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4년 간을 착각 속에서 살아왔다.
왜 요식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는 일에
구경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으나
크게 보면 딱 한가지입니다.
요식 노동자들 모두가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부분 업주가 꿈입니다
그러하다보니 여유가 되면 곳 업주를 생각하고 있으므로
구태여 권리를 찾는 노조에 참여를 안 하는 것입니다.
경영자가 되겠다는 꿈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만
단지, 방법상에 생각을 깊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나라 식당이 자그마치 58만개가 넘습니다.
우리 나라 인구를 4700만 명을 보았을 때
어린아이에서 노인까지 합쳐서 인구 81명당
1개꼴로 세계에서 식당이 제일 많습니다.
이렇게 많이 생기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조건이 없어도 너나 할 것 없이
식당을 개업합니다.
이렇게 많다 보니 이전투구를 하여
영업이 날로 어렵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영업이 된다하는 곳은
돈 갖은자가 목 좋은 곳에다
실내 고급 인테리어 등을 갖추고 하는데
메뉴는 거기에서 거기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분들이
개업했다고 했을 때 경쟁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뼈빠지게 열악한 환경속에서
조리사들이 메뉴를 개발할 시간적 여유가 없고
더구나 개발해 보았자 그 때 반짝 현상 만
일어나고 업주만 좋은 일 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해고라는 날벼락 같은 이별장을 받고 나서
쇠주 잔에 한 풀이 한 두번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거예요.
이것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알잖아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그들의 생리를...
자 !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업주를 하지 말란 말이 아니니
오해를 마시라는 전제를 깔고 드리는 말인데요.
지금도 식당이 많은데 조리사들이
모두 업주가 된다면 영업이 될련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현상을 먼저 개선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권익을 찾으면
먼저 어떤 현상이 날까요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는 데
크게 보아 메뉴가 고부가가치로 되면서
서비스 질이 향상됨과 동시에
인건비가 상승됩니다(물론 근로자를 고용하는 업소에
한해서 이지만 인건비 상승 분은 고객이 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서비스 질에 의해 영업이 좌우되므로
근로자를 고용하는 업소는 아무나 영업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풍토가 정착될 때
여러분은 메뉴로 승부를 걸고 영업을 하시란 말입니다.
이러한 과정 없이 영업에 승부를 걸기엔
여러분들은 역부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착각 속에 살아온 세월이
무려 강산이 두 번 하고도 반 바퀴 돈
24년이란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이제는 신기루에 속지 마시고
우리의 진로를 정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위 글에 동의하시는 분들은
당 노조에 참여하여
요식업의 풍토를 개선하고
그 혜택을 보시고 나서 영업을 하시던가를
그 후에 결정하시기를 바랍니다.
망설이면 망설인 만큼
늦어진다는 것을 아시고
권익을 찾기 위한 참여를 바랍니다.
참고로 위 글의 근거는
2001년 서울에서 당 노조를 설립하여
행당동 및 신당동에서 사무실을 운영할 때 40∼50대
조리사 500∼600명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지금도 신당동의 모 장소에 모여 소일거리하고 있음)
대부분 50대로서 당 노조가 기금모금을 2001년 6월 23일
(토요일) 17시 성동 구민회관 앞 진도회수산(식당)에서
(그 때의 포스터는 지금도 보관하고 있음) 할 때도
약 450명이 참석도 했었지만, (그들의 일부는
2003년 7월 18일 서울 중구 신당5동 110-6 진영빌딩 3층에서
발족한 “한국 요리문화연구회” 380여 명 회원들이 대부분이며,
그 연구회 인사부장 이기호(H.P 016 - 606 - 2678)는
지방에서 크게 영업도 했었지만 경영악화로 다시 조리사로서
근로하고 있지만, 과거 지방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했을 당시인
1978년 임원으로서 감사였습니다)
그들도 한결같이 지난 24년 간 자신들도 업주될 꿈만 생각했지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중의 일부는 지금도 당 노조의 동지이지만
인터넷 세대가 아니므로 여러분들에게 다 소개할 순 없지만
당 노조의 감사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세월은 탄환과 같아서 앞으로만 가지
뒤돌아 오지를 않고 쏜살같이 지나가면서도
어느 싯점이 되면 부메랑이 되어
여러분들에게 고통의 화살로 다가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위 선배들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배들의 뼈아픈 체험의 해답이 있으므로
남의 일이 아닌 각자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여
권익을 찾기에 동참하여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그렇습니다.나는 업주가 되면 꼭 성공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은 누구나 갖고 있죠.하지만 위글 처럼 살아 남기란 정말로 낙타가 바늘 구멍 지나가기죠.꿈도 좋지만 허황된 꿈은 빨리 버리시는게 님들의 앞날에 좋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조리사또는 요식업 노동자로써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권리를 찾아야만 우리도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그 대안이 전국 요식노동조합이고 이걸 모태로 뭉쳐야만 우리도 다른 직장인 부럽지 않게 살아 갈수가 있습니다.
