터 현재까지 종묘제례악 문묘제례악에 쓰이고 있으며 제례악에서는 축3번 절고1번치는 것을 반복하고 음악을 그칠 때 절고3번 그 북소리에 따라 어를 세 번 긁고 특경을 쳐 음악을 그친다. 다른 악기 연주가 멎은 상태에서 시작과 끝을 알리는 이들 타악기들의 박진감 넘치는 소리는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20, 진 고
북소리가 크고 매우 진취적이라 힘차게 나아간다는 뜻으로 진고 라 부른다. 원래 중국 송나라 때 이조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며 고려 예종 11년에 들어와 궁중 제례음악에 쓰이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는 북 종류의 타악기이다. 길이가 약160cm되고 북 면 한쪽이 큰 황소 한마리가 간신히 맬수 있을만 한 크기를 가진 북 종류중 가장 큰북이다. 북통에 두 개의 큰 쇠고리가 있고 전면은 붉은 칠을 한 북을 120cm가 넘는 4개의기둥에 가로지르는 나무를 단단히 박아 만든 틀에 올려놓고 큰 나무 채로 쳐서 소리를 내며 가히 천지를 진동시킬만한 큰 소리이며 주로 시작과 끝 그리고 연주 중간 에도 노래의 매 귀절 끝에 두 번씩 친다.
21, 도
북 하나를 긴 장대에 꿰어 매단 2면 북이다. 조선조 성종 때 지은 악학궤범에 소개되어 있으나 그 당시도 쓰이지 않았다.
22, 노 도
긴 장대 위에 북통 2개를 서로 엇갈려 놓아 북 면이4면인 점이 노고와 같다.사람의 제사인 인신제에 쓰이며 노고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북으로 북의 몸통 중앙에 붙어 있는 줄이 양쪽으로 돌아가며 때려 소리를 낸다.조선조 세종 때부터 쓰이기 시작하였으며 문묘제례 등과 같은 인신제에서 시작하기 전에 3번 흔들어 소리를 낸다.
23, 뇌 도
북통 3개를 달아 북 면이 6면이 되며 북통에 검은 색을 칠했으며 천신 제향에 쓰인다.단,노고는 북채로 치며 뇌도는 흔들어서 소리를 내며 음악을 시작 하기 전에 3번 흔드는데 북통 양쪽에 달린 가죽끈이 북면을 맞아 소리를 낸다.음색은 후드드득 후드드득 하는 식의 효과음 같은 것이 되며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다.
24, 영 도
장대에 작은 황색 북 4개를 엇갈려 꿰어 놓은 8면 북이다. 음악을 시작하기 전에 세 번을 흔드는데 북통의 양쪽에 달린 가죽끈이 북면을 두드려 소리낸다.영고와 같이 지신제에 쓰였으나 현재는 악기만 남아 있다.
25, 노 고
양쪽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위 아래 가로질러 막은 사각 틀 안에 긴 북 2개를 서로 엇갈리게 교차하여 고정시켜 놓고 위에 있는 북을 북채로 쳐서 소리 내는 타악기이다.북이 2개니까 북 면이 4면이며 몸통부분에 붉은 색을 칠 하여 놓았으며 8마리 호랑이가 받치고 있으며 두 마리의 용의 조각과 맨위에 태양을 그려놓아 이 악기의 신성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제례음악 즉 인신제 에 많이 사용한다.
26, 뇌 고
노고와 같은 틀에 원추형의 작은북 6개를 매달아놓고 북채로 치는 타악기 이다. 즉 6개의 북면을 가졌으며 또 북틀에 검은 색을 칠하였고 8마리의 호랑이가 북을 떠받치고 있고 두 마리의 용이 지키고 있으며 윗 부분 중앙에는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어 그 신비감을 더하여주고 있다.뇌고는 노고나 노도가 사람의 인신제에 쓰인 것과 달리 하늘에 대한 제사 즉 천신제 에 쓰였으며 오늘날에는 천신제가 없어지면서 이 악기는 자연적으로 쓰이지 않게 되었다.
27, 영 고
영고는 뇌고와 같이 조선조 세종 때부터 궁중제례 음악에 사용되어 오던 북의 일종으로 노고와 같은 틀에 작은 원추모양의 북 8개를 매달아 놓고 북채로 쳐서 소리낸다.북면이 8면이며 또 북의 몸통은 땅을 상징 하는 노란색을 칠하였으며 땅의 신인 지신의 제향에 쓰이며 이북 역시 뇌도나 뇌고 처럼 지신 제를 지내지 않으므로 자연 쓰이지 않게 되었다.
28, 건 고
호랑이 4마리가 엎드려서 떠받치고있는 십자형의 발에 기둥이 꽂혀있고그 기둥에 큰 북을 꿰어 놓았다.그 북통 위에 작은 가마 모양의 2층으로 된'방개'가 올려져 있는 매우 화려한 북이며 이 방개라고하는 상자모양의 안에는 비어있지만 주위에는 홍색과 녹색의 비단 휘장이 둘려있고 네 귀퉁이에서 네 마리의 용이 아름다운 색깔의 실을 입에 늘어뜨리고 있고 제일 상단에는 날으는 모양의 백로가 올려져 있다. 조선조
세종 때 만들어진 이 화려한 북은 궁중의 여러 음악에 쓰였으나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
29, 삭 고
긴 통 모양의 북을 사각 틀에 매달아 놓고 치며 태양 모양의 조각을 하고 있으며 흰색 칠을 하였다. 고려 때부터 궁중음악을 시작 할 때 사용 되었으나 현재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30, 응 고
긴 통 모양의 북을 사각 틀에 매달아 놓고 쳐서 소리를 낸다. 삭고와 비슷하나 약간 작고 틀 위에 달 모양을 그리고 붉은 색칠을 한 것이 서로 다르며 고려 때부터 궁중음악에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
31, 중 고
4개의 기둥을 세우고 열 십자로 가로 댄 위에 북을 올려놓았다. 교방고와 비슷하나 중고의 북통이 훨씬 크며 용고와 함께 군대 음악에 사용되었다고 하며 현재는 사용치 않는다.
첫댓글 좋은 글 자세히 읽어 머리속에 담았어요 팔도님!~TV에서 자주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세레나님도 전주에서 활동 하시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