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NEfqaay_Q4s?si=EbBFanqaVKc65NFF
‘불의 기도’를 올리자
동명스님(불광사 주지)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불광인의 선서)
“비구들이여,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비구들이여, 눈이 불타고, 보이는 것이 불타고, 눈으로 인식하는 것이 불타고 있다. 그로 인한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무덤덤한 느낌이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우울・슬픔・고통・불쾌・절망으로 불타고 있다. 비구들이여, 귀로 듣는 것, 코로 냄새 맡는 것, 혀로 맛보는 것, 피부로 접촉하는 것이 모두 마찬가지다.”(부처님의 「불의 설법」에서)
어느 종교에서나 기도할 때는 불을 밝힙니다. 촛불을 밝히기도 하고, 기름등불을 밝히기도 하고, 환한 전등을 밝히기도 합니다. 왜 어느 종교에서나 기도할 때는 불을 밝힐까요?
첫째, 불은 인간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옷을 태워드린 적이 있습니다. 과학적인 상식으로 생각하면,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옷을 전해드릴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승에서 옷을 태우면 그것은 저승의 옷이 된다는 특별한 발상을 하게 된 것이지요. 이와 같이 불은 인간을 보이지 않는 세계로 연결시켜줍니다.
둘째, 불은 열정의 상징입니다. 불처럼 뜨겁게 기도하면 부처님이나 보살님이나 신들이 알아주실 거라는 마음으로 불을 밝히고 기도하는 것이지요.
셋째, 불은 밝음의 상징입니다. 기도는 낮에 올리기도 하지만, 어두운 밤중이나 새벽에 올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때 어둠을 밝히고 기도를 올리면 내 마음도 세상도 밝아지리라는 마음으로 불을 밝히고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의 「불의 설법」에서는 불이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도 「불과 얼음」이라는 시에서 불이라는 시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이 불로 멸망하리라 말하고,/ 어떤 사람은 얼음으로 멸망하리라 말한다./ 욕망을 경험한 나는 불을 택한 사람들 편에 선다./ 그러나 만일 세상이 두 번 멸망해야 한다면,/ 증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얼음도 불 못지않게 세상을 파멸시키기에 충분하다고.”
그러나 T.S.엘리어트는 대표작 「황무지」의 제3부의 제목을 「불의 설교(The Fire Sermon)」로 삼았는데, 이는 부처님의 「불의 설법」이 이 세상이 황무지화하는 것을 막는 중요한 가르침임을 암시합니다.
저도 ‘불처럼 기도하자’, ‘불의 기도를 올리자’라고 주장합니다. ‘불의 기도’는 어떤 의미일까요?
첫째, ‘불의 기도’는 자신을 불태우는 기도입니다. 모든 불은 자신의 것을 희생하면서 타오릅니다. 촛불을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의 몸을 없애가면서 세상을 환하게 밝힙니다. 그렇게 자신을 불태우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둘째, ‘불의 기도’는 ‘뜨겁게’ 올리는 기도입니다. 적당하게, 뜨뜻미지근하게 올리는 기도가 아니라 열정을 태워서 올리는 기도입니다. 그렇게 올리는 기도가 가피를 받고 성취됩니다.
셋째, ‘불의 기도’는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자신만 잘살겠다는 기도는 ‘불의 기도’가 아닙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역사를 밝히며, 많은 어려운 존재들을 돕는 기도가 바로 ‘불의 기도’입니다.
“누가 불의 공을 제대로 알아주랴/ 그 공이 시방의 만물에 미쳤어라/ 수인씨가 불을 피우지 않았더라면/ 고금에 얼마나 많은 이가 굶거나 얼어서 죽었겠는가.”
孰能知得八人功 功及十方萬類中 若匪燧皇繩鑚力 古今飢凍死無窮
-월파태율(月波兌律, 1695~1775), 「불(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