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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평택시 현덕면 평택호길 48 (현덕면 권관리 551-3번지)
031-8024-8687
입장료 관람료 무료
주차장 무료주차
건너편 충남 아산과 이곳 경기 평택이 서로 마주하는 호수다.
아산만방조제로 생긴 호수라 아산호라고 하지만 평택에서는 평택호라고 부른다.
1973년 12월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권관리와 충남 아산시 인주면 모원리 사이의 2km의 바닷길을 아산만 방조제로 쌓으면서
24㎢의 거대한 호수로 만들어졌다. 그 다음해부터 날씨에 상관없는 사계절 낚시터로 알려졌다.
평택호(아산호)는 산간 내륙지방에 있는 댐과는 달리, 해변의 간석지형 호수에 많은 붕어, 잉어가 서식하고 있다.
평택호관광안내소를 먼저 방문한다.
1층은 전체적인 색깔이 평택호의 물빛을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가득하다.
1층 안내데스크에 계신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어르신이 친절하게 2층 해양자연사 표본전시실 안내도 해 주시고
평택관광지도와 함께 이후 가볼만한 추천관광지도 자세히 알려주셨다.
평택호는 오랫동안 평택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사랑받아왔고 현재도 개발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나갈 전망이다.
2층으로 계단을 올라갔더니 창너머로 평택호 전망이 펼쳐진다.
아기공룡둘리의 엄마공룡 모델인 대표적인 초식공룡인 브라키오사우루스(Brachiosaurus)가 한쪽에 서있다.
그런데 사실 아기공룡둘리는 육식공룡 케라토사우루스(Ceratosaurus)다.
둘리아빠의 인생역경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끝에 바로 2017년 11월에 문을 연 평택호 해양자연사 표본전시실의 입구가 바로 연결되어 있다.
약25억년 전 최초의 생명체라 일컬어지는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가 수중의 탄소를 직접적으로 체내에 흡수하여
유기질화하는 광합성에 성공한 후, 진정한 의미의 동물이라 할 수 있는 에디아카라 동물군(Ediacara Ftauna)이 대칭의 몸으로
역동적인 운동성을 선보이는 약8억년 전까지, 30억년에 육박하는 장구한 시간 동안의 생물 발생학적, 계통학적 입증은
매우 어렵고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 시기는 어떤 이유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지구나이 20억년이 지나면서(약25억년 전),
지구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물을 분해해 산소를 발생시키는 광합성 활동을 했던 시아노박테리아가 전 지구적으로 출현했고,
이에 산소가 대기 중에 집적(集積)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새로운 광물(Mineral)들도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후 5억 4100만년 전 생물 사상 최대 사건인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일어난다.
갑자기 연체동물, 절지동물, 해면동물 등 그리고 척추동물에 이르기까지 현존하는 거의 모든 동물들의 선조가 갑자기 나타난다.
사실 고생물학자들이 처음부터 이 캄브리아기 대폭발 시기에 등장한 다른 동물들의 조상들 중 척추동물의 조상이 함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진 못했다. 발생학적으로 가장 고등한 생물 무리라 할 수 있는 척추동물은 가장 늦게 등장했을 것이라고 여겼다.
비록 완벽한 형태의 척추를 가진 동물은 아니지만 산호, 게, 오징어와 같은 동물의 조상들과 거의 같은 시기에 등장한 것은
당시의 고생물학자와 생물학자들을 적잖게 당황스럽게 했다.
삼엽충(三葉蟲, triloites)은 매우 다양한 외형을 보이며 진화했고, 고생대 바다 곳곳을 누비며 살았다.
새우나 게처럼 아가미, 다리, 부속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데, 종류에 따라 바닥을 기어다니거나, 바닥을 미끄러지듯 헤엄치거나,
바다 바다에 구멍을 파고 살았을 것으로 본다.
카브리아기에 나타난 삼엽충은 눈이 없는 것도 있었으나 데본기에 이르러서는 어류와 함께 경쟁적 진화를 일으키며 독특한 겹눈
구조를 선보인다. 또한 다른 절지동물처럼 허물을 벗어 성장했다.
삼엽충은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최초로 출현한 절지동물의 일종으로 고생대를 구분짓는 대표적인 표준화석(Index Fossil)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삼엽충은 약4천여 종에 이르고 약2억5천만년 이상을 번성하다가 멸종하였다.
