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의 진술, 진실인가!
1987년11월29일 바그다드발 서울행 비행기가 미얀마 안다만 해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면서 한반도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다. 폭파범 김현희는 한국으로 압송 후 북한의 정예공작원임을 자백했고, 이 사건은 북한이 88서울올림픽 방해를 위해 행한, 115명의 무고한 노동자들이 KAL858기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전대미문의 테러로 결론났다. 그런데 사건초기부터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던 각종 의혹과 부실한 수사, 무성의한 수사 발표의 허점들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었고, 마침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월,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KAL858기 사건은 단순히 과거의 불행했던 일이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분단의 가장 큰 상처로 기억되는 KAL858기 폭파 사건.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수사와 의혹 해소는 115명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우리사회 양식의 척도인 셈이다.
<<주요내용>>
제1편 폭파, 진실은 무엇인가
1. <단독입수〉폭파된 비행기에 폭파흔적이 없다.
당시 안기부의 수사발표에는 KAL858기가 북한공작원 김현희, 김승일에 의해 공중 폭파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사건발생 직후 폭파 증거로 제시된 구명보트와 2년3개월 후인 1990년 3월에 발견된 사고기의 잔해를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에는 폭파흔적이 없었다. 에서는 국과수 보고서를 단독입수 했다. 그리고 사건발생 직후 수거된 사고기 탑재 수동식 비상탈출 구명보트는 사용되지 않은 접혀진 상태로 이 역시 폭파의 외상이 전혀 없었다. 다만 고무재질로 된 구명보트 속의 수동펌프만 손상을 당했다. 당시 국과수 보고서에 따르면 이 역시 폭파흔적이 없었다. 폭파의 유일한 물증으로 제시된 구명보트의 이 이상한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항공사고조사의 기본은 잔해다.’ 그만큼 항공사고에서 잔해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잔해를 서둘러 폐기처분한 까닭은? 취재진이 구명보트의 일련번호와 대한항공 정비서류를 대조하여 확인한 결과, 구명보트는 김현희가 설치한 폭탄 가까이에 실려 있었다. 10미터 근방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폭탄. 대한항공 KAL858기가 폭파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김현희의 자백뿐이다.
2. 비행기는 어디에서 폭파되었는가?
김현희의 진술에 비춰볼 때 KAL858기는 세계표준시 05:05 시에 폭파되었다. 그렇다면 당시 미얀마 지상관제소의 교신보고로 볼 때, KAL858기는 교신포인트인 어디스(URDIS) 통과 4분 후에 폭파되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잔해가 발견된 지점, 즉 잔해발견 지점과는 무려 200여km, 비행시간 15분여의 거리 차가 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폭발에도 불구하고 기체는 200여km 더 비행하였다는 말인가. 그러나 문제의 C4컴포지션과 PLX 폭탄의 실제 실험결과와 전문가의 견해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다. 왜 이런 거리차가 있을까? 당시의 해류와 바람의 방향도 반대방향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폭발시점과 추락지점의 오묘한 불일치. 과연 김현희가 말한 C4를 내장한 라디오 폭탄의 정체는 무엇인가.
3. 김현희의 라디오 폭탄의 정체는?
김현희는 바그다드공항에서 KAL858기 탑승 시 공항보안요원이 폭탄이 내장된 라디오 건전지를 압수하자 김승일이 라디오를 켜 보이며 강하게 항의하여 무사통과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이른바 건전지 소동이다. 그러나 사건 직후 바그다드 공항의 보안요원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두 사람에 대한 상세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건전지 얘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바그다드 공항은 그 해 보안점검 최우수공항으로 선정되었다. 수사발표에는 라디오에 내장된 C4 컴포지션의 양이 350g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당시 라디오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문제의 라디오 용량으론 최소한 라디오 기능을 위한 부속품과 C4 컴포지션 350g을 동시에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김현희가 말한 라디오 폭탄은 과연 사실일까? .
4. 사고 열흘만에 공식 종결된 수색 작업 전문가의 견해가 없어도 항공사고에서 플라잉레코드, 즉 블랙박스의 수거는 수색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그러나 당시 사고수색과정에는 블랙박스 탐지기조차 없었다. 이는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고 있는 꼴이었다. 공교롭게도 사고 하루 전 인도양에서 발생한 남아공 점보기는 KAL858기 추락지점보다 더 깊은 수심에도 불구하고 기체잔해와 블랙박스, 또 탑승객의 시신도 다수 수거했다. 김현희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초동수사와 초기수색 과정 모두가 부실과 졸속이었다. 결국 그녀의 진술은 아무것도 증명된 게 없다. KAL858기 사건은 12월 9일 공식수색이 종결되고, 19일 폭탄에 의한 폭발로 최종결론 났다. 그러나 김현희의 첫 진술은 12월 22일. 무엇을 근거하여 결론을 내린 것일까?
제2편 김현희와 김승일 - 의문의 행적
1. 북한공작원 김현희는 평양에서 출발했는가?
김현희는 KAl858기 폭파공작의 노정인 평양-모스크바-부다페스트-비엔나-베오그라드-바그다드를 통해 KAL858기에 탑승했다고 진술했다. 그녀의 진술을 하나하나 검증해보자. 그녀의 진술대로라면 평양-모스크바 간 비행시간이 무려 15시간 30분이나 걸린다. 3년 반 뒤에 나온 그녀의 수기에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베리아 이르크츠크에서의 중간급유를 언급한다. 또 모스크바-부다페스트 간 비행시간을 6시간 걸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실제 사실과 달랐다. 세계항공노선을 모두 기술하는 당시 엔 이르크츠크를 경유하는 평양 모스크바 간 비행노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2. 불필요한 위조품
김현희와 김승일의 소지품에서 일본의 한 병원에서 발급한 예방 접종서가 나왔다. 예방접종서에는 84년과 87년 두 차례에 걸쳐 예방 접종 내역이 적혀있었다. 김현희의 진술대로라면 그녀는 한번도 일본에 간 적이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위조된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런데 당시 병원의 의사는 단순면역력을 키우기 위한 예방접종으로 위조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시 해외여행 시 요구되는 것도 아니었다. 왜 이러한 예방접종서를 지니고 다녔을까? 위조라면 너무나 불필요한 위조임이 틀림없다.
