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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삶의 여정, 道의 여정
달팽이 강병석과 마주 앉다
가까운 지인들은 그를 달팽이, 혹은 병석이라고 부른다. 그는 종종 젊은이들의 구루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해피타오 가족은 그를 법현(法顯)이라고 한다. 지난 4월 23일 오후, 서울 지하철 6호선 한강진 역 근처에 위치한, 이미 안면이 있는 선생님 댁에서 그와 함께 앉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그에게로 가면 그 어떤 메시지든 필요한 메시지가 흘러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대로 옮겨주겠노라 작정했다.
표현이 생소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의 생의 이력(履歷)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떠올리면 실상을 보게 된 고등학교 1학년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그 이전까지의 삶, 그리고 그 이후의 삶으로 크게 갈리고, 그 이후의 삶 역시 고2 때부터 아버님이 돌아가신 서른한 살 무렵까지의 삶, 그때로부터 계룡산에서 한바다님과 함께 한 시기,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 현재까지의 삶으로 크게 세 단락 지어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일찍부터였구나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쳐지나갔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현실의 삶이 가져온 현실에 답하기 위해 정말 치열했다고 한다.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 어떤 두려움과 대면해야 했습니다. 당시 또래 아이들과의 사이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거든요. 한편으로는 쪽팔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분노도 있고 분노가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지도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누구에게 의논할 수 있는 상대도 없는 상태에서,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요. 유도도장도 다니고. 그 사건을 계기로 그 현실을 보게 되었으니까 그게 동기라면 동기에요. 그러는 사이 어머니 돌아가시고, 고등학교 떨어지고. 그러고 나서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그 감정을 넘어서게 되었어요. 한 3년 걸린 셈입니다.
그러면서 어느 날 책을 읽다가 갑자기 그 현실이 우연하게 보여 졌다고.
그 때 ‘아, 마음이라는 것이 보이는구나!’하는 것을 알았어요. 생각들이 앞에 펼쳐지면서 내가, 그 경험이 내 안에 있지 않았어요. 내가 그 현실과 부딪히면서 만나진 것은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져도 괜찮구나!’하는 굉장히 깊은 안정감이었거든요. 그리고 ‘아, 나는 보는 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자신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이 생겨난 거죠. 그 이전에는 정신세계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원불교 교당에 다니시던 어머니 손에 이끌리어 원불교 법당은 몇 번 갔었지만.
재미있게도 그가 ‘내 인생에 있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괜찮구나!’ 하는 안정감이 생기니까, ‘아, 나는 보기만 하면 되는구나!’, ‘어떤 일이 일어나도 되는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니까 그에게 새로운 물음이 일어나더란다.
내가 개인적인 경험에서 사람들한테 자주하는 얘기가 지혜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있을 때 지혜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일어나는 물음이 ‘나는 지금 학교에서 뭘 배우고 있나?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책도 있는데…….’ 그 때 나는 잠시 책을 읽다가 그런 현실을 보았거든요. 그런데 내가 배우고 있는 이 현실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있나, 가만히 보니 나는 쫄아서 배우고 있더라구요. 이것(학교 교과과정)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한 1년 찾았어요. 교과서 머리말도 읽어 보고 ⌜역사란 무엇인가⌟, 이런 책들도 찾아서 읽고 했는데도 도대체 감이 안와요. 쫄아 있으니까. 쫄아서 공부한 거니까. 아 그러면 그만둬야겠다, 내가 정말 읽고 싶은 책들을 읽어야겠다, 하고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학교를 잘 다니던 애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둔다고 하니까 부모님을 포함하여 주변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어요. 학교를 그만둔다는 것은 인생에서 낙오하는 거니까. 학교를 나온 이후로 완전히 무기력해지는 거예요. 그렇게 될 줄 몰랐어요. 스스로 선택했고 빛을 보고 나왔는데……. 그 때 10대가 몸에서 느낀 것은 ‘아, 이게 늙는구나!’ 하는 거였어요. 학교를 그만 둔 애가 집에서 아무런 하는 일도 없이 완전히 무기력하게 있으니까 주변에서 눈치를 많이 주었어요. 주변의 눈으로 보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 된 거죠. 부모님도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전혀 자학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렇게 무기력했을 뿐이지. 그런데 그 때 10개월 정도 지나니까 시간만 되면 학교 가서 농구골대에 공을 던진 거예요. 그것을 하루 종일 했어요. 아침에 가서 저녁때까지 공만 던지다 왔어요.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길이 너무 좋았어요. 버스를 타고 가서 그것을 2~3주 하니까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겨나더라고요. 그때 제가 느낀 것은 ‘어떤 긴장이 나를 움직이고 있었구나!’ 하는 거였어요. 그러나 그 긴장이 빠지고 나면 새로운 긴장이 생길 때까지 처절하게 무너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새로운 동력은 그가 어떤 삶을 살게 하였을까? 그가 이후 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해진다.
그 이후 삶의 과정은 저에게 굉장히 좋았어요. 열일곱 살부터는 그 이야기들이 너무나 가슴 뛰었고요. 도서관이나 서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주로 지냈고, 집에 돌아오면 명상하고 책 읽고 글을 썼어요. 명상이라는 것도 다양하게 다 해봤어요. 그때 오쇼 쪽이랑 연결되면서 책을 통해서 혼자서 해볼 수 있는 것은 다해봤어요. 에너지가 많이 올라와 있었고 완전히 누렸죠. 그때 저한테 올라온 열망은 이것을 친구들하고 나누고 싶다, 너무도 가슴 뛰는 일이니까. 그런데 친구들한테 너 왜 대학 가려고 그러느냐, 좋아서 가냐 물으면 소주잔 날라 와요. 그 애들은 안 그래도 불안한데 그런 질문들이 애들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얘기들이 나눠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대화를 잘하는 법이라는 것을 읽었어요. 읽어보니까 딱 하나만 남더라고요. 잘 들어야 한다고. 그래서 듣기 시작했죠. 그러니까 얘들이 자기 고민을 이야기를 해요. 내가 그 애들 이야기를 듣고 내 얘기를 하니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그 애들 고민을 통해서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주변 애들하고 그런 얘기들을 나누기 시작했어요. 저한테 가슴 뛰는 얘기들을. 그러니까 친구들도 생기고 술집에 들어가서 까비르도 같이 외쳐보고. 그러니까 그 때 삶은 항상 그런 세계를 맛보고 그것을 사람들하고 나누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때 다른 데를 여행한다거나, 뭔가 다른 것을 필요로 한다거나 그러지를 않는 거예요. 단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내 세계를 누리며 나누는, 어떻게 보면 거의 완벽한 삶을 살았죠.
