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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의 인연 이야기】
수필과 맞닿은 스님과의 특별한 ‘인연’
- 대강백(大講伯) <지안(志安)스님>을 ‘인터넷 책방’에서 만나게 된 사연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전 금강일보 논설위원, 『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 저자
그 먼 곳에 있는 절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통도사 반야암>.
열차나 버스, 승용차 등 그 어떤 교통수단으로도 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직접 발로 찾아가 본 것만큼이나 사찰 경내를 눈과 가슴으로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 통도사 반야암(BBS불교방송 <선림산책> 캡처 화면)
인터넷 카페와 불교방송(BBS ‘선림산책’) 덕분이다.
단순히 사찰 경내를 둘러 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사찰을 창건한 회주이자 대강백(大講伯) 스님인
지안스님의 육성을 감명 깊게 들었다.
이런 특별한 ‘인연’이 또 어디 있는가.
삶의 지혜를 주고,
정신 세계를 맑게 해주는 큰 스님을 영상을 통해 만나 뵙다니……
▲ 지안스님 프로필을 소개한 불교방송 화면 캡처
나는 그 절의 신도가 아니다.
누구로부터 사찰을 소개 받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경내를 찬찬히 둘러보고,
회주이자 대강백이신 큰 스님의 향기로운 말씀을
생생하게 듣게 됐으니 보통 인연인가.
인연은 <수필>과 맞닿아 있다.
나는 평소 수필을 쓰면서
수필(隨筆)은 수필(修筆)로 써도 좋다고 생각해 왔다.
인연의 시작은 인터넷 ‘연관 검색어’에서 비롯됐다.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 올린 나의 졸고 수필이
<통도사 반야암> 카페의 ‘지안스님 책방’과 맞닿아 있음을 발견했다.
어쩌다 발견한 한 편의 수필이 아니었다.
나의 졸고 수필이 스님과 신도들에게 3편이나 소개됐다.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 / 윤승원>(2020.11.02.),
<아버지의 쌀가마 / 윤승원>(2021.07.08.),
<쑥향의 계절에 만나고 싶은 사람 / 윤승원>(2022.04.04.)
몇해 전에 『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이란 제목으로 수필집을 펴낸 적이 있다.
<통도사 반야암 오솔길>카페 <지안스님 책방>에 소개된 나의 졸고 수필을 보니까,
『스님의 책방에서 만난 나의 수필』이란 제목으로 다시 수필집을 내야겠다는
충동을 느낀다.
▲ 필자의 졸저 수필집 『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2019) - 존경하는 역사학자 정구복 교수가 <추천사>를, 송백헌 문학평론가가 <서평>을 썼다. <문학관 기획전시실>에 대형 전시물로 과분하게 전시된 나의 수필만큼이나 <스님의 책방>에 나의 졸고 수필이 소개된 것은 과분하면서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 지안스님의 <카페 책방>에서 과분하게 대접 받은 필자의 졸고 수필 3편(첫머리 캡처)
<책을 유난히 좋아하시는 지안스님>.
절을 창건할 때도 <책>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고 불교방송 인터뷰에서 밝혔다.
‘책 놓을 방 한 칸’을 찾다가 우연히 새로운 절을 짓게 됐다는
<책을 사랑하시는 지안스님>.
‘독서광(讀書狂)’이란 표현이 감히 스님께 무례한 언어지만
그보다 적절한 말을 당장 찾기 어렵다.
방대한 독서량.
종이책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글은
꼭 카페 <책방> 코너에 옮겨 수많은 불자에게 소개해 주시는 스님,
불경이며 중생이 살아가는 다양한 갈래의 이야기이며,
웬만한 도서관 서가(書架)만큼 읽을거리가 풍부한 스님의 인터넷 카페.
