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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웹진 『비평공간』 3호
‘율의 시선’ (김민서 저 / 창비) 토론
2025년 4월 2일 발행 / 출판놀이
이재복 : 안녕하세요. 『비평공간』 세 번째 토론 작품 <율의 시선>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작가 나이가 안내에 보니까 2000년대 생이더라고요. 이 작가가 아동, 청소년기를 보냈을 때가 2010년대잖아요. 사회 문화 현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인터넷 기반으로 문화 현상이 재편돼 갈 때이지요.
인터넷 기반의 아동,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궁금합니다. 제목도 <율의 시선>이고요. 문체라든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을 것 같아요.
앞서 토론했던 <죽이고 싶은 아이>, <시한부>는 여성 인물 중심의 작품인데 <율의 시선>은 남자 아이들이 주인공이에요. 그런 점도 독특하게 느껴졌거든요.
우리 <비평공간>은 함께 만들어가는 웹진이니까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직감적으로 들었던 느낌부터 나눠보겠습니다.
변선아 : 저는 처음에는 제목을 생각하지 않고 쭉 읽었어요. 그런데 다 읽고 나니까 아, 이래서 율의 시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율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이야기의 가장 큰 주인공은 이도해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도해라는 인물한테 오히려 더 마음이 쓰였어요. 그 아이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하고 안타까움도 느껴졌고요. 희망차게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과연 이 사회에서 아이가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 염려도 되었고요.
율의 시선이 운동화 코끝에 있다가 점점 하늘을 쳐다보고 다시 사람의 눈으로 가잖아요. 그 과정을 되게 안전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게 작가가 그려 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언제부터인가 이야기를 할 때 상대와 눈을 맞추지 않고 주변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재복 : 참 좋은 말씀 해 주신 것 같아요. 안율하고 이도해, 이 두 인물에 대해서는 나중에 많은 얘기가 오갈 것 같아요. 이향지 씨는 어떻습니까?
이향지 : 지난 번 토론에 참여를 못했거든요. 그래서 <시한부>를 뒤늦게 읽었어요. 최근에 읽었기 때문에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어요. 저는 <시한부>가 되게 충격적이었거든요. 그건 여학생들의 이야기였고 이건 남학생들 이야기인데 충격이 연타로 오는 느낌이에요.
작가님이 2000년생이더라고요. 저는 2000년 초, 중반에 태어난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까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모습이 있더라고요. 저희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아, 이런 시기를 지나왔겠구나, 그런 생각을 가장 먼저 했던 것 같아요. 율도 보면 작품 안에서 친구들과 관계 맺을 때 이런 모습 보이다가 저런 모습 보이다가 하잖아요. 내가 봤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또 어떤 장면이었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시한부>와 <율의 시선>을 토론 작품으로 선정한 이유가 있었구나, 생각했습니다.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첫 소감이니까 가볍게 하겠습니다.
이재복 : 네, 첫 시작이니까 가볍게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장가영 씨는 어떻습니까?
장가영 : 저는 처음에 “글을 되게 잘 쓴다.”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중, 후반으로 가면서 이야기의 재미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고요. 읽고 나서 크게 남는 게 없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저번에 <시한부> 토론했을 때, 어떤 선생님이 <체리 새우 비밀글입니다>가 학생들한테 굉장히 인기 많다고 해서 읽어봤거든요. 그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의 몇몇 친구들이 제가 봤을 때는 너무 판타지적이었어요. 비현실적이라는 의미로요. 저는 이 작품에서도 문제 해결도 그렇고 결말도 그렇고 특히 이도해라는 인물이 너무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어서 공감이 잘 안되었어요.
작품은 술술 읽혔어요. 글을 참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이재복 : 장가영 씨가 아주 날카롭게 지적했는데, 이도해라는 인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는 거지요. 이도해라는 인물을 어떻게 봐야 되나, 이 인물을 어떻게 다층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이게 되게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좀 비현실적인 것 같고 그래서 공감하기가 좀 힘들었다, 지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고, 양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요.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 이따가 집중적으로 토론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봉열 씨는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일단 가볍게 소감도 좋고요.
이봉열 : 저는 장가영 선생님도 이야기하신 이도해에 대해서 굉장히 의문이 들었거든요. 율과 같은 또래인데다가 굉장히 불우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율이 사람의 눈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잖아요. 어떻게 보면 율의 스승 역할을 한 존재예요. 대단한 철학자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불우한 환경 속에서 이런 사고를 하는 게 가능할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시한부>에서 성민이가 했던 역할을 이도해가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성민이한테도 감탄을 했거든요. 같은 또래면서도 철학적인 생각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아, 이런 아이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는데, 이도해는 더 깊은 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가분들이 이런 구도로 캐릭터를 잡나 보다, 그런 생각도 해 봤어요.
이재복 : 안율하고 이도해가 중심인물인데, 이도해가 스승 같은 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나오지요. 이것이 과연 독자들에게 얼마나 현실적으로 다가가고 감동이 있느냐, 공감을 불러 일으키냐, 그런 문제에 대한 토론인 것 같아요. 이게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전진영 : 지금까지 세 번의 책을 했잖아요. 첫 번째 책도 두 번째 책도 청소년의 죽음을 다뤘는데요. 정말 이런 친구들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율의 시선>에서는 율과 친구들이 안 죽었어요. 청소년이 죽지 않은 내용인 것은 좋았어요. 이 작품은 죽음이 없나보다, 했는데 결국엔 아버지가 돌아가셨잖아요. 그래서 요즘 청소년 소설은 누군가 죽어야 되나? 죽음 없이는 어렵나, 그런 생각을 했고요.
남자 아이들이 읽고 공감을 더 할 수 있는 이야기라서 좋았고요. 저는 세 권 중에서 이 작품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앞의 두 권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을 했던 건, 이도해라는 아이가 처해있는 환경 때문이었는데요. 부모로부터 버림받다시피 한 그런 아이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 주변에 있잖아요. 꼭 버림받아서가 아니라 여러 형태로 부모로부터 케어를 못 받고 있다거나, 사랑을 못 받고 있다거나, 이런 아이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저한테는 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어떻게 보면 이도해가 정말 있을 수 없는 아이인데, 그런 불우하고 열악한 환경 안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잖아요. 어떤 확실한 결론 없이 끝나지만 이도해라는 아이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봉열 : 저는 지금까지 세 권의 책을 읽으면서 세대가 변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문제를 해결해 가는데 또래끼리 다 해결을 하거든요. 저는 <시한부>에서도 상담사 선생님한테 아무 도움도 못 받은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왜 어른들의 역할은 없지? <괭이부리말 아이들> 생각도 나더라고요. 그 작품에 나오는 아이들의 환경이 여기에 나오는 아이들의 환경하고 별반 다르지 않은데, 거기서는 어른들의 역할이 있어서 아이들이 아픔을 딛고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읽은 책 들 속에서 어른들은 너무 방관자예요. 특히 이번 책 같은 경우에 독자들은 이도해의 상황을 나중에 알지만, 이야기 속에서 선생님이라든지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깊이 있게 다가가지 않잖아요. 특히 보건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충분히 인식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요.