그의 표현을 빌리면 빛과 어둠은 같이 경험된다고. 다른 말로 밑갈이(밑맑힘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완벽하게 삶을 누리며 살고 있는 와중에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올라오더란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영감(靈感)들도 있고 깨어남도 있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경험들도 있지만 그 안에서 발현되는 불안감이 있더라고.
빛과 어둠이 같이 경험된다고 생각하면 돼요. 빛이 강할수록 그 동안 묻혀 있던 것들이 다 올라오는데 그게 삶을 치열하게 살게 해주는 거예요. 내가 영감을 얻었던 것들을 갖다 쓸 수 있는 장(場)이 그 어둠이에요. 그러니까 그걸 통해서 답해야 하는 거죠. 내가 받아들인 것을,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통해서 답해야 되는 식이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삶들을 만났죠. 남자니까 군대도 가야하고 여자와의 관계도 있고, 어떤 다양한 상황들을 만났는데 거기에 제가 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요. 군대를 가기 전에도 군대를 갈까 감옥을 갈까 고민을 했고. 왜냐하면 제 어린 시절에 군대라는 사회가 전혀 아닌 조직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게 낫겠다’ 그런 식의. 그러나 모르겠어서 그냥 갔어요. 갔는데 특공대에 차출이 됐어요. 그런데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고 하니까 그런 경험들이 ‘내가 이런 애였나!’ 하는 무기력한 느낌들이 한순간 올라오더라구요. 그러니까 주체가 사라진 느낌? 그래서 계속 사방팔방 눈치를 보게 되는 거죠. 그 프레임 속에서 정신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방법은 탈영밖에 없었어요. 탈영을 해서 한 3~4일 도망을 다녔는데 붙잡혀서 법정에 갔어요. “왜 갔냐?”하니까 “자유의지를 찾아서 갔다”하니까 “말도 안 된다.” 그러죠. 누가 때려서 간 것도 아니고, 조직이 싫어서 간 것도 아니고, 내가 나한테 필요한 것을 찾아간 거니까. 그때 인도로 밀항하려고 했어요. 그 이전까지는 오쇼가 아무리 좋았어도 인도를 가고 싶은 생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오쇼 공동체에 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나는 충분히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때 법이, 며칠 안에 잡혀오면 남한산성 안가도 되었어요. 그러니까 빨간 줄을 안 그어도 되는 거예요. 감옥은 가고 징계를 받기는 하는데 최고형이 15일 구류였어요. 영창에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밖에서 벌어지는 세계가 꿈같았어요. 15일 후면 다시 영창에서 나가서 다시 들어가야 할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전부 다 꿈같이 느껴졌어요. 그 안에서. 그 때 형무소를 맡고 있던 헌병이 상병이었는데 반성문 2만 자를 쓰게 했어요. 그것도 하루 중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취침점호가 떨어지고 나서부터인데, 반성문 2만 자면 2백자 원고지 100장인데 쉽지 않은 일이죠. 처음 들어갔는데 옆에 있는 애가 주기도문을 쓰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의아해 했었거든요. 결국 내게도 그런 과제가 떨어지더라구요. 그것을 못해내면 그 다음 날 죽어나는 겁니다. 근데 나한테 연필하고 종이하고 주어졌는데 그게 너무 반가운 거예요. 왜냐하면 밖에서도 항상 쓰면서 살아왔으니까. 그래서 써내려갔어요. 그 때 인생이 너무 꿈같아서. 뭘 썼는지는 지금은 기억이 안나요. 그것을 돌려주지도 않았고. 2만 자를 쓴 거예요. 그런데 믿질 않는 거예요. 그전까지는 그것을 쓴 사람이 없었던 겁니다. 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베낀 것도 아니고, 그것을 일주일 동안 했어요.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잔거죠. 그러고 나서 일주일 만에 목욕을 한 번 시켜주는데 뜨거운 물에 잠수를 시키다 나오라고 하는데, 들어갔다 나오면서 내가 기절을 한 거예요. 그때 비상 사이렌 울리고 난리가 났어요. 이후 한 5일 정도를 자면서 보내고 나왔는데, 나오니까 그 상황에 대해서 제 안에 어떤 힘이 생겨나 있었어요. 그리고 부대 안에서 영웅 비슷한 게 돼 있더라구요. 그 후로는 애들도 내게 손을 안대고. 덕분에 내 삶이 한 번 쫘악 리뷰가 된 거죠. 그러고 나서 개인적으로는 좋았어요. 특공대이기 때문에 계속 훈련을 받거든요. 여름에는 바다로 가고 겨울에는 산으로 가서 산굴 파고 자고, 낙하산 훈련도 받는 등, 일상생활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을 군대에서 많이 경험했죠.
그는 삶이 늘 그런 식이었다 한다. 그가 뭔가 답하려고 할 때 끝까지 밀어붙여지는, 물론 그의 선택이었지만. 탈영도 그렇고, 고등학교 중퇴도 그렇고 이후 삶의 여러 주요 결정 사안이 있을 때 마다. 그런 그의 치열함의 이면에는 그가 보고 접촉되어 있는 현실(실상의 세계)이 든든한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었다고. 그 모든 것이 현실적 삶 속에서 그가 만난 실상의 세계를 삶으로 살아내고자 하는 열정, 그에 대해 응답(應答)하고자 했던 열정이었다고.
우리 사회에서 탈영을 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서 살아가기를 포기하고 가족까지 포기할 각오로 감행해야 하는 일이죠. 그런 것을 휴가 나왔다가 전철타고 들어가면서 내내 고민을 하다가 실행했어요. 처음 보였던 그 현실이 내 삶의 축을 바꿔 놓았고, 정말 내가 드러나게 해주었기 때문에 그 세계에 대한 계속 열정이 있었고 그만큼 그 세계에 접촉되어 있었기 때문에,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그만 둔 것도 그렇고. 사람들이 억지로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그 어떤 맛을 보고 느낌이 있어야 되니까요.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사랑하기 때문에 지난(持難)한 것들을 승화시킬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자기 안에서 안정감이나 불안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기 안의 안정감을 경험한 사람들은 모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그 안정감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 순간에 중요한 것에 대한 포커싱focusing도 잘 안 되는 거예요. 안정감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빽back이 없는 거죠. 믿음, 삶에 대한 믿음. 그런데 그 경험이 저한테 굉장한 빽back이 되어 주었습니다. 때문에 돈이 없어도, 캐리어career가 없어도 내가 내 삶을 살 수 있는 빛이 내 안에서 생겨난 겁니다. 나는 깨달으려고 공부한 것도 아니고 내가 본 현실을 쫒아간 것도 아니고, 다만 내가 경험한 그 현실을 살아내고자 그래서 갔던 것인데, 아버지하고는 많이 싸웠어요. 그런데 제 안에서는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에 대한 것들이 이미 정리가 되었어요. 어떻게 정리가 되었냐 하면, 아버지는 내가 잘 살기를 바라신다, 그런데 아버지는 불안하시다, 자기 안에서의 안정감이나 부유함이나 풍요로움, 그것에 대한 프레임이 있으셨기 때문에 그 부담 때문에 나한테 브레이크를 거는데 나도 내 삶에서 내 불안을 만나가야 하듯이 아버지도 나를 통해서 그것을 공부하시는 거다, 그것은 아버지의 몫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내게 뭐라고 얘기해도 나는 전혀 심각하지 않았어요. 항상 내가 큰 결정을 내릴 때마다 기다렸는데 예를 들면 학교를 그만 둔다든지, 군대를 안 간다고 얘기했다든지, 대학에 안 간다고 얘기했다든지 이럴 때마다 부딪혔는데 아버지는 눈물 흘리시고 그러는데, 나는 하나도 심각하지 않는 거예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생각난 것이지만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한 번도 걱정해 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내게 브레이크를 거셔도 한 번도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한다느니 그런 마음들이 일어난 적이 없었어요. 내가 내 공부한다고 느꼈듯이, 또한 그것은 아버지의 공부라고 느꼈고, 그냥 동지라고 느꼈거든요. 아버지는 아버지의 삶이 있는 거고, 나는 나의 삶이 있는 거고.