▲ 이곳에 사찰을 짓게 된 특별한 사연을 밝히는 스님(BBS불교방송 인터뷰 화면 캡처)
어떻게 나의 보잘 것없는 졸고 수필까지 발견하시고 옮겨 놓으셨을까.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모처럼 <글 대접>을 제대로 받은 것 같았다.
아, 공부를 많이 하셔서 그럴까,
끊임없는 수행 정진을 통해 텅빈 충만의 기쁨을 얻으셔서 그럴까,
온화한 인품이 느껴지는 인자한 풍모에다가 나지막한 억양의 부처님 닮은 말씀.
지혜와 학식이 큰 강물처럼 흐르는 대강백(大講伯) 스님의 첫 인상이었다.
비움과 청백의 실천을 통해 중생을 계도하고,
반듯한 삶의 방향을 나침반처럼 가르켜 주시고 일깨워주시는 맑은 영혼의 큰 스님.
‘지안(志安)’이란 법명은 스승이셨던 ‘벽안(碧眼)스님’이 주셨다고 한다.
○ 지(志) : 출가한 입지를 바로 세워
○ 안(安) : 중으로서 일생을 편안하게 살아라
▲ 스승의 말씀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지안스님(BBS불교방송 인터뷰 화면 캡처)
지안스님은 학처럼 고매하셨던 스승(벽안스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중은 한평생 안 태어난 요량으로 살아야 한다.”
당시에는 그 말씀을 듣고 망치로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커다란 충격과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금생(今生), 즉 이번 생은 애당초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속심을 버리고 정진해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으로 해석하고 살아왔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마음이 편치 못하고 힘들 때는
<스스로를 경책하게 만드는 스승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청백가풍(淸白家風)의 가르침>을 주신 스승이 입적한 지 25주기를 맞이하여
행적과 가르침을 기록한 책을 제자들이 발간하였는데,
기념문집 제목을 『청백가풍의 표상』이라 지었다고 한다.
엄격한 법도를 지키면서 평생 청렴하게 사셨던 스승을 회고하는 대목이다.
그런 존경스러운 스승 아래 공부하고 수행 정진해온 지안스님.
어쩌다 인터넷에서 나의 보잘 것 없는 졸고 수필을 발견하시고
과분하게도 ‘반야암 오솔길’ 타이틀이 붙은 귀한 <스님의 책방>에 소개하셨으니,
필자로서 이런 영광이 어디 있는가. 감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내 졸고 수필에 달린 수많은 댓글이 필자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처음엔 “- () -” 이게 무슨 표시인가 의아했다.
어느 신도는 ‘겹 괄호-((0))-’ 표시를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합장’의 뜻이었다.
▲ 졸고 수필에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신 스님과 신도들의 댓글 - ()()()- 합장 표시가 인상적이다.
그렇다. 많은 언어가 필요하지 않다.
글을 읽고 ‘합장’과 함께 ‘고맙습니다’라고 하면 족하다.
합장-()()()-으로 함축한 깊은 뜻을 헤아리니,
최상의 독자 응원이 아닌가 싶다.
소중한 메시지 ‘합장’을 통하여
필자는 미지의 또 다른 귀한 인연을 만나는 기분을 느낀다.
보잘 것 없는 저의 졸고 수필을 따뜻하게 대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4.19.
대전에서 윤승원 - ()()() -
【지안스님의 또 다른 면모】
지안스님은 시인이다. 시집도 펴냈다.
『바람의 자유』(2021.8.2. 사유수 刊)
"시를 쓴다는 것은 내 공부입니다.
나는 평생 경전을 공부한 사람인데,
화엄경이나 법화경 경문 속에는 반드시
운문으로 된 게송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시입니다.
그래서 불경을 많이 보면 자연히 시상이 떠 오르고
시심이 생깁니다."(지안스님 인터뷰 중에서)
■ 책 소개
〈바람의 자유〉는 통도사 강주와 조계종립 승가대학원장, 교육원 역경위원장, 고시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전통적인 경전강의와 승가교육에 힘써온 통도사 반야암 지안스님이 출간한 첫 시집이다.
