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길 10 (인주면 공세리 194-1번지)
041-533-8181
입장료 관람료 무료
전용주차장 무료주차
주차장은 차단막으로 막아놓은 오른편엔 마련되어 있다.
주차를 하고 천천히 올라가 본다.
1895년 6월 양촌성당(陽村本堂, 구합덕성당의 전신)에서 분리 창설된 가톨릭 성당이다.
대전교구에서는 가장 먼저, 한강 이남에서는 5번째로 세워져 역사적 가치가 높아 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2005년에는 한국관광공사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되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느티나무의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공세리란 명칭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貢稅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충청도 내포(內浦) 지역에 위치한 공세리 일대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기에 이미 ‘내포의 사도’라고 불리던 이존창(李存昌)에 의해 복음이 전래되었다.
박씨 3형제(박의서, 박원서, 박익서)는 천주를 모신다는 이유로 1867년 정묘년에 모두 순교하였다.
이 후 박해기를 거치면서도 신앙을 보존하던 이 지역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뒤에는 양촌본당의 관할 아래 있다가
1895년 6월 드비즈(Devise, 成一論) 신부가 공세리로 부임하면서 본당이 설립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드비즈 신부는 이미 매입한 10칸 정도의 기와집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꾸몄고,
1897년 6월에는 다시 3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공세창이 있던 일대를 매입한 다음,
1899년 그 자리에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였다.
또 1905년에는 조성학당(1927년 폐쇄)을 세워 교육 사업에도 앞장서 공세리 발전에 기여하였다.
공세리성당의 상징나무로 성당의 오랜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350년이 넘은 팽나무가 뿌리까지 드러내어 위용을 뽐낸다.
한편 1920년대 들어 신자수가 증가하자 기존의 성당으로는 늘어나는 신자들을 다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드비즈 신부는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지휘 감독하여
1922년 9월에 현재의 고딕 양식의 서양식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이 후 9대 주임 이인하(李寅夏) 신부는 1958년 초에 강당을 신축하였고,
1971년 1월에는 13대 주임 김동욱(金東旭) 신부가 성당을 증축하고 별관을 완공하였다.
중앙문은 이용하지 않는다. 왼쪽으로 돌아가면 옆문을 이용할 수 있다.
내부는 마루바닥이라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고... 기도하는 장소이므로 정숙하여야 한다.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약간 어두운 조명과 포근한 느낌의 붉은 조명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전형적인 고딕 건축물의 특징인 벽을 따라 정확하게 줄지어 창문을 내는 구조법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시작되었다.
공세리성당을 매개로 한 멋진 회화작품이 보였다.
공세리성당의 상징나무 아름드리 고목의 자태와 더불어
성모마리아의 품속에서 공세리성당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의 모습까지... 숲속 성당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성당본당과 구사제관 두 건물이 1998년 7월 28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공세리 천주교회는 1895년 파리 외방 선교회 드비즈(에밀리오) 신부가
당시 동네 한 가운데 신자집을 임시로 사용하여 복음을 전파하며 시작되었다.
그 후 1897년 창고 건물(현 사제관)을 헐고 구 성당과 구 사제관을 임시로 지었다.
주보성인은 성 베네딕토이다.
현재의 성당이 위치한 8000여 평의 부지는 예로부터 공세 곡창지(貢稅 穀倉地)로 유명한 곳이다.
조선조 성종 9년(1476년) 세곡 해운창을 설치 운영하다가 중종 18년(1524년) 80칸의 창고를 지어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일원으로부터 거둬들인 세곡을 집결한 후
조운선으로 서해 물결을 따라 한양으로 운반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같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에서 세금을 거두어 임시 보관했던 자리가 400년이 지난
1890년에 들어서면서 내포 지방에 상륙한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가톨릭 신앙 전교의 전진 기지로 바뀌게 되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성당이라 그런지 350년 이상된 보호수가 총 4그루가 있다.
초대 본당 신부인 드비즈 신부는 1895년 5월 6일부터 1931년 7월 5일까지 본당 사목을 하였다.