그는 20대 중반 무렵에 뒤늦게 대학에 간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졸업학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갑자기 아버지가 말기암 판정을 받는다
내가 갑자기 뒤늦게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대학을 간 적이 있는데 나한테는 대학이 잔칫상이었죠. 너무 좋았어요. 쫄아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제가 그 프레임frame에서 벗어나서 좋아서 했던 공부였기 때문에. 심지어는 대학을 선택할 때도 내 점수대에서 괜찮은 교수들을 다 만나보고 4년 동안 함께 공부할 학교를 선택했어요.. 그렇게 대학에 갔는데 모든 수업이 내게는 잔칫상 같이 느껴졌어요. 내가 재수학원 다닐 때도 느낀 건데 배운다는 것은 무조건 즐거운 거예요. 나도 예전에 그랬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부라는 것, 배운다는 것을 그것을 억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이성적으로 수업내용을 이해하려고 해도, 정서적으로는 막혀 있기 때문에 와 닿질 않는 거예요. 내가 재수학원 가서 첫 날 수업을 듣는데 8~9시간 강의를 듣는 동안 어떤 것 하나 재미없었던 과목이 없었어요. 굳이 재미를 찾을 이유도 없었어요. 영어든 수학이든 전부다 재미있었어요. 복습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도 붙었거든요. 그러니까 아버지는 미칠 노릇이죠. 아들이 군대를 제대하고 오니까 같이 사진관 하자고 사진관을 만들어놓으셨는데, 그 나이에 대학을 간다고 하니까 그 나이에 대학을 가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하고. 뭐 하여간 졸업할 때쯤 되었는데 아버지가 한 3년 사신대요. 그 때 갑자기 느껴지는데 ‘아버지하고 있어야 되겠다. 3년 사신다니까......’그랬죠. 졸업을 앞둔 그 무렵 서울을 다녀왔거든요. 이런 관련한 일을 해보려고 세라피therapy 하는 데도 다녀보고.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얼마 사시지 못한다고 하니까 사진관으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3년간 얼굴을 보고 있어야겠다.’ 했죠. 의사들이 다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분을 찾았어요. 한번은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기회를 드리고 싶어서 만일에 아버지가 아니라고 그러시면 아버지가 가시는 것이 맞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한 번 만나 뵙고 거절 하시더라구요. 그러면 나머지 시간은 같이 여행 다니고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하자는 생각으로 사진관으로 갔는데, 그 3년 동안 글 한 줄도 읽지 못했어요. 일만 했어요. 그렇게 좋아하던 책을 단 한 줄도 못 읽고 거의 새벽3시까지 사진편집을 했거든요. 당시 새벽 3시에 일이 마무리 되었는데, 끝나고도 집으로 갈 수 없어요. 왜냐하면 너무 허(虛)해서 집으로 가서 잘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만화방에 갔어요. 만화방 가서 한 시간 정도 만화를 봐야 집으로 발이 옮겨져요. 그러고 아침에 또 나오고. 그런 식으로 살았어요. 그 때 호흡이나 보자 했죠. 가끔 아버지랑 가족들끼리 여행을 다녀오고요. 아버지 가시기 전에 하시는 말씀이 “너 참 잘살았다!” 그래요. 아버지와 만나진 거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그 사진관에서 나왔어요. 아버지하고 같이 있으려고 그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니까. 사진관은 동생과 매제(妹弟)한테 넘기고. 앞으로 내 삶을 살아야 되니까. 그때 보니 내가 가슴이 완전히 메말라 있는 거예요.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지에 대해 완전히 텅 비어져 버렸더라구요. 이전에 경험했던 모든 열정들이나 경험들, 명상을 하면서 했던 그 모든 경험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완전히 방향을 잃은 채, 메마른 채 거기에 탁 놓여있는 거예요.
이렇듯 자신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막막한 상황에서 그에게 가슴이 열리는 경험이 일어난다. 어느 날 우연히 기독교 음악방송을 듣게 되었다. 너무 좋았다. 앉아서 거의 24시간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을 것이라고. 가슴이 열리고 안으로부터 내 안의 주, 본성적 존재로서의 나와 삶에 대한 찬송(讚頌)이 일어나더라고. 그는 그 무렵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붓다필드라는 웹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이 무렵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는 경험이 그에게서 일어난다. 그의 인생을 중학교 이전 시절, 이 시기를 그는 비교적 평범하게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고. 중학교 2학년 이전 시절과 그 이후 시절로 크게 갈라진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만났던 어떤 대치 상태, 두려움과 대면하는 상황이 동기가 되어 고등학교 1학년 때 존재의 실상(현실)을 만나게 된 시점부터를 제1부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말하기를 그 시기는 다양한 누림이 있었지만 치열했다고 한다. 자신이 본 현실을 삶 속에서 존재 전체로 응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리고 31세, 아버지 돌아가신 무렵, 아버지가 남기고 간 선물이었는지 아무튼 존재의 실상을 알게 된 그 후 삶 제 2부가 시작이 되는 경험이 일어난 것이다. 그의 말이다.