스님은 경전공부를 하거나 매일 아침 영축산 산책을 하면서 떠오른 시상을 글로 적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내 공부입니다. 나는 평생 경전을 보고 살아왔습니다. 대승불교의 꽃이라고 하는 ‘화엄경’이나 ‘법화경’ 경문 속에는 반드시 운문으로 된 게송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입니다. 실제 불경을 많이 보면 저절로 시심이 생기지요.”
지안스님은 100여 편의 시 가운데 ‘별을 보는 밥’을 예로 든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이때 어둠은 중생의 어두움 즉 탐욕과 무지를 뜻하고 반짝이는 별은 부처님의 깨달음과 지혜의 광명이다. 사람은 누구나 번뇌의 하늘에서 무명을 밝혀나가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시집 〈바람의 자유〉는 ‘산창의 풍경’ ‘달을 보는 부처님’ ‘돌의 자화상’ ‘동백꽃 연기’ 총 4장으로 구성되었다.
■ 저자소개 <지안스님>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강주, 조계종 종립 승가대학원장,
직지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교육원 역경위원장, 고시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통도사 반야암에 주석하면서 교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는 한편 재가 불자들을 위한 경전 강좌 모임도 이끌어가고 있다.
저서 /
우리는 지금쯤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
왕오천축국전(역서)
연꽃잎 달빛 향해 가슴 열고(선시 해설집)
마음의 정원을 거닐다
대승기신론 신강
마음속 부처 찾기(선가귀감)
성지에서 쓴 편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본문에 나오는 시 몇 편/
석등
절간 마당 한쪽
낮이나 밤이나
천년을 말없이
돌기둥이 등이란 이름으로
모자를 쓰고 서 있다
세월이 풍화하도록
작은 돌창 열어놓고
밤길 갈 일 없이
서서 기다리는
새벽의 범종 소리
유사시가 아니면
아예 불 켤 일도 없는데
등은 웬 등
불이 없어도
돌이 방광을 하누나
불두화(佛頭花)
그대 보고픈 날
불두화 피었다
초록빛 타고 온
동군(東君)의 뜰에
정토의 소식이 꽃으로 피었다
망향의 그리움에
몸져누워 있던 날
세월의 창밖으로
풍경소리 울리더니
소복한 옷 겹으로 포개 입고
마지(摩旨) 밥 지어 올리려 하는가
봉오리 손 모아
합장을 한다
별을 보는 밤
달빛 없는 별밤은
어두워서 좋은 밤이다
별은 어두워야 빛난다
고요의 무음이 소리로 들려
산창을 열고 별을 본다
지상의 슬픔이
별빛에 사격 당해
어둠 속에 사라지고
새로 탄생하는
목숨이 빛이 별이 되어
반딧불처럼 날아간다
번뇌의 하늘에도
별은 반짝이거니
적조(寂照)의 빛 자국이
윤회의 바다 등대런가
비상(飛翔)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
구만리 장공을 날고 싶어라
겁초(劫初)의 사람은
날아다녔다지
업(業)이 무거워져 땅을 디딘
숙명의 슬픔이
눈물로 대지를 얼룩지게 하고
제 몸 숨길 자리 찾아 헤매는데
죄업의 숨바꼭질 그치고
수미산을 날아 넘어
차라리 천계(天界)의 풍월이 되어
빛나는 얼굴로 강산을 비추리
만고장공(萬古長空)
일조풍월(一朝風月)
그리운 향수여
해탈의 꿈이여
바람의 자유
꽃잎이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바람 속에
먼 바닷가 파도 소리가 들린다
산바람이 바닷바람을 만나러 가
바닷바람을 데리고 오니
파도가 실려 왔나 보다
세상천지를 자유롭게
