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법을 의지한 유행으로 조화된 생활을 보내는 사로몬들에게 접해
나는 정말 삶의 보람을 느낀다. 더욱더 정도에 힘썼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중에는 종래의 엄격한 육체고행을 버리기 어려워서,
법을 머리로만 이해하여, 마음의 실체를 잊고, 참다운 평안을 얻지 못하고,
마음에 무거운 짐을 가진 채, 고뇌하고 있는 자도 있다.
내가 설교하는 법은, 사람의 길이다.
그 법을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 행 하는 것, 속에서 실천하였을 때,
마음의 흐림은 개이고 부처의 자비에 의한 광명이, 참다운 평안이 되어,
마음의 세계를 조화시켜 간다.
그대들의 자아 안에는 선한 자기와 거짓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
일체의 고뇌는 거짓 자기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이 거짓이 있는 자기는 일견,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큰 집착의 무거운 짐이 되어, 고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고뇌의 원인, 고뇌의 뿌리를 제거하지 않는 한,
인생의 고뇌로부터 벗어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보존의 욕망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짓 자기를 지배하고,
자기에게 거짓말을 못하는 선아(善我)인 불성(佛性)에 눈뜨는 것이다.
사로몬들이여,
비를 맞고 있는 초목들을 보라,
곧바로 뻗어 있는 대나무 를 잘 보는 것이다.
그들은 자연의 비바람에 잘 견디며, 그 속에서 훌륭히 성장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에 거역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초목은 튼튼한 뿌리를 땅속 깊이 뻗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비바람에도 견디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서로 양보하고 도와주며 살고 있다.
이 사실을 똑똑히 보는 것이다.
그대들도 법을 깨달아 생활한다면,
오관번뇌에 휘둘리지 않고, 어떤 현상도 바르게 이해하여,
마음속에 고뇌의 독을 만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조화롭지 못한 어떤 것을 보거나, 듣더라도,
법에 비추어 사념하면, 마음을 움직이는 일도, 부조화한 행동에 휩쓸리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불퇴전의 마음은, 법의 실천으로 만들어져 간다는 것을 아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활의 기준을 오관이 아니고 마음에 중심을 두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근본이며,
조화롭지 못하거나 중도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로 말을 하거나 생활을 계속해 가면,
언제나 괴로움과 동거하고, 고뇌라는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다.
그와 같은 인생은, 언덕길을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중도의 마음을 알고, 선아의 마음으로 세상사를 생각하고 생활을 해 가면,
마음속은 평안하며, 그 기쁨은 자기와 일체가 되어,
자기의 그림자가 자기로부터 떠나지 않는 것처럼,
빛과 일체가 되어서 광명의 생활이 된다.
또한 그대들은 타인으로부터 폭력을 받거나, 조롱받거나, 미움을 받거나 하면,
그 언동에 사로잡혀 마음은 안절부절하고 노여움을 품고 마는데,
이래서는 분노로부터 언제까지나 해방될 수 없다.
용서하는 것도 자비이며, 노여움에서 해방되는 부처의 빛이다.
노여움의 원인을 잘 알아, 마음속에 노여움의 독을 먹어서는 안 된다.
노여움은 노여움으로 갚는 것이 아니다.
그런다고 마음속의 노여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밖에는 지금도 계속 비가 오고 있다.
만일 이 집의 지붕이 좋지 않으면 비가 새서 집안 일을 할 수없게 된다.
이것과 같이 법을 잘 터득하지 않으면 마음이 게걸스럽게 되어 타락의 길로 떨어져 가게 된다.
지혜가 있는 자는 번뇌의 불길에 마음을 태우는 일 없이, 법을 기둥삼아 살아 갈 것이다.
용기와 노력, 그리고 지혜로, 마음속의 거짓의 자신을 지배하고,
선아인 자기에게 거짓말 못하는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면,
결국은 빛나는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족함을 알았을 때, 위대한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위대한 보물이란, 그대들이 전생의 과정에서 체험한 인생의 지혜이며, 평안함의 샘이다.
그 문을 여는 것이다.
모든 미망이, 그 문을 여는 것으로 분명해진다.
사람은 그때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깨달아,
눈앞에 비치는 현상, 물질은 무상(無常)이며,
그 무상(無常)의 모습은,
영원한 생명을 날라주는 채색된 실(=생노병사)과 같은 것이라고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이다.
욕망에 농락되는 생활을 싫어하고 바른 길을 걸으려고 하는 자는,
결국에는 지혜가 있는 보물의 문을 열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활을 만드는 사람은 동시에 곧은 화살을 만든다.
