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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사(正陽寺)
 
 
 
카페 게시글
* 수행 자료실 * 스크랩 참선(參禪) 나의 화두
상적광토 추천 0 조회 57 17.10.25 03:2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話頭 -


"지금 여기

 어떤 것이

 나의 면목인가?"




면목面目

인간이 인간임을 이루게 하는 본래의 참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면목이란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면목이란 누구나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과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면목을 지킨다’, ‘면목이 선다’는 말은 자신의 본모습을 잃지 않고 지킨다, 불성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말이다.





불교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내 삶을 돌아보면서도 사실 화두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최근 성철 스님의 '화두참선법'을 읽으면서도 '화두'는 그저 스님들의 '일'로만 여겼다. 그러다 며칠전 '텅빈 충만'을 비롯해 법정 스님이 쓰신 책을 읽다가 불현듯 와닿는 대목이 있었다. "지금 이자리를 떠나 아무것도 없다. 죽은 화두 들고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말라"는 꾸짖음이었다. 그러면서 수덕사 금봉(錦峯) 스님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보름에 한 번씩 조실스님께 가서 공부한 것을 묻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조실스님 방에 들어가기에 저도 같이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 스님은 조실스님께 화두가 잘 안되는데 어떻게 하면 화두를 잘 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 때 조실스님께서 무슨 화두를 들고 있는가 물어보십니다. '본래면목',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이전에 본래의 자기 자신은 누구였는가 하는 화두를 들고 있다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조실스님께서 '본래면목은 그만두고 지금 당장 그대의 면목은 어떤 것인가' 하고 반문을 합니다. 질문한 당사자 스님의 심정은 어떠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곁에서 듣던 나는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고개가 절로 끄덕거렸다. 그런데 어제는 잠결에 자꾸  '본래면목은 그만두고 지금 당장 그대의 면목은 어떤 것인가' 라는 이 말이 생각나더니 급기야 '지금 여기 어떤 것이 나의 면목인가' 라는 게 내 마음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래서 "아, 그래.. 이걸 내 화두자 삼자"하고 마음을 다 잡았다. 밥을 먹든, 잠을 자든, 좌선을 하든,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앞으로는 '지금 여기 어떤 것이 나의 면목인가' 




성철스님 '화두참선법' 에서

 

-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이 무엇인고?’ 하고 화두를 들면 이것이 무엇인고?’ 하면서 가만히 들여다보고 앉아 있는 식이 되어버려 한 곳에만 마음을 두고 그 고요함에 빠져버리는 폐단이 생긴다. 그래서 이 뭐꼬(是甚?)?라는 화두 자체가 경계가 되어버린다.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고?’처럼 해야 들여다볼 수도 없고 경계에 따라서 이리저리 따라갈 수도 없게 된다.

 

- ‘父母未生前 어떤 것이 나의 본래면목인가?’

-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마라. 바로 이러한 때에 어떤 것이 너의 본래면목인가? <육조스님이 도명스님에게 물음>

부모 몸 받기 전에 과연 내가 뭐였던가?’처럼 내가 뭐였는가를 자꾸 생각하다 보면 소였는가, 개였는가 그런 생각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뭐였던가?’ 말고 어떤 것이라는 이 如何是를 기억해야 한다.

 

- 조주스님이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 없다고 했는가?’

조주스님이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한 무자 화두의 경우 無字, 없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면 상대적인 유무의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러니 유무를 떠나서 조주스님이 분명히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 없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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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4.09 20:53

    첫댓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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