막힘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오갈 수 있는 바람의 자유
갈 데가 없어도 모든 곳 다 가
언제라도 좋고 어디라도 좋다
일 있으면 일어나고
일 없으면 잠을 잔다
내 마음도 꽃잎처럼 나비처럼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지도(地圖) 없는 곳으로 날아가는
자유의 바람이 되고 싶어라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 필자가 덧붙이는 <사랑방 이야기>
지안스님 시집 관련 자료를 찾다가 <고 송백헌 박사>를 떠올린 이유 윤승원 지안스님이 출간한 시집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깜짝 놀랐다. 초강 송백헌 박사가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생시에 필자에게 각별한 사랑과 가르침을 주시고, 술자리도 자주 가졌던 초강 송백헌 박사(1935~2021, 문학평론가, 충남대학교 교수)가 생시에 그토록 자랑하던 제자 <정효구 교수>가 <지안스님 시집에 해설을 썼다>는 사실이 놀랍다. 송백헌 박사는 내게 정효구 교수를 자주 언급했다. 송백헌 박사의 해외여행기 『파타야 해변에서 별을 헤다』(종려나무, 2019.)에 관해 정효구 교수가 서평(「‘行萬里路’의 고전적 여행기가 지닌 향훈」)을 썼다고 대단히 자랑스러워했다. 송백헌 박사는 정효구 교수가 쓴 서평을 크게 고마워하면서 내게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 송 박사는 생시에 글을 쓰면 내게 가장 먼저 이메일로 보내주면서 객관적인 소감을 들려 달라고 했다. 나의 소감은 순수한 인정과 정서에 기초한 것이었지만, 때로는 감히 생각을 달리하는 부분도 말씀 드렸다. 심지어 고쳤으면 하는 오탈자까지 지적하는 등 치밀함을 송 박사는 좋아하셨던 것이다. 덕분에 존경하는 송 박사에게 술을 자주 얻어 먹었다. 다음은 송 박사가 내게 이메일로 보내주었던 <정효구 문학평론가>의 프로필이다. 【정효구】 : 여류평론가, 충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5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평단에 등단하였다. 현재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녀는 『시 읽는 기쁨 1-3』, 『현대 한국시와 평인(平人)의 사상』 등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2016년 현대불교문학상을 받았다. ♣ ♣ ※ 송백헌 박사가 그토록 자랑하던 정효구 교수가 지안스님의 처녀 시집에 해설을 썼다는 사실은 내게 호기심을 넘어 눈에 번쩍 띄는 <뉴스거리>가 아닐 수 없다. 문단에서도 화젯거리가 될만하다. 송백헌 박사와 인연이 깊은 문인들은 정효구 교수에 대해서도 익히 잘 알고 있을 터이므로. --------(수필문학인 윤승원 소감) |
■ 서평
해설 / 정효구(문학평론가, 충북대 교수)
산중실록(山中實錄), 심중유사(心中遺事)
1. 산중에서 불어오는 소식
무슨 말을 더할 것이 있겠는가?
지안(志安) 스님의 시집 원고를 읽으면서 나는 그저 청취자의 자리에 머무르는 기쁨의 시간을 한껏 가졌다. 본래 시란 ‘기(氣)로 교감하는 양식’이거니와, 법담(法談)이자 선담(禪談)과도 같은 고승의 시를 읽을 때엔 더욱이나 기감(氣感)의 공명이 필요할 뿐 그 밖의 다른 것은 가외의 일이다.
청취의 기쁨! 그것은 말하는 사람에 대한 크나큰 신뢰와 외경이 만드는 고차원의 경험이다. 그렇게 상대를 온전히 믿으면서 자기자신을 무장해제하듯 열어놓고 비워놓을 때, 그 자리엔 새 소식이 흠결 없이 첫날의 언어처럼 찾아와 안기면서 그 새 소식을 듣는 이의 귀뿐만 아니라 속마음까지 맑혀주고, 속마음뿐만 아니라 세계와 일상까지 맑혀준다.