<괭이부리말 아이들>도 그렇고 <완득이>도 그렇고 출간 된 지가 좀 됐죠? 그때하고는 상황이 달라진 건가? 이게 지금 어른들의 모습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재복 : 너무 재미있는 지적을 하셨어요. 저도 상당히 공감하고요. 시대가 변한 것 같은데, 저는 청소년 문학에 대해서 몇 가지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먼저 확실히 계몽의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른이나 아이나 이제는 서로의 내면을 고백하는 자리로 가는 시대이지, 어른이 높은 자리에서 아이한테 계몽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특히 문학에서 만큼은요. 그런 언어는 상당히 올드하게 느껴지지요. 어른들의 위선이라든가 그런 것에 대해서 이제는 금기의 영역이 없는 시대가 돼버렸잖아요. 이제는 똑같은 문화 공간 속에서 같이 놀잖아요. 비슷한 영화를 보고 같은 노래를 즐기기 때문에 그런 계몽의 요구라는 것 자체가 통하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그래도 어른의 역할이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은 들지요. 요즘 청소년 작가들 눈에는 그와 같은 어른의 언어를 어떻게 수용해야 되는지, 그것도 재미있는 숙제 중의 하나일 것 같은데요. 그런 진정성 있는 어른의 모습이 과연 작품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 아직까지 근대 가부장제 권위를 드러내는 사회에서 자칫 잘못했다가는 가부장의 권위를 강요하는 어른으로 비춰지기 쉽겠죠. 작가가 상당히 예민하게 그려내야 할 것 같아요. 새로운 어른의 모습이 그려진다면 상당히 멋질 텐데, 그게 쉽지가 않을 것 같지요.
그래서 나이가 좀 된 사람들은 요즘 작품을 읽기가 힘들 것도 같습니다. 섣불리 구원자를 등장시켰다가 올드하다는 소리만 들을 테니 작가들이 엄청 고민하지 않을까 싶어요.
먼지 씨가 채팅창에 올려주신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먼지(채팅창) : 율이의 시선으로 친구를 바라보고 있지만 깊이 들어가지 않고 맴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성장서사의 틀을 가지고 있지만 그 틀이 너무 선명해서 불편하기도 했어요.
이재복 : 인물이 깊게 들어가는 느낌이 안 든다는 거죠? 틀이 너무 선명해서 불편했다는 말씀은 작품이 도식적이라는 뜻일까요? 관념적이라는 뜻일까요? 채팅창에 설명을 덧붙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문제를 하나 제기 해 보겠습니다. 소제목 ‘한밤의 거래’ 69쪽에서 70쪽이 작가가 되게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인 것 같거든요. 작품의 주제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청소년 소설다운 주제라고 생각되고요.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부분인데, 율은 앞서 걸어가고 아버지는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어 세상을 떠나지요. 이 사건으로 율이 세상을 보는 관점에 큰 변화가 오거든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을 때는 인지 왜곡 현상이 일어난다고 봐요. 트라우마라고도 얘기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도 얘기하지 않습니까? 단지 어린 아이여서가 아니라, 부모와 같이 가다가 부모가 교통사고를 당했으니까 엄청난 충격일 거예요. 이 충격으로 인해서 아이가 인지 왜곡 현상이 일어난 거죠.
인지 왜곡 현상이 일어나면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을 잃어버리고 하나의 사건에 고착되어서 이거 아니면 저거야 하는 흑백논리에 빠진다든가, 자기가 겪은 아픔을 너무 큰 결정적인 재앙으로 생각해서 자신만 이렇게 대단한 아픔을 겪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자신이 겪은 하나의 경험을 일반화시켜서 모든 경우가 다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율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가 나서 쓰러져 있는데요.
아버지의 숨이 가늘어질수록 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더 아버지에게 몰려들었다. 아버지와 나는 구경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시선들을 잊을 수가 없다.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무엇도 하지 못한 채 울고만 있는 내 모습은 아주 꼴사나왔다.
아버지의 숨이 끊어졌을 때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구급차 안은 서늘했다.
저녁 7시, 차창 밖 하늘은 녹색이었고, 교과서에서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했지만 아무도 아버지를 돕지 않았지 않냐. 왜 아무도 날 돕지 않았냐? 자신의 고통을 외부로 돌리는 거죠.
구급대원들의 대화소리였다.
“요즘 사람들 참 매정해. 사람이 죽어 가는데 무슨 구경이야.”
“119 신고한 사람도 누군지 모르겠어요. 경찰이 오니까 다들 자리를 피하던데요. 진술서 작성하고 그러는 게 번거롭다고.”
“하긴 사람들이 원래 그렇잖아. 자기 불리한 일을 안 하려는 거.”
이런 상황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청소년 주인공 안율이 인지하게 되는 세상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원래 자기 불리한 일은 안 하려고 한다. 그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엉켰던 의문의 실타래가 비로소 풀린 기분이었다.
도덕 같은 건 전부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원래 이익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돕지 않는다. 그게 당연한 것이다. 타인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러니 나도 쓸모없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울지도, 화를 내지도, 누군가 돕지도 않을 것이다.
그게 인간다운 거니까.
가치관이라고 할까, 율이 그런 시선으로 무장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이 인지왜곡 현상을 가진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고 또 어떻게 벗어나는가? 제가 볼 때 작가가 이 부분을 상당히 섬세하게 그려 낸 것 같아요.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인해 한 아이가 도덕을 넘어서는, 선과 악을 넘어서는 어떤 가치관을 갖게 된 것이죠. 작가는 이러한 인물에 대한 탐구를 한 거예요.
그러한 탐구를 하는 과정에서 이도해라는 인물을 창조해낸 것 같아요. 율과 이도해, 이 둘의 관계가 얼마나 잘 형성이 됐는지 모르겠는데, 인지왜곡이 일어난 이 장면에 대해서 좀 더 토론을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이 장면에서,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가.