당시 붓다필드Buddha Field가 인터넷상에서 굉장히 많이 활동했죠. 우연히 그 사이트를 발견했는데, 게이트나 붓다필드라는 단체와는 상관없이 제 안에서 어떤 경험이 있었어요. 그 사이트에 가서 사람들이 뭔가 아는 체를 하면 계속 그것을 깠어요. 까는 것도 논리적으로 까는 것이 아니라, ‘넌 아니다.’ 하는 식으로. 그 안에서 사람들이 설전(舌戰)을 하는데 나는 그 얘기가 온전히 받아들여졌어요. 그때 뭔가 있구나!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읽어왔든 무엇을 경험했든 그것과는 상관이 없구나!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깨달음이라는 것은 내 경험 안에 존재하지 않는구나!’ 하는 그것이 당시 내 안에서 일어난 경험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하는 것은 끊임없이 너의 앎을 철저히 부정하는 전형적인 거지만. 그런데 그 부정이 나에게는 내 경험을 부정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읽었고 경험한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있는 것이 있구나 하는 경험으로 명확하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일어나는 마음이 ‘깨달아야겠구나!’였습니다. 무엇인가 만나진 거죠. 내가 만약에 그런 상황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알음알이 안에서 그런 것들을 추구해 갔을 거예요. 내가 경험한 것 속에서, 내가 추구했던 것 속에서 계속 추구했겠죠. 끝을 보려고. 이것은 일종의 warp였어요. 더 이상 그것은 추구해야 할 것이 아닌 거예요. 내 경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추구할 수도 없는 거고. 그리고 일어나는 생각이 ‘들어야겠다.’였습니다. 귀가 열린 거죠. 그것이 무엇인지 내가 아예 모르니까, 그 깨달음이라는 것이 내 경험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이전에 내가 판단(判斷)했던 분들부터 다시 만나봐야 되겠다는 마음이 만나졌고 그런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내가 거주하던 곳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창원대 교수로 있으면서 창원에서 라마나 마하리쉬 센터를 운영 중인 김병채님이 생각나더라고요. 대학 가려고 할 때 그분을 찾아갔는데 그 분이 “오쇼는 아니다!” 하시길래, “당신도 아니다!”하고 나와 버렸거든요. 그 무렵 오쇼는 섹스구루라고 알려져 있었고 라마나 마하리쉬는 정통적이잖아요. 가장 가까이 있었으니까, 내가 판단했던 분들을 찾아가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가서 삿상satsang도 참여했다가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등학교 때 내가 실상의 세계를 알고 살아온 삶을 만났는데, 고등학교 때 제가 그 현실을 알고 살아온 삶의 제2부에 해당되는 셈입니다.
‘아, 깨달음이 있구나! 깨달아야겠다!’하는 마음이 일어나던 그 무렵, 한바다님과 함께 하게 되는 시절인연이 왔다. 당시 공주 계룡산 동학사 인근에 해피타오 본부가 있었고 한바다님이 거기에 자주 계셨던 무렵이다. 책 쓰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며칠 간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진로문제도 고민해 보아야 하고 무턱대고 불확실한 상황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해서. 그런데 문득 ‘인생은 내가 전부 짜놓고 내려왔다는 생각이 일어나더란다. 이미 짜여 있는 인생, 그러면 구경이나 해보자 하는 마음이 일더라고.
이미 짜놓고 온 인생 구경하는 셈으로 공주로 찾아들어갔어요. 이전에도 해피타오와 인연은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부님(한바다님)과의 관계가 긴밀했다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때 사부님을 뵌 순간, 갑자기 사부님 앞에서 삼배가 나온 거예요. 내가 했다기보다 일어난 거예요. 사부님이 갑자기 “너 깨닫고 싶냐?”하시더군요. 그래서 “예.” 그랬죠. 사실은 깨달으려고 거기 간 건 아니에요, 단지 ‘깨닫고 싶구나! 깨달아야지!’하는 그런 마음을 만나서 그냥 구경이나 해보자 하고 간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삼배가 일어나고 사부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고. 그러고 나서 동학사에서 더 이상 방황할 자리가 없는 자리를 보았죠. 확인한 거죠. 어떤 분들이 화두로 깨달아야 깨달은 것이다 하는데, 저도 어느 정도 거기에 동의를 해요. 사부님이 “너 참 공부 잘했다” 하는데 나한테 물음이 일어난 거예요. 나한테 큰 경험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인가를 해주시는 거냐?” 하고 나흘을 물었는데 대답을 안 하시더라구요. 나흘째 되는 날, 손님을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차 좀 세워보라고 하시더니 견성이 뭐냐 물으시는 거예요. 그 때 깨달았어요. 그 이후에 사부님께서 너는 두 번 죽었다 얘기 하시는데 그 이후의 얘기는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견성이 뭐냐 하시는데 그 때 이미 내 안에서는 끝난 거예요. 두 번을 죽든 세 번을 죽든 네 번을 죽든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동학사에서 놀았죠. 어느 날 거기서 나온다고 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갑자기 두려움이 약간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면 삶이 돼보자!’ 하고 동학사에서 나온 거예요. 그 때 사부님께서 좀 서운하셨을 거예요. 일을 막 같이 해보려고 하는데, 전혀 그런 상태가 아니었거든요. 그냥 두려움을 따라서 그냥 올라와 본 거에요. 그 때 10만원 빌려서 올라왔어요. 아버지 재산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두 분의 인연이 좋다고 여겨져서 아버지 재산은 어머니에게 전부 드리고, 이후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손 안대니까 다른 어느 누구도 손을 못 대죠. 그러니까 전혀 돈이 없죠.
상경한 후 그의 일상적 삶은 어땠을까?
올라와서 인연되는 친구들과 거의 24시간 작업을 했어요. 물론 동학사에 있을 때도 그런 일이 일어났지만. 올라와서 계속 작업하고 사람들 만나면서 지금까지 흘러온 건데 지금 제가 느끼는 건 그거죠. 그 때도 친구들하고 작업하면서 특히 상욱이하고 작업하면서 소주를 어마어마하게 마셨거든요. 상욱이가 워낙 술을 좋아하다보니까. 그래 가지고 대상포진이 왔어요. 그러고 나서부터는 술을 안마십니다. 그런데 애들 안에서 체험은 일어나는데 그 체험을 받아들일 자기가 없어요. 자기가 깨달았다 하는 확신이 일어나질 않는 거예요. 애들이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 다 경험해도 자기 안에서 그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애들이 너무 순수하고 좋은 사람들이지만 ‘깨달을 사람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일어나더라구요. 그들이 자신의 실상을 알고자, 깨달음을 얻어 보고자 방황해 본적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깨달음이 아니라 ‘깨달음이 드러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위 말해서 탐구자가 없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더라구요. 나는 공부라는 것이 굉장한 누림이었는데, 어떤 스승을 찾아다닌 적도 없고 깨달음을 찾아다닌 적도 없고 온전히 그 순간순간이 내게는 새로운 현실이었는데. 깨달을 나가 없다는 말을 했는데, 내가 만난 거의 모두가 다 자아가 너무나 허약한 거예요. 전부가 자학하고 있는 거예요. 자기가 모자란다고 생각하고, 뭔가 이루지 못했다 생각하며 자학하고 있는 거죠. 그때 사람들이 존재와 세계에 대한 안정감, 신뢰감이 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내면에서 탐구가 일어날 것이고, 탐구가 일어나면 깨닫게 되는 것인데, 어차피 깨달음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신뢰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가 뭘 경험하든 괜찮다!’ 하는 그 신뢰를 경험할 수 있게, 맛볼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 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거죠. 지금까지 사람들 만나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따지면 제 인생에 있어서 3부를 살고 있는 거죠.