사실 이런 청취의 기쁨과 그 시간을 모든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그리워한다. 그런 그리움이 뭇 사람들로 하여금 새 소식이 불어오는 곳으로 귀를 기울이게 만들고, 먼 길을 떠나는 순례객처럼 어느 땐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서게 한다. 이 땅에서 그런 새 소식의 오래된 산실이자 진원지를 꼽아본다면 ‘명산(名山)’과 ‘산사(山寺)’, 그리고 ‘산승(山僧)’과 ‘시승(詩僧)’이 머무는 곳이 대표적이다.
이들을 모두 일컬어 ‘산중(山中)’이라는 한마디 말로 표현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지안 스님의 이번 시집은 ‘산중소식지’이자 ‘산중실록집’이다. 지안 스님은 이번 시집을 통하여 뭇 사람들이 존재의 심연 속에서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며 찾아가고 싶어 하는, 덧나지 않은 오지(奧地)의 진실한 산중소식들과 그 기록들을 봄날의 미풍처럼, 여름날의 해풍처럼 배달해주고 있다.
도대체 산중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지안스님의 소식지이자 실록집에 의하면 그곳에선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산중은 개산(開山)의 그 시절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사(無事)의 전통을 유지하고, 산중은 언제나 적멸을 주인공으로 품어 안고 살며, 산중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아무일도 되지 않는 묘용을 함께 공부하는 곳이다.
그러고 보면 뭇 사람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며 귀를 기울이고, 때론 먼 길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연인이라도 만나러 가듯 발길을 뜨겁게 내딛는 그 산중의 중차대한 소식은, ‘아무 일이 없다’는 그 단순하나 심오한 무사의 소식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산중에서 불어오는 소식이자 새소식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소식을 들음으로써 마치 잘 달여진 탕약을 먹은 것처럼 안심을 하고 일상을 다시 사는 힘을 얻는다.
지안 스님은 당신의 시집에서 영축산과 운장산의 소식을 가장 많이 전한다. 그 산들은 누구도 편애하지 않는 ‘불인(不仁)’의 ‘평등성(平等性)’을 지닌 무심과 무위의 산이지만, 지안 스님은 그 산에서 보배로운 소식을 법성게의 보배비를 받아 안듯 진정 큰마음의 그릇으로 받아 지니고 산다. 이런 일은 지안 스님이 산과 깊이로 산 세월의 용량과 그 산과 한마음으로 산 세월의 무게와, 그 산과 도반이 되어 길을 걸어간 세월의 너비를 알려준다.
지안 스님이 전하는 산중의 새 소식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아무 일이 없는’ 이곳엔 봄이 오니 산천의 축제가 벌어진다, 날마다 산간의 새벽은 천지인의 깨어남을 지키고 있다, 불어난 계곡물 위의 꽃잎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나뿐만 아니라 꽃들도 나를 붙들고 얘기 좀 하자고 그런다, 눈(雪)이 내려 일색이 되니 눈(眼) 밖에 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눈 내려서 백화도량이 되니 감로의 향기만이 가득하다, 산물을 다 내려 보낸 골짜기는 혼자서 쉴 수 있는 은신처이다… 등과 같은 것이다.
위의 실례들은 시집에서 필자의 눈길이 머무는 대로 적어본 내용들이다. 이런 ‘아무 일이 없는’ 산중의 소식은 그야말로 상대(相對)의 문법에 갇혀서 아프게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절대(絶對)의 실상세계를 알려줌으로써 그들을 일깨우고 안심시키는 양약이자 치유제이다.
2. 심중에서 우러나는 소리
지안 스님의 시집 속엔 아주 인간적인 면모들이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깃들여 있다. 시라는 세속 양식에 어울리는 언어와 그 구체화 과정을 거치는 데서 나타난 하나의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시란 그것이 시선일규(詩禪一揆)요, 시심선심(詩心禪心)이며, 시선불이(詩禪不二)라는 견지에서 볼 때, 상대의 세계에서 빚어지는 인간적인 면모를 절대의 세계로 청정하게 하는 일이요, 절대의 세계가 전하는 소식을 상대의 세계가 지닌 인간적 언어로 재생시키는 일이다. 절대와 상대, 상대와 절대가 서로 만나는, 아슬아슬하지만 가능한 일이 여기서 탄생하고 있다.