이향지 씨는 이 작품의 주제랄까, 작가가 드러내려고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 것 같아요?
이향지 : 시선이라는 것 자체가 바라보는 거잖아요. 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근데 선생님 말씀하실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낮에 어떤 상담사분이 하는 YouTube를 봤거든요. 그분이 지금의 20대는 혼자 어린이집 가고, 혼자 학교 가고, 혼자 학원 가고, 이런 것을 잘한다고 칭찬받고 자란 세대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책임을 내가 져주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남한테 의지하거나 관계를 맺는 걸 굉장히 힘들어 한다는 거예요.
선생님들 말씀하시는 거 들으면서 확실히 공동체 속에서 자라난 저희 같은 기성세대하고 되게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고 보니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도 상담사가 얘기한 그 세대 아이들이고요. 공부를 할 때도 자기주도학습이니 그런 게 엄청 강조됐던 시절이잖아요. 내가 다른 사람들이랑 함께 해도 될까? 타인에게 손을 내밀어도 될까? 그런 것에 대해서 엄청 머뭇거리고, 주저하고요. 전화 거는 것도 굉장히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많고 그렇잖아요.
작품 자체가 좀 거칠게 읽힐 때도 있었거든요. 그것이 다른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는 요즘 청소년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 것 같아요. 아까 채팅창에서 먼지님이 하신 말씀 되게 공감했거든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맴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그런 모습 자체가 지금 청소년들이 관계 맺는 모습이어서 오히려 되게 리얼하게 그렸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지금은 작품 주제보다는 이 생각에 꽂혀서 말씀 드렸습니다.
이재복 : 그럼, 먼지 씨께서 채팅 창에 쓰신 거 읽어보겠습니다.
먼지(채팅창) : 선생님 말씀처럼 관념과 도식이 같이 존재해요. 214 페이지에도 ‘나는 변했고, 성장했다.’라고 독자가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다라는 방향을 선명하게 정해놓았거든요. 결론부분은 그런 방향성이 선명하다는 뜻이었어요. 청소년들이 책을 읽고 주인공이 스스로 ‘성장’했고 변했구나 느끼면 되는 것 아닐까요? 같은 페이지에 서진욱이 율에게 변했다고 말한 것처럼요.
이재복 : 1인칭 화자가 자신은 이렇게 변했고 성장했다고 규정하듯이 얘기를 하니까, 이것이 독자에게는 주제를 설득시키려고 하는 의도로 느껴진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네요. 이런 것도 앞에서부터 흘러올 때 공감을 했다면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데, 공감을 하지 못했다면 강요하는 듯한 언어로 들릴 것도 같지요. 되게 흥미롭네요.
아까 장가영 씨가 중요한 토론 문제를 제기해 주셨는데 먼지 씨 말씀하고도 상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이도해라는 인물이 관념적이고 현실성이 떨어져서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도해라고 하는 인물 설정이 어떻게 느껴졌습니까?
정미경 : 저는 초등학교 아이들이랑 책을 읽고 수업을 하고 있고요. 이 책은 제가 작년 7월에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들이랑 이야기를 나눴고요. 출판놀이에서 이 책으로 토론을 한다고 해서 6학년 남자아이한테 이 책을 읽히고 글도 한 편을 받아놓았어요.
이재복 : 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미경 : 글은 조금 이따 보내드리고요. 이도해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요. 율이랑 옥상에서 만나는 것이나 북극성으로 불리고 싶어하는 것, 그리고 도해가 하는 말들이 있는데요. ‘네 상처에도 장례를 치러줘.’ ‘내 마음이 단어가 되는 거지.’ ‘사람은 각자 스스로 부여하는 이야기 속에 살아.’ 저는 이런 것들이 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도해는 쓰레기집 아동 학대 사건으로 몇 달 동안 깨어나지 못하다가 병실에서 사라지거든요. 이런 부분도 책을 읽으면서 이상한 부분이라고 메모했던 것이었어요.
아이들이 옥상에서 만난다든가 특정한 이름으로 불린다는 게 약간 식상한 느낌이 있었는데, 하는 말들을 보면 철학적인 의미를 담은 말을 하고, 결말에서는 아주 최악의 상황인데 사라졌다가 나타나지 않고요. 그런 부분들이 이해가 안 되었고요.
처음에는 율이 아주 날카롭잖아요. 어른들 가슴에 콕 찔리는 말들을 해서 굉장히 신선하다, 아이들이 정말 이런 말을 할까, 할 수도 있겠지 했는데, 아까 어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뒤로 갈수록 많이 들어본 설정으로 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이도해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이재복 : 정미경 씨가 중요한 말씀을 해주신 것 같아요. 먼지 씨도 그렇고요.
토론을 위해서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면요. 저는 이 작품이 칭찬할 점이 되게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이 신인 작가가 생각이 참 깊구나, 생각을 정말 많이 해서 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작품을 두고도 사람마다 꽂히는 바가 다를 텐데, 저는 한 명의 독자의 입장에서 <율의 시선>의 가장 핵심적인 것을 이것으로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갈등을 한다든가 혹은 죽음을 맞는다든가, 이혼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크게 상처받는 것 중에 하나가 “내가 혹시 문제가 돼서 부모들이 저렇게 됐나.” 하는 자기 죄책감이라고 하거든요. 부모의 고통, 가족의 고통 속에 있는 아이들이 갖고 있는 내면 무의식의 상황인 것 같아요.
이 안율이라고 하는 아이를 다층의 시각에서 볼 때 가장 공감이 되었던 율의 시선이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인지 왜곡 현상이 일어난 부분이었거든요. 율은 사람들이 하나도 안 도와주었다면서 외부 사람들에 대해서 막 화를 내잖아요. 자기를 투사하는 거지요. 이러한 인지 왜곡의 현상이 발생한 이유를 저는 율의 일종의 자기 방어 기제라고 봤어요.
자신은 아빠를 살리기 위해서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어요.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자기 죄책감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는 거지요. 이 아이가 아버지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외부의 시선보다 자기 내면의 시선, 자기 내면 성찰을 통해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되는데, 바로 그 과정이 지금 이 작품에 전체 주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작품이 뒤로 갈수록 작가가 상당히 깊은 탐구를 했구나, 이 젊은 작가가 한 아이가 부모 죽음으로 인해서 겪고 있는 자기 내면의 죄책감을 극복하는 과정을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 소설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상당히 흥미롭게 봤습니다.