그는 진아를 아는 것, 삶의 실상을 아는 것도 글을 배우는 것처럼 배워야 한다고 했다. 12살 정도만 되어도 “너는 아직도 못 깨달았냐? 하는 이야기들이 오고 갈 정도로 깨달음의 문화, 마음공부가 인간 삶에서 필수적인 영역으로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것이 그의 꿈이란다.
글을 배워야 하는 것처럼 마음에 대해서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인식이 안 돼 있어요. 누구나 자기 삶에서 가장 필수적이라고 해야 할 마음에 대해서 신뢰의 경험을 배우고 경험해 가야 한다는 것이. 모두 마음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아직까지 마음에 대해 아는 것, 마음공부를 너무 멀리 높게 놔두고 있습니다. 고통이 있을 때만 배웁니다. 군대에서는 종교인들을 전부 환자라고 그러거든요. 굉장히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평생 자기가 마음을 마주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에서 명상이니 불교니 종교니 하는 것들을 차치(且置)하더라도, 자기마음, 자기가 경험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경험들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런 경험들을 배워가야 한다는 것, 또 거기에서 어떻게 신뢰를 배워가야 하는지 배워가야 한다는 것, 그것을 사람들이 삶에서 필수적인 영역으로 인식하고 누리며 사는 그런 시대가 열리는 것을 후천(後天)이라고 생각해요. 후천이라는 단어를 쓰지도 않지만 앞으로 사람들은 그게 가장 필요하고 그렇게 되어가는 세상이 될 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전부 그런 사람들이 스타잖아요. TV매체들에 그런 사람들이 출현하고 방송매체들을 통해서 그런 메시지들을 전달하는 사람들이 스타입니다. 우리나라는 굉장히 끝까지 내려오라고 내려 당기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아요. 소위 그 메시지가 더 낮아져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더 일상적인 언어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 더 일상적인 경험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너무나 많은 종교에 대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신성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신선한 것은 국경을 넘어서 들어왔다, 외국에서 들어왔다 이것이 신성한 거지 그 어떤 것도 신선하지 않아요. 특히 어떤 종교와 같은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움직이기가 편하지만, 아무런 백그라운드 없이 깨달아온 사람들은 굉장히 밑바닥에서부터 고민하게 하는 땅이기 때문에, 나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경험들을 보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보고 있는 경험들이 앞으로의 문화의 방향이라고 그럴까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같이 구르는 거예요. 삶의 현장에서 계속 그 메시지가 더 낮아져서 다른 방식으로 나올 수 있게 단련시키는 그런 느낌을 받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게 영적인 곳이라든가 외국이라든가 이런 데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저는 이미 제 환경이 충만해 있기 때문에. 모든 게 다. 이게 다 열여섯 살 이후에는 어딘 가에 가는 게 아니라 여기에서 느끼는 거거든요. 항상 제가 갖고 있었던 것은 ‘未知라는 것은 旣知(기지) 안에 있다’는 거거든요. 이미 알고 있는 것 안에서 미지가 보이는 거지 그 앎이 거두어질 때. 뭔가 새로운 다른 것이 있다고는 보지 않거든요. 굳이 내가 한국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여기에 대한 인식도 없이 내가 여기에 살고 있으면서 겪는 것은 전혀 그런 백그라운드 없는 사람들이 자기가 이해한 바를 이 땅의 현실에서 나눌 때, 사람들 안에 있는 어려움들을 만나게 되고 그 어려움들을 젖혀주는 쪽으로 메시지가 흘러나오도록 단련시키고 있는, 어떻게 보면 그리고 가다 보면 자기의 포스를 내지는 못해요. 자기 에너지를 맘껏 발산하며 살지는 못하죠. 아무도 인정해 주는 사람도 없고. 그런 방향에서는. 그런 데서 갑갑함은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것에 젖어들기도 해요. 내 에너지로 살고 싶다든가, 아니면 나의 삶을 살고 싶다든가 이런 마음들도 솔직히 일어날 때도 있거든요. 이제 계속 들으면서, 그것을 만나면서 배우고 거기에 반응하면서 일어나는 메시지들을 또 나누는 거예요. 사람들하고. 그러면서 제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들을 들었던 사람들이 또 누군가에게 가서 얘기를 하는 거죠. 나누는 거죠.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그런 스토리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들이, 도대체 직장상사와의 갈등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거예요. 그 연결 관계를 모르면 이것을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본다는 거예요. 나는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연인관계에서 소통이나 계속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는데 있어서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 어떻게 도움을 주느냐 하는 거예요. 이 삶의 상황 속에서 소위 얘기하는 화두가 그 물음이 도대체 어떤 도움을 주느냐 하는 거예요. 살아있는 삶의 상황 속에서 그 화두가 물음이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 거기에 대한 어떤 연결고리들을 계속 얘기해 주는 거예요. 사람들한테. 그게 엉뚱한 그런 얘기가 아니다, 너희들 일상에서 필요한 얘기들이다. 거기에서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현실이나 관계들을 만나고 창조할 수 있다, 그런 가능성들을 갖고 있는 물음들이다 그런 것들을 계속, 연결시켜 주는 거죠. 그래서 자기가 한 경험들이 정말 있는 그대로 의미 있게 다가오는, 뭐가 변해서가 아니라 정말 이런 것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험들조차도 있는 그대로 의미 있게 만나지는 거기에서, 자기가 인간이기 때문에 경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신뢰가 그 사람 안에서 일어서는 것, 거기에 지금은 포커싱을 하고 있어요.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런 것들을 전달해주고 지금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구요, 그러고 있죠.
그에게 있어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물었다.