지안 스님의 머리말을 보면 스님은 출가 전에 시인이 되려고 한 적이 있었으나 빨리 도(道)를 알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시를 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 돌이켜보니 반은 잘 했다고 생각되면서도 반은 후회스럽기도 하다고 한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시선일규요, 시심선심이며, 시선불이라는 경지를 통찰하고 닦아놓은 전통이 있지 않은가. 필자의 경우 꽤 긴 시간 동안 시를 공부하면서 ‘도’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살아온 셈인데, 그야말로 상대의 세계에서 시작하는 시는 궁극적으로 도에 이르게 되고, 절대의 세계에서 시작하는 도는 현실세계로 나오고자 하면 어떤 다른 양식보다 시를 만나기가 쉽다는 말을 할 수 있다. 특별히 불가의 게송들을 보면 이런 생각은 아주 짙어진다.
언어와 언어 너머, 언어 너머와 언어현실, 이 둘은 도심(道心)과 시심(詩心)이 인간계를 떠날 수 없는 한 타협하고 화해하고 격려하며 사랑할 수밖에 없는 포월(包越)의 도반이다. 이 포월의 묘용에서 시와 도, 시심과 도심은 본질과 현상을 함께 끌어안을 수 있다.
지안 스님의 심중에선 어떤 소리들이 우러나오고 있는가. 스님의 시집 속에선 인간적인 소리와 각성의 소리가 늘 이중주처럼 흘러나온다. 전자의 소리가 뭇사람들의 감성에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면 후자의 소리는 그들로 하여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낯설지만 신선하고 편안한 본래자리를 만나게 한다.
가령 지안 스님은 당신의 시 〈살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에서 ‘살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들 열거한다. 그때 삶은 현실의 언어처럼 구체적이고, 그런 경험은 뭇 사람들과 함께하는 동질감의 요소이다. 그러나 그 살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의 ‘삶’에 대한 각성된 통찰은 보통사람들의 삶이 지닌 상대성을 초탈하게 한다.
또한 지안 스님은 작품 〈구름처럼 물처럼〉에서 인생이란 정처 없는 떠돌이이자 운수행각과 같은 것이라는 말을 통해 뭇 사람들의 동질감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그 떠돌이의식과 운수행각의 심층은 세상사 전체를 염주처럼 목에 걸고 길을 떠나가라는 작중 화자의 말에 의해 객수(客愁)의 길이 아닌 주인의 길로 전변된다. 객수인의 방랑과 주인 된 자의 밝은 무상성이 여기서 하나로 만나며 차원변이를 일으킨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심중의 넘나듦과 공존은 색(色)이 공(空)이며 공(空)이 색(色)이라는 불가의 중도 법문에 닿아 있다. 그 중도의 묘용은 상대의 세상과 절대의 세계를 함께 직시하며 포월하는 것이고, 이들 사이의 일그러진 틈을 편안하게 이어주는 일이다.
필자는 지안 스님의 시집을 청취하는 동안 산중과 사하촌을 연결하는 불가의 많은 다리들을 떠올렸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불가의 다리들은 이쪽과 저쪽을 표 나지 않게 하나로 이어주는 신비의 길이다. 특별히 필자가 해인사를 처음 방문하였을 때 보았던 사찰 초입의 ‘허덕교’는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 너무나 생생한 ‘신비의 길’의 표상으로 기억된다.
