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옷의 수도사> 관극 후기 20240506
김혜연 / 작가, 배우
극장 안과 밖, 무대와 객석, 현실과 망상을 넘나들며 발생하는 긴장감
이것이 이번 <검은 옷의 수도사> 관람에서 가장 크게 감각한 것이다. 극장 출입문을 열며 등/퇴장 하는 인물들 뒤로 불쑥 나타나는 극장 밖 현실 세계. 그 세계의 소음, 이게 공연의 일부임을 모르던 행인의 당황스러운 표정, 차가운 밤공기 등이 하얀 의상을 차려 입은 인물들과 대비되는 배경이 되면서, 어쨌든 이미 엔딩은 정해져 있는 본 극에 예측불가 진짜 현실의 신선한 감각을 불러들이며, 결국 극이 현실의 반영이자, 우리의 이야기 임을 새삼 상기 시켜준다. 연출 된 극에 연출될 수 없는 진짜 현실이 불쑥 나타나면서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생(生)의 강렬한 감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배우의 표정 주름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서로 가까운 무대와 객석은 관객으로 하여금 사건 현장을 눈 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하는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중간에 뻬쏘쯔끼가 관객을 끌어들여 대화를 할 때에는 순간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며 이것이 단순히 관객을 참여하게 하는 재미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넘어 ‘경계를 넘나든다’는 극 전반의 인상을 보다 또렷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인물들이 소설 낭독을 하듯 상황 설명을 하다 대사를 하는 것도 인물들이 극 안과 밖을 오가는 듯한 흥미로운 효과를 주었다.
무엇보다 제일 흥미로운 것은 수도사와 꼬브린의 조우였고, 이후에는 꼬브린이 수도사를 다른 인물들도 본다고 착각하는 순간이었다.
상식이라는 폭력 속에 죽어가는 영감
아이일 때에는 귀엽게 여겨지던 상상 속 친구는 어른이 되어서는 이별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린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처럼. 검은 옷의 수도사는 어린 시절 빙봉이기도 하고, 예술가에게는 영감의 원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존재가 현실 밖으로 튀어 나온 것으로 감각 한다면, 그것이 치료 되어야만 하는 병일까. 그저 강렬한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받아들여주면 안 되는 것일까. 꼬브린의 말처럼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면. 이상해 보인다고 그래서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제거해야 하는 존재일까.
불과 물 사이에서 견디다 못해 증발해 버리고 마는 꼬브린
그렇다고 수도사의 환상을 보는 꼬브린만이 상식 밖이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딸에게 비난을 받을 정도로 정원 일에 집착하는 뻬쏘즈끼나 환상을 보는 꼬브린을 이해하기 보다 자기 상식과 우유를 강요하더니 아버지의 죽음을 꼬브린의 탓이라며 비난하는 따냐. 한 때 대립한 부녀를 화해시키기도 했던 꼬브린은 이 불과 물 같은 부녀 사이에서 결국 견디다 못해 증발해 버리고 만다.
그렇게 사라질뻔한 꼬브린은 두 번째 부인 바르바를 통해 잠시나마 구름으로 현실에 머물지만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의 죽음은 망상이라 비난 받던 영감과 상상의 자유를 잃어버린 한 개인의 죽음일 뿐 아니라, 상식이라는 불리는 것을 강요 받으며 죽어가는 사유의 자유와 상상력의 죽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