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삶의 의무(시57:1-11)
2021.11.21 추수감사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오늘은 2021년 추수감사주일이다. 감사의 마음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나를 구원하신 것에서부터 이 순간 숨을 쉬며 살아있는 것까지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현대전은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은 교전이 발생해도 과거처럼 많이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밀한 무기로 콕 찍어서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일 교통사고로는 수백 명씩 죽는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코로나로 죽은 사람만 해도 5백만 명이 넘는다(11/19 현재, 513만7,7073명). 감사하게도 우리는 매일 전쟁터 보다 더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기적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지금도 우리들 주변에는 감사할 것들로 가득하다. 지금 이 시간 여러분들의 눈과 귀로 이 설교를 듣거나, 설교문을 읽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고,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 지금 이 순간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라는 시간이다. 만약 내 발로 걸어서 이 예배당 안에 왔거나 거리에서 차를 운전할 수 있었다면, 여러분은 세상의 수많은 장애우들이 그토록 소망하는 건강한 발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래도 감사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사진을 한 번 보기 바란다. 이 사진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낙서”라는 제목으로 얼마 전에 YTN뉴스에서 소개되었고,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사진 속의 아이는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 전쟁 중에 터진 폭탄의 파편으로 인해 두 다리를 잃은 소년이다. 이 아이가 친구들이 공차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분필로 자신의 다리를 그리는 장면이다. 이 사진을 보면서 어찌 내가 가진 것이 없고, 감사할 것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인간관계론”이라는 책과 강의 등으로 유명했던 미국의 저술가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1888~1955)라는 분이 있다. 카네기가 한참 활동하던 1929년 말에 미국에 대공황이 닥쳐왔다. 극도로 어려워진 불황의 여파로 카네기는 신발하나 살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졌다. 그래서 어느 날 자살을 결심하고 강 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두 발이 없는 장애우 한 분이 바퀴가 달린 판자 위에 앉아서 연필을 내밀면서 “선생님 연필 몇 자루만 사주세요”라고 말했다. 카네기는 자신은 이제 연필을 쓸 일이 없다고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1달러 지폐 한 장을 주고 가버렸다. 그러자 그 장애우가 쫒아오면서 연필을 가져가든지, 돈을 가져가든지 하라고 했다. 그때 카네기는 마치 천사처럼 환히 웃는 장애우의 얼굴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힘을 얻었다. 그리고 훗날 그날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신발이 없음을 한탄 했는데,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카네기에게 환하게 미소 짓던 장애우처럼 때로 감사의 미소를 짓는 것만으로도 이웃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다. 감사는 하늘의 축복의 창고를 여는 열쇠와도 같다. 반대로 불평과 시기, 질투는 자신과 공동체의 행복을 태우는 지옥의 불꽃과 같다. 생각해 보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열심히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본래부터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삶의 의무이다.
몇 년 전에 단양 고수동굴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깊은 동굴 내부까지 잘 정돈된 탐방로와 환한 불빛들 그리고 친절한 안내 표시들이 곳곳에 있었다. 동굴 속을 걸어가면서, ‘만약 동굴에 불도 들어오지 않고, 먹을 것도 없이, 혼자 있다면 굉장히 두렵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다윗은 만약이 아니고 실제로 사울왕에게 쫒기면서 광야 깊은 굴속에 있었다. 오늘 본문인 시편57편 말씀은 142편과 함께 하나님의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서 광야 동굴 속에 숨어 있을 때, 지은 기도시(詩)이다.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시편 57편)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 곧 기도]” (시편 142편)
그런데 다윗은 그 분노와 슬픔과 공포의 현장에서도 간절히 기도했다. 그것도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엄청난 신앙의 결심들을 했다. 시편 57편 7-9절 말씀이 바로 그 내용이다. 다함께 믿음으로 읽어보자.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시57:7-9)
여기서 쓰인 “확정되었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콘”인데, 이는 ‘확실히 세웠다’, ‘고정되었다’, ‘준비되었다’라는 의미가 있다. “확정”이라는 말이 반복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결심이 확고부동했다는 것을 뜻한다. 다윗은 현실은 비록 깜깜한 굴속 이지만, 그곳에서 어둠이나 공포스러운 소리들이나 부정적인 생각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마음의 준비가(=나콘, 마음이 세워진 상태)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노래하고 찬송하고, 새벽을 깨우며, 특히 만민 중에서 감사할 것을 결심했다. 이러한 결심은 결코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의지적으로 믿음의 결심을 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다. 우리들이 인생의 동굴 속에 가져야할 믿음이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처럼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에 대한 해답을 2-3절 말씀에서 발견할 있다. 다함께 믿음으로 읽자.
“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시57:2-3)
이 말씀들을 눈여겨보라.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다윗이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는가? “지존하신 하나님”,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3절 말씀을 보면, 그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인자와 진리를 보내서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다윗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대 다윗처럼 감사하며 기도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다. 하나님은 다윗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두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죄와 사망의 굴속에서 비참하게 울부짖다가 영원한 불 못에 떨어지게 될 것을 아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로부터 인자와 진리를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하늘로부터 보내신 인자와 진리의 실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14:6, 길, 진리, 생명)
오래 전 신학생 시절에 중국 서북부 신장성(수도: 우루무치)으로 선교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이곳은 주로 위구르(Uyghur)족들이 살고 있으며, 실크로드가 지나는 길목이 있다. 어느 날 우루무치 시장을 지나다가 김치를 파는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김치를 팔던 상인은 한(韓)씨 성을 가진 조선족 여자였다. 그분과 대화를 하면서 그분이 기독교인이고, 집사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짧은 몇 시간 동안이었지만 그분의 가족들과 교제하면서 주석성경을 선물했고, 불신자였던 남편이 주님을 영접하기도 했다. 그 집사님은 오랫동안 주석이 적힌 성경을 갖고 싶다고 기도했는데,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전도하겠다는 단호한 믿음의 결심을 말했다. 그 고백을 들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때 그 집사님은 만주에서부터 일일이 기록해 왔던 찬송수첩을 보여 주었다, 너덜너덜한 수첩에는 삐툴 삐툴한 한글로 적힌 찬양곡들로 가득했다. 그 곡들 중에서 지금까지도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실로암” 찬송 가사이다. 그 집사님의 가족들과 실로암 찬송을 부르면서 큰 은혜를 받았었다. 그때 그곳에서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일을 위해 “남은 자들”을 숨겨 두셨다는 것과 장소와 상황을 막론하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를 통해 주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오늘 이 시간 추수감사절예배를 드리는 우리들 모두에게도 동일하다고 확신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감사하는 마음과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감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자들이 해야 할 당연한 것이며, 삶의 의무와도 같은 것이다.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나고, 감사할 때 문제가 해결되고, 감사할 때 전도의 문도 열린다. 그러므로 광야 굴속에도 감사하고 찬송하기로 마음을 확정해했던 다윗처럼 우리들도 범사에 감사하자. 그래서 그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들을 내 것으로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