삼엽충은 외골격을 가진 모든 절지동물의 중심집단으로 알려져 있고,
대부분의 삼엽충은 겹눈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삼엽충의 겹눈은 방해석(Calcite) 렌즈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어류와 더불어 최초로 색(Color)을 볼 수 있었던 생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삼엽충 집단에서부터 바다거미가, 그리고 여기서부터 거미가 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엽충은 독특한 형태의 겹눈구조를 보이는데 이 겹눈속 각각의 눈들은 긴 각기둥 모양의 투명한 방해석을 늘어세운 형태이다.
그리고 광파는 방해석의 C결정축과 평행한 방향으로 삼엽충의 수정체를 통과하고,
눈 안쪽에는 광수용체가 자리잡고 있었다.
암모나이트(Ammonite)는 당시 굉장히 번성하였던 고생대의 삼엽충과 같이 중생대의 표준화석(Index Fossil)이다.
간단히 말해서 삼엽충이 발견되면 고생대의 지층, 암모나이트가 발견되면 중생대의 지층인 것이다.
고생대에 나타나 중생대, 나아가 신생대 극초기까지 번성했던 두족류들 중 국석아강에 속하는 이들을 통틀어서 칭하는 말이다.
어원은 이집트 신화의 신인 아문으로, 화석을 아문신의 머리에 있던 숫양뿔이라고 고대의 학자 대 플리니우스가 생각하고
박물지(Natural is historia)에 ammonis cornua(암몬의 뿔)이라고 쓴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구의 생성과정 "지구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 우주먼지와 가스로 이루어진 구름이 중력으로 인해 계속해서 수축하고 그속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면서 태양이 생겨났다.
그 뒤 남은 물질들이 여러 개의 소용돌이를 이루며 각각 뭉쳐서 태양계 행성이 되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지구다.
2. 지구에 있는 물의 70%는 혜성이 떨어지며 생겨났고 혜성은 생물의 출현에 중요한 생채부자를 포함하고 있다.
3. 벼락은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비는 침식과 풍화 작용을 일으켜 퇴적암의 형성을 도왔다.
4. 화산 폭발로 인해 메탄과 이산화탄소, 질소가 초기 지구의 대기를 채웠다.
5. 지구 맨틀에서 마그마가 분출되며 해저를 가르고 지각을 부수어 수많은 지질 구조판이 만들어졌다.
많은 양의 마그마가 분출하면서 해양 지각이 조금씩 밀려서 점차 대륙이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지질시대는 지구가 생성된 이후부터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1만년 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지질시대는 화석이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 "은생누대(隱生累代)"와 다양한 화석이 발견되는 "현생누대(顯生累代)"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현생누대는 생물의 출현과 번성, 멸종과 같은 생물계의 커다란 변천사를 바탕으로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나눈다.
특히 고생대는 현대생물문의 절반 이상이 등장한 시기이다.
고생대 초기 캄브리아기에는 거의 대부분의 무척추바다동물이 등장했는데 이를 "캄브리아기 생물 대폭발" 이라고 한다.
최초의 척추동물인 어류의 등장과 번성
어류는 민물과 바닷물 모두에서 다양하게 번식분화하는데 성공한 고등동물로,
최초의 척추동물이며 가장 많은 종을 이루고 있다.
무악어(無顎魚), 판피어(板皮魚), 연골어(軟骨魚), 경골어(硬骨魚)의 4개 강으로 나누며,
발생학적으로 초기에 등장한 어류의 대부분은 턱이 없는 무악어류였다.
이후 턱이 만들어지면서 일부 어류는 강력한 포식자의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이들 모두는 뇌, 척수, 체절과 연결된 근육, 척색을 가지며 후각, 시각, 균형감각을 위한 한 쌍의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가미를 통해 호흡하며 몸이 비늘로 덮여있다. 대부분의 경우 냉혈동물이지만 참치나 상어와 같은 몇몇 종은 온혈이다.
오늘날 지구에는 약3만 종에 가까운 어류가 살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생대의 바다
중생대 육지에 지질사상 가장 덩치가 컸던 척추동물인 공룡이 있었다면,
바닷속에는 수장룡(首長龍, Plesiosauria)과 어룡(魚龍, Ichthyosauria)과 같은 거대 파충류가 있었다.
또한 고생대 페름기 대멸종사건에서 일부 완족류와 상어 등이 살아남았다.