삶은 영감(靈感)이죠. 삶과 인간이란 영감의 근원(根源)입니다. 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에 계속 어떤 무한한 뉘앙스nuance를 주고, 보고 듣고 깨닫게 해주는 게 인간이고 삶이죠. 이성(理性)적인 견지에서 인간을 바라볼 때는 그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거예요.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이 살고 있는 심리적인 현실은 어떠한가요? 공룡은 2-3억년을 살았습니다. 인간은 겨우 몇 백만 년이에요. 종(種)으로 봐서 한참 어리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나서 몇 십 년 살다가는 것이 평생이지만 종(種)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인간은 굉장히 어린 종(種)이거든요. 제가 볼 때 인간이 마음이란 것을 대면하고 있는 게 아직까지는 낯설다는 거예요. 마음이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왜 인간으로서 이런 것들을 경험해야 하는지,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들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에요. 어리기 때문에 자꾸 마음을 통제하려 하죠. 실제로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두려워합니다. 동물들은 퍼펙트하잖아요. 자기 환경에 대해서 퍼펙트한 존재로 태어나서 퍼펙트하게 가는 거거든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얼마든지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태어난다고 봅니다. 동물들은 욕구와 현실이 퍼펙트하게 1:1로 대응이 돼요. 먹을 것은 먹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 정합성을 가지고 퍼펙트하게 움직이는데, 인간의 경우에는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인 거예요. 예를 들면, 누구는 그릇을 재떨이로 보는데, 다른 누군가는 그냥 음식을 담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대상이라는 게 그냥 보이지 않아요. 소위 사람들이 얘기하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갑자기 자기 안에서 우주를 보고, 자기가 신이 되어 있고. 이런 것이 가능한 게 인간인 거죠. 이게 인간에게는 두려움이거든요. 미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중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제 정신으로 살아가야 하는 긴장이 있어요. 남들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라는 게 어쨌든 두려운 거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경험들이 두렵고, 그 두려움조차도 두려운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은 마음이 익숙하지 않아요. 아직까지는 어리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경험들을 계속 통제해 보려고 하는 의도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넘쳐흐르는 마음 간에 갈등이 일어나요. 또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경험들이 지혜이기도 하고, 중심을 잃게도 하면서 그 안에서 긴장이 생겨 굉장히 힘들게 하는 거죠. 이런 상황들을 받아들이면 마음에 대해서 배워간다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이 어떤 것이든 무엇인가를 경험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직 사람들은 마음을 객관화 할 수 있는 인식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왜 그런지도 모르고 마음에게 당하고 사는 거죠. 본질적으로 사람이 뭔가 잘못된 게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이 전혀 낯선 상황에 떨어져서 그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 이런 상황에 대한 비밀들을 풀어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거예요. 그런데 굉장히 단순한 것이 그것에 대한 답을 줍니다. 그 단순함이라는 것, 그것은 얘기했듯이 ‘그 어떤 경험이, 그 무엇이 일어나도 괜찮다!’는 겁니다. 나는 존재에 대한 그런 신뢰를 ‘젖지 않는다’라고 표현합니다. ‘젖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이미 그 안에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그 안정감이 있다면, 그때부터는 자기에게서 경험되는 것들에 대해 그 안에서 의미 있게 답해 낼 수 있는, 또 그것을 발견해 낼 수 있는 어떤 모험(冒險)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믿는 구석이 정말 중요합니다. 자기 안에 어떤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 지금 사람의 상황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지만 나는 얘기해요. 더 이상 무엇을 믿지 못하겠느냐고.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못 믿을 이유가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인간이 여기에 있음이 가능한데, 도대체 무엇이 불가능하겠느냐는 거예요. 내게는 인간의 삶이라는 게 그렇게 느껴져요.
자신의 삶에서 만난 경험과 지혜를 만나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는 그에게 만남이라는 것, 만남의 의미는 무엇일까? 새삼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물음일 수도 있겠다. 함에도…….
나한테서 만남이라는 것은 깨어남입니다. 만남이라는 의미(意味)가 드러나는 것은 끝이 없겠지만 내게 의미라는 것은 항상 여행(旅行)입니다. 현재 나의 인식에 한계가 있을지라도 만남, 그 의미는 무한히 펼쳐져 있으면서 끊임없이 재발견되는, 그러면서 그 의미가 계속해서 새롭게 드러나고, 더 확장되면서 드러나는 어떤 것이에요.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만남 자체에 대해서 모험(冒險)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만남이라는 것은 사실 고백(告白)입니다. 고백이라는 것은 있는 것을 내놓는 것이기도 하구요. 만남, 그 과정에서 각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은 내가 표현(表現)하는 것과 내가 경험(經驗)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의 분리가 일어나요. 소위 사람들이 정직(正直)해져야 한다고 얘기하잖아요. 저는 그 의미가 그렇게 다가와요. 자기가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자기가 그 목소리를 내어놓을 수 있는 것, 그러면서 그때에 느껴지거든요. 만남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를 내어놓을 때 느껴지거든요. 그러니까 만남이 이루어질 때는 항상 투명(透明)함이 전제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투명함이 없을 때는 만남이 일어나지 않아요.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왜곡시키고 감추고 그러는데, ‘지금 여기 만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만남이 일어날 때는 그냥 있는 그대로 나올 때입니다. 그 때에만 같이 확인이 되고 같이 느낄 수 있거든요. 그게 곧 깨어남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게 사람들한테는 실제 모험이죠. 왜냐하면 사람들의 심리적 현실에서는 자기(自己)한테서 일어나는 경험(經驗)은 곧 자기이기 때문에 그 경험이 대상(對象)으로서 존재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이런 게 있다고 내놓을 수도 없고 같이 만날 수가 없는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해서. 그래서 관계는 문제가 아니라 물론 여기서 자기가 모험해야 되는 것이라고 느끼지 못하면 어떤 상대방에 대해서 기대하게 돼요. 자기 안에 충족되지 않은 것들과 갈등들에 대해서 분노가 일어나게 되고, 이런 것들이 있지만 여기에서 하나의 모험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경험과 정체성을 분리시키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런 것’을 ‘지금 있는 그대로 같이 만나는 것이구나!’하고 생각하면서 그걸 내놓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깨어남이, 만남이 일어난다는 거죠. 상대방이 내 거울이 돼 주기도 하고 내가 상대방의 거울이 되기도 하면서 동시적으로 ‘너와 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 있는 것을 같이 만난다’는 거예요. 그것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요. 관계에서는 대상을 빼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 심리적 경험 안에서는 관계라는 것이 항상 대상에 포커싱 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 대상에 대한 스토리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가령 내가 슬프잖아요. 그럼 나를 슬프게 하는 그 사람에게 포커싱 되어서 그 사람에 대한 얘기로 막 돈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서 경험되고 있는 것은 슬픔이거든요. 대상을 빼라는 게 그 대상이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하고 만나져야 할 것은 슬픔이라는 겁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마음공부 하는 커플들이 더 많이 싸운대요, 가르치려고 하니까. 빨리 거기서 벗어났으면 하는, 자기도 싫으니까 상대방을 빠져나오게 하려고 결국 가르치려고 하죠. 그러면 얘기하는 입장, 가르치려는 입장에서 보면 그렇죠. 뭐 바라보라느니 그러는데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자기 입장을 알아주라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하거든요. 너는 왜 내 슬픔을 이해해 주지는 않고 그렇게 나를 밀어붙이느냐 그런 식으로 반응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본인도 마찬가지에요. 자기의 슬픔이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자기 슬픔을 이해해 주지 않는 그 사람을 잡고 경험들이 돌거든요. 그러니까 슬픔이 원하는 것은 그거에요. 나한테 포커싱을 해달라는 거예요. 자기가 여기 있으니까 나하고 좀 만나자, 나를 좀 인정하라는 겁니다. 그것이 슬픔이 얘기하는 것이거든요. 전부 다 관계의 문제를 들고 찾아오고, 또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있는데 항상 문제가 해결되는 시점은 상황이 변화했을 때가 아니라 더 넓은 시야가 열렸을 때입니다. 그 때는 그 모든 것들이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됩니다. 나는 관계라는 것, 만남이라는 것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어떤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나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나가 아니라, 앞의 슬픔의 예를 들면 나는 슬픈 나가 아니라는 겁니다. 나는 슬픔은 슬픔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나의 슬픔을 슬픔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그것 자체가 모험이고, 슬픔의 입장에서는 보았을 때는 하나의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따지면 관계라는 게 뭔가 다른 현실을 발견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관계 안에서 다양한 경험들이 일어나겠죠. 그 다음부터는 누릴 수 있겠죠.