업주가 꿈이신 분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고 직장인로써 살아가실 분들은 인간답게 살기위해선 대안이 없습니다. 오직 뭉쳐야만 이 냉엄한 사회에 맞설수 있고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이 사회의 강자에게 이길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 업주가 우리들 월급주는 놈들이고 우리들을 직원으로 고용해서 쓰고 있는데도 그 업주들의 단체인 한국 음식업중앙회가 사용자 단체가 아니라니 이게 말이 되는 것입니까?여러분들은 지금 유령업주 단체 밑에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음식업중앙회가 우리들의 사용자단체로만 인정되면 우리 조리사 들도 목숨걸고 업주라는 꿈을 접고 조리사 또는 요식업 노동자로써 살아가도 대기업 직장인 못지 않은 전문 직업인으로써 살아 갈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전국 요식노조에 가입해서 우리들의 꿈을 이룹시다.
보는 것만이 미덕은 아닙니다. 참여하는데에 의의가 있으므로 여기는 모든 회원들이 참여하는 주제의 마당입니다. 선배는 선배로서 또는 후배는 후배로서의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의견을 올리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위원장님!!!! 제가잠실에 가원이란 일식당에일할때 일입니다^^: 거기사장님이 이다바(주방장)출신입니다 거기일할때 느낀점은 나도빨리 내장사를해야지라는생각이였습니다 손님이 엄청많앗거든요^^:: 그분의영업절략은 한마디로 직원들에게계속되는채칙질 입니다 ㅡ.ㅡ;; 우리일을모르는사람도아니고
다알다보니 조금의실수도용납이안됩니다 ㅠ.ㅠ;; 저거기서5k빠졌습니다 ㅡ.ㅡ;ㅋㅋㅋ 근데더이상한건 반항이나 거부... 뭐그런건상상도못한다는겁니다..그만큼 그분의 영업절략이겠지요 ^^:: 제가만약 나중에 내가게를하게되면 위사람처럼될까요 아님위원장님 말처럼주방의 권익을챙기는그런 사람이될련지...암튼 아직까진
뭔 애기같습니다 ...ㅋㅋㅋ 더운데 고생하세요^^::
님이 근로(종사)했던 업소의 영업방침에 관해서 일면 이해가 가는 바이나 그 것은 어디까지나 영업상술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근로조건에 관해서는 우리를 이해할 줄 아는 주방장 출신이면서도 더욱 열악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아이러니 한 사실입니다.
그들은 과거에 더 어려운 근무를 했다면서 흘러간 옛 노래를 읊으면서 자기가 최고라고 우기면서 말입니다. 서울 신당동의 어느 장소에 요사이 모이는 4백 명 가량의 40∼50대 일식 주방장출신의 전직 업주들도 그랬다면서 후회하고 있더군요. 참으로 슬픈 현실이지요.
네~일평생 업주가 되는게 아니람니다,그리고 일평생종업원이 되는게 아니지요,그래서 종업원이 되어을때을 생각들 하셔야지요,나이을 먹을수록 더~허잔어요,현제의 부당한 처사을 하나라도 개선을 시키는게 조리사로서 임무고 사명이고 목적이라고 봄니다,미래에 업주가 되겠다는 생각이 더~지배적이라고 봄니다,결코 남에
일이 아니라고 봄니다,그렇지만 현실이 더~중요하다고 봄니다,현제가 불투명하는데 무슨 미래을 꿈을 꾸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살겠나이까,현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봄니다,
맞고요맞습니다.현실정에서노조라는것이관철될런지요?,저는일식을하는 한사람으로서 일식집에서도 위의내용과같은 일들이많습니다.월급문제라든가..............고용주는 직원들월급주는기쁨으로경영을해야한다는데 툭하면 임금체불하는업주들이많습니다.
공감합니다 ..우리요리사들 열악하 환경속에서 묵묵히 일을 해나가는것을 보면 참으로 대단합니다
나는 나중에 어떤 업주가 될련지...전 군대 있을때 독한고참을 보고 내가 고참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막상 고참이 되면 천사표 고참이지만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조절이 잘안되더라구요^^;;사람인란 참 간사합니다. 겨울오면 여름이 빨리 오길바라고 우리? 인생사도 그런거 같습니다. ^^*
고현문 위원장님 오랜만입나다 저는주현민입니다. 2001년도 우리가 잘 했어도 음식업노조가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고생해서 만들었던 노조가 고소, 고발로 지금처럼 힘든 처지에 있진 않았을 것입니다. 고현문 전 위원장님이 지금 여수에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행당동에 본 사무실이 있었던 2001년도에는 조합원이 500 - 600명이었던 것이 아니고, 150명에서 200명이었습니다. 지금의 서울일반노조는 쉼터를 운영하면서 노동의 권리에 대한 교육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