3. 위조 여권의 풀리지 않는 의혹
수사발표 당시 두 페이지만 공개한 김현희의 여권에는 84년 8월 25일, 86년 8월 5일, 86년 8월 25일, 87년 11월 14일, 일본 나리타공항의 출입국 스템프가 찍혀있었다. 당연히 수사발표는 위조 스템프라 하였다. 그런데 취재진은 스템프가 찍힌 페이지의 상단에서 출입국 카드를 회수하고 남은 흔적인 띠지를 발견하였다. 입국카드에는 김현희의 자필도 보였다. 수사발표대로라면 이것 역시 일본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위조한 것이다. 여권에는 태국의 출입국 스템프도 보인다. 수사발표에는 언급이 없었지만 김현희가 태국에 간 사실이 없으므로 이 또한 위조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출입국관리에서의 태국만의 고유한 특징인 편명과 비자종류가 적혀있다. 너무나 정교하다 못해 완벽하다. 그런데 이에 비해 정작 필요한 부문은 어이가 없을 만큼 허술하다. 그녀는 84년 8월 23일 해외실습여행 중 위조여권을 이용해 오스트리아에 입국한 적이 있다. 그리고 여권의 스템프는 이미 그때 위조된 상태였으므로 여권에는 이틀 후 일본 출발 스템프가 찍혀있었던 것이다. 빈틈없을 만큼의 완벽함과 어이없는 허술함. 기묘한 불일치. 여권의 진실은 무엇인가.
4. 음독자살한 또 다른 공작원 김승일의 정체를 밝힌다 - 김현희가 진술한 두 김승일은 과연 동일인물인가.
김승일은 체포되어 음독하기 하루 전날 밤에 바레인 대리대사 김정기와 필담을 나누면서 자신의 필적을 남겼다. 또한 김현희의 진술에 의하면 김승일은 84년 서울 침투 시 작성한 출입국카드에 자신의 필적을 남겼다. 확인되는 김승일의 필적은 여기에다 여권 기재상의 필적, 위조된 것이라는 예방접종서의 필적 등 4가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한일 양국에서 번갈아 필적 감정을 한 결과 87년의 김승일과 84년의 김승일의 필적이 달랐다. 획순, 필력이 모두 다른 것이다. 김현희는 자신과 같이 한달이상 같은 방을 쓰면서 공작활동을 한 사람을 기억 못하는 것인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김승일은 왜 자살하였을까? 수사발표대로 신분을 은폐하기 위해서였을까? 김현희와 김승일은 바레인에서 전혀 도망가지 않았다. 그리고 북과 연관되는 많은 증거물을 폐기하려 하지도 않았다. 지난 1월 김승일이 위조했다는 여권의 진짜 주인공인 하치야 신이치는 한국당국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주시 받는 인물이었다는 기사가 국내에 공개된 적이 있다. 결코 죽음으로 북한공작원으로서의 자신의 신분이 은폐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위험인물인 하치야 신이치의 여권으로 이러한 중대한 공작을 하였을까?
5. 도망치지 않는 공작원
김현희는 11월 29일 KAL858기에 폭탄을 장착한 후 바레인을 떠나려고 했지만 마침 일요일이라 표를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슬람의 휴일은 금요일이어서 일요일은 우리나라의 평일과 같다. 뿐만아니라 김현희는 11월30일 로마행 티켓이 매진이라는 어이없는 이유를 들며 바레인에 머물다가 정체가 드러났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비엔나였지 로마가 아니었다. 비엔나로 바로 가는 비행기가 운행을 하고 여차하면 다른 나라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쫓기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바레인에서 이들의 행적에서는 비행기를 폭파시킨 후의 공작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시내를 관광하고, 쇼핑하고, 사진을 찍었으며 폭파 36시간이 지나도록 KAL858의 폭파사실도 모르고 있었다는 공작원들. 이들의 이런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6. 이제 KAL858기는 다시 조사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김현희의 진술이 아니라 정확한 수사다. 파범을 잡았다하여 이 사건의 허술한 수색과 수사과정이 무마되는 것은 아니다. 115명의 인명살상과 남북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을 김현희 진술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행기 폭파 여부를 떠나 허술하게 행해진 졸속수사는 지금 갈등의 여지를 남겼다. 이제 김현희는 말해야 한다. 또한 수사당국은 의혹을 밝혀야 한다. 김현희 사면의 조건은 진실의 증언에 있었다. 87년의 진실이 무너지고 있다면 응당 김현희는 다시 나서야 한다. 그리고 입을 열어야 한다. 그동안 희생자 가족들의 침묵은 분노와 고통의 침묵이었다. 이제 김현희가 말을 할 때이고 정부당국이 진실규명에 나서야할 때이다.
KAL858의 미스터리 [2004년 5월 22일, 5월 23일]
제1편 폭파, 진실은 무엇인가
http://www.kbs.co.kr/1tv/sisa/kbsspecial/vod/1318739_11686.html
제2편 김현희와 김승일 - 의문의 행적
http://www.kbs.co.kr/1tv/sisa/kbsspecial/vod/1318805_116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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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