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붉은군대의 합창곡 <볼가강의 뱃사공>
* 볼가강 1
이 러시아 민요는 너무나 유명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입니다. 보통 <볼가강의 뱃노래>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볼가강의 배끌기 노래>라고 해야 옳습니다.
본래 볼가강은 워낙 넓은 강으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는 모두 노예나 다름없는 배끌기 인부들이 밧줄로 끌었고, 그러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부른 노동요입니다. 때문에 이 노래는 러시아 민요 중에서 서민층의 고달픈 삶을 노래한 것으로 강인한 의지를 느끼게 합니다.
* 볼가강 2
< 볼가강의 뱃노래 가사 >
에이 우흐넴 에이 우흐넴 에이 우흐넴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우리는 길러봅시다 자작나무를
우리는 길러봅시다. 울창한 나무를
아이다다 아이다 아이다다
아이다 길러봅시다 울창한 나무를
우리는 자작나무 따라서 걸어간다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게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다다 아이다 아이다다 아이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게 노래를 불러주면서
에흐 너 볼가강이여,
강의 어머니여 넓디넓고 깊고도 깊구나
아이다다 아이다 아이다다 아이다
넓디넓고 깊고도 깊구나
러시아 大화가 일리야 레핀의 < 볼가 강의 배 끄는 사람들 >
일리야 레핀 하면 유명한 작품이 바로 이<볼가강의 배 끄는 사람들>입니다. 이 작품을 그린 것이 1870~1973년 사이인데 당시 러시아에는 강에서 밧줄로 배를 끌어 올리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레핀이 1860년대 말 네바 강변을 산책하다 목격한 것이 더럽고 해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무거운 하역선을 끌고 있었고, 그 옆에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신사 숙녀들이 강변을 산책하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하늘색은 속절없이 야속하게 푸르른데 배를 끄는 중노동을 하는 인부들의 행색이며 표정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이 위태로울 정도로 불안해보이고 희망이란 단어가 이들 삶에서 삭제된 것처럼 보이죠.
배를 비롯한 주변 배경을 흐릿한 수묵화처럼 엷게 그려 인물 군상의 비참한 모습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당시 육체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는 이 작품으로써 그는 높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 러시아 大화가 일리야 레핀 ]
일리야 레핀은 1844년 우크라이나의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부나코프라는 성상화가에게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그 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입성하여 일년동안 미술 공부를 한 후 황립 예술 아카데미에 입학, 그리고 5년 뒤에 <야이로의 딸의 부활>로 아카데미 콩쿠르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게 됩니다.
레핀은 수상으로 받은 장학금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며 유럽의 예술을 직접 경험합니다. 귀국한 후에는 러시아의 역사적 사건을 묘사하는 활동을 하였고, 톨스토이와 도스도예프스키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레핀의 대표작으로는 <볼가 강의 뱃사람들>, <쿠르스트 지방의 십자가 행렬>, <터키 술탄에게 편지를 쓰는 자포로쥐에 카자크들>,<아무도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등이 있습니다. 아래에서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아무도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와 그의 <자화상>을 소개합니다.
< 아무도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
한 남자가 먼지뭍은 외투와 신발로 평안해 보이는 방안의 공기를 가르고 집안에 들어섰네요.
화면에서 관람객을 등지고 엉거주춤 일어난 검은 옷의 여인..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여인은 그 표정을 앞에서 확인하지 않아도 뭔가 뜻밖이라는... 당황한 표정인 것을 감지할 수 있죠?
원탁에 앉아있는 여자아이의 눈은 저 남자가 누구일까... 뜨악하며 경계하는 눈빛이구요.. 식탁 아래로 보이는 소녀의 발은 방금 전까지 책을 읽으며 양발을 서로 부딪히며 까불까불 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이 어색한 공기에 얼어붙어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반면에 옛날 교복처럼 보이는 옷을 입은 오른쪽 구석의 남자아이는 이 사나이를 반기는 표정이에요. 이 집안에 있는 인물 중에 유일하게 밝은 표정입니다. 피아노에 앉아 있다가 몸을 돌린 상대적으로 젊은 여성도 반가움보다는 놀라는 듯한 모습이구요.
문을 잡고 있는 앞치마를 두른 중년여성은 뭔가 못 마땅한 얼굴로 언제든지 이 남자를 다시 내보내고 문을 닫아버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고..제일 화면 안쪽의 얼굴이 어둡게 처리된 여성도.... 호기심은 보일지언정 환영의 분위기는 아닙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는 이 집의 가장이에요. 혁명가로서 유배지에서 엄청 고생을 하다가 가족에게 돌아온 순간을 포착한 그림인데...가족들의 반응이 세상에... 이렇듯 못볼 사람을 봤다는 듯... 유령을 본 듯... 전혀 반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왜 이런 상황일까요.. 이미 이 남자는 이 가정에서 용도 폐기된 의미없는 존재가 된 걸까요? 평생 가족들에게 짐만 되었다가 유배지로 사라지고 나니 가족들은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던 걸까요..? 나의 존재가 가족으로부터 부정되는 상황... 지워져버린 존재가 된 기분...
그 느낌이 바로 진정한 공포의 순간이 아닐까요..? 내가 있어야 할 공간에서 밀려나는 느낌.. 없어져야 할 존재로 각인되는 느낌은 내 자신이 괴물로 느껴지는 순간일 거에요.
작품의 왼편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밝은 빛.. 소년의 뒷편 벽에 비치는 환한 이미지는 비록 이 썰렁한 순간이 지나면 다시 따뜻한 온기가 넘쳐나는 방안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던지는 듯 하지만 민망한 순간이 포착된 이 장면만큼은 사내의 가슴 속에 잊지 못할 상처가 되는 공포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레핀의 자화상 >
마지막으로 일리야 레핀 자신의 자화성으로 마무리합니다. 총명하고 자부심 넘치는 표정이 인상적인 작품이네요. 레핀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당대 사회상과 개인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인 화가입니다.
<볼가강의 배 끄는 사람들>에서 보여지는 사실주의적 시선은 이전의 아카데믹한 화풍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급진적인 화풍이었고, 이 작품으로 인해 레핀은 유럽에 명성을 떨친 첫번째 러시아 화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워낙 완벽주의자고 꼼꼼한 스타일이어서 작업과정은 상대적으로 매우 느린 편이었다고 합니.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경우에는 100장 이상의 스케치를 그렸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완성한 그림에도 결코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고 수년에 걸쳐 드문 드문 같은 주제의 작품을 다시 작업하여 여러 버전의 작품을 남기기도 했죠.
민중의 삶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이들의 위한 지방전시회를 하고 다니는 <이동파> 전시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던 일리야 레핀. 그의 이런 진지한 탐구정신과 행동력..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으로 인해 오늘날에도 그의 명성이 높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일리야 레핀의 작품을 보려면 모스크바에 있는 <트레차코프 미술관>에 가면 어마어마한 크기로 된 그의 작품을 실컷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