수장룡은 목이 긴 종류와 짧은 종류가 있는데, 물속에서 새끼를 낳았고 어룡과 달리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었을 것으로 본다.
어룡은 물고기의 외형과 매우 흡사하나 아가미는 없고
머리 윗부분에 구강과 통하는 내비공(內鼻孔)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수장룡과 달리 알을 몸속에서 부화시켜 새끼를 낳았다.
중생대 바다는 이런 수장룡과 어룡, 그리고 중생대에 이르러 극도의 번성을 보이는 어류들의 각축장이었을 것이다.
고니아타이트형 암모노이드의 뒤를 이은 암모나이트 또한 중생대 바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쟁자였다.
이들은 비록 무척추동물이었지만
비대칭 나선구조로 짜여진 단단한 패각 안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며 중생대를 대표하는 생물로 번성한다.
경골어류
척추를 중심으로한 단단한 내골격을 가지며 오늘날 어류의 주종을 이룬다.
경골어류 대부분은 비늘로 이루어진 외피로 덮여있고, 형태나 습성이 매우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연골어류
대표적인 연골어류로 상어와 홍어 등을 들 수 있는데, 고생대 데본기에 등장하였고 석탄기에 매우 번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들 모두는 체내의 골격이 연골로 되어 있으며 부레나 폐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생물의 육상진출과 식물
선캄브리아대에 등장한 모든 생물은 물에서 기원하였고 또 물속에서 살았다.
초기 지구의 지표는 태양에서부터 오는 강력한 자외선이 직접적으로 도달하고 있었고,
생물들은 이 강력한 자외선을 막아주는 물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지구의 바다에 산호초가 포화되면서 지구의 대기에 산소(O)가 집적(集積)되기 시작하고,
그 일부는 번개의 방전 등에 의해 오존(O₃)이 되어 대기권에 오존층(ozone layer)을 만들게 되었다.
이로 인해 지구로 유입되는 자외선은 현격히 줄어들게 되었고,
모든 생물의 최초로 광합성을 하는 녹색의 조류(藻類, Algae)가 육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이 녹조류는 체표에 큐티클층이 발달하여 체내의 수분 증발을 막고 건조에 견딜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
한편 화석적 증거로 볼 때, 대기 중의 오존량이 오늘날과 같아지면서 식물이 육상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시기는
고생대의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였을 것이다.
최초로 육상에 진출한 양치식물인 쿡소니아(Cooksonia sp.)가 이 시기에 나타났다.
육상동물에서 바다로 돌아간 고래이야기
생물이 바다에서 기원한 후, 식물이 뭍에 오르고 또 일부 물고기가 특별한 진화를 보이며 뭍에 오른다.
이들은 치열한 물속 경쟁을 피해 뭍으로 오르거나, 자신의 서식지 확장을 위해 뭍에 올랐을 것이다.
이렇게 선구적 생물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엇던 육지는
고생대의 데본기를 지나 석탄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육상생물들로 채워져 간다.
육상생물들은 중생대와 신생대를 지나면서 공중을 포함한 모든 영역으로 서식지를 확장해 갔다.
한편, 그중 일부는 다시 바다로 회귀하기도 했는데 신생대의 고래가 대표적이다.
고래의 직접적인 조상이라 할 수 있는 파키케투스(Pakicetus sp.)는
열대 사바나 기후의 사냥하기 어려운 환경과 지나치게 많은 경쟁자를 피해 바닷가에서 먹잇감을 구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고래는 현재 지구에 살고있는 생물 중 가장 덩치가 크다.
바다로 돌아간 지 수 천 만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이며 새끼를 기른다.
전시공간도 좁고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나름 유익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볕이 뜨꺼운 초여름 날씨여서 실내에 자리를 잡고앉아 평택호를 바라보며 잠시 시원하게 쉼을 가져볼 수 있어서 좋았다.
평택호관광안내소 옆에는 수상카페와 매점, 그리고 오리보트 등의 물놀이 시설이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오리배는 돈을 내고 타는 게 아니라 돈을 받고 타야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타고싶은 생각은 없다.
차량으로 이동할까 생각하다가 수변데크가 잘 되어 있어서 차를 주차장에 놔두고 걸어보기로... 무모한 도전을 했다.
햇빛이 뜨거운 여름에는 섣불리 걸을려고 하다가 일사병으로 쓰러지거나 탈수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굳이 걷지 않아도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충분히 차창 밖으로 즐길 수 있는 풍경이다.
