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다가온다. 엄마는 바쁘다. “얘들아, 목욕 준비해라” 가을 논바닥에서 미꾸라지 잡다가 둠벙에서 풍덩 하고는 전신 샤워를 한 적이 없다. 매일 아침 고양이 세수가 전부다. 머리가 가려울 때면 빨랫비누로 거품 낸 다음 박박 문질러 비듬을 털어냈다. 그것 역시 일주일에 한 번이다. 머릿기름을 바른 것처럼 반들반들한 것이 머시마들의 상시 머릿결이었다.
아버지는 장작을 팼다.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장작을 날라 밀어 넣었다. 형과 누나 그리고 나까지 목욕하려면 가마솥 가득히 물을 데워야 한다. 엄마와 아버지는 며칠 전에 목욕했다. 같은 방법으로 말이다. 막내를 위해 커다란 다라에 물을 퍼 담았다. 알맞게 온도 조절한 엄마는 “어서 들어가”, 바가지에 물을 퍼서 머리에 부었다. 따듯하니 좋았다. 때를 불린 다음 엄마의 지극정성으로 백옥같은 피부가 드러났다.
조상을 뵈기 전에 목욕은 필수다. 더러운 몸으로 제를 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목욕탕이 없었던 시절 두메산골은 부엌이 그것을 대신했다. 문을 닫고 장작불이 활활 타는 부엌은 한증막이나 다름이 없다. 지금 같으면 건강을 위해서 자주 했을 것인데, 그때는 목욕하는 그 자체가 싫었다. 절차도 성가시다. 그래서 겨우내 나일론 양말 일주일, 팬티는 스스로 벗은 기억이 없다. 누루띵띵 염색이 된 속옷은 엄마의 강제로 갈아입었다.
동네 우물가에서 돼지를 잡았다. 다리를 묶인 돼지는 도끼로 머리를 얻어맞고는 눈을 뒤집어 깠다. 그 순간 목에 칼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돼지 멱따는 소리가 골목 어귀까지 퍼져 나갔다. 그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몰려나왔다. 오줌보를 얻기 위해서다. 축구공이 없었던 그 시절 새끼를 둘둘 말아 축구를 했다. 방광에 바람을 불어 넣어 축구공을 만들어 차고 놀았다. 새끼 공보다 탄력이 좋아 멀리 높이
목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세숫대 하에 받았다. 배를 가르자 간이 보였다. 선홍색 짙은 간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도마에 올려놓고 썰어 소금을 찍어 먹었다. 어른들은 서로 맛보고자 달려들었다. 막걸리는 필수다. 선지에 채소와 두부로 소를 만들어 순대를 만들었다. 가마솥에 돼지머리 순대 및 내장을 넣고 푹 삶아 내면 술안주로 그만한 것이 없다. 종일 잔치를 벌였다.
명절 하루 전, 고소한 내음이 온 동네를 진동했다. 집집이 전을 부치는 것은 당연지사, 제사음식을 만드느라 엄마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아이들은 행복한 날이다. 모처럼 기름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까죽전, 배추전, 김치전, 동그랑땡, 각종 나물로 전을 만들었다. 부잣집은 육전도 만들었다. 돼지 잡는 날 끊어온 살코기는 탕을 끓이는 데 사용하기도 모자라란다.
설날이다. 장롱 속에서 꺼내 온 설빔은 길고 컸다. 울었다. 창피하게 이렇게 크고 긴 옷을 어떻게 입고 나가란 말인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 크고 길게 살 수밖에 없는 엄마는 강제로 입혔다. 즉석에서 길이를 줄여서 말이다. 검정 고무신과 아래위 새 옷으로 제사 준비는 끝났다. 큰집 작은집 집안을 순회하며 제사를 지냈다. 아이들이 워낙 많아 과자와 과일은 줄을 세워 나누어 주었다. 너무 많은 음식을 먹다 보니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일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명절의 추억, 다시는 해볼 수 없는 아득한 옛일로, 머리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