활과 화살은 이렇게 하여 비로소 그 힘을 발휘한다.
그대들의 생활도, 마음을 곧게 올바르게 하여야만 비로소 확립할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욕망을 채우려 한다.
조화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노여움이나 욕심 부리는데 마음을 허락하면 마음은 영원히 평안을 얻을 수가 없다.
미사여구를 늘어놓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는, 퇴색하여 향기가 없는 꽃을 닮았다.
꿀이 없는 퇴색한 꽃에는 나비도 꿀벌도 다가서지 않는 것이다.
꽃은 싱싱하게 피어있을 때만, 나비도 꿀벌도 날아와서 같이 살아갈 수 있다.
실행만이 그 사람을 살리고 그 주위를 밝게 빛나게 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자기 자신의 아름답고 둥근 마음을 빛나게 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법의 등불을 주는 것이다.
연꽃이나 안단, 다가라, 바시킷같은 꽃은 아름답고 향기도 많지만,
법의 향기는 그보다 더욱 훌륭하고 고상하며 굉장하고 숭고한 것이다.
그러한 향기를 발산시키는 자기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
유행 중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맞은 체험자도 있을 것이다.
잠 못 이루는 밤은 길게 느껴지는 것이다.
또 이것과 같이 피안에 건너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 매일은 험한 산길을 오르는 것과 같이 괴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바른 법을 모르는 자는 맹목의 인생을 걸어가기 때문에 고뇌와 미혹을 길게 느끼는 것이다.
유행의 길을 가는 자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나 혹은 같은 사람과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쁜 벗과 같이 있으면, 당신네들의 마음까지 거칠어져서,
조화되지 않는 길을 걸어가기가 쉽기 때문이다.
악우는 맹수보다도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들에 있는 맹수는 그대들의 육체를 멸할지는 몰라도, 마음까지 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악우는 그 중요한 마음까지 독을 주고 만다.
주의할 것은 악우이며, 악우야말로 바르게 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귀여운 자기 자식이 있어도, 사랑하는 처가 있어도,
그리고 또 혜택받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족함을 잊고, 욕망대로 그 몸이 떠내려 가면, 괴로움은 끝이 없다.
이 육체는 자기가 갖고 있지만 자기 것이 아니다.
때가 지나면 이 지상에 두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물며 귀여운 자식도, 사랑하는 처도, 모두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고, 재산도 역시 자기 것이 아니다.
모두가 전생의 과정에서, 연분으로 생긴 것이고,
각자의 연생에는 각자의 사명과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원한 소유물은 그대들의 생명이며, 마음이다.
이것 이외에 무엇하나 소유물은 없다.
자기의 귀여운 자식이라 하여도 성장함에 따라 부모의 생각과 달라진다.
당연한 것이다.
자식은 자식대로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 혼이 부모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친은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마치 태양과 같은 무상의 자애로서 키워가는 것이다.
아이는, 낳아주고 키워주는 위대한 양친의 자비와 사랑에 감사해야 한다.
거기에 또한 사람의 길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살아가는 자의 의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보은의 행위가 되어 결실한다.
효양은 자식으로서의 당연한 행위이며, 그것을 잊어버리면, 사람의 세상은 와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속에 자기를 두고 있는 이상은, 보다 더 좋은 사회의 조화에 봉사하는 것이야말로,
법이 실천된 것이며, 불국토의 길이 열려가는 것이 된다.
사회는 자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장소가 아닌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만생만물은 서로 도움으로 조화를 이루고, 그것에 의해 평화와 평안이 생겨난다.
지혜가 있는 자는 지식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어리석은 자일수록 지식에 취해 자기를 높이 보이려고 한다.
바라문의 수행자 가운데는 베타나 우파니샤드 성전을 통해, 지식은 많지만 실천이 없기 때문에,
지식의 테두리 안에서 일보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성전을 희롱하는 자가 많다.
불쌍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참다운 지혜는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반야바라밀다(내재된 위대한 지혜) 의 경지에서 생겨난다.
그것은 사람으로부터 빌린 것 같은 지식에서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다.
법의 실천으로 얻은 평안, 감사, 조화의 마음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당신네들은 지식에 '빠져서는 안 된다.
지식의 울타리를 아무리 넓힌다고 해서 마음이 풍부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방황과 불안과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지식은 지혜에서 생긴 현상이며, 지혜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지혜의 용현은 법의 실천에 있다.