꽤 오래된 관광지고 서울과의 접근성도 좋아서 이곳을 찾는 관람객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너무도 한산해서 의외였다.
바다같은 호수 주위로 끝없이 이어지는 목조 수변데크를 걸으며 중간중간 마련된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평택호 뱃머리전망대는 데크위를 연장하여 호수쪽을 뱃머리모양을 만들어 조금 툭 튀어 나와있을 줄 알았는데...
제법 높이도 있고 전망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평택과 충남 아산을 연결하는 서해선 복선전철 아치교(고가교)도 보인다.
약4조원대의 예산이 투입되는 서해안 복선전철은 경기도 화성 송산과 충남 홍성을 연결하는 총길이 89.2km로,
지난 2015년 공사를 시작해 2022년 말 개통예정이었지만 일부 구간의 민원발생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공사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평택호 옆에는 경기도 유일의 국제무역항 평택항이 있다. 또한 해군2함대가 있어서 서해수호관 안보공원을 관람할 수 있다.
평택시청 요트팀인 평택엔젤스는 경기도 유일의 직장운동경기부 요트팀으로
2023 부산 슈퍼컵 국제요트대회(2023년 4월 27일~30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매년 여름 이곳 평택호에서 요트교실을 통해
평택 시민에게 요트, 고무보트 타기, 심폐소생술 교육 등 유익하고 즐거운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경기도 평택시가 한류문화체험프로그램 '평택호 감성 나들이'로 평택호의 한류관광 명소화를 추진한다.
‘평택호 감성 나들이’는 평택호에 위치한 한국근현대음악관에서 진행되는 K-컬쳐 체험형 관광프로그램으로,
2023년 5월 20일 정식 오픈한다.
평택호를 찾은 관광객들은 한국근현대음악관 2층의 한복체험관에서 무료로 한복을 대여해
별도로 마련된 셀프사진관에서 기념 촬영을 할 수 있다.
또한, 한국근현대음악관 입구에서는 반려인들의 참여를 위한 반려견 한복체험도 마련된다.
‘평택호 감성 나들이’ 운영은 장마철과 혹서기를 고려해 7, 8월을 제외한 전·후반기로 나눠 진행된다.
5월 20일부터 7월 1일까지 전반기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운영시간은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다.
행사 참여는 전화, 평택시 홈페이지 게시판, QR코드를 이용해 사전 접수 시 행사장에 우선 입장할 수 있으며,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
전통문화체험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남기면 소정의 기념품도 증정한다.
평택시 관계자는 “이번 전통문화체험프로그램은 SNS를 활용해 참여와 홍보를 유도하는 체험형 관광프로그램으로,
시의 관광자원인 평택호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사전 예약 접수에 많은 시민이 참여하고 있어 앞으로도 SNS와 다양한 체험관광프로그램을 접목해
평택호를 한류관광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출처: 아이뉴스24 이윤 기자 2023년 5월 16일]
국.도비를 포함해 총256억 원의 사업비로 조성된 한국소리터는 2011년 11월 11일 개관 이후
2021년부터 평택시청(시장 정장선)에서 평택시문화재단(대표이사 이상균)로 위탁 운영하여
다채로운 공연과 교육 체험프로그램, 공간 리모델링을 통해 ‘평택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새롭게 출발하고 있다.
한국소리터는 평택 호반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경기도 내 대표적인 관광 휴양 공간인 평택호 관광단지에
27,183 m2 (8,223평)규모로 조성된 공연장이다.
크게 평택 출신의 국악거장 지영희 선생을 기념하는 569석이 갖춰진 지영희홀(공연장, 카페테리아), 평택농악마을(야외공연장),
두드림동(사무실, 연습실, 스튜디오)으로 나눠져 있으며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행복한 한국소리터’를 만들기 위한 비전을 가지고 운영된다.
1F 지영희 국악관
2F 음악도서관
3F 한국근현대음악관
500년 전, 왕의 도라 불리웠던 경기도는 한국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경기음악의 중심지는 경기아산만 일대였다. 경기아산만은 백두대간에서 영종도부터 서산까지를 일컫는다.
경기도의 정치적 중심지는 북한산성, 남한산성이었고
문화적으로 보면 임진강, 예성강, 한강 보다 경기아산만이 경기도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 중에서 평택은 흥성 사람들이 가는 두 길목에 있었다.