여기서 또 생각해 볼 문제가 있는데요. 율이 자기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세상을 이기적으로 살고, 도덕 같은 건 없다고 하고, 강약약강과 같은 사유를 갖지 않습니까? 일종의 허세인데요. 자기 자신의 무력감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기제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살면 치유는 안 되는 거겠지요.
결국 치유는 자기 자신의 내면을 한번 통과하면서 치유가 되는 건데요. 그 자기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인물을 엄청 고심해서 이도해를 만든 것 같아요. 주인공 안율의 시선은 외부에 있지 않습니까. 외부로 투사하고 있어요. 이도해는 율의 죄책감을 내면으로 돌리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리지만 되게 초월적이고 명상적인데요. 과연 이 인물이 갖고 있는 현실성이나 상징성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가슴에 가 닿는가, 그런 문제를 토론해 보면 좋겠습니다.
아까 장가영 씨가 이도해라는 인물이 비현실적이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그 말에 백 프로 공감하면서도, 이도해라는 인물의 역할이라든가 상징성이라든가 또 그런 문학적인 장치 속에서, 이도해라는 초인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캐릭터를 허무맹랑한 걸로만 치부해야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이 작품에는 여러 가지 토론 문제가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쉽지 않은 문제인데요. 이도해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이 비현실성, 이것을 과연 어떻게 봐야 되느냐. 되게 중요한 지점인 것 같아요. 장가영 씨는 어떻습니까? 토론하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장가영 : 제가 이 작품에서 되게 좋으면서도 안 좋게 본 부분이 있어요. 3부에서 율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잖아요. 고양이 장례식도 하고요. 보통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3부가 결말처럼 느껴지거든요. 율이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생겼잖아요, 그 사건을 마주하는 순간이 늦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3부에 나오는 거예요.
4부에는 사람들은 자기한테만 관심이 있고,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보았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이 나와요. 이도해라는 인물도 그렇고 자신의 친구들도 그렇고, ‘내’가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 깨달음으로 가는 게 4부였다고 봤거든요.
그런 부분이 좋으면서도 이도해 때문인지 아쉽기도 했어요. 이도해의 역할이 너무 분명하다고 해야 할까요? 율의 속심을 찌르는 핵심을 이야기하고요. 율을 위해서 존재하는 인물이잖아요. 많은 아이들 중에서 가장 상처받은 아이인데,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좀 이해하기가 어려웠어요.
이재복 : 중요한 점을 지적한 것 같습니다. 율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죄책감을 갖는데,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상징적으로 내세운 인물이 이도해잖아요. 여러분들도 작품 쓸 때 이런 구성 많이 하지 않습니까? 율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죄책감을 갖는 것을 하나의 코드로 보았을 때, 이 죄책감 코드를 상징적으로 극복하게 해 주는 인물을 외부에 설정하잖아요. 상징적 인물 기법이라고 하는데요. 이 외부에 내세운 상징적인 인물이 바로 이도해지요. 그런데 단순한 일대 일 대응으로 도식적인 느낌이 든다면 의도가 뻔하기 때문에 재미없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의인화 수준의 관념으로도 생각되고요.
변선아 : 저는 이도해라는 인물을 되게 매력적으로 느꼈거든요. 작가가 이런 등장인물을 설정했다는 것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한 것으로 보여요.
저는 이 책의 가장 큰 키워드를 무관심이라고 보았어요. 개인적인 무관심도 있고 사회적인 무관심도 담겨 있다고 느꼈습니다. 안율이 아버지의 죽음에서 느꼈던 것은 타자의 무관심이었어요. 그래서 인간답지 않다, 그렇게 생각을 했다고 생각을 했고요.
이도해라는 인물은 사회적인 이웃의 무관심으로 인해서 방치된 상황이잖아요. 무관심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했을 때, 이도해라는 인물을 그런 식으로 설정해서 대조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 중간에 서진욱 아빠도 진욱이한테 되게 무관심하게 행동을 하거든요. 그런데 안율이 서진욱 아빠한테 진욱이 다리 다친 거 이야기하잖아요. 그 이후 서진욱 아빠도 더 이상 축구 동영상을 안 보고 진욱이한테 관심을 갖고요. 결국은 이도해의 엄마를 신고한 것도 서진욱의 아빠였고요. 안율의 변화를 이끌어 낸 건 이도해였는데 작품의 마지막에서는 ‘언제 얘가 돌아올지 모르니까’ 하면서 안율의 엄마가 도해의 집을 청소해요. 안율은 엄마가 인간다운 것을 선택한 것이라는 식으로 마무리를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책에서 작가가 개인적인 혹은 사회적인 무관심을 이야기하면서 공동체로서 서로 관심을 갖는 것이 인간적인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재복 : 여러분들 <율의 시선>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장면이 있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이야기해 보면 논의가 좀 더 구체적으로 될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다면 어떤 장면이실까요?
김진영 씨는 어떻습니까? 감동적인 장면도 좋고, 작품에 대한 소감을 말씀해 주셔도 좋습니다. 편하게 해 주세요.
김진영 : 저는 책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와 닿지가 않지,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끝까지 읽고 난 다음에도 확 닿는 느낌, 감정을 흔드는 느낌, 이런 게 느껴지지가 않아서 도대체 왜 그런가 생각을 해 봤어요. 앞서 이도해가 비현실적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는데요. 저는 정말 공감을 하거든요.
이도해 같은 아이들이 실제로 존재를 한단 말이에요. 저도 예전에 그런 친구들을 봤거든요. 학대를 당한 건 아니었지만 학교에서도 왕따고 정말 지저분한 아이였어요. 그 아이를 매일 놀이터에서 만났는데 어느 날 아이가 정말 깨끗하게 하고 온 거예요, 그래서 제가 상상을 해봤던 거죠. 그동안 방치하고 있었던 엄마가 왔나 보다. 작품을 읽으면서 자꾸 그 아이가 떠올랐어요. 그 아이도 과연 이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저는 작가가 한 인물을 작위적으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작품이 와 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율의 엄마가 쓰레기 집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장면도 이해가 안 되고 서진욱의 아빠가 변하는 것도 너무 쉽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인상적인 장면은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전진영 : 저는 앞서한 책들 중에 이 책이 제일 나았다고 생각하면서 읽었거든요. 작품 속 이도해가 비현실적인 면도 어느 정도 있지만 그래도 어디선가는 존재할 수 있는 인물로 받아들이면서 읽었거든요. 여러분들 말씀하시는 거 들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읽었을까, 저를 생각해 봤어요.