그는 관계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물어보라고. 그에 의하면 또한 사람들이 관계 안에서 원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서 만나지기를 기다리라고.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내가 만나러 내려올 수 있어야 해요. 그 관계가 이미 자기 안에 있어야 밖에서도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거예요. 바깥이 척박해서 그런 경험들이 드문드문 일어난다 하더라도. 자기 안에서 그런 관계가 있다면 누려지고 어떻게든 나누어지거든요. 어릴 때는 그 누군가가 그런 맛을 보여주지만 그게 항상 그러면 그런 경험이 필요할 때마다 그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번거로운 일이거든요. 이것은 홀로서야 한다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에요.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경험이죠. 너무 번거롭잖아요. 부탁해야 되고 마치 자기가 구걸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그런데 자기 안에 그런 것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누리고 싶을 때 누릴 수 있는 것인데 왜 굳이 항상 남한테 얻어먹으려 하느냐는 겁니다. 하물며 명상이라는 것도 섹스할 때 꼭 이성 파트너가 필요한 상황이 번거로우니까 생겼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충분히 홀로 오르가즘을 경험할 수 있는데 왜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누군가를 데려와야 되느냐 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저는 그게 말이 된다고 해요. 물론 관계 속에서도 서로 누릴 수도 있지만. 명상을 하면 실제로 오르가즘이 일어나니까요. 충분히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관계는 모험이죠. 정말 자기가 관계 안에서 묻고 확인이 되어야 그 관계 안에서 그 방향으로 가겠죠? 그죠? 자기가 원하는 답을 얻겠죠?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관계 안에서 계속 쌓이는 것은 한계(限界)죠. 왜냐하면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도 안 되어 있으면서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이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줄 수 있는 상대를 찾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음을 통해서 마음 너머로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마음 너머의 세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그것이 헷갈릴 거예요. 마음 밖이라고 하니까 마음으로는 상상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마음 밖의 자리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내 경험 안에 있거든요. 마음을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마음 밖이라고 하는 것은 똑같은 의미입니다. 사실은 우리는 이미 마음 밖에 있는데 그 마음 밖이라는 자리는, 우리는 마음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고 있어요. 그것은 이미 마음 밖에 있다는 거예요. 마음 밖에 있지 않으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 없어요. 공간적으로 생각하시면 돼요. 언어 자체가 공간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과 거리를 두고 있어야 알려질 것 아닙니까? 그게 다 알려지고 있다는 것은 내가 화났다거나, 내가 짜증이 난다거나 두렵다거나, 이런 것은 내가 이미 안팎에 있기 때문에 알려지는 거예요. 그 자체로서. 이미 마음 밖에 있는데, 마음 밖에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마치 마음 안에 있는 것처럼 경험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괴로울 때 내가 괴로운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괴로우면서 괴롭기가 싫은 거예요. 이것의 뉘앙스를 보세요. 괴로움이 있고, 그 괴로움을 싫어하는 마음도 있고 이렇게. 이미 마음 밖에 있기 때문에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듣고 깨우칠 수 있거든요.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지금 마음 밖에 있기 때문에. 그런데도 우리의 심리적 현실은 괴로움이 일어나면 괴롭기 싫은 마음과 동일시되어 이 마음을 누른다는 거예요. 자기는 이미 전쟁 한복판에 들어간 거죠. 전쟁 밖에 있는데도 전쟁 한복판에 들어가서 이쪽 적을 죽여야 하는 거예요. 이쪽이 승리해야 되고. 그런데 우리는 밖에 있으니까 ‘아, 싸우고 있구나!’ 하고 느껴질 수 있다는 거죠. ‘이쪽은 이런 것들을 갖고 있고, 저쪽은 저런 것들을 갖고 있구나!’하는 상태 안팎이라는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는데, 항상 그 둘 중에 하나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가정 속에 존재하는 거예요. 내가 너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마음도 있는데 내 안에 화도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마음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저 애를 이해하면 저 애에 대해서 화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심리적 현실이잖아요. 그런데 동시에 화나는 마음도 있을 수 있고, 이해하는 마음도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해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이 없어요. 그러면 오히려 그 이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화도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겠죠. ‘아 내 안에 이해하는 마음도 있구나, 그런데 아직 화가 나는구나!’ 이렇게 존재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있으면 이것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마음 안에 있을 때와 마음 밖에 있을 때 자기 마음의 현실이 어떻게 경험 되는지의 차이거든요. 마음 밖이라고 했을 때, 그것이 가리키고 싶은 경험은 그 안에서 굳이 자신이 어떤 마음을 선택해서 그것과 동일시할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 그런 경험을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경험을 자기와 동일시하고 싶고, 이해하는 경험을 자기와 동일시하고 싶어 하는 식으로 자꾸 그렇게 가는 거예요. 자기가 화를 허용하면 화나는 자가 될까 봐 두렵고, 비겁한 마음을 허용하면 비겁한 자가 될까 봐 두려운 거예요.
