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 아래 할미꽃 하라방들이 즐겨 찾는 해장국집이 있다. 술이 과하고 그렇지 않아도 자주 들리는 맛 집이다. 혼자 가기는 그렇고 해서 그녀를 꼬드겨 가곤 했었다. 혼술 혼밥도 지겹다. 코로나가 활동 범위를 제약하는 바람에 집밥으로만 영양을 보충하다 보니 위장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김치 된장국은 질색이다. 식단을 개선하라. 개선하라" 하루가 멀다 하고 외침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위궤양 위암으로 번지면 통제 불능, 하루아침에 황천길로 직행할 수가 있다.
나섰다. 그녀는 경제 활동을 위해 아침 일찍 나가고 없다. 이웃집 할미꽃을 꼬셔볼까 했는데, '비호'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라는 생각에 바로 접었다. 날씨 좋다. 주당들은 일 년 365일 날마다 좋다고 하지만 오늘은 유난이 더 좋아 보인다.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숨이 찬다. 그동안 가택연금된 채 움직임이 덜해 체력이 말이 아니다. 연식도 세어 보니 육도리다. 걸어가는 것도 힘든 일인데 자전거를 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천을 따라가는 길 양옆에 철쭉꽃이 분홍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개나리 진달래도 못 보았다. 벚꽃은 영상으로만 잠깐, 나가보니 꽃은 다 떨어지고 녹색 작은 잎들이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청둥오리가 물질을 하고 있다. 산책길 따라 운동하는 사람도 많다. 할미꽃들이 주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장미꽃들도 많고 가냘픈 버들강아지도 보인다. 팔자 좋은 처자들은 무슨 복을 그리 타고났을까. 남들은 한 푼이라도 벌겠다고 새벽같이 일어나 참밥 말아 먹고 밀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도착하자마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에 열정을 다 바쳐야 한다.
산 밑에 자리 잡은 해장국집은 70년대 그 건물 그대로 아주 낮게 자리 잡고 있다. 리모델링은 사치다. 인테리어도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 식당마다 방을 없애고 그 자리에 의자에 앉을 수 있도록 바꾸었지만 이곳은 아직도 양반다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난 그래서 좋다. 빨리 가서 먹고 싶은 마음에 페달을 힘차게 밟았더니 속도 제어가 쉽지 않았다. 앞에 할미꽃 한 분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방향을 헷갈리게 하는 바람에 하천에 빠질뻔했다.
이 무슨 일인가. 홀 안으로 들어가니 젊은 처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 많은 자리가 다 차고 젊은 여인들이 모여 있는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영광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아직 주름살이 없는 젊은 여인들이 보기 좋다. 네 명이다. 안경 너머로 훔쳐보니 QLED 급으로 채널을 빠르게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디오 역시 카랑카랑 귀전을 때렸다. 기를 받아야 한다. 그녀들이 재잘거리는 오디오를 귀청에 바로 끌어들여 저장했다. 한동네에 사는 언니들과 그 친구가 더해져 사인방의 시간을 만들어 세상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웃음꽃이 만발하는 간간에 파열음이 들려왔다. 음식 하는 것도 그렇고 배우자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자 너도 나도 거들었다. 여인들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간에 남들이 일할 때 불암산 기슭에서 수다 떨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녀들이다. "맑은 국에는 미원을 넣고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곳에는 다시다를 넣어야 맛에 구색을 갖출 수 있다" 음식에 조예가 깊은 여인의 말에 귀가 쏠 깃 했다. 얼굴도 미인이고 소리 하나하나 꾀꼬리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들과 합석하여 수다를 떨고 싶었지만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육도리가 달려들었다가는 바로 112 번호를 누를 것이 뻔하다. 마지막 나가면서 포장을 해가는 것을 보니 동네 아름다운 수다 모임인 것 같았다. 그녀들 덕분에 회춘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