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당나귀를 데리고 온 그 남자는 힘차게 올라온 두 아이의 아버지였고 그들 가족은 어제 호텔 식당에서 우리에게 퐁뒤라는 음식을 맛보게 했던 그 가족이었다.
그들은 당나귀에 여행 물품을 싣고 가족 네 명이 걸어서 이 큰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프랑스 쪽 마을에서 고개 정상 턱밑까지는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관광객들이 쉽게 올라 구경할 수 있게 하였다.
우리는 걸어서 힘들게 올라왔는데 고개 정상 부근에는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도 여럿 눈에 띄었다.
고개 마루에서 보니 샤모니도 옛날에 빙하가 훑고 지나간 자리에 생긴 계곡이었다.
알프스에서 가장 많은 눈과 얼음 빙하가 남아있는 지역은 샤모니이다.
그 이유는 샤모니가 알프스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간식도 먹고 쉬다가 포제트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길로 접어들었다.
키가 작은 영산홍이 블루베리와 섞여 군락을 이루고 있다.
키가 20~30cm 정도로 균일하게 자라서 멀리서 보면 푸른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하다.
바로 아래에 마을이 있어 금방 내려 갈 줄 알았는데 그 길이 의외로 길다.
상당한 경사의 자전거 전용 길도 있어서 젊은이들이 빠른 속도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갔다.
한 시간 반 정도 내려와서 드디어 마을에 도착해 풀밭에 모두 주저앉았다.
9일 동안 몽블랑 둘레길을 완주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함과 함께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힘들어도 서로를 격려하고 배려하며 걸어온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완주를 축하했다.
여기서 조금 기다리다가 버스타고 샤모니 가서 점심을 먹을 건지 아니면 점심 먹고 샤모니로 갈 건지 가이드가 물었다.
우리 일행이 여기서 밥 먹고 가자고 하여 둥글게 자리 잡고 준비한 빵과 샐러드 통조림으로 점심을 먹었다. 버스가 올 때까지 쉬다가 샤모니 가는 버스가 와서 의자에 앉아 편안히 샤모니로 돌아왔다.
첫날 묵은 호텔에 들어갔는데 너무 이른 시간에 와서 호텔 내부 정리가 안 되어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호텔에 들어가 샤워부터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르릉 쾅쾅 천둥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우리가 트레킹 하는 9일 동안 이틀째 비가 오고 내내 날씨가 좋았는데 마지막 날 트레킹이 끝나고서 번개가 번쩍번쩍하며 요란스럽게 비가 왔다.
산위에서 저런 폭우를 만난다면 상당히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가이드가 스틱 끝에 씌울 고무마개를 꼭 가지고 오라 했는데 천둥번개 치는 이런 날씨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라고 생각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천둥번개가 위에서 내리치는데 알프스 산중에서는 옆에서 친다고 한다.
구름이 산 중턱에 걸리니까 그럴 만 하다고 생각되었다.
비가 오는데도 샤모니 상점에 가서 쇼핑하고 오는 사람도 있고 나는 특별히 살만한 게 없어서 호텔에서 천둥번개 치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쉬었다
.
저녁은 한국인 식당에 가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열흘 정도를 느끼한 것만 먹다가 먹어서인지 모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반찬도 몇 번 더 달라고 해서 배부르게 먹고 기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에 비가 오지 않으면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에귀 디 미디 전망대에 가기로 하였다. 이 전망대는 샤모니에서 가장 높이 있는 전망대로(3842m) 위에서 보는 경치가 너무 좋아서 아침에 조금만 늦게 가도 사람이 너무 많아 가기 어렵단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멋진 알프스의 모습이 기대 되었다.
날씨가 개기를 기원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제 10일
아침에 일어날 시간이 된 것 같아 눈을 떴는데 밖이 아직 어둡다.
시계를 보니 7시가 다 되어간다.
어두운 이유는 비가 오기 때문이었다.
건너편 산이 구름에 가려있다.
오늘 케이블카를 타고 구경하기는 틀렸다.
포기하고 내려가 아침식사를 하고 샤모니 시내를 우산 쓰고 구경하였다.
다들 기념품 사느라고 바쁘다.
오전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오늘 점심은 각자 알아서 자유롭게 먹어야 한다.
가이드가 샌드위치 잘 하는 집을 소개해줘 그 집으로 가서 샌드위치를 시키고 음료수도 주문했다.
그런데 가져온 샌드위치는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길고 딱딱한 바게뜨 빵에 치즈 등등을 넣어서 만들었다.
일인당 두 개씩을 접시에 담아 왔는데 한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만큼 컸다.
하나를 겨우 먹고 하나는 포장해 달라고 해서 가지고 나왔다.
호텔 앞에 있는 과일 가게에서 체리를 사서 먹고(과일 값이 아주 싸다) 짐을 챙겨 버스를 타고 스위스 제네바 공항으로 출발했다.
에필로그
9일 동안 총 165km의 몽블랑 둘레길을 완주하였다. 전망대 일정과 비행기 일정을 합치면 총 11박 12일의 긴 여행이었다. 이번 트래킹을 마치고 느낀 점들을 정리해보았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들을 유의해야 한다.
첫째,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단체 산행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출 수 있어야 산행을 계획대로 마칠 수 있다. 우리의 일정과 같은 다른 팀은 몇몇이 체력이 따라주지 못해서 알프스 가장 높은 고개를 넘는 날 버스를 타고 다음 산장으로 이동 했다고 한다.
몇 사람이 못 걸어서 결국 전체가 트레킹을 못하였는데 본인도 미안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분통 터질 일인가? 트레킹 떠나기 전 체력을 충분히 다지고 가야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
둘째, 장비를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발에 잘 맞고 편한 신발을 신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발에 물집이 생기고 피가 날 수도 있다. 발이 불편한데 걸을 맛이 날리는 없다.
배낭도 무게를 분산해주어 어깨가 아프지 않은 제대로 된 배낭을 구입할 것을 권한다. 여러 날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기 때문에 어깨에 하중을 그대로 다 받는 배낭은 여행 자체를 피곤하게 만든다.
스틱도 꼭 필요한 중요한 장비이다. 가벼우면서도 길이 조정이 용이하고 튼튼한 제품을 선택하도록 한다.
옷도 기능성 제품을 구입하도록 한다.
긴 여행이기 때문에 필요한 옷을 다 가져갈 수는 없다. 빨아 입어야 하기 때문에 세탁해서 빨리 마르는 제품을 몇 개만 가지고 가도록 한다. 고산지대이므로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불면 춥다. 제대로 된 윈드스토퍼를 챙겨가야 한다. 시중에서 파는 얇은 바람막이는 입으나 마나다.
셋째, 서로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서로 베풀고 지내자. 자기만 좋은 자리 차지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하루 좋은 자리 차지했으면 다음날은 양보해야 서로 끝까지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