그에 의하면 마음 안에서 산다는 것은 철저하게 경험 안에서 얻고(得), 잃음(失)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마음 밖의 자리는 그 안에서 더 이상 나를 구걸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아까 아직 인류가 어리다고 얘기한 이유는 인류가 철저하게 경험에 기생해서 산다는 것 때문입니다. 인간의 심리적 현실이 경험을 통해서 밖에 나를 구할 수가 없어요.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이 경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경험은 부정하려고 하고, 어떤 경험은 부여잡고자 하는 과정에서 나의 가치와 정체성에 대한 얻고 잃음이 일어나죠. 인간의 내적 상황이, 개인적인 마음이 이런 이해관계 득실의 장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잃고 얻는 그런 메커니즘으로 돈단 말에요. 자기 마음 안에서 갈등이라는 게. 근데 거기서 굳이 나(나의 정체성, 나의 가치)를 구할 이유가 없어지면 나의 잃고 얻음이 빠진다는 거죠. 거기서 나의 가치를 구할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마음 밖이라는 게 나와 연결되는 거는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구하고 있기 때문에, 뭔가 깨달음을 구하면 깨닫고자 하는 내가 되고, 헤매고 있으면 헤맨 내가 되고 끊임없이 마음 밖에서 구하고 있는 나가 되고 있기 때문이죠. 결국은 네가 누구인지 알아야 된다는 말도, 마음 밖에서 있으란 말도 결국은 그 득실 안에서 이미 자기는 그런 자기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 밖에 있는 건데, 그 밖에서 나를 구하지 말고 그 경험들을 그냥 일어나는 대로 인정하라는 거죠. ‘,아 여기에 화가 있구나, 이해하고 있구나!’를 이해하게 된다는 거예요. 마음 밖에서는 뭔가 구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냥 상황이 이해가 돼요. 그래서 만남이 생기는 거예요. 이해가 되니까 뭉클한 거예요. 이해하는 마음도 있지만 화도 나니까 그게 뭉클한 거예요. 그러니까 터치가 되죠. 자기 가슴이 만나지니까. 그러니까 마음 밖이라는 것을 신비적 경험으로 볼 게 아니라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생각도,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경험도 더 이상 그걸 통해서 나를 구할 필요가 없어지고, 얻고 잃음이 없기 때문에 자유로워진 거죠. 자유로워지면서 관계라는 것의 자유가 일어나는 거예요. 터치가 느껴지는 지죠. 지금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건지. 그래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거거든요. 마음과 함께. 그러면 마음도 변한다는 거예요. 다른 현실로. 그러니까 뭔가 얻고 잃어야 하는 아수라장에서, 경험하고 누려질 수 있는 장으로 변한다는 거예요. 그 자체가.
그래서 소위 지극(至極)함이나 예(禮)라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대하는 자세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자체가 계속 대상 자체에 포커싱 되어서 돌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슬픔에 포커싱이 안됩니다.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그 슬픔인데, 그래서 상대방에 대한 의존과 투사로부터 빠져나와서(대상은 빼고) 슬픔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극함입니다. 그래서 타인이 그것을 알아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그걸 알아주라고 하는 것은 예가 아닌 거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리고 자기가 스스로 가 만나는 것이 맞는 건데, 그 마음이 만약에 타인이 알아주어야 할 거라면 먼저 타인한테 먼저 드러났을 텐데. 그러나 그 마음은 내가 알아볼 수 있도록 내게서 일어났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알아봐 주는 것이 예(禮) 아닙니까? 상식적인 선에서라면. 그래서 대상이라는 것에서는 빠져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슬픔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예를 다하는 게 자기 마음을 만나고 대하는 자세라는 거예요. 그랬을 때 그 감정도 존중받고 녹아서 흘러가거든요. 마음이라는 거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일어났다 흘러가야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못 일어나도록 막고 있는 것은 굉장히 무식한 짓이죠. 왜냐하면 거기에는 얻고 잃는 게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슬픔이 일어나면 내가 슬픈 자가 돼버릴 것 같으니까, 그게 내 현실이 돼버릴 것 같으니까, 막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바깥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에 대해서 비난할 수 없는 것은 전부다 거기에 내 책임이 있거든요. 모두 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메커니즘이 있거든요. 내가 그것을 이해하고 있냐 하면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나 역시도 돌고 있거든요. 끊임없이 나의 경험 안에서 나를 구하고 있고, 어떤 나의 득실을 따지고 있거든요. 그런 존재가 되면 짜증나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고. 그러니까 발가벗겨진 것 같고.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만약에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정서나 생각의 입장에서 보면 예가 굉장히 없는 거죠. 그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완전히 이해받지 못하고 있고 존중받지 못하고 소외되고 있는 존재들인 거죠.
내가 그런 글도 썼지만 내면의 부정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존재해야 하고 경험되어야 하고 흘러가야 돼요. 그게 우리 마음의 경험들의 본질이에요. 그것이 예(禮)거든요. 제가 보는 입장에서 예라는 것은 그거라는 겁니다. 거기에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절도 해보는 거고, 던져보는 거고 하는 거죠. 아무래도 관계가 취약했으니까요, 지금까지는. 당연히 그런 관계를 발견하는 데 어려움들이 있겠죠. 하지만 다가가는 마음들에 정확한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들에 응답하는 거거든요. 마음이라는 것은 내가 내는 마음에 응답하기 때문에. 그래서 어떤 아픔이 있을 수도 있고 하지만 그걸 넘어서 더 그것을 표현하는 게 예라고 할 수 있죠. 덕이라고 할 수도 있고. 지금여기에서 할 수밖에 없단 얘기가 그거에요. 나는 이렇게 얘기해요. 뭐냐 하면 마음은 현장범(現場犯)이라고. 일어날 때 만나야지 그 마음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 때는 아무리 이야기를 들어봐야 그냥 지도에 불과하다는 거죠. 물론 나의 그 경험들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 지도가 얼추 맞다는 느낌은 있을 수 있고, 와 닿을 수 있지만 직접 그 마음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 그 마음을 만나는 경험이 일어날 때야 자기 확인이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항상 지금여기 밖에 없어요. 그 때 모든 마음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거구요. 그래서 항상 마음이 꿈꾸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이 지금여기일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마음이 원하는 것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그것을 만나는 거니까요. 우리는 철저하게 외부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야 마음이 만나진다고, 마음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꿈을 좇죠. 그런데 답이 없어요. 만나지지 않아요. 그것은 계속 자기 안에서 모자라는 마음을 경험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모자라는 마음이 만나지는 게 그 모든 마음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거기에 모자람이 없기 때문에. 답은 엉뚱한 데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을 묻게 되는 거예요. 그걸 추구했던 사람들은. 그래서 추구했던 사람들은 다 없어요. 답이 엉뚱한 데 있으니까. 자기는 이미 그런 존재들이 아니었던 거니까. 꿈꾸고 있었는데, 이런 존재라고 믿고. 그러니까 철저하게 자기 마음과의 관계죠. 인간이 어차피 감당이 안 되는 게 자기 마음이기 때문에.
많은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끝없이 이어질 듯이 흘러나오는 그의 얘기에 깊이 빨려들었던 것 같다. 인터뷰 초입에서 그가 말하기를 자신은 글이든 말이든 대상이 있을 때, 그 존재에 조응하여 얘기가 시작되더라고. 온전히 지금 여기에 있음이다. 지극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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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리 많이 마셨던가..
아, 이제 읽었네. 고맙소. 지금 읽으니 새롭소. 아랫부분 첫자들이 깨져있네. 대충 맞춰 읽긴 했는데, 찜찜해. 내 짐작이 맞는지 확인하고파. 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