평택에서 수원, 당진에서 배를 타고 평택에 닿는 첫 번째 포구가 지영희가 태어난 집(평택 포승읍 내기리)이다.
당시 평택에서 가장 큰 시장에 사람들이 몰리고 남사당패가 몰려와 시장에서 놀이를 하는데
지영희는 그것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굿과 농악이 크게 발달했다.
평택은 민속음악과 무속음악의 온상지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바로 이런 풍부한 문화적 환경에서 지영희가 태어나고 자란 것은 큰 행운이지 않을 수 없다.
지영희 선생의 국악관현악 활동 중 가장 중요한 업적은 국악기 개량일 것이다.
선생은 1960년 초 국악예술학교 학생국악관현악단을 조직하면서 곧바로 저음 연주를 위하여 대아쟁과 대해금을 개량하였고,
혼자서 연주할 수 있도록 5북(모듬북)을 개량하여 국악관현악에 활용하였다.
그리고 연주법이 전수되지 않았던 비파, 월금, 공후 등의 학기를 복원하여 연주에 활용하였다.
1930년에는 정태신(鄭泰信)에게 양금·단소·퉁소를 배웠고,
1931년에 지용구(池龍九)에게서 해금·풍류 시나위를, 양경원(梁慶元)에게서 피리 삼현육각(三鉉六角)과 시나위를 배웠다.
1932년 김계선(金桂善)에게 대금 시나위를 배웠고,
1935년 지용주(池龍珠)에게 무악장단을 배웠으며, 다음해에는 박춘재(朴春載)에게 경기소리·서도소리를 배웠다.
1937년 조선음악연구소에 입소하여 악사가 되었고, 1938년에는 한성준무용단(韓成俊舞踊團)의 반주악사로 활약했으며,
1946년에는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가 되었다.
1960년에는 국악예술학교 교사로서 유망한 신인들을 많이 길러냈다.
1966년에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초대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1967년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의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가, 1975년 해외이민으로 지정이 해제되었다.
하와이로 건너가 민속악을 정리하다가 1980년 사망했다.
2층에는 한국근현대음악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처음 보는 음악도서관... 낯설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고... 직원분이 계셨으면 여쭈어보고 이용할 수 있을 텐데... 아쉬웠다.
체험하는 방법과 순서를 설명해 놓았지만 귀한 것이라는 생각에 선뜻 만지기가 두렵기도 하고...
무엇보다 헤드셋(이어폰)을 찾지 못했다.
신승훈 "보이지 않는 사랑"
Ich liebe dich so wie du mich am Abend und am Morgen
사랑해선 안 될게 너무 많아
그래서 더욱 슬퍼지는 것같아
그중에서 가장 슬픈 건
날 사랑하지 않는 그대
내곁에 있어달라는 말 하지 않았지
하지만 떠날 필요 없잖아
보이지 않게 사랑할 거야
너무 슬퍼 눈물 보이지만
어제는 사랑을 오늘은 이별을
미소짓는 얼굴로 울고 있었지
하지만 나 이렇게 슬프게 우는 건
내일이면 찾아올 그리움 때문일꺼야
클라리넷(clarinet)
1.5㎝ 정도 지름의 원통형 관으로 끝이 나팔 모양이며, 보통 아프리카 흑단 나무로 만든다.
경질 고무로 만든 취구의 한쪽 면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위로 대나무로 만든 얇은 리드 하나가 나사식 조임틀로 매어 있다.
연주를 할 때는 리드를 아래쪽으로 한 상태에서 취구를 물고 양입술이나 아랫입술과 윗니 사이로 불어 소리를 낸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클라리넷은 B♭클라리넷이며 실제로 나는 음높이는 악보의 음보다 장2도 낮다.
A 클라리넷도 보편적으로 사용되며, 그밖에 클라리네테 다무르·바셋 호른·알토 클라리넷·콘트라베이스 클라리넷 등이 있다.
18세기 초 독일의 요한 크리스토프 데너가 처음 발명했으며 민속 악기인 샬뤼모를 개량해서 만들었다.
주로 관현악단과 군악대, 관악대 등에서 연주된다.
트럼펫(trumpet)
음악인류학자들은 입술을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악기를 모두 트럼펫으로 분류한다.
BC 2000년 이집트에서 사용했던 최초의 금속 트럼펫은 1~2개의 음만을 낼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의식용 또는 군대용 악기였다.