마음속에 만들어진 조화되지않은 흐림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무명은 언제가 되어도 밝아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흐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법의 잣대로 사념과 행위를 되돌아보고,
그 잘못을 수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즉 반성이다.
그리고 마음속에 흐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정도를 걸어가야만 한다..
정도를 걸어간다는 것은 번뇌의 거짓 자기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대들의 마음속에 본래부터 있는, 자기에게 거짓말하지 못하는 선아의 마음으로 수행하는 것이,
정도를 걸어가는 수행자라고 할 것이다.
마음을 밖으로 향하면, 유흥 생활에 빠지게 된다.
그곳에는 천길의 골짜기가 기다리고 있어, 고뇌밖에 주지 않을 것이다.
악업은 즉시 응보가 되어 나타나는 일은 없으나,
그러나 산 중에서 모닥 불을 피우고 난 뒤,
재에 가려진 불씨처럼, 바람에 의해, 언제 산야를 모두 태워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또 어리석은 자들은, 언제나 지위와 명예의 욕망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물질, 재보, 정욕에의 집착심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사로몬은 이름을 듣는 것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된다.
이타(利他)의 행위를 잊지말고, 자기보존의 욕망을 버리고, 언제나 평안한 생활 속에 살아야만 한다.
법의 물을 마신 자들은, 마음이 씻겨 있으니까, 사물에 구애받지 않고, 평화롭고 평안할 것이다.
그리드라구다의 바위를 보라.
그 바위는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는 일이 없는 것이다.
자연 속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에도 움직여지는 일이 없는 것이다.
수행자도 이것과 같이, 비방이나 노여움 혹은 칭찬을 받아도 마음이 움직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쪽의 마음이 흔들리면 또 다른 쪽에도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어떤 언동에 대해서도,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일을 하고, 바르게 생활하고, 바르게 도에 정진하고,
바르게 염원(念願)하고, 그리고 언제나 반성을 게을리하지 않고,
마음을 둥글고 풍부하게 유지, 선정을 즐겨하지 않으면 안된다.
즐거움에 빠지는 욕망을 버리고,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그 원인을 규명하고, 원인의 뿌리를 뽑아서, 마음속에 법등을 계속 태워야 한다.
그러나 그런 속에 있어도, 깨달음의 피안에 도달하는 자는 적고,
무상한 물질세계에 집착하여, 방황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대들은 전생(轉生)의 과정에서 배운 위대한 지혜로,
모든 욕망에 족함 을 깨달아, 남과 싸우는 일 없이,
저 넓은 하늘처럼 푸르고 맑으며 넓은 마음이어야한다.
생사의 윤회로부터는 족함을 안 마음에 의해 해탈할 수 있으리라.
수행자들이여,
백 만권의 서적보다 평안한 말 한마디가 더욱 뛰어남을 알아야한다.
참다운 구원은 말이 아니다,
지식도 아니다.
자비심에 있기 때문이다.
또 마음속의 거짓 자기를 극복한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백만의 적에게 이기는 것보다 뛰어난 승리자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큰 제방도 개미의 구멍 하나로 붕괴될 것이고,
마음속의 고뇌는 마음을 위로하는 것으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있는 자는, 우선 이승의 업화에서 서둘러 도피해야 한다.
이승은 노여움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만족을 모르는 욕망이 소용돌이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마음이 이 업화에 휩쓸려 불가루에 쪼이면, 방황과 괴로움을 받게 될 것이다.
선(善)한 마음이야말로 그대들의 주인인 것이다.
그 주인은 영원하며 불멸의 자기이다.
그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업화에서 떨어져야 되는 것이다.
평안함과 조화는 진정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 의하여 얻어질 것이다.
자기의 기쁨은 타인에게도 전달되어 감화하게 될 것이다.
즉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타인을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선 자기 자신을 수양해야 한다.
법을 의지처로 해서, 자기를 확립하는 것이다.
업화에 휩쓸려도 그 불을 끌 수 있는 자신을 만드는 것이 선결인 것이다.
유행에 나가 법의 씨를 뿌려도,
마음의 개척을 등한시하면,
마치 조악한 대지에 종자를 뿌리는 것과 같아 수확은 적을 것이다.
지혜, 노력, 용기 ‧ㅡㅡㅡ
이것만이 자기를 확립하고, 사람들을 미혹의 심연에서 피안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남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선, 악 어느 결과가 나타난다 하여도,
그 모든 것은 스스로의 마음과 행동이 만들어 낸 것이며,
타인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들의 수행 목적은, 나를 극복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이기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