저는 동네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해서 싸매고 다니시는 분들도 봤고요. 이강산 시인이 쓴 <인간의 시간>이라는 책에 보면 또 그런 분들 이야기가 있거든요. 집 없는 노숙자들이 여인숙에서 달방 생활을 하는 내용인데, 거기에도 보면 자기 방을 정말 쓰레기처럼 해 놓고 거주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생각이 없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생활방식이거든요. 우리랑 똑같은 인간인데 다르게 살 뿐인 거예요. 우리가 볼 때는 더러운 곳에서 사는 게 이상해 보이지만 그 사람들은 그게 더 편한 거예요. 저는 작품을 읽을 때도 그렇게 사는 게 더 편한 사람이구나, 생각했고요.
제가 오랜만에 전철을 탔는데, 어떤 여자분이 보따리들을 잔뜩 실은 구루마 같은 걸 끌고 타시는 거예요. 제 눈에는 보따리들이 다 쓰레기로 보이죠. 근데 하필 자리도 많은데 제 옆에 앉으시는 거예요. “<인간의 시간> 읽었잖아, 네가 이해했잖아, 그럼 옆에 앉으신 분들을 받아들여.”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긴 시간을 같이 갔거든요. 그런 경험들 때문인지 저는 이도해가 살고 있는 집안 환경이 이해가 되었고요.
또 이런 생각도 했어요.
율한테는 이도해가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제가 이런 작품을 쓴다고 해도 이도해 같은 존재를 만들어 내고 싶었을 것 같아요. 이도해가 도움을 주는 존재, 희망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을 한다면, 내가 삶을 하루를 살고, 한 달을 살고, 일 년을 살아나갈 때 이도해라는 존재는 여럿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도해는 학교 선생님일 수 있고 내 옆 짝꿍일 수도 있어요. 희망을 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많아지면 자신도 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서진욱 아빠도 진욱을 방임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똑같은 YouTube 영상을 계속 반복해서 보면서 아이를 보지도 않던 아빠였는데, 율의 말로 아빠가 변하잖아요. 그 아빠한테는 율이 이도해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요. 율이 진욱에게 “너희 아빠 이제 축구 보지 않더라.” 하는 부분이 저는 감동적이었어요.
이 책 전체에서, 율의 엄마가 청소하는 부분 있잖아요. 그건 좀 과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밝게, 긍정적으로 끝내준 것도 좋았습니다.
이재복 : 전진영 씨 말씀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물을 상징성으로 읽으면 각자 자리에서 투사하기가 좋잖아요. 그게 상징적인 인물이 갖고 있는 힘이지요. 개인적인 현실에서의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더라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투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문학에서 상징적 인물의 힘은 상당히 중요하고 또 인물이 그런 힘을 가질 때 문학성을 인정받을 수 있겠죠. 그러니까 전진영 씨 말씀대로 이도해라는 인물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자로서의 이미지를 투사할 수 있겠죠. 그게 문학의 힘이라고도 볼 수 있고요.
그런데 또 다른 관점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어린 인물에게 철학적이고 명상적인 상징성을 부여했기 때문에 투사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어요.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이 논쟁의 지점이 있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제이님이 채팅창에 올려준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j(채팅창) : 저는 개인적으로 192 페이지 부분이 가장 좋았습니다. 제목 속 ‘시선’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와 닿았어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는 어릴 때 동네 어른들의 ‘시선’ 속에서 보호 받으며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이웃과도 더 단절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서 그런지… 어릴 적 초등학생인 저를 보며 매일 안부를 묻던 문구점 아저씨, 슈퍼 아저씨들이 생각도 나면서. 단절된 이 현대 사회 속 결국… 도해를 가장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 있던 건 아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던 진욱의 아버지였다는 게…. 뭔가 가슴에 확 울림을 줘서 이 책에서 이 장면이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저도 다른 선생님들처럼 깊고 멋지게(?) 고민하고 싶었지만… 마지막에 쓰레기 더미에서 사는 친구가 도해라는 걸 드러내면서 몰입이 확 깨졌어요… (제가 얼마 전에 영화 기생충을 봐서 그런지 몰라도) 더럽고 냄새가 나는 공간에 살고 있는 도해라는 친구에게 악취가 나지 않았을까? 도해라는 캐릭터 설정에서 왜 후각적인 설정은 작가님께서 놓치신 걸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책을 덮고 나서 찜찜함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이재복 : 좋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까 이 작가가 처음에 응모할 때는 ‘외계인의 비밀’이라는 제목을 걸어서 응모했나 봐요.
그런데 아마 편집자들이 외계인의 비밀이면 도해라는 인물한테 초점을 맞춘 거니까 율의 시선으로 바꾼 것 같아요. 작가는 이 작품을 쓸 때 자신이 창조한 이도해라는 인물에 시선이 가 있었던 것 같고요. 그렇게 하면 주인공이 도해가 되어서 안율하고 갈등이 좀 생기지 않았을까? 그래서 안율을 주인공으로 하고, 주인공의 내면에 찾아온 이도해라고 하는 외계인은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로 재해석될 수 있으니까 율의 시선으로 바꾸지 않았나 싶어요. 어느 쪽 제목도 괜찮겠지만 <율의 시선> 제목도 편집자들이 참 잘 정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토론을 위해 제가 감동적이었던 장면을 말씀드리면요. 제가 볼 때 이 작가가 제일 공을 들여서 쓴 부분이 고양이 장례식 같아요. 작품에서 고양이 장례식 부분이 가장 절정인 것 같아요.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요. 저는 이 부분이 되게 가슴에 와 닿거든요. 167쪽 중간 부분인데요.
제목이 율의 시선이니까, 제 생각에는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 아이의 내면이 이 책의 주제인 것 같아요. 아버지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어떻게 여기서부터 벗어나는가. 그래서 성장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자기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밖으로는 드러내지 못하고 내면의 방어기제로서 외부에 다 투사를 하지 않습니까?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 도덕이 어디 있어, 그러면서 진정한 나는 밖으로 토해낼 수가 없었던 거예요.
심리학자들은 트라우마라든가,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라든가 이런 것을 극복하려면 오히려 직면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자신에게 가장 고통을 주었던 장면을 자기가 말할 수 있어야 된다. 그럴 때 오히려 그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도 해요. 교과서처럼 하는 얘기 같은데, 이 얘기인 것 같아요.
결국 폭탄이 터졌다. 나를 지키던 수문이 무너져 내리고, 그 속에 담겨있던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그 죄책감은 아무도 몰라야 하는 것이죠. 그것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로 무기력한 인간이 되었어요. 방어하기 위해서 무력감에 사로잡히는 전략을 세운 거죠.
