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세기도 한 미스 트롯 출신 양지은이 불러서 크게 히트하고 있는 이 노래는 조항조가 부른 '고맙소'등 많은 노래를 작곡한 '알고보니 혼수상태' 작곡가 두 분이 만든 노래다. 애절히 부르는 님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애절함이랄까 그런것 때문에 듣는 사람의 가슴을 애이게 하는데서 커다란 감명을 주는 것 같다. 작곡가는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보고 감명받아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나는 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영화는 2014년 강원도 산골에 사는 강계열(89세) 할아버지와 조병만(98세)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 당시 500만 명이 보았다고 하는데 '워낭소리'가 200만 명이었던데 비하면 경이적이었다. 진모영 감독은 같은 제목으로 책을 내기도 했던데, 그렇다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는 그의 창작물일까?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읽었던 신형철의 '인간의 역사'라는 책에도 그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독후감으로 올려 두기도 했지만, '공무도하'를 풀어쓴 것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고, 그에 대한 고사가 거기에 있기에 여기 다시 올려본다.
'공무도하(空無渡河)'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시詩가 〈공무도하〉다. 공무도하가 바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다.
가수 이상은이 〈공무도하가〉를 불렀고, 소설가 김훈은 〈공무도하〉라는 소설을 썼고, 또 진모영 감독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들은 이유야 달랐겠지만, 모두 〈공무도하〉 의 내용이 각별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창작물을 내놓았을 것이다. 〈구지가, 황조가〉와 같이 상고시대 시가였던 이 이 시는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임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이 일을 어이할꼬!
시는 아주 간단하게 이렇게 네 줄로 되어 있다. 조동일 선생의 『한국문학통사』에 따르면 “조선에 곽리자고(霍里子高)라는 뱃사공이 있었다. 어느 날 새벽 배를 손질하고 있노라니, 머리가 새하얀 미치광이 사내가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술병을 끼고 비틀거리면서 강물을 건너는 것이었다. 아내가 따라오면서 말려도 듣지 않고,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 아내는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그 소리가 아주 슬펐다. 노래를 다 부르자 아내도 남편을 따라 빠져 죽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공은 돌아와 자기 아내 여옥(麗玉)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여옥이 그 노래를 다시 불렀다.”라고 한다.
고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이 사건은 우리보다 먼저 중국 진(晉)나라 때 최표(崔豹)라는 사람에 의해 『고금주(古今注)』에 기록됐고, 이후 실학자 한치윤이 『해동역사(海東繹史)』에 설화와 가사를 함께 옮김으로써 우리 문학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대체로 남편의 죽음을 말리는 아내의 애원과 죽음 앞에서의 절망이 그려졌다. “그대여 저 물을 건너지 마오. 그대 기어이 저 물을 건너다가 물에 빠져서 죽고 말면 나는 어찌하라고”하는 것은 사건 이전의 애원이요, “님더러 물 건너지 말래도 님은 건너고 말았네. 물에 빠져서 죽었으니 님이여! 이를 어찌하리오.”이것은 사후의 절망을 말한 것이다.
노래(시)가 품고 있는 인생의 비밀을 놓치지 않으려면 여기에 등장하는 네 사람, 그들의 인생의 비밀과 내면을 살펴야 보아야 한다. 인생에는 일어나려는 일이 있고 또 이를 막으려는 힘이 있다는 것과 또 아무리 막아도 일어날 어떤 일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먼저 백수광부(白首狂夫-머리 하얀 미친 남자)는 왜 죽고자 했을까? 그는 삶이 힘들어서 자주 강가에 나와 강을 바라보다가 어느 날 술기운을 빌려 투신하려는 순간에 자신을 말려달라고 외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내 뜻대로’되지 않았을 것이다.
백수광부의 처는 어땠을까? 여러 번 죽으려고 하는 남편을 만류해 막아 왔으나, 그날은 말릴 수가 없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이다. 그가 막 물속으로 들어갔을 때만 해도 돌아오라고 절규했을 것이고, 절규였던 말들이 노래가 되었으리라. ‘네가 내 뜻대로’되지 않은 것이었다. 너란 남편이기도 하지만, 삶 그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녀 앞에는 ‘뜻대로 안 되는 삶 대신에 뜻대로 되는’죽음 만이 남아 있었다.
곽리자고라는 사공은 두 사람이 잇따라 강물에 휩쓸려 죽는 장면을 지켜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공은 거대한 무력감과 허무감 속에 오늘 일은 그만두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2건의 죽음을 아내 여옥에게 설명하고 뒤따라 죽은 여인의 마지막 노래를 들었노라고 했다. 남편이 어슬프게 복원한 여인의 마지막 노래를 여옥은 온전하게 되살려냈다. 그녀는 백수광부의 처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인생을 노래한다는 것은 ‘남의 일 같지 않은’것이었다. 부부의 죽음을 생각하느라 그들은 밤늦게까지 잠 못 들어 했을 것이다.
“나는 내 뜻대로 안 된다. 너도 내 뜻대로 안 된다. 그러므로 인생은 우리 뜻대로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수천 년 전의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들어본 적 없는 그 먼 노래가 환청처럼 들린다. 나는 백수광부다. 나는 그의 아내다. 나는 곽리자고다. 나는 여옥이다. 그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