현재의 성당을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지휘 감독하여 1922년 10월 8일 성당을 완공했다.
드비즈 신부는 지역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등 많은 노력을 했고, 자신이 직접 조제한 한방의술을 활용 한약 조제로
지금은 고인이 된 유명한 이명래 요한 씨에게 고약의 비법을 전수시키기도 하였다.
구 사제관 뒤편으로 옛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손으로 돌리는 재봉틀도 있었지만 이후에 나온 발로 돌리는 페달식 발판의 재봉틀이 1970년대 집집마다 한대씩 있던 대세였다.
당시는 손바느질에서 벗어나게 해준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불피울때 부채질을 대신하는 풍로의 모습도 반갑다. 화로의 한가지로 손으로 돌리는 풍로에 이어 전기 자동 풍로도 나왔다.
전세계 어느 박물관에 다 있다. 찧고 빻는 도구는 어쩌면 식자재 변경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반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벼와 쌀을 분리시키는 탈곡기는 안쓰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또한 공세리 본당은 내포 지방 신앙의 못자리이다.
1897년 6월 공주 본당 분할, 1901년 안성 본당 분할, 1948년 온양온천동 본당 분할, 1976년 둔포 본당을 분할시켰다.
[십자가 vs. 별]
성탄절을 약 한 달 앞두고 서울시청 앞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됐다.
2022년 11월 19일 점등식을 시작으로 2023년 1월 1일까지 불을 밝힐 예정이다.
도심 곳곳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연말 분위기를 내는 가운데, 시청 앞 트리의 십자가 장식을 두고 논쟁이 불거졌다.
공공장소에 성탄트리가 설치된 건 큰 종교적 불편함이 없이 함께 즐길 문화란 의미인데,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걸린 성탄트리는 문제라는 주장이다.
과거 청와대 국민청원에 ‘공공장소 크리스마스 트리에 십자가 장식물 설치를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청원인은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들만의 행사가 아니므로
△(십자가 장식에) 시민들이 거부감과 불쾌감을 느낄 수 있으며
△도시 및 지역을 대표하는 공공장소를 기독교 도시로 만들고 있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사실 서울시청 앞 트리는 2002년까지 십자가가 아닌 ‘별’이 달려있었다.
1960년대 말부터 꾸준히 별 모양 장식이었지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재임 첫해부터 십자가 모양이 사용됐고,
공공을 위한 장소에서 종교적 편향성이 강한 장식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트리 설치에서 손을 뗐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기독교단체가 자체 예산으로 십자가를 설치하고 있다.
십자가가 기독교를 대표하는 상징이므로 성탄절에 적합하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한 네티즌은 “성탄절 자체가 기독교의 날인데 별보다는 십자가를 다는 게 맞다”라고 반박했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십자가 장식을 두고 문제 삼는 건, 불교계가 매년 종교 편향을 주장해 온 것에 대한 반영”이라면서
십자가로 문제 삼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3인의 동방박사가 베들레헴의 별을 좇아 구유에 담긴 아기예수를 찾아
갔으며, 이런 유래를 토대로 유럽이나 미국은 이런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트리 위에 별을 달고 있다”라며
실제로 유럽, 미국, 교황이 있는 바티칸에서조차 크리스마스에는 십자가가 아닌 별을 단다는 사실을 지적한 네티즌도 있었다.
이 네티즌은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상징이다. 성탄절 장식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김유민 기자 2022년 11월 21일]
본당 구내에 삼위의 순교자를 모신 묘가 자리하고 있다.
1863년 조선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고, 1866년 병인박해 때 밀두리·걸매포·해암리 신자 28명이 수원·서울·공주 등으로
끌려가서 고문·옥사·교수 등으로 순교하였다.
그런데 박의서·박익서·박원서 삼형제의 시신을 신자 한 분이 찾아 본당에서 서남쪽으로 5km 떨어진 해암리 맹고개에 모셨다가,
그분이 돌아가실 때 남긴 유언에 따라 1988년 9월 20일 본당 구내로 모셔왔다.