한꺼번에 폭포수처럼 밀려든다. 이제 이 감정들로부터 나를 지켜줄 안전한 곳은 없다.
지금까지는 자기 감정을 지키기 위해서 무기력한 행세도 했고, 도덕적으로 강약약강으로 살면서 허세도 부렸는데 “내가 아버지를 죽였어.” 이렇게 고백을 하지요.
“내가 아버지를 죽였어.”
말이 툭 내뱉어졌다.
쉽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에요. 청소년 아이한테는 쉽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지요.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미지의 감각이었다.
내가 뱉어내고 났더니 미처 보지 못했던 감각이었던 거죠.
나는 혼란스러웠지만 저항하지 않았다.
그렇죠. 얘는 무감각으로 산 애거든요. 무감각이 자기가 인생을 버티는 힘이라고 생각했던 애잖아요. 그런데 무감각이 아니고 몸이 깨어났어요. 몸이 깨어나서 미지의 감각이 생겨났어요.
그저 말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교통사고. 사실 차에 치일 뻔한 건 나였는데, 아버지가 나대신 차에 치였어. 내가 없었다면 아버지는 지금쯤 엄마랑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을 텐데. 내가 아버지를 죽인 거나 다름없는 거지.”
율이 이도해한테 고백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이도해는 현실성이 없는 인물이더라도 안율을 내면으로 이끌어가는, 안율이 불러온 인물이라고 해도 되겠죠.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안율 자신이 발견한 인물이에요. 이도해는 안율한테만 보이는 인물일 수도 있어요. 작가가 이런 상징적인 인물을 문학적으로 발견했다고도 할 수 있고, 창조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도해가 멈췄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도해가 그냥 쭉 멀어지길 바랐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컴컴한 세계에서 소리가 나를 휘감고 흩어졌다. 들을 수 있는 것은 나의 목소리뿐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그랬어. 아버지가 허망하게 돌아가셨다고. 그러더니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더라.”
모든 것이 다 겉치레였고, 난 겉치레가 제일 싫었다. 사람들의 가식도 거짓도 전부. 그래서 겉치레뿐인 내가 싫었다. 왼쪽 가슴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숨이 가빠져 왔지만 아버지의 아픔에, 엄마의 아픔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아프다고 하는 것은 죄악이다. 만약의 근원은 나였으니까.
이 아이는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아프다고 하는 것도 죄악인 거예요. 만악의 근원은 나야, 그러니까 무감각해야 돼. 그런데 이와 같은 것도 사실은 자기 내면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자기 방어기제였던 거죠.
“허망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 어이없고 허무하다는 뜻이야. 아버지는 가치 없게 살다가 가치 없게 죽어 버렸어. 나도 그럴 테지. 모두가 그럴 거고. 사실 모든 존재는 그저 죽어갈 뿐이야.”
나는 그게 무서워. 아버지는 날 살리려고 달리는 차에 몸을 던졌는데, 엄마는 나를 빌어먹이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버리고 일만 하는데, 정작 나는 무엇을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좋았어. 이렇게 될 바에는 처음부터 없는 편이 좋았다고.”
죄책감으로 인해 이렇게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모든 악의 근원으로 투사하는 거죠.
나를 위한 희생들이 너무 벅차. 제대로 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결국 무엇도 되지 못했어. 나는 너무 부족한 인간이야.
중략
“내 삶은 무의미해.”
아픔을 자각한 순간부터 나는 이미 한계였다. 그래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안율이 지금까지 허세를 떨면서 보였던 모든 모습들이 결국은 아버지의 죽음을 회피하려는 방어기제였다는 거지요. 이도해가 171쪽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지 마. 넌 일단 네 상처에도 장례를 치러줘야 해. 죄책감이라고 하는 상처에 치러주지 않으면 너는 계속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거야, 결국 답은 네가 네 상처에 장례를 치러주는 방법밖에 없어. 외부의 그 어느 누구도 널 해결해 주지 못 해. 출발은 거기서부터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지요. 저는 이 부분이 가장 핵심이라고 느꼈어요. 작가가 상당히 보편적인 아이들의 심성을 건드리고 있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착하다고 생각하는데, 대개 부모가 싸우거나 갈등을 겪는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은 이유를 자기 죄책감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나 때문에 우리 엄마, 아빠가 저렇게 싸우는구나. 나 때문에 저렇게 제대로 안 되는구나.” 그러는 거지요.
아이가 성장하려면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하잖아요. 자기 상처에 스스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아까 이봉열 씨가 얘기한 것처럼 요즘은 어른들한테 도움을 구하는 시대도 지났다. 왜냐하면 이 고통의 근원이 다 가족에서부터 오잖아요. 가족에서부터 와요. 요즘 청소년 문학 보면 가족이 고통의 근원이에요. 그런데 어른들한테 뭘 기대하겠어요.
아이들이 살길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내면의 힘은 또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지요. 이도해라는 친구의 도움으로 자기 상처에 장례식을 치러주는 이 부분이 작가의 깊은 성찰이 드러나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도해라는 인물이 비현실적인 것 같지만 오히려 그런 인물의 창조가 작가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현실은 바닥을 치는 아이에게 구원자 역할을 맡기다보니 좀 과한 면은 있지요. 마치 외계에서 온 것 같은 구원자를 그리다가 보니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는 거고요. 부족함이라고 하기보다는 아쉬움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김진영 씨는 애들하고 토론을 많이 하시니까, <율의 시선>으로도 토론을 해 보셨을까요?
김진영 : 이 책은 아이들하고 수업은 하지 않았고요. 책을 읽었던 아이의 얘기를 들었는데, 그 친구는 간단하게 한 아이가 여자아이를 통해서 성장하는 이야기라면서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이향지 : 저는 189쪽의 장면이 참 좋았거든요.
이재복 : 천천히 읽어주시겠어요?
이향지 : 쓰레기장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내가 묻어준 고양이였다. 야옹. 고양이가 울었다. 이름이 이도해라고 했다.
이 장면하고요. 190쪽 마지막 줄에,
이도해는 경건하게 손을 하늘로 뻗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멈추더니 손가락을 쭉 펼쳤다. “W에서 한 뼘.”
이 부분도 좋았어요.
저는 이도해에 대해서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부분에 공감하면서도, 왜 이 책이 이렇게 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을까? 하는 고민을 해 보았거든요.