중세에 이르러 음악용 악기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가장 오래된 트럼펫은 60㎝ 정도 되는 곧은 관을 가졌고,
2m에 달하는 곧은 모양의 관이 있는 뷔진은 오랫동안 왕의 화려한 행렬에 사용되었다.
1500년경에는 오늘날처럼 고리 모양의 길고 구불구불한 관을 가진 트럼펫이 나왔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음악가들은 자연 배음렬 이외의 음들을 연주하기 위해
관의 일부를 미끄러지게 하여 길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19세기 영국 관현악단에서 슬라이드 트럼펫이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했다.
한편 1828년경 독일에는 밸브 트럼펫이 등장했는데 이것은 대개 F조로 조율되었다.
20세기에 와서는 크기가 더 작은 B♭조 트럼펫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군인 기상나팔이나 취침나팔이 생각나게 하는 신호나팔의 모습이 반갑다.
꽹과리, 징, 북
여기에 장구를 포함하여 사물놀이가 완성된다.
원래 사물(四物)이란 불교의식에 사용되던 악기인 법고(法鼓)·운판(雲板)·목어(木魚)·범종(梵鐘)을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뒤에 범패(梵唄)의 바깥채비 소리에 쓰이는 태평소·징·북·목탁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었다.
그리고 다시 절 걸립패의 꽹과리·징·장구·북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어 오늘에 이른다.
한국근현대음악관은 3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평택호 관광단지 내 한국소리터에 위치한 한국근현대음악관은
박물관, 도서관, 기록관의 기능을 갖춘 우리나라 근현대 음악을 주제로 한 최초의 복합문화공간이다.
국악과 양악, 근대와 현대, 대중과 민중이 공존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항일과 친일음악, 독립운동, 음악 교육, 북한과 일본의 음악, 근대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소장 자료를 활용하여 역사를
'음악'이라는 문화적 관점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기관이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프롤로그 "대중음악"
미국 순회 공연 및 하와이 대학에서 연주된 지영희의 앙금이 전시되어 있다.
일제 탄압이 가장 악랄했던 시절 불살라 없어졌던 우리 음악책이 100년 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1921년 조선의 역사, 영웅, 자연을 찬미한 노래 7곡이 수록된 음악책 '근화창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1939년 조선총독부에서 출판을 금지시켰고 모두 불태워 없애버렸다.
바로 이 근화창가집을 평택시가 세상에 드러내 경기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근화창가'는 민족음악을 연구하고 수호하던 (故)노동은 교수의 평생의 노력으로 초판이 발굴되었다.
이것을 2019년 노동은 교수의 유족이 평택시에 양도함으로써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근화창가집은 일제 어둠 속에서도 불씨가 남아 야학을 하던 학생들의 손을 통해 비밀스럽게 퍼져나갔었다.
평택시는 2020년 국내 최초로 한국근현대음악관을 아름다운 평택호 관광단지에 조성했다.
한국근현대음악관은 이런 아성에 걸맞게 소장자료의 학술적 가치를 철저히 조사・연구해왔다.
그 노력으로 지난달 31일에 열린 경기도문화재위원회 확정심의에서 '경기도 근대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 자료 중 하나가 바로 이 '근화창가'이다. 어둠 속에 묻혔던 우리 음악책이 실로 100년 만에 문화재로 부활했다.
[출처: 수원화성신문 이상준 기자 2022년 4월 5일]
창밖 평택호의 모습을 보며 널브러져 잠시 휴식을 가져본다.
계속 노래 한곡이 반복해서 리플레이된다.
"우리의 평택"하고 끝나는 노래다. 아마도 평택시의 로고송인듯...
바다같은 평택호의 멋진 뷰도 멋지고 시간이 멈춘듯한 한적한 여유로움도 귀한 경험이다.
에필로그 "한국 대중문화와 대중음악"
야외공연장도 있고... 그 너머로 쭉 걸어가면 피라미드 모양의 평택호예술관도 있다.
평택호관광안내소에 주차를 하고 수변데크 산책길을 걸어왔더니... 다시 걸어서 돌아갈 생각에 마음이 급하다.
그냥 차를 가지고 이곳에 주차를 했더라면 이곳저곳 둘러볼 여유가 있었을텐데... 아쉽다.
아쉽지만 평택호에 다양한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음에 방문할 때는 조금 더 여유롭게 방문하기로 하고...
다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수변데크 산책길을 걸어서 주차된 평택호관광안내소 주차장까지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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