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가 왕이 되려는 노력보다 다른 생각에 골몰하는 게 불안했던 슈도다나 왕이 왕자를 불러 묻는다.
"싯다르타여, 지금 너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게 무엇인가?. 우리 함께 풀어보자꾸나."
"왕이시여, 저는 지금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내가 늙고 병들고 죽는 문제에서 헤어 나올 수 있습니까?.
그리되면 행복할 것입니다."
"왕자여, 그 문제를 풀 수 있다면 내가 왕 자리에 앉아있겠느냐?. 벌써 그 길로 달려갔지.
그 문제는 인간 몸으로서는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왕이 되어 선정을 베풀어 백성이 행복하고 풍족하게 해 주면 죽어서 천신이 될 것이요, 그러면 많은 괴로움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좋은 왕이 되도록 노력해야만 하리라."
"알겠습니다" 하고 자리를 물러나왔지만, 그는 죽어서 천신이 되어야만 한다는 답에 만족할 수 없었다.
외아들로 자기가 왕이 되지 않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왕이 되는 게 최선의 답이 아닌 것으로 보여
그는 모두가 잠든 새벽 모든 것으로 버리고 출가를 감행한다.
출가하여 명상법을 배워 최고의 명상 마스터가 되었고,
온몸으로 받아들인 6년 고행으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출가할 때 세운 '일체 괴로움을 끊고, 모두를 평안하게 하리라' 하는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6년이나 수행하던 고행림을 떠나 보리수 아래에 자리를 펴고 앉은 까닭은..
'내가 없으면 무슨 괴로움이 있을쏜가' 하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 ego'를 살아서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으로 여기고 있다가 문득
'나'는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기억하는 데이터가 많이 쌓이면 그 데이타가 스스로 일으킨 자각임을 알고..
'나'는 부모로부터 태어날 때 함께 있던 게 아닌
경험과 기억이 쌓여 '나'라는 지각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있는 것인지를 생생히 관찰하려는 마음이 일어났다.
하여 먼저 보고 아는 게[안식2] 어떻게 생기는지 그 과정을 세밀히 관찰하니..
보는 자[안]와 보이는 대상[색]이 만나면 그것을 알 수 있는 경험[안식1, 범주]이 일어나 안식2가 생긴다는 것으로 관찰했다.
이때 보는 자[안]와 보이는 대상[색]은 뇌 안에서 만나고 있는 것으로.. 몸의 눈[안근]과 외부에 있는 대상[색경]이 아님도 관찰했다.
그뿐 아니라 뇌 안에서 작용하고 있지만.. 실은 마음 안에 들어와 만나고 있음을 관찰하니..
보는 자[안입처]와 보이는 대상[색입처]은 마음을 연해 일어난 것임을 알았다.
이렇게 마음을 연해 생긴 보는 자가 쌓이면.. 그것을 보는 '나'라고 하는 것임을 분명히 관찰했다.
그리고 마음에 생긴 대상은 외부로 투사하여 자기가 생각한 모습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 것임을 분명히 관찰했다.
다른 감각기능인 듣는 자, 냄새 맡는 자, 맛 아는 자, 촉한 자 역시 같다는 것도 분명히 관찰했다.
고로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은 살아있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지.. 부모로부터 태어나면서 존재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관찰했다.
만일 보는 자가 본래적이 아닌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면..
원하지 않는 것인 괴로움이 생기게 하는 보는 자는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괴로움을 생기게 하는 게 무엇인지 깊이 관찰하니.. 탐욕과 무지임을 관찰했다.
239. 결경(結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의 미후지 곁에 있는 2층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결박되는 법과 결박하는 법에 대하여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결박되는 법인가? 안과 색·이와 성·비와 향·설과 미·신과 촉·의와 법이니, 이것을 결박되는 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결박하는 법인가? 욕망과 탐욕을 말하는 것이니 , 이것을 결박하는 법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하여 탐욕과 무지를 없애고 보니.. 과연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괴로움이 일어나고 머무는 '나'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망고를 보아 배가 고프니 따서 먹지만 더 이상 욕심은 일어나지 않았고..
망고를 먹는 자를 '나'라는 하지만, '나'가 있고, 그 '나'가 먹고 싶다는 탐욕이 생겨 망고를 먹는 게 아님을 분명히 보고 있다.
망고를 보는 눈이 있고, 망고라 불리는 대상이 있지만..
그것은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하고 있으니.. 망고라 불리는 것은 잠시 뿐이다.
먹고나면 벌써 망고는 사라지고 없다.
어제의 눈과 오늘의 눈이 같다고 아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식의 작용으로 아는 것인데..
식은 그렇게 기억하는 능력일 뿐, 식이 '나'가 아니다.
설사 그것을 나라고 해도 항상하지 못하는 무상하게 변하는 자일 뿐이다.
그렇게 변하고 있는 자를 항상 존재하는 아트만이라고 하는 것은 착각이요, 틀린 것이다.
그런 아트만은 없다.
보는 자가 생기면 동시에 보이는 대상이 생긴다.
보는 자가 사라지면 동시에 보이는 대상이 사라진다.
인간의 눈이 되면 물로 보이는 것이 천상에서 보면 반짝이는 보석으로 보이고,
아귀에게는 뜨거운 불로 보이며, 물고기에게는 먹고 쉬고 잠자는 집으로 보인다.
물은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며 기체로, 액체로, 고체로 변한다.
괴로움은 그러한 것을 어느 순간 모습에 집착하여 그대로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생긴다.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탐욕이요 무지다.
그 때 세존께서 그곳에 있던 바라문의 마을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문 중에는 법을 아는 이도 있고, 법을 알지 못하는 이도 있다. 찰리 장자 중에도 법을 아는 이도 있고, 법을 알지 못하는 이도 있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벗은 자기의 벗을 이기려 하지 않고
왕은 꺾기 어려운 이를 꺾지 않으며
아내는 그 남편을 이기려 하지 않고
자식 치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이 없다.
아는 것도 없고 지혜도 없으며
지혜가 없어서 법 아닌 말을 하더라도
탐욕·성냄·어리석음을 모두 끊으면
그는 곧 지혜로운 사람이니라. / <잡. 1180. 지자경(智者經)>
그리고 '나'가 있는 것으로 알더라도..
탐욕과 무지가 적다면 괴로움은 크지 않다.
그를 지혜로운 사람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