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중을 위한 속죄제(레 4:13-21)
본문은 회중이 범한 죄에 대한 속죄를 말씀하고 있다. 죄 중에는 개인의 죄가 있고 단체의 죄가 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살인자들은 누구일까? 대제사장? 아니면 장로들? 성경은 온 백성들 역시 예수님을 죽인 살인자임을 고발한다(마 27장. 행 2:33-36, 5:30). 그러므로 그들 모두에게는 속죄가 필요하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의 죄를 그릇(부지중) 범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레 4:1-2, 13, 22, 27절). 즉 죄를 지으려는 의도가 없음에도 부지중에 죄를 짓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레 4장의 그릇 범한 죄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 안에 있는 죄를 의미한다.
죄는 아담이 타락할 때에 인류에게 들어왔다. 이것은 아담의 타락이 죄가 우리 존재 안으로 들어 올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롬 7장은 죄가 우리 육신 안에 거한다고 분명히 말씀한다(17, 20, 23절).
롬 7장에서 우리는 바울의 두 인격을 본다. 한 인격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고, 또 다른 인격은 죄를 짓는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20).”
롬 7장은 우리가 구원받기 전뿐 아니라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말씀이다. 현재 우리는 바울과 같이 내적인 전쟁을 하고 있다. 성령과 하나 된 우리의 속사람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행인. 그리고 외국인으로서 삶을 살고자 한다. 그것은 본향을 사모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우리의 겉사람은 이를 반대한다. 바울은 갈 5:26절에서 이렇게 교훈한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 그렇다. 선을 행하는 우리에게 세상의 헛된 영광을 취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고백과 같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며 탄식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유하다. 기뻐한다. 왜냐하면 그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15절에서 속죄제의 제물은 여호와 앞에서 잡혔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속죄 제물로서 하나님 앞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며,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인정 받으셨음을 의미한다(사 53:10).
우리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하지만 어느 때 롬 7장에서 바울과 같이 탄식할 수 있다. 하지만 곧 우리는 담대해진다(롬 8:1-2).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무릇 범하는 것으로 여기시고 그 아들의 피로 우리를 속죄하셨기 때문이다. 그 사랑과 은혜가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함 속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