허덕(虛德)! 그 허의 덕이 상대의 세계와 절대의 세계를 이어준다. 그리고 상대의 소리와 절대의 소리를 하나가 되게 한다. 지안 스님의 이번 시집은 이런 든든하고 편안한 불가의 다리와 같다. 시와 도를, 세상과 산중을 한 자리에 무사히 앉힌 고승의 무르익은 시법(詩法)이자 시어(詩語)이다. - 정효구(문학평론가, 충북대 교수)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1zDa2_dZAU&t=28s
▲ 지안스님 시집 출간 관련 방송 보도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3-jtvm8kQu0&t=1193s
▲ BBS불교방송 <지안스님 인터뷰>1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NfyMKzyT9Sc
▲ BBS불교방송 <지안스님 인터뷰>2 바로가기
첫댓글 ♧ ‘한국경찰문학회’ 대화방
◇ 김문선(여류시인, 수필가, 경찰가족) 2022.04.19.11:23
열거하신 스님과의 文緣이
마치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본듯합니다.
저도 불교 신자라 더욱 심도 있게 읽은듯하고요,
문운을 기원합니다.
▲ 답글 / 윤승원
고맙습니다. 우연한 만남이 감동의 文緣으로 이어지니
혼자 간직하기 어렵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니
제가 매일 산책하는 대전 내원사 앞 길거리에도
연등이 곱게 매달렸습니다.
김문선 님의 따뜻한 답글이 저의 집 화단에 만개한
라일락 향보다 더 진합니다.
♧ 카카오톡 대화방
◇ 한만환(산악인, 불교신자) 2022.04.19.10:45
불교계의 학승 대강백으로 유명한
큰 스님이시지요.
70년대 명문대학을 다니다가
출가하신 스님인데
윤 작가님이 인터넷 글방을 통해 친견을 하셨네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좋은 스님과의 대화가
뜻깊게 다가오네요.
다시한번 스님에 대하여
알고 갑니다.
좋은 소식 고맙습니다.
▲ 답글/윤승원
잘 아시는 스님이군요.
언제 기회가 닿으면 그곳에 가서
‘스님 책방’도 보고 싶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곧 다가오는군요.
좋은 날 보내세요.
♧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문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2.04.19. 16:38
윤 선생의 글이 길고 긴 글이지만
인연의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서 순식간에 다 읽었습니다.
이제 수필과 시의 만남, 문학인의 만남,
모두가 인연 아닌 게 없습니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정효구 교수님의 평은 깊은 불교 이론이
시학과 만나는 묘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천 윤 선생의 이런 장문의 글이 술술 나옴은 감탄을 넘어 부러울 뿐입니다.
그리고 스님들의 얼굴에는 미소와 평화로움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불교 신자들이 ‘올사모’ 카페에 들어오는
인연을 만드셨군요.
정진, 동행! 감사!
▲ 답글 / 윤승원
정 박사님께서는 누구보다 불심이 깊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소 올사모 카페 옥고에서도 그렇게 느꼈고,
지난 해 제게 소개해 주신 이상현 교수의 『관자재보살들』,
정철재 에세이 『그거, 마음이구먼!』 책자에서도 알 수 있었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정 박사님의 명 저서 『우리 어머님』에서도 <불교에 귀의>라는 대목이 나오지요.
어머니를 불교와 인연 맺게하셨다는 대목이지요. 또 이런 구절도 나옵니다.
“1968년부터 불교를 믿게된 나는 성락훈 선생으로부터
원효의 《대승기승론소》를 한문 원전으로 배우게 되어
웬만한 불교 경전은 혼자 스스로 읽어도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
정 박사님께서 저의 장문의 졸고를 술술 읽으셨다는 말씀은
단순히 제게 듣기 좋으라고 하신 칭찬이라기보다
깊은 불심에 따라 ‘지안스님과의 인연 이야기’가 술술 읽혔다는 말씀으로
느껴집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저의 이런 뜻하지 않은 <인연>을 통해
부처님의 자비심과 더불어 지안 큰 스님의 맑은 영혼이 담긴 시 작품도
많은 독자와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