작품이 촘촘하게 느껴지지 않고 덜그럭거리거나 관념적인 부분들은 모두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많이 공감하는데요. 청소년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엄청 허세가 있는 시기잖아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면, 중학교 때 한 고등학생 언니를 만났었거든요. 이름도 생각이 나지가 않는데 엄청 철학적인 언니였어요. 그 언니가 어느 날 그러는 거예요. “향지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쓴 일기장을 모두 태웠어.”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일기장을 왜 태워?” 하니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고 싶어. 이 지구에 남아있는 나의 흔적을 모두 태울 거야.” 이러는 거예요. 그때 제가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이었는데, 그 얘기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지구에서 살아온 나의 흔적을 지울 수가 있구나, 막 이러면서요.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엄청 열심히 써 온 일기를 없앤 거예요. 그게 지금까지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때는 그 언니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 언니가 맨날 자기 무용담 같은 걸 얘기해줘요. “학교에서 야자 하는데 짜장면을 시켜 먹어 가지고 선생님들한테 맞았다.” 그러면 저한테는 언니가 엄청 영웅인 거예요. 고민 있으면 엄마, 아빠한테 절대 얘기 안 하고 언니한테 가서 얘기하고 많이 듣고요. 그때는 그 언니가 세상의 진실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사실 저도 읽으면서 작품이 다 이해가 되고 편한 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청소년기가 허세가 있는 시기이다보니 자기가 인생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다 안다고도 생각하는데 저는 그게 두려움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고양이도 죽고 인간도 죽어.’ 그렇게 율이 얘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은 그러한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되게 충격적으로 알게 되잖아요. 그러한 두려움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비관적이고 냉소적이게 되지만 또 그런 걸 겪어야 세상을 긍정하고 책임감 있는 한 사람의 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거고요.
제 개인적인 경험을 비춰서 생각해 보면 청소년기가 상대를 쉽게 이상화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또 그런 존재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고요. 상대를 북극성처럼 이상화하고, 내가 그 사람을 따라가면, 그 빛을 따라가면, 이 진창 같은 시기를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죠.
그리고 심사위원들이 많은 작품들 중에서 <율의 시선>을 선택을 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봤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을 해 봤거든요. 제 나름대로는 쓰레기집이 주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쓰레기는 버려진 거잖아요. 그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20,30대는 물론이고, 10대도 많지 않을까? 작가도 역시 20대 중반 정도 되니까 그런 정서를 공유하고 있을 것 같아요.
쓰레기가 가지는 상징성. 내가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 작품을 선택할 때 그런 것을 크게 보았을 것 같고요. 그리고 어른인 우리가 보기에는 아, 저런 애들이 어디 있어,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허세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청소년 독자들이 볼 때는 그 허세를 채워주는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진지한 얘기하면 애들한테 엄청 욕먹잖아요. 진지충이라고. 그런데 오히려 그런 걸 되게 목말라 하는 독자들의 경우에는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재복 : 그렇죠.
청소년들하고 토론한 내용을 알려 준 분이 있는데요. 그 분 얘기 중 하나 말씀드리면, 처음에 율이 개똥철학을 가지고 나는 강약약강이다 하면서 서진욱이 제일 강자니까 가방 들어주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근데 이걸 읽은 요즘 청소년 남자애들은 그렇게 질색을 하더래요. 요즘 애들은 절대 가방을 안 들어준다. 남자가 다른 남자친구 가방 들어주는 건 자기네들이 태어나서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아마 보통 애들은 가방을 들어준다고 하면 더럽다고 할 거라면서,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요. 설정이 과하다는 건데, 뭐, 문학적인 설정이니까 불가능할 건 없겠지요.
청소년 아이들은 이도해라는 인물도 그렇고, 율에게도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다고요. 율은 남자라기보다는 여자 같고, 청소년이 아니라 성인 같다.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오히려 여기에 토론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근대 남성성이라고 하는 그런 가치관이 이제는 많이 허물어졌잖아요. 여성이랑 같이 공존하기 위해서 남자들에게 상당히 많은 내면 변화가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런데 청소년기 남자애들은 과격한 운동도 하고 몸을 쓰고 게임하는 게 일상이기 때문에 그 힘에서 발생하는 서열 문화가 있을 거란 말이죠. 어리기 때문에 그런 원시성은 남자 아이들 내면에 아무리 문화가 바뀌어도 공존할 것 같아요.
작품 속에서 아이들이 힘을 내세우고 부딪치고 싸우고 하는데, 서진욱이나 김동휘, 김민우 같은 애들한테는 현실적으로 이런 아이들이 있을 법하다고 공감한다고 해요. 그런데 율이 내면 성찰을 하는 모습들은 아이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주목해야할 지점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습니다. 87쪽에 이런 장면이 나오거든요. 율이 도해한테 이런 질문을 하지요. “너는 네 눈앞에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이도해가 이런 대답을 합니다.
“아마 껴안아 줄 것 같아.”
이도해의 목소리는 나를 소스라치게 할 정도로 강한 힘을 품고 있었다. 올곧은 까만 눈동자를 보며 직감했다.
“떠나는 길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지도록 안아 줄 거야.”
나는 아마 평생 그날을 후회할 것이라고.
89쪽에 율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버지가 죽던 그날 나는 도움의 손길을 찾아 헤매기보단 아버지를 끌어안아야 했을까.
율이 인지왜곡을 일으키게 된 트라우마가 생긴 것은 교통사고가 난 현장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사람은 다 이기적이고 도덕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거잖아요. 세상에는 그런 인간들밖에 없다고 완전히 고착화 되었는데, 이도해라고 하는 상징적인 인물을 통해 충격적인 말을 들은 거지요. ‘껴안아줄 것 같아.’ 이것은 논리가 아닌 감성의 영역이잖아요. 도움의 손길을 왜 찾아? 더 근원적인 문제는 네가 아버지를 끌어안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지.
율의 가치관에 균열을 내는 장면이잖아요. 저는 이 작가가 율의 가치관에 조금씩 균열을 내면서 계속해서 빌드업시켜 나가는 것 같거든요. 율이 인지왜곡으로 인해 외부에 투사했던 것을 내면으로 거둬들이게 하고 있어요. 마지막에는 자기 상처에 장례식을 치러주는 장면까지 보여주지요.
청소년이 어떠한 감당하지 못한 사건을 겪었을 때 남 탓을 하며 외부로 투사할 수 있잖아요. 그럴 때 투사를 걷어 들이고 자기 성찰을 할 때 성장할 수 있어요. 이 작품은 근대 청소년 문학에서 이야기하는 성장보다, 훨씬 더 차원이 높은 성장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 인물의 내면을 탐구한 이 신인작가의 사유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 저는 작가를 응원해 주고 싶어요.