“병인치명사적” 제11권에 기록되어 있기를 1867년 병인 풍파를 당해 삼형제 함께 잡혀 수원으로 올라가며 원서 말하기를
“내 평생 천주 공경을 실답게 하지 못하였더니 오늘 주께서 나를 부르셨노라” 하였다.
[유흥식 추기경, 아산 공세리 성당서 성탄 미사 집전(執典)]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전야, 전쟁을 멈추고 더불어 함께 행복한 세상을 바라는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도했다.
24일 오후 8시 충남 아산 공세리성당에서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집전하는 성탄 미사가 열렸다.
영하 7도의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신도들이 일찌감치 성당을 찾아 자리를 메웠다.
성당 밖에서도 수백여 명의 신도들이 TV화면을 통해 미사를 함께 봉헌했다.
휴가를 위해 방한한 유흥식 추기경은 이날 성탄 미사를 집전(執典)하며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했다.
[출처: news1 이시우기자 2022년 12월 24일]
1995년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본당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였고,
1998년 성당과 구 사제관이 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2002년 10월 새 사제관, 수녀원, 예수마음 피정의 집, 성체조배실을 완공하여 축복식을 갖고 주변 정비사업을 마무리하였다.
[출처 : 공세리 본당 신부님]
십자가의 길 (고통의 길, Via Dolorosa) The Stations of the Cross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길로 예수님의 사형선고로 시작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며 묻히시는 과정을
14처에 담아놓았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길을 통해 하느님의 우리 인간을 향한 크나 큰 사랑을 느끼고 체험할 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시련과 고통들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법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길을 통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1. 예수님이 사형 판결을 받은 본디오빌라도 재판정
14개의 십사처들을 방문하여 각 십사처 앞에서 기도하면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명상하는 의식은,
초기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해
빌라도의 관저라고 추측되는 곳으로부터 갈바리아에 이르기까지 각 장면의 사건이 일어난 곳들을 방문하며
그 길을 따라 걷던 관습에서 유래했다.
2. 십자가를 짐
로마 군사들이 예수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혀 희롱한다.
3. 첫번째로 넘어짐
1856년에 세워진 아르메니안 기념교회에 속해있는 작은 교회당에 표시되어 있다.
4. 예수님이 슬퍼하는 어머니를 만남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5. 키레네 사람 시몬(Simon of Cyrene)에게 십자가를 골고다 언덕까지 지게 함
6. 성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줌
성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는데 돌려 받은 손수건에 예수님의 초상이 새겨졌다는 전승에 따라
그리스 정교회가 1882년에 이 지점에 기념교회를 세웠다.
7. 예수님이 두번째로 넘어짐
당시 성 밖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다고 한다.
8. 예루살렘 여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눈물을 흘림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누가복음 23:28) 말씀하셨다.
역시 사랑은 내리사랑~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보는 세상
9. 세번째로 넘어짐
예수님이 세번째로 쓰러진 곳에 지금은 콥틱 교회가 서있다.
10. 겉옷을 벗기움
11. 십자가에 못박힘
12.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음
가을 단풍든 공세리 성당의 운치있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꽃이 핀 공세리 성당의 화사함도 나쁘지 않다.
성당을 방문하는데 계절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13. 십자가에서 내려짐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놓은 장소다.
14. 무덤에 안장됨
요셉이 자기 가문의 무덤으로 옮겨 예수님을 장사 지낸 곳이다.
중간에 사잇길도 예쁘게 매우 잘 조성되어 있다.
우린 하얀 성모마리아상에 익숙하지만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검은 성모마리아상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검은 성모마리아상은 특히 유명하다.
현지 지역화한 의상과 모습을 한 성모마리아상의 모습도 세계 각지에서 볼 수 있다.
고의든 의도치 않았던 꼭 위협적인 도전으로만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성모 마리아는 두 손을 모으고 있고 시선은 하늘을 보고 계신다. 화관을 쓰고 계시고 발 밑으 화려한 꽃들이 장식되어 있다.