시간이 다 되어가니까, 한 분씩, 오늘 못한 이야기도 좋고요. 느낌 말씀해 주면서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장가영 : 토론 제안서를 보고 가족주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 싶었거든요. 저는 <율의 시선>과 <체리세우 비밀글입니다>가 비슷한 느낌으로 읽혔는데요. 주인공을 조금 괴롭히던 아람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결국 마지막에는 엄마가 아람이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아픔이 있는 아이라고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주인공이 그 말에 공감을 하면서 끝나는 게 저는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율의 시선>에서 드러나는 가족주의가 그런 것인지 궁금해요.
이재복 : 가족과 가족주의는 구별해야 될 것 같고요. 청소년은 아이들이니까 엄마, 아빠, 형제도 있어야죠. 가족이라는 개념을 부정하는 게 아니고요. 가족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가족주의’로 굳어지면서 생기는 문제점들을 잘 살펴보아야할 것 같아요.
폭력이나 학대 같은 문제가 있어도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이 희생당하거나 독립성이 해체되는 일이 많잖아요. 이런 가족주의의 핵심은 가부장제, 즉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인데, 아버지를 중심으로 패권을 가지고 폭력이 정당화되는 일이 너무 많았어요. 그런데 아직도 이런 왜곡된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나 정서가 사회 전반에 깊이 자리 잡고 있거든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나 사유 속에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이제는 이런 가족주의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율의 시선>의 주인공은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서 고통을 겪는데, 이도해라고 하는 상징성이 강한 이 초월적인 인물은 학대하는 가족으로부터 독립해서 혼자 떠나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가족주의에 갇히지 않은 독립적인 인물인 것도 같고요. 안율도 도해를 통해서 죄책감에서 벗어나서 자기 자신의 상처에 장례를 치러 주는 힘을 가지게 되잖아요. 그렇다면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가족주의에는 갇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꼭 이 작품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토론한 작품들이 고통의 근원이 모두 가족으로부터 시작되잖아요. 그래서 요즘 작가들은 인물을 그려낼 때 역시 가족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작품을 토론하게 될 때 더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어요. 그건 숙제로 남겨두도록 하고요.
이향지 : 지난번 토론할 때는 긴장을 했는데 오늘은 편하고 재미있었고요. 다른 선생님들도 지난 번 보다 더 자유롭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선생님이 새롭게, 야심차게 시작하신 <비평공간>인데, 더 활발하게 토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너무 금방 간 것 같아요. 책을 좀 더 열심히 읽고 토론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윤영숙 : 저는 책을 못 읽었거든요. 오늘 좋은 말씀 많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상처에 장례를 치러준다는 멋진 문장도 만났고요.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봉열 : 작품을 읽으면서 새롭게 세상을 보는 것 같아요. 저는 그간 계몽주의가 깔려 있는 그런 책들을 주로 읽었는데, <비평공간>에서 세 편의 책을 읽으면서 시대의 흐름이라고 해야하나, 새로운 걸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변선아 : 선생님들이 이야기해 주는 걸 들을 때 마다 아, 맞아. 그런 내용도 있었지. 그랬거든요. 중요한 부분들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고, 제가 놓쳤던 부분도 새롭게 많이 알게 되어서 무척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김진영 : 제가 좋았던 장면을 이야기 못했는데요. 선생님들하고 같이 얘기하면서 떠올랐어요. 율이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잖아요. 운동화밖에 못 보는데, 그 시선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드디어 사람들하고 시선을 맞출 수 있게 되잖아요. 그 부분이 너무 좋았고요. 바로 이 책의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진영 : 저는 율한테 너 때문에 아빠가 죽은 게 아니라는 이야기로 전개되면서 마무리 된 게 좋았고요. 이런 시간이 없으면 제가 청소년 소설을 읽지 않을 것 같거든요. 청소년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게 좋고, 혼자 읽었으면 그냥 지나갔을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도 좋았어요. 그리고 오늘 율의 시선만큼이나 여러분들의 다양한 시선을 느낄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정미경 : 오늘 <율의 시선>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단톡방에 6학년 남자 어린이가 쓴 글을 올릴 테니까 아이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지(채팅창) : 작가의 첫 의도가 도해에게 맞추어져 있었다는 걸 알고나니 작품이 다시 보였어요. 외계인으로 설정하거나 조금 더 선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지만 선생님께서 짚어주신 인물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함께 살펴보아서 즐거웠습니다.
이경원 : 관점이 확장되어서 좋았던 시간이고요.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저는 도해라고 하는 인물이 요즘 지드래곤이 부르는 ‘위버멘쉬’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이 고난인데 의지를 가지고 그 고난을 헤쳐가나는 인물상으로 제시가 되는 느낌을 받았고요. 책 뒷 표지에 쩡찌라고 하는 작가의 소개글이 가장 잘 정리가 되었다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재복 : 니체의 위버멘쉬를 말씀하시는 거죠. 우리가 공부할 때 그렇게까지 확장시켜서 토론하면 좋겠죠. 니체의 ‘도덕의 계보’도 이 작품에 대비시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창조하면서 사는 사람은 주인 도덕을 갖는 거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노예 도덕을 갖는 거지요. 노예 도덕을 갖는 사람은 대개 원한의 감정에 쌓여 있다거나, 외부의 시선에 휘둘리고 자기를 외부에 투사하고 그러잖아요.
율이 처음에는 아버지의 죽음을 남 탓하고, 너희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망가진 거야, 하는 노예 도덕을 갖고 있었는데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 상처에 스스로 장례를 치르면서 그 원한의 감정에서 해방이 되잖아요. 상당히 철학적이라는 느낌도 드네요. 작가가 깊은 성찰을 한 것 같습니다.
j(채팅창) : 사실 청소년 책을 읽고 같이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없었는데… 비평 공간 덕분에 여러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죽이고 싶은 아이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율의 시선>은 후반부에 밑줄을 안 친 부분이 없을 정도로… 비평 공간 덕분에 좋은 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재복 : 요즘 시국이 아주 긴장을 놓을 수 없잖아요. 아동, 청소년 문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지금 시국에 무관심할 수는 없죠. 저도 정말 가슴이 답답한데요.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비평공간> 같은 공간들도 오히려 많이 만들고 서로 이야기 나누고 북돋아 주고 하면서 내면의 힘을 키워야 절망에서도 벗어나지 않을까 싶어요.
<비평공간>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음 시간에도 참여 꼭 부탁드리고요. 오늘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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