순교자 현양탑이 세워진 곳은 원래 1867년 정묘년에 순교한
박의서 사바스, 박원서 마르코, 세례명이 알려지지 않은 박익서 3형제가 나란히 잠든 묘소가 있던 곳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우리의 신앙 선조들 중에는 전국 곳곳에 이름도 채 남겨 놓지 못한 채
오직 천주를 모신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초개같이 목숨을 던진 무명의 순교자들이 많다.
이곳에 모셔져 있는 박씨 3형제는 겨우 그 이름과 몇 가지 행적이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어떻게 살다가 죽어 갔는지 그리 상세하게 전해 내려오지는 않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다른 많은 순교자들과 마찬가지로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병인치명사적” 제11권에 보면 “병인풍파를 당하여 3형제가 함께 잡혀 수원으로 올라가며 원서가 말하되
‘내 평생 천주 공경을 실답게 하지 못하였더니 오늘 주께서 나를 부르셨노라’ 하며 즐거워 …
‘동생 들어 보소. 우리 3형제 올라가 위주 치명하자’ 하고 조금도 변함없이 3형제 수원으로 올라가니 …”라고
이들의 최후의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공세리 성지 · 성당은 1995년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본당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였고,
1998년 7월 28일 성당과 옛 사제관이 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2000년 성당과 옛 사제관의 원형 복원공사와 사제관, 수녀원, 예수마음 피정의 집, 성체조배실, 주변 정비사업 등을 시작해
2년 뒤인 2002년 10월 13일 축복식을 가졌다.
2007년 8월에는 박씨 3형제 순교자의 묘가 있던 자리에 순교자 현양탑을 세워
아산 공세리 지역 출신 순교자 28위의 유해와 묘석을 봉안하고, 그 위에 도자기 테라코타 부조작품 ‘28위 순교자’를 설치하였다.
그 후 추가로 발굴된 4위 순교자의 유해 또한 이곳에 모셨다.
2008년 9월 6일에는 옛 사제관을 개보수하여 내포지방 교회사를 중심으로 특화한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성당 옆으로는 한적한 오솔길도 마련되어 있는데, 이 길에는 예수의 수난을 묵상할 수 있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마련되어 있다.
십자가를 지고 피땀을 흘리신 예수와 같이
우리 선조들도 자신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시대가 가져온 험한 박해의 시기를 겪었던 것이다.
건축 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해 온 성당 옆에는 오래된 거목이 한 그루 있다.
그 연륜을 알 수 없는 고목은 공세리 본당의 긴 역사를 그저 무심한 듯 말없이 증언해주고 있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8년 6월 29일)]
성체조배(聖體朝拜, Adoratio Eucharistica)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성체를 현시하여 그 앞에서 경배하도록 하는 신심 행위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축성된 제병, 즉 성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빵의 형태를 유지한 채 그 안에 실제로 현존하고 있으며,
성체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성체 현시는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봉헌과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어 성체 현시와 묵상은 단순히 성체를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체 안에 내재해 있는 그리스도의 영혼과 신성을 찬양하는 것에 있다.
[출처: 위키백과]
성체조배실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신비스러운 마법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오른쪽 문에 새겨진 문양이 친숙하다.
예수님이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5천명을 먹였다는 데에서 유래한 오병이어(五餠二魚)가 위 아래로 새겨져 있다.
성 알퐁소는 "하루 15분의 성체조배로 다른 여러가지 신심행위를 24시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은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성지순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방문하면 좋을 곳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성당의 모습이 궁금해서 확인하는 것도 좋고
최고의 기도빨로 통하는 공세리성당 성체조배실에서의 기도도 좋고
무엇보다도 숲속의 성당이라는 느낌이 맑고 깨끗한 상쾌한 기분이 들게 한다.
작년에 추기경이 방문해서 성탄 미사를 집전할 만큼 유명한 곳이라 이젠 전국적으로 방문객이 많고 다양하다.
숲속 한적한 산책을 겸한 방문이라